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업데이트할 시간입니다 - 흔들리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당신에게
남궁원 지음 / 모모북스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남궁원 선생님이 에세이를 쓰셨나 싶어서 서평 요청을 하는 출판사의 물음에 즉답을 했다. 생각보다 좋은 기회였고 좋은 글을 만날 것 같은 기대가 있었다. 제목이 조금 어울리지 않은 것 같았지만 좋았다. 100세에도 글을 적는데 향년 88세의 나이에 글을 낸다는 것은 그 깊이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책을 펼치고 만났던 글은 매우 서정적이었고 작가는 내가 알고 있던 남궁원 님이 아닌 듯했다.

  시와 산문으로 이뤄진 듯한 이 책은 모모북스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제목에서 바로 알 수 있듯 그렇게 좋은 말과 희망적인 문장으로 삶에 치유하고 용기를 북돋으려는 글들로 채워져 있다. 자신에 대한 생각 상대에 대한 생각으로 글을 담았다. 그 글은 사랑일 수도 아픔일 수도 있다. 그리고 마지막 즈음에는 한 발짝 내딛을 것을 권하는 글로 담겨 있다.

 글은 따뜻하고 읽기 좋았지만 힐링 도서 특유의 감각을 벗어나지는 못하는 듯하다. 좋은 글귀들이 많았지만 같은 말을 여러 명에게서 듣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사람의 생각이 비슷하고 용기를 북돋는 말 또한 그렇게 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치유와 희망보다는 질곡진 삶 속의 투쟁하는 삶의 글이 좋아져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좋은 글귀 몇 개를 모아 본다. 시집을 읽듯 단 하나의 문장을 찾아낸다면 이런 종류의 책들은 그 가치를 다 한 것이라고 생각이 들 때도 많이 있다. 이를 테면 이런 표현이 좋다.

시선을 다시 나에게 맞추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우린 타인에게 관심이 많다. 행복은 상대적인 것이라 나의 행복을 확인하는 시간과 내가 더 채워야 하는 부분을 쉴 새 없이 궁리하는 듯하다. 사실 우리는 타인에 집중했을 때에는 결코 행복할 수 없다. 시선을 거두어 나에게 맞추면 오롯이 나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그대 내게 와 마른 가지에 벚꽃 잎을활짝 피워 우수수 핑크빛으로 시야를 물들일 때그때를 봄이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왜 꼭 벚꽃이어야만 했을까?라는 생각도 잠시 했다. 봄을 알리는 꽃으로는 매화가 더 적합할 텐데.. 너무 결기에 차 있지 않고 연한 분홍의 수줍음을 품은 벚꽃이어야 말로 매화보다 사랑에 가깝다고 느꼈을까. 매화는 사랑보다 지조의 느낌이 강하니까. 따스함을 간직한 봄. 사실 나를 부르는 아내의 애칭이라 더 공감이 갔다.

상처는 받은 것만 남지만사랑은 했던 것만 남는다.

    조금은 흔하지만 언제 들어도 좋을 말.

나는 도둑 같은 사람이 좋아.언제나 나를 욕심 내주는.

  이런 반전 있는 문장이 좋다.

   약간의 오해로부터 시작된 독서여서 실망감도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렇게까지 특별하지 않은 에세이였지만 오랜만에 만난 달달함은 조금 머쓱하기도 하지만 말랑말랑 해지는 마음의 느낌이 좋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알아두면 쓸데 있는 유쾌한 상식사전 6 : 우리말·우리글 편 가리지날 시리즈 6
조홍석 지음 / 트로이목마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신을 지식 큐레이터라고 얘기하는 작가는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오리지널을 '가리지날'로 정의하고 여러 가지 재밌는 얘기를 해준다. 이 책은 시리즈의 6번째 책으로 우리말 우리 글이라는 카테고리로 나누고 있지만 우리의 것에서 시작해서 종횡무진 전 세계로 펼쳐져 간다. 현재와도 연결되어 있는 재밌는 사실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현재에 이슈에 올라 있는 말들의 기원을 찾아서 고대부터 현대까지 그리고 한국에서 일본, 중국 심지어 서양까지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흥미로운 이야기는 트로이목마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살다 보면 의미가 변해서 최초의 의미와 다르게 사용하기도 하고 전혀 다르게 이해하기도 한다. 말은 그렇게 시대를 거치며 변해 간다. 동시에 일제 침탈을 겪은 우리에게는 우리말과 글을 빼앗길 뻔한 적도 있었다. 많은 분들의 노력으로 지켜지고 지금껏 사용하고 있다. 동시에 선진 문물을 먼저 받아 정립한 일본의 말을 차용해서 쓸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 있기도 했다. 우리의 말에 숨겨진 이야기를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지금 한참 사용되는 '민중은 개돼지다'부터 시작한다. 개와 돼지는 원래 귀한 녀석들이었는데 지금은 무지함으로 여겨지고 있다. 고구마는 감자랑 구분하기 위해서 생겨난 단어이고 도끼와 거북이의 거북이는 자라다. 고약해는 조선 초기의 학자로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충신이었고, 이에 후대에 그와 같이 쓴소리를 하면 고약해 같다고 표현했는데 그대로 이어졌다. 샌드위치는 샌드위치 백작을 모함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이고 실제 샌드위치 백작은 바쁜 업무 중에 샌드위치를 먹었다. 조선의 마지막 왕인 고종은 얼리어답터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철수와 영희에서 영희는 잘못된 말이다. 원래는 영이었다. 후대에 사용되면서 당연히 계집 '희'가 맞겠거니 하면서 영희가 되었다. 88 올림픽에서 호돌이는 '범돌이'라는 국민적 투표를 무시한 명명법이었고 주제곡인 '아침의 나라에서'는 트로트 느낌이 난다고 '손에 손잡고'로 바뀌었다. 지금은 모두 익숙하고 좋은 기억만 남은 것들이지만 절차는 훌륭하지 못했다. 

  서문에 말하는 저자는 전문가가 아니며 많은 독서와 사색으로 용감하게 글을 쓸 수 있다는 얘기에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걱정이 조금 들긴 했다. 가장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은 이승만과 6.25 전쟁을 얘기하는 부분이었다. 이승만이 김일성이보다 낫지 않냐고 두리뭉실하게 넘어가는 부분과 맥아더의 잘못된 전술로 중공군에게 격파당하고 장진호에서 처절하게 미군이 맞서 싸운 것을 이승만의 감격으로 표현하는 걸 보니 조금은 불쾌한 느낌도 들었다. 승자도 없는 싸움이었다. 

  6.25를 국제전으로 이끌고 간 것은 결과적으로는 중공군이었지만 원인은 3.8선을 넘고부터는 중공군의 개입이 있을 수 있으니 속도 조절하라고 했던 미 정부의 말도 거부하며 말도 안 되는 북진을 한 맥아더도 원인일 수 있다. 이승만은 휴전을 반대하며 거제도 수용소에 있는 강제 송환 포로를 풀어줘 버리기도 했는데, 평화의 사자처럼 적혀 있는 것이 불편하긴 했다. 시간이 없어 여순사건에서 제주 4.3 사건으로 이어지는 책을 아직은 펴 보지는 못했다. '각하'와 '영부인' 그리고 '빨치산'을 설명하려고 했던 취지를 이해했기 때문에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계속 읽어 나갔다.

  이런 불편한 사실을 제외하면 굉장히 흥미롭게 구성되어 있으며 호기심을 자극한다. 문체도 가볍고 경쾌해서 잘 읽히는 편이다. 즐겁게 읽어보고 또 자신의 생각과 빗대어 보면 좋을 것 같다. 개인적인 사색이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흥미로우면 인터넷에 찾아서 더 깊숙이 알아보자. 

  이 책을 만나기 직전에 한국전쟁 책을 읽어서 일지도 모르고, 오늘 관심 있게 담은 책들이 여순 사건에 관련된 책들이라 감정적으로 격해졌는지도 모르겠다. 사실은 모두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은 이 책 자체가 알려주는 교훈이면서도 이 책에도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도 함께 하면 좋을 것 같다. 너무 흥미로웠던 책 조금은 삐딱하게 읽은 듯 하지만 이런 즐거움도 책을 읽는 즐거움에 하나가 아닐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공정 이후의 세계
김정희원 지음 / 창비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공정'은 어느 세대에서나 화두였지만 최근처럼 '공정'이 자주 언급되지는 않았다. 새로운 세대의 키워드가 '공정'에 맞춰져 있다고 하며 여기저기에서 공정을 언급하며 시대의 지도자처럼 행동하고 있다. 공정이라는 것에 대한 많은 토론과 책들도 나오고 있지만 그들이 말하는 공정이 무엇인지 여전히 확실히 이해할 수 없다. 나에게 보이는 공정은 나의 문제에서만 공정인 듯했다. 선택적 분노였던 것 같았다.

  시대가 외치는 공정. 그 공정의 프레임 속에서 주도하려고 하는 많은 생각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공정'이라는 키워드일까? 굉장히 넓은 의미를 가지는 공정을 굉장히 좁은 의미로 공정으로 사용하는 지금의 시대 더 넓은 시각으로 바라보자고 하는 이 책은 창비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공정이라는 거대 담론은 시대의 어쩔 수 없음을 이유로 아주 편협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능력주의와 결합되어 능력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굉장히 공정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불안정성이 높아진 사회에서 경쟁은 더욱더 심해지고 자신과 조금이라도 다른 무언가에 대해서는 분노하게 되었다. 언론과 정치인들은 이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프레임을 만들고 분노를 조장하고 있다. 

  갑자기 급부상한 '공정'이라는 화두는 그동안 사회 안전망에 투자에 대해 브레이크를 걸었다. 원래 누려왔던 권리를 박탈당하는 피해 입은 특권들의 분노도 표출되기 시작했다. 그들은 '너의 상황은 너의 책임이지', '나도 노력했어. 너도 노력하면 가능해', '나는 죽도록 고생했는데, 너도 고생해야지'와 같은 공정 경쟁, 각자도생, 능력주의로 이어졌다. 이런 논리들은 모든 문제를 개인에게 돌리고 사회 안전망의 필요성을 부단히 부인하고 있다. 

  그 많은 공정에 대한 언급이 있음에도 우리나라에서 공정은 늘 제자리를 머물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공정 담론이 확대 재생산되는 메커니즘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 번째는 자신들과 동일한 선 상에 놓여 있지 않은 사람들은 전부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자격 박탈이다. 특별한 위치에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을 입사시키는 것은 모두가 경쟁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불공정'이며 공정은 그네들만 외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두 번째는 자연화된 인식은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평가다. 지난 팬데믹 상황에서 공공의료 확대를 얘기할 때 대한의사협회의 카드 뉴스는 이를 잘 보여 준다. '학창 시절 공부에 매진한 전교 1등 의사와 의사가 하고 싶은 성적이 낮은 의사 누구에게 진료를 받고 싶습니까?'라는 식의 발표는 그들의 사상에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것만으로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는 한국 사회의 인식을 보여주었다.

  그 외에도 이해관계의 문제를 공정의 문제로 뒤집어 씌우기도 하고 공정과 불공정의 표현이 등장하면 실질적인 논의가 외면당해 버린다. 그리고 개별 사안들을 추상적이거나 거대한 담론으로 연결시킴으로써 정당화해버리기도 한다. 기득권들은 이미 가진 권력으로 프레임을 만들고 여론을 조작한다. 언제나 자신의 이해관계가 정당하다고 역설한다. 우리 사회에서 공정에 대한 담론은 특정 세력을 위해 무기화되어 있다.

  지금의 시대는 불공정한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법의 잣대도 사람에게 공정하게 들이우지 못한다. 심지어 그 법을 만든 사람들 또한 공정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지금의 시대의 어찌할 바를 몰라 법과 능력주의라면 공정할 것이라고 생각을 많이 한다. 그것을 공정이라고 착각할 수밖에 없는 안타까움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공정의 기준은 생각보다 모호하고 또한 공정할 수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모든 사람은 다른 능력, 다른 환경에서 태어나기 때문이다. 능력주의로 얘기되는 공정은 차별을 없앨 수 없다.

  능력주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부작용을 놓게 된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 능력이 좋은 사람들에게 관대하게 된다.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스티븐 잡스는 직원들을 혹독하게 대했다. 사원들 앞에서 모욕을 주는 충격 요법을 사용했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나 우버의 임원직들 또한 그랬다. 상관의 폭행과 성추행은 공공연히 묻혔고 그들의 비이상적인 갑질은 능력 있으니까 그럴 수 있지 라는 말도 안 되는 수긍을 만들어 냈다. 

  그들의 능력은 온전한 그들의 능력 일까도 의심해 보아야 한다. 미국의 억만장자는 미국의 경제 발전의 시대를 함께 했으며 그들을 지원해줄 수 있는 재력을 가진 집안의 사람이었다. 빌 게이츠가 위대한 경영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부모의 재력 집 근처에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 도서관이 있었다는 점. 그가 활동할 수 있는 교수와 그 랩과 인연이 닿아 있다는 무수한 환경도 도움이 되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영재 학교나 특목고들의 입학생의 절반은 대치동 모 학원 출신들이다. 초등학교부터 외국에 다니며 영어를 배우고 족집게 과외와 기출문제를 잡아주는 스타 강사에게 배우는 이들과 지방에서 교과서로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들 사이에 능력주의의 잣대를 대는 것은 공정할까. 영어를 즐기고 유창하게 하지만 TOEIC이 낮은 친구와 족집게 선생의 문제 푸는 방법을 듣고 높은 점수를 받는 친구 중에 누가 더 능력주의에 부합하는가?

  사회에서 공정을 얘기하려면 결국 사회적 구조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부모님께 학비를 받아서 학교를 다니는 아이와 알바를 해서 학비를 모아가며 공부하는 아이 사이에도 불공정은 발생한다. 모두 같은 선상에서 출발하기를 원하지만 아무도 같은 선상에서 출발할 수 없다. 

  최근에는 편견을 버리고 제대로 된 인재를 뽑기 위해 블라인드 테스트를 실시한다. 블라인드 테스트를 맨 처음 실시한 곳은 뉴욕 필하모니 오케스트라라고 한다. 원래 여성이 1명도 없었지만 블라인드를 실시한 이후 여성의 비율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백인 여성이었다. 흑인과 유색 인종 그리고 제3세계 인물들은 도대체 증가하지 않았다. 우리의 기울어진 운동장은 블라인드 채용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불공정함이 있는 것이다. 이제는 공정에 앞서 같은 시작점에 설 수 있는 사회적 구조에 대한 얘기를 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공정 그 자체는 중요한 단어다. 공평하고 올바른 사회를 만들어 가려는 열망 또한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공정한가 아닌가'의 문제에 매여 있다. 기득권들이 공정이라는 것을 자신의 이해관계에 연결하여 프레임을 만들고 있다. 우리는 잠시 멈추고 생각해 봐야 한다. 공정한지 그렇지  않은지만을 얘기할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문제로 생각을 돌려야 한다. 구성원의 인권을 존중하고 차별 없는 사회를 만들고 윤리적인 리더를 만들어 내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관심이 필요할 것 같다. 편협하게 찌그러져 있는 공정을 조금은 더 넓은 범위로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머니 - 화폐 이데올로기·역사·정치 전환 시리즈 1
제프리 잉햄 지음, 방현철.변제호 옮김 / 이콘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 옛날 조개껍데기를 교환의 수단을 사용하고부터 인간에게는 화폐의 개념이 생겨 났는지 모를 일이지만 본격적인 화폐는 여러 사건들을 겪으며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될 사회 구성 요소가 되었다. 화폐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던 초기의 화폐들은 금이나 은으로 만들어져서 화폐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었다. 물론 은의 생산량이 들면서 금화의 가치가 은화의 가치를 넘어서게 돼도 했지만 충분히 재화 그 자체로의 가치 또한 있었다. 가상 자산이 금융 시장을 들썩이게 만드는 지금의 시대 화폐는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 할까?

  거대한 조직의 지불 가능성을 믿는 '신용 금융'은 어떤 문제를 가져올 수 있는지 방대한 양의 자료를 제시하며 설명하는 이 책은 이콘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 볼 수 있었다.

  이 책은 굉장히 어렵다. 전문 용어가 난무하는 것이 첫 번째로 어려운 점이었고 문장 자체가 쉬이 읽히지 않는 것이 두 번째 어려움이었다. 방대한 양의 고증이 있는데도 200 페이지 가량이 담았다는 것은 읽는 사람에게 경제적 지식이 있을 거라는 조건이 있는 것 같았다. 경제학도나 금융 문제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을 위한 도서가 이 도서인 것 같다. 그럼에도 여러 모로 많은 얘기를 접할 수 있는 것은 장점이다. 조금씩 뜯어서 따로 공부해도 좋을 것 같다.

  화폐는 거대한 우리 사회를 움직이고 또 유지하게 해주는 중요한 사회적 기술이다. 하지만 여전히 논쟁의 중심에 서 있기도 하다. 돈의 문제는 삶에 직결되기 때문에 민감한 사안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발전해 오면서 화폐의 개념조차 확실하지 않다는 것은 놀랄 일이다. 지금의 경제학은 19세기의 의학 수준이라고 얘기한 한 경제학자의 얘기는 화폐의 정의에서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화폐는 장기적으로는 생산능력을 넘을 수도 없고 넘어서도 안된다는 주류 경제학자들의 생각과 달리 '학문적'이지 않다. 화폐는 다분히 권력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어서 누가 어떻게 얼마나 생산하는 등의 통제권의 갈등이 발생하게 된다. 화폐는 상품의 단순 가치의 척도이면서도 수많은 논쟁 속에 있기도 하다. 화폐는 생산물이 소비될 만큼의 양만 있으면 되는데 그것을 늘리고 줄이는 일은 그렇게 녹녹하지 않다. 화폐가 모자라면 경제활동이 위축되고 너무 많으면 물가상승을 가져오게 된다. 

  자본주의에서 통화관리는 결국 두 개의 균형 잡기의 문제다. 화폐가 모자라면 경기 침체, 너무 많으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경기가 침체되면 '양적완화'를 그렇게 시중에 풀린 돈은 인플레이션을 일으키고 다시 '긴축'으로 이어진다.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이 가벼운 파동으로 연속에서 이어지는 것은 아주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모습이기도 하지만 그 파동이 심해지면 우리는 위기를 맞게 된다.

  따라서 중앙은행이라고 불리는 은행들은 인플레이션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 상태를 목표로 삼지 않는다. 그리고 디플레이션은 통화정책으로 해결되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양적 완화가 소비와 생산을 자극하지는 못한다. '아베 노믹스'로 십수 년간 엔화를 찍어내듯 한 일본에서도 여전히 '경기 침체'는 해결되지 않는다. 디플레이션은 심리적 위축이기 때문에 돈이 풀리면 소비가 아니라 저축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이 심해져 하이 인플레이션이 된다면 화폐 그 자체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라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게 된다. 

  화폐의 탄생은 '호황과 불황'의 파도의 원천과 같은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을 관리하기 위해서 중앙은행이 탄생했다. 법화라고 불리는 국가가 지정한 화폐도 그래서 존재하게 된 듯하다. 그리고 세계를 주름잡게 되면 주된 통화가 되면서 우리는 그것을 기축 통화라고 부른다. 지금은 달러가 전 세계의 통화를 지배하고 있다. 화폐의 권력은 그것을 인증하고 있는 권력의 크기에 비례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로화는 특이하다. 많은 나라들이 사용하는 유로화는 특별한 점이 있다. 첫 번째로 재정과 통화의 영역이 분리되어 있다. 두 번째로 중앙은행에 주권이 미치지 못한다. 1999년에 도입된 유로화는 유럽 중앙은행에서 관리한다. 유럽은 단일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특정 국가의 상황에 대해서도 독립적이다. 나라 내 경제 상황에 따라 통화 정책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유로존에서 경제 경제력이 약한 나라는 통화 정책을 이용해서 수출을 늘이고 수입을 제한하는 정책을 사용할 수 없다. 유로존은 독일과 프랑스를 위한 제도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이런 중앙 집중적인 시스템에 대항하며 등장한 것이 비트코인이다. 가상화폐로 최근에 엄청난 이슈 몰이를 하면서 그 가치가 급속도로 상승했다. 비트 코인은 세 가지의 장점이 있다. 첫째로 암호로 짜인 공급 유한성은 금의 자연적 희소성에 비견된다. 둘째로는 블록체인이라는 기술로 인해 전통적인 통화보다 안전하다. 마지막으로 익명성을 가진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비트코인은 화폐 근본 기능을 수행할 수 없음이 입증되었다. 그 가치가 급등락 하여 상품의 가치를 매기는 데 사용될 수 없고 지급 수단으로도 인정받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이 상황은 17세기 중반 네덜란드의 튤립 버블에서 시작된 자본주의 투기적 열풍의 긴 행렬에서 마지막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가상 화폐는 화폐가 하지 말아야 하는 거래에 불확실성을 가진다. 언제 오를지 몰라 사용하기 꺼리고 언제 내릴지 몰라 수취하는 것을 주저하는 것은 화폐가 될 수 없다.

  화폐는 어느 순간부터 생산물보다 더 많아졌다. 은행은 가상의 것을 만들어 내어 상품을 만들어서 판다. 은행은 실제 지급해야 하는 현물만큼의 화폐만 보유하고 있으면 된다. 하지만 신용 카드나 전자 계좌를 사용함으로써 은행이 보유하고 있어야 할 지급 화폐도 보유하지 않게 되었다. 전산화되어 점점 더 e-머니로 바뀌게 되면 화폐는 얼마나 더 자유롭게 운영될지 모를 일이다.

  현물의 화폐가 아닌 신용의 화폐가 되면서 경기 부흥을 위해 다량의 재화 투입이 가능했지만 그것 자체가 가진 특징 때문에 많은 폐해가 생겨나고 있다. 리먼 브라더스의 일은 대표적인 사례에 불과하다. 사실 신용 금융의 폐해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지만 방대한 지식을 마구 쏟아낸 저자의 글을 얼마나 소화해 내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단지, 경제학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고 어려운 학문임을 알 수 있는 경험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 달은 짧고 일 년은 길어서 - 레나의 스페인 반년살이
레나 지음 / 에고의바다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때 제주도 한 달 살이가 꽤나 유행을 했었다. 쉼이라는 키워드로 자신의 시간을 멈추는 방법 중에 하나였다. 숨을 돌리고 에너지를 채워 다시 달릴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보통이지만 그저 그곳을 느끼고 싶어 떠나는 사람들도 많았다. 마음의 환기는 짧은 여행, 한 달 살이 아니면 조금 더 긴 여정으로 느낄 수도 있다. 다른 장소에서 다른 사람들과 살아 본다는 것은 꽤나 좋은 경험이 되기도 한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훌쩍 스페인으로 떠나 6개월을 지낸 작가의 일기 같은 이 책은 에고의 바다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멈춤은 변화를 위한 것도 아니고 우리는 모두 길을 잃을 자유가 있다고 얘기하는 저자는 그렇게 직장을 그만두고 스페인으로 떠났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하려고 했던 건 아니다. 6개월의 스페인 살이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같은 직종에서 근무한다고 했다. 커리어 단절은 생각보다 큰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새로운 커리어로 그것을 엮어 내고 책도 썼으니 손해 본 것 같진 않다. 무심코 잃었던 길에서 진주를 발견하기도 하니까.

  사실 스페인 살이라고 해서 스페인에서의 소소한 일상을 얘기할 줄 알았다. 맨 처음 등장한 발렌시아는 그런 느낌을 채워주었다. 열정의 나라 스페인은 작은 도시마저 아름다울 것 같았는데, 그곳을 살아가는 소소한 재미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하지만 잠깐의 여행이고 어학과 여행의 목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일상을 살아가는 소소한 시선이 아닌 한 편에 기행문에 가까웠다.

  발렌시아가 지나곤 계속 다른 도시와 국가들이 등장한다. 벨기에, 스위스, 이탈리아, 모로코, 이집트, 오스트리아, 독일로 이어지는 기행기였다. 발렌시아는 유럽 여행을 위한 전초기지 느낌일까. 그래도 돌아와서 쉴 수 있다는 집이 있다는 사실은 참 좋은 것 같았다. 6개월 동안 스페인에 머물면서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던 이야기를 엮었는데 아마 그 점이 저자는 특별했던 것 같다. 

  그 긴 시간 동안 조금은 특별하지 않았을 발렌시아의 소소한 풍경들을 기대했던 나에게는 조금 주제를 벗어나는 글들이 많았다. 기행문을 읽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실세 없이 전환되는 여행지로 여행을 즐기는 이들에게는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았으나 스페인 그 자체를 즐기고 싶은 나에게는 많이 아쉬운 부분이었다. 발렌시아에서 외국인 친구들과의 티 기타가가 나는 좋았다. 잘 통하지 않는 말에 세계 각 국에서 모인 친구들의 의사소통, 친구가 되어 서로의 국가로 초대하고 놀러 간 이야기. 함께 파티를 준비하기도 하고 식료품을 사러 여기저기 다닌 에피소드가 좋았다.

  문화도 성격도 다른 친구들이 모인 곳이라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 법도 한데 발가락이라도 닮았지라는 옛말처럼 그 속에서 서로의 닮음을 인정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이 좋았다.

  사실 이 책은 소개에서 많이 비껴간 부분이 많다. 스페인에서 6개월 살이는 맞지만 책 속에는 스페인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스페인 그 자체에 집중된 에세이를 읽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아쉬움이 남는 책일 테고, 여행을 즐기는 이들에게는 스페인을 중심으로 둘레의 국가들을 여행 다니는 방법, 모습 그리고 소소한 팁들이 좋은 책일 것 같다.

  개인이 찍은 듯한 사진들이 함께 하고 있어서 그림으로 즐길 수 있는 그런 에세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