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지음 / 사계절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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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기억해내지 못하듯 유년시절을 지낸 인간은 성인이 되고 나서 어린이에 대한 이해가 그다지 남아 있지 못하다. 아이를 낳고 기르며 그네들의 입장에 서보려고 노력하지만 그것 또한 쉬운 일은 아니다. 이미 입장이 다른 존재가 된 것이다.


  어린이든 어른이든 이 세상에 태어났다면 그것으로도 하나의 완벽한 존재이다. 여타 동물처럼 태어나자마자 독립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시간을 부모와 사회의 보살핌을 받아야 해서인지 우리는 어린이를 미완의 존재로 여기게 되는 것 같다. 우리가 익혀온 생존의 전략을 그들에게 주입하려 꽤나 노력한다.


  아이들의 말과 행동을 보면 가끔 놀라는 경우가 있다. 그들은 조금 느리고 조금 엉뚱하지만 기발하기도 하다. 예상하지 못하는 부분까지 생각하고 있기도 한다. 머리가 단순해질수록 속도가 빠를 수 있는데, 그래서 어른들의 창의성이 떨어지는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어린이들의 글쓰기 교실을 하면서 어린이들과 나눈 교감에 대해 얘기한다. 여러 아이들을 통한 여러 가지 에피소드는 어린이라는 존재에 대한 이해와 함께 즐거움도 가져다준다. 아이들의 귀엽고 기발한 생각. 계산이 없는 관계 설정에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질 뿐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행동에 위로받기도 한다.


  아이를 길러보지 못해서 아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사정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어린이는 어린이들만의 사회를 가지고 있다. 아직은 보호를 받아야 하는 약자이기도 하다. 어린이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면 식당이나 대중교통 속에서의 아이의 울음이나 장난이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과도한 장난은 나도 사실 이해하기 쉽지는 않지만 말이다.


  어린이는 미래의 주축이 될 것이라 바르게 키워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지만 최근에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바라보고 있자면 그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성인들의 횡포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된다. 그런 어른을 보며 자란 아이들은 똑같은 어른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구의 문제도 마찬가지 않을까. 어린이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면 어린이가 자연스럽게 많아지지 않을까. 자라면서 행복을 많이 느낀 세대들은 다음 어린이에게 세상을 보여주고 싶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려면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각박해지는 세상 전쟁터 같아지는 세상에서 제대로 견뎌내라고 단호한 태도를 자주 보이는지 모르겠다. 어린이의 미래는 어른들의 모습이다. 어린이를 존중하는 것은 어른으로서 존중받을 만한 일이 될 것이다. 어린이 문제는 어느 한순간의 문제가 아니라 연속되는 시간 속에서 조금씩 개선되어 갈 것이라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의 첫 번째 어린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 위해서 이 책을 읽어봄은 어떨까. 아이와 어른이 서로 존중한다는 것이 얼마나 멋지고 기분 좋은 일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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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 (반양장) -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78
손원평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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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 때 서점가를 휩쓸던 화제의 소설 '아몬드'를 구입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야 읽어볼 수 있었다. 영혼 없는 듯한 표지가 모든 것을 말해 주듯 주인공의 감각에는 조금의 문제가 있었다. 정상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고 그런 대중과 같지 않음에 있는 상태를 우리 사회는 얼마나 불안하게 바라보는지도 묘사하고 있다.


  책 중간에 나오는 '구할 수 없는 인간이란 없다. 구하려는 노력을 그만두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라는 가상의 인물 P.J. 놀란의 얘기가 모든 것을 얘기하듯 사람들은 대부분의 자신의 입장에서 상대를 이해하려고 든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을 때 어떤 기적이 생기는지 작가는 말하고 싶었을까. 주인공인 윤재의 삶도 불현듯 찾아온 곤의 삶도 끝까지 놓지 않고 보살피는 사람들의 마음이 전해져 원래의 궤도로 돌아온다.


  윤재는 감정을 느끼는 데 어려움이 있다. 어떻게 보면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로 불릴 수 있지만 그런 전문적인 용어에는 인간의 상태를 재단해버리는 기능이 있기 때문에 책 내에서는 그저 감정을 느끼는데 어려움이 있다라고만 표현한다. 그런 윤재를 세상에 적응시키기 위해 엄마는 상황에 따른 반응을 학습시킨다. 하지만 비극적인 사건으로 인해 엄마와 할머니는 그 역할을 더 이상해 해줄 수 없게 된다.


  인간의 두 면을 상징하듯 나타는 '곤'과 '도라'. 둘은 모두 방황하고는 있지만 '곤'은 어둠을 '도라'는 밝음을 상징한다. 집안 구석구석 '희로애락'의 한자를 붙여놓던 할머니와 달리 윤재의 일상에 그것들이 존재하게 된 것이다. 그들 사이의 교감은 감정조차도 사회적으로 편향된 지금의 시대에 던지는 메시지다. 결핍의 존재로 등장하는 것은 주인공 윤재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편견 없이 볼 수 있고 이해하려 노력할 수 있었다. 우리 사회에서 낙인을 찍어버릴 법한 '곤'에게도 순수한 과정을 통해 관계를 열어나가게 된다. 감정에 대한 표현을 제대로 못하는 것은 주인공 윤재일까? 사회에 묻혀 살아가는 사람들의 얘기일까?


  여러 사람이 이루는 사회가 굴러가려면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주인공 윤재가 상황에 따라 취해야 하는 행동과 말을 배우는 것은 그런 것들의 하나이다. 하지만 그런 행위는 누구나 강요받고 있다. 사회라는 물결에 몸을 맡기기 위해서 우리는 감정을 강요당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집단적인 판단과 분노가 강해질수록 개인은 사회 속에 자신을 묻어 익명성에서 안정감을 얻게 된다. 타인의 감정에 무감각해지는 것은 사회적 질병이 되어버린 게 아닐까.


  이 작품은 결핍한 사람을 통해서 드러나는 결핍된 사회를 보여주는 거울 같은 작품이다. 주인공 윤재가 원래의 감정을 알아간다는 것으로 성장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보다 더 주요했던 메시지는 그가 성장함으로써 주위의 인물들마저도 자신의 궤도로 돌아옴을 보여줌으로써 사람에 대한 편견 없는 시선이 사회를 치유하고 그런 사회가 다시 사람들에게 공감의 능력을 부여해 줄 수 있다고 얘기하는 듯했다.


  각박해져 가는 사회. 이제는 사이코패스가 인류 진화의 방향이라 주장하는 학자도 생기는 지금의 시대에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려는 노력이 얼마나 중요함을 생각해주게 하는 따뜻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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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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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8년 초판을 찍은 이후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이 도서는 요시모토 바나나를 알리는 시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세 편의 단편을 담고 있으며 모두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겪으며 받은 상처를 치유해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역자는 이 작품집을 요시모토 바나나 특유의 '행복한 상처 깁기'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것은 작품의 주인공들이 역경을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위에 퍼져있는 가장 흔하면서도 가장 따뜻한 형태로 상처를 치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전 소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요시모토 바나나의 문체가 그대로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친절하고 부드럽게 이끌어가는 문장들은 불편함이 없이 빠져들게 만들었다. 자칫 밋밋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작가 특유의 따뜻하면서도 세밀한 묘사가 읽는 재미를 유지시켜 준다.


  아내를 보내고 아들을 위해 스스로 '여자'가 되어 게이 바를 운영했던 에리카의 '키친', 그런 아버지를 여의고 현실에서 도피하듯 여행을 간 유이치. 그런 그를 위해 출장지에서 맛있는 돈가스를 먹다 생각난 그에게 달려간 미아케. 그날 밤의 '만월'. 죽은 애인의 유품(치마)을 입고 등교하는 히라기의 '달빛 그림자'.


  책 속의 내용은 우리나라에서 혹은 우리 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얘기는 아니다. 어떻게 보면 기이한 수준이기도 할 듯하다. 하지만 편견의 안경을 벗어두고 그들의 마음을 읽어내려고 노력한다면 슬픔 가운데에서도 소소하고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일본 소설 특유의 잔잔함이 있고, 인물들 사이 서로 건드리는 감정의 미묘함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가벼운 영화를 보듯 단번에 읽어낼 수도 있겠지만 등장인물들의 묘한 심리 변화를 읽는 재미도 분명 있다. 인간의 아픔 중에 가장 큰 상처인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그 상처가 아물어가는 것을 보며 작은 희망을 얻을 수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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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스퀘어
안드레 애치먼 지음, 한정아 옮김 / 비채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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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살아가는 이방인이 만난 또 다른 이방인. 자신의 모습을 보는 듯한 동질감과 벗어나고 싶은 감정이 뒤엉킨 주변인으로서의 삶과 심리를 실감 나게 묘사되어 있다. 한 명은 하버드에서 자신의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며 추방을 기다리는 듯한 무기력함을 다른 한 명은 택시 운전을 하며 미국이라는 나라에 지지 않으려는 듯한 투쟁심을 보여준다.


  하버드라는 견고한 울타리 속의 인간이 택시 운전을 하며 추방을 무서워하며 살아야 하는 인간에게 느끼는 심리를 잘 묘사한 이 책은 김영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이집트에서 온 유대인. 튀니지에서 온 아랍인. 둘은 어쩌면 앙숙이어야 할 것 같지만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적응하는 이방인으로 서로에게 끌리게 된다. 추방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추방되기를 기다리며 사는 것. 그것은 작품의 주인공인 내게 이집트에서 느낀 감정이었고 미국에서 만난 택시운전사 칼리지의 상황이기도 했다. 


  그들의 상황은 비상이었는지 모른다. 모든 것이 비상용으로 치부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둘의 관계도 비상용 우정이었을지도. 하지만 주인공은 칼리지를 겪으면서 그의 삶이 곧 자신의 삶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주인공은 칼리지에게 급속도로 빠지게 되면서도 자신은 그와 다르다고 생각하려 한다. 그를 부끄러워하고 그런 자신 또한 부끄러워한다.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살아남기 위한 이방인들 사이의 공감과 그 너머에 존재하는 자신은 다르다는 생각을 하려 하는 것이다.


  칼리지가 결국 미국에서 떠나게 되었을 때조차 주인공은 송별회에 참석하지 않는다. 괜한 뜨거운 감정을 보이는 것은 자신 또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느낌이었을까? 누구보다 칼리지를 좋아했던 주인공은 누구보다 그를 멀리 둔다.


  시간이 흘러 아들과 함께 다시 찾은 하버드에서 칼리지의 흔적을 더듬으며 회상해 보며 마무리한다.


  책을 읽어가며 주인공 설정이 '아웃 오브 이집트'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고, 주인공의 성격도 비슷해서 기분 탓인가 싶었는데, 같은 작가의 작품이고 '아웃 오브 이집트'는 에세이, 이 작품은 자전적 소설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집트에서 살았던 유대인이라는 주인공은 너무 닮아 있었다. 


  도입부터 집중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지만 주인공이 칼리지를 어느 정도 마음에 둔 상태부터의 전개는 꽤나 흥미로웠고 주인공의 생각과 심리의 변화를 따라가는 것이 흥미로웠다. 젊은 날의 추억을 회상하는 듯한 애틋함이 있는 그런 작품이었다. 문화적 거부감으로 잘 읽히지 않는 영미 소설이지만 이 책은 재미나게 읽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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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편이 없는 자, 이방인을 위한 사회학 - 익숙한 세계에서 낯선 존재로 살아가기
김광기 지음 / 김영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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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당신이 다수 속에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땐 언제나 잠시 멈추어서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라는 말을 남겼다. 군중의 열기와 선전 속에서 나는 올바른 생각을 하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는 모두 이방인이면서 이방인이길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익숙한 세계에서 낯선 존재로 살아가야 하는 이유와 방법에 대해서 고찰해보는 이 책은 김영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책을 처음 접했을 때에는 난민이나 이민자들의 얘기가 아닐까 싶었다. 먼 존재로 각인되어 있는 이방인. 고립되어 있는 사회에 무턱대고 나타난 사람들만이 꼭 이방인일까 라는 질문으로 책은 시작한다. 하지만 원래부터 이방인이 아닌 사람은 누구일까? 우리는 어디선가 와서 어디론가 떠난다. 결국은 사회는 이방인들의 만남으로 이뤄져 있다. 그 만남의 시간이 길고 짧음만으로 이방인을 구분 짓고 있다.


  이방인의 반대되는 의미로 토박이가 있다. 토박이는 자연적 태도에 절어 있는 상태다. 자연적인 태도는 안전감을 주기 때문이다. 사회에 동화되어 튀지 않는 행동을 하는 것은 익명성을 유지하는 것과도 같다. 익명성은 치러야 할 대가가 있다. 그것은 '의심하지 말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다. 이런 태도는 우리 몸에 습관이 되고 습관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의심을 더 빨리 사라지게 하고 의심이 끼어들 여지를 차단해 버린다. 담배 피우는 것이 몸에 해롭다는 것을 알지만 담배를 피우는 동안에는 그 의심을 접어두게 된다.


  이방인은 호기심의 사람이고 모험의 사람이다. 변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다. 신체와 정신 모두가 역동적인 사람이다. 얻어터지고 깨어지더라도 살아 있음을 느끼려면 이방인의 자리에 있어야 한다. 그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다. 신념의 가축 상태에서 벗어나길 원한다면 낯섦을 마주해야 한다. 


  영어의 Person은 페르소나에서 나왔다. 즉 인간은 가면인 셈이다. 수많은 가면을 썼다 벗었다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나는 무엇인가? 나는 아버지이며, 가장이며, 남편이며, 누구의 친구 등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그것은 사회적 역할에서 나오는 가면들 뿐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무대에 올라 각자의 역할을 편하게 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많은 철학자는 '나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그렇게 고민했는지도 모르겠다. 무대 위에서 역할 놀이만 하다가 떠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고독과 외로움은 혼자됨을 나타내지만 다른 의미가 있다. 신학자 폴 틸리히는 외로움은 "홀로 있음의 고통", 고독은 "홀로 있음의 영광'이라고 표현했다. 토박이에게 혼자됨은 외로움일 테고 이방인에게 혼자됨은 고독일 것이다. 이방인에게 홀로 있다는 것은 고통스럽거나 회피하고픈 것이 아닌 반드시 있어야만 할 필수품이기 때문이다.


  외국에 나가보면 그 나라 사람들은 왜 저렇게 행동할까라는 궁금증이 드는 때가 있다. 자연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드는 행동이다. 그 사회를 지탱하기 위해서 자신의 행동을 그곳에 억지로 맞추다 보니 어색해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 있어서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스스로 이방인이 되어보면 그 부자연스러움을 느낄 수 있다. 


  이방인이 된다는 것은 두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스스로 행동하고 스스로 책임져야 하기도 하지만 아무런 이유 없이 조롱받거나 핍박받기도 한다. 하지만 세상을 이끌었던 천재들은 모두 괴짜였다. 그들은 주류 문화에서 벗어난 이방인들이었다. 모두가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고 하던 시절에도 생명은 신이 만들었다고 생각하던 시절에도 의심을 품고 이방인으로 살았던 사람들이 세상을 바꿨다.


  익숙한 세계에 몸을 던진 채 흘러가듯 살아갈 것인지 들판에 홀로 서 있을 수 있는 낯선 존재로 살아갈 것인지는 자신의 몫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이방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눈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방인이 되어야 한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내 속의 이방인을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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