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선생님도 궁금한 101가지 세계사 질문사전 1 - 문명의 발생부터 근세 사회까지 101가지 질문사전
김영옥 외 지음, 서은경 그림 / 북멘토(도서출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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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사는 그 범위가 방대하고 문화적으로도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아서 생각보다 흥미를 가지기 쉽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세계사 속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읽게 되면 비로소 그 재미에 빠지게 된다. '역사보다 완벽한 서사는 없다'라는 말이 있듯이 인류가 살아온 이야기는 어느 소설보다 재밌고 완벽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비록 승자의 기록으로 남아 있을지라도 과거의 일을 돌아보고 지금의 일을 생각할 수도 있다.

  세계사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만 뽑아 101가지의 질문으로 시선을 끄는 이 책은 북멘토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질문 사전 답다고 할까. 3의 챕터로 나눠 놓았지만 서양과 동양 그리고 아랍, 아프리카까지 종횡무진한다. 서양의 이야기나 중국의 이야기는 자주 접하다 보니 익숙했지만 아랍과 아프리카의 이야기는 새로운 사실을 만날 수도 있었다. 첫 번째 챕터는 국가의 형성, 두 번째 챕터는 종교와 문화, 마지막 챕터에서는 교류와 변화에 대해 얘기한다. 처음에는 세계사는 왜 공부해야 하나라든지 유발 하리리의 사피엔스를 언급하길래 무슨 얘길 하고 싶은 건가 했는데, 이내 흥미로운 질문들을 쏟아낸다.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이 7개의 별을 보고 일주일을 만들었고 60진법으로 시 분 초를 만들었다는 얘기라든지 아프리카의 카르타고가 유럽을 지배할 법한 이야기, 고대 중국에서는 셰프가 재상이었다는 사실 같은 흥미진진한 얘기들로 채워지고 있다. 물론 인도의 카스트 제도라든지, 진시황제, 로마, 그리스 이야기 같은 단골손님들도 물론 등장한다. 다른 책에서 잘 다루지 않는 중국사와 일본사도 함께 있어 진정한 세계사라고 얘기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즐겨 읽는 삼국지는 원래 '삼국지연의'로 나관중이 쓴 소설이었는데, 인기가 너무 많아서 원래 삼국지를 '정사 삼국지'로 불리고 '삼국지연의'가 삼국지로 불리게 되었다. 주객이 전도되어버린 상황이다. 최초로 천국과 지옥을 구분한 종교는 조로아스터교로 신, 천사와 악마, 메시아 등의 개념을 만들었고 유대교, 가톨릭 그리고 불교에까지 영향을 주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가톨릭과 이슬람교가 같은 뿌리에서 나온 종교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성경과 쿠란은 모두 구약 성경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대신 가톨릭은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로 보고 이슬람교는 하느님의 선지자로 본다는 점이다. 

   사마천이 환관이었다는 사실 또한 처음 알았다. 사마천은 아버지의 유지를 잇기 위해서 목숨을 구걸하여 환관으로 삶을 선택했고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사기를 완성했다. 대단한 집념인 것 같아서 사기를 꼭 읽어봐야 할 것 같았다. 제국을 이끈 왕들은 국제결혼을 자주 시도했었고 인류는 생각보다 많이 섞여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다시 해보게 되었다.

  청소년을 위한 책이기 때문에 흥미롭고 쉽게 적혀 있었다. 세계사를 처음 접하게 되더라도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이미 여러 책을 읽었는데도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도 있었다. 중국의 시안이 장안이었다는 것이라든지 고딕(Gothic)이라는 뜻이 '낯선', '야만적인'인 뜻을 가리키며 게르만계 고트족을 경멸하는 단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네덜란드가 오렌지색을 상징으로 여기면서도 국기에 오렌지 색이 없다는 것이 염료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빨간색을 사용했다는 점이며, 영국에서 V를 하는 것은 나는 아직 활을 쏠 수 있다는 인사를 의미하는 줄 알았는데, 그것은 적군인 프랑스 입장에서는 조롱의 의미가 된다는 사실도 알았다.

  조금은 논쟁이 있을 법한 부분은 역시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의 얘기였고, '천왕'이라는 호칭에 대한 설명과 그것을 사용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의 얘기도 담겨 있었다. 그럼에도 그냥 그 나라의 호칭이니 그대로 쓰는 것도 괜찮지 않겠냐는 결론은 조금 납득이 가진 않았지만, 고대 일왕들에게는 천왕의 호칭을 서양의 대왕, 대제 그런 의미로 붙여주는 책들이 많기도 해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 하지만 히틀러에게 우리가 총통이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않듯 역사의 감정은 이해되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책은 전체적으로 깔끔하게 편집되어 있고, 간단하지만 적절하게 표현된 삽화는 재미를 더한다. 게다가 전 페이지 컬러라는 높은 퀄리티를 보여주고 있다. 호기심을 자극할만한 101가지 질문은 재미를 가져다준다. 어느 페이지부터 읽어도 즐거운 책이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잠깐씩 즐길 수도 있고 아이와 함께 퀴즈처럼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게다가 교과서의 대단원 목차를 활용해 만들었다니 학업에도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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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제단
김묘원 지음 / 엘릭시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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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스터리이면서도 굉장히 가벼운 이런 작품을 코지 미스터리라고 했던 것 같다. <와카타베 나나미>의 작품들도 가볍다고 느꼈는데, 이 작품은 더욱 가벼웠다. 미스터리가 꼭 무서워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미스터리라고 분류할 수 있다. 다르게 보면 청소년 소설이고 성장 소설이다. 중학생인 주인공의 학교 생활과 학교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대한 해결 그리고 새롭게 맞이한 언니와의 관계가 엮여 있다. 

  고양이 한 마리의 죽음으로 시작되는 학교의 여러 사건들을 펼치고 모우는 묘미가 있는 이 작품은 엘릭시르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지후는 이 작품의 주인공이다. 채경은 그린 지후의 그림자 같은 또 하나의 자아 같은 지후의 새로운 언니다. 새로운 언니라는 것은 부모님들이 재혼을 했기 때문이다. 평범했던 지후의 가정과 조금은 특별한 채경의 가족의 결합은 묘하지만 안정되어 있는 느낌도 있다. 어떤 사건으로 자신을 가두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채경은 방에 머무르며 허가된 시간에만 얘기를 나누곤 했다. 지후는 그런 언니가 생각보다 편했고 여러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았다. 미스터리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채경의 관찰력과 추리력을 나누는 것을 좋아했다.

  타인을 관찰하기 좋아하는 채경은 지극히 냉소적이었다. 자신의 호기심에 대한 관찰로 욕구를 풀어나가는 존재였다. 위험의 순간에도 상대에게 경고를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이 어떻게 되는지 관찰하고자 했다. 독이 있는 협죽도가 교내에 있다는 사실을 안 뒤로도 그저 관찰만 하다가도 동생 지후가 그것에 노출되는 것은 싫었는지 알려 준다. 그리고 지후가 협죽도를 모르고 사용하려는 선배들을 막았을 때, 채경은 자신의 존재가 위험하다고 판단했는지 학교를 더 이상 다니지 않기로 했다. 미로 속에 갇혀 버린 미노타우로스처럼 말이다.

  지후는 교내의 탐정 같은 위치에 있다. 관찰력과 추리력이 좋은 것이다. 채경에게 조언을 구하기는 하지만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한다. 채경은 그런 지후로부터 바깥을 보곤 한다. 지후는 채경에게 아리아드네 같은 존재고 지후가 내민 감정들은 미로에서 채경을 안내할 아리아드네의 실이 된다. 타인의 일에 간섭하지 않겠다는 채경은 지후를 위해서 행동하게 되고 지후는 그런 사건을 추리해내며 그 끝에 채경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채경이 지후의 추리를 인정했을 때 지후는 화를 내지 않고 그저 '고맙다'라고 표현한다. 채경은 미로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하며 작품은 마무리된다.

  밖에서 안으로 쉽사리 들어가지 못하도록 그려왔는데,안에서부터 출발하면 어떨까, 가운뎃손가락을 대고 천천히 옮겨본다.바로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왔다.

  작품에는 학교에서 일어나는 사건이기 때문에 많은 십 대들 이 등장한다. 그들의 행동과 심리는 미묘하게 다르고 사건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 또한 보는 재미가 있다. 인간은 언제나 자신의 입장에서 문제를 인식하고 풀어나가는 존재이며, 십 대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 관계 속에서 생기는 논쟁과 오해는 어쩌면 당한 것일 수도. 그래도 비열하고 악랄한 모습이 전혀 없고 친구들을 대하는데 나쁜 모습들이 그다지 보이질 않아 좋았다.

  이 작품은 사건을 풀어나가는 미스터리는 아니었다. 오히려 마음의 엉킴을 풀어나가는 소설이었다. 장르는 미스터리로 분류되어 있지만 스토리는 오히려 더 서정적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지후의 행동과 독백으로 풀어내어진 채경의 생각 사이에서 오는 묘한 재미가 있다. 우리는 모두 미로 같은 삶 속에서 헤매며 살아가고 있고 소설은 그런 모습을 그런 마음을 잘 설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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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중심의 행성에서 살기 위하여 - 인류세 리뷰
존 그린 지음, 이진경 옮김 / 뒤란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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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부제에 인상이 깊어서 이 책이 '인류세'라는 책의 리뷰를 하는 책인 줄 알았다. 마치 책의 평과와 해설을 겸한 책 정도일 거라 생각했는데, 살아가며 느낀 인류세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와 견해 그리고 서평가답게 깔끔한 별점으로 마무리하고 있었다. 인류세는 지구의 생태 환경이 인간의 영향을 많이 받기 시작하면서 제안되었는데 인간에 의한 지구 파괴를 강조하려는 정치적 목적 때문에 반대하는 학자들도 있었다. 그리고 지구의 삶에서 인간의 등장은 찰나에 지나지 않는데도 인간이 지구를 변화시켰다고 주장하는 것은 다소 과하다고도 주장하기도 한다. 

  인류세를 과학적이거나 정치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시선 그리고 개인의 감정을 가지고 작성한 이 에세이는 뒤란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인류세라고 했지만 지구상에 닥쳤던 5번의 대멸종에 비하면 인간이란 재앙은 그렇게 대단한 것은 아니다. 흑사병, 콜레라, 말라리아 같은 질병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환경을 파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지구의 긴 역사에는 무수히 많은 생명체가 생겨났고 또 사라졌다. 인간이 6번째 대멸종의 대상이 되어 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환경 운동은 지구를 위한 것이기 이전에 인간이 대멸종에 이겨나가기 위한 활동이다. 그리고 이겨낼지도 모를 일이다.

  예측할 수 있는 미래라는 것은 거의 없다. 그것은 늘 두렵게 만든다. 우리는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 여전히 알 수 없다. 74년마다 돌아오는 헬리 혜성이 다음번에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를 일 아닐까. 우리는 매일 같이 새로운 향을 만들어 내고 있으면서 또한 많은 향을 잃어버리고 있다. 지구상에 향기를 가진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있으니까. 그리고 유행처럼 예전의 향 또한 생산되지 않기도 하니까. 우리가 맡지 못하고 사라진 향기는 얼마나 많을까.

  어떻게 되었든 인간의 활동에 의해 생겨난 것들은 좋든 나쁘든 우리의 것이다. 경작하고, 나누고, 심지어 보호하는 것도 우리의 몫이다. 우세 종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능동적이게 혹은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많은 종을 번식시키기도 멸종시키기도 하게 되었다. 

  마리오 카트는 선두와 뒤진 자에게 다른 아이템을 준다. 게임에는 밸런싱을 위한 많은 장치들이 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선두에 선 자에게 더 좋은 아이템을 계속해서 제공한다. 선두와 꼴찌와의 거리는 점점 멀어진다. 너의 성공과 나의 실패에 구조적인 문제가 없다고 얘기하기는 쉽지 않다. 이런 현실이 계속되면 게임 그 자체로부터 유저가 이탈할지도 모른다. 모두가 이길 기회를 갖는 게임. 어떻게 보면 중요한 시스템이겠지만 현실에 찌든 우리는 게임 속에서도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 칼질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이 책을 간추리기는 쉽지 않다. 인류세라는 커다란 전제를 두었지만 인간의 흔적을 살펴보고 자신의 견해를 얘기한 후 별점으로 마무리 지어버리기 때문이다. 하나하나 쪼개진 이야기며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부터 거시적인 시점까지 아우르고 있다. 혜성부터 시작한 관심사는 향기 나는 스티커, 음료, 에어컨에 이어 전염병, 세균 등으로 확장되기도 한다. 예술 작품들을 바라보는 시각과 자신의 근무했던 하비, 자주 사용하는 IOS 노트 앱, 쿼티 자판 등까지 얼마나 넓은 관심사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것에서 많은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 멋진 작가의 모습이었다.

  로버트 펜 워렌의 "인간의 끝은 앎이다. 그러나 알 수 없는 것이 한 가지 있다. 그 앎이 자신을 구할지 죽일지는 알 수 없다."라는 말이 좋았다. 자연을 관찰하고 우주를 연구하며 인간의 능력을 확장하고 언젠가 닥칠 대멸종에 대비하고 있지만 그 진실의 끝에 답이 없거나 멸종으로 이어지는 확실함만이 남는다면 세상은 어떤 혼돈에 빠질까 싶기도 하다. 인류세를 모르고 살아왔을 때 인간은 발전만을 느끼며 즐겁게 전진했지만 최근에는 돌다리도 두들겨 보며 건너야 하게 되었다. 물론 그것이 더 좋은 세상을 가져올지도 모르고, 더 빨리 탈출해야 하는 시간 게임에서 발목을 잡고 있는 건지는 아무도 모른다.

  인류세를 개인적인 견해로 펼친 이 책을 읽으며 세상의 변화에 인식의 변화에 그리고 환경에 변화에 스스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이 중요할 것 같았다. 인간이 선조들을 이해할 수 없어서 다행이다. 우리가 그들을 혐오할 수 있으니까. 우리 또한 우리 후대에게 혐오스러운 존재가 될지 모른다. 하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나는 나의 생각 나의 인식대로 살아간다. 대신 휘둘리지는 말자. 우리는 우리가 인식하는 것만큼만 인지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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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치크래프트, 전환의 기술
일레인 폭스 지음, 함현주 옮김 / 김영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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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급속도로 변하는 사회.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민한 사고방식이 필요하다. 어제의 사실이 오늘의 거짓이 되기도 하고 유행은 먼지처럼 날려간다. 생각의 빠른 전환은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 잡는 듯했고, 심리적 관성은 오히려 멈추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고 있는 것 같다. 그럼에 '적자생존'이라고 했듯 적응하는 자가 살아남는다. 꽤나 자극적인 캐치프레이즈이지만 이 또한 사실이다. 

  심리적 전환 기술(Switchcraft)을 위한 심리적 행동 개선과 방법을 개시하는 이 책은 김영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사실 기민한 사고방식은 멋스럽게 신조어를 사용해서 설명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열린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것은 대척점에 있는 논리를 양분하지 않고 느슨하게 풀어놓아 어느 방향의 의견도 경청하고 때로는 수렴하는 행동 양식이다. 이런 심리적 기재는 외부에 크게 동요되지 않고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을 바탕으로 세상을 흡수하고 진화하게 된다.

  이런 기재를 또 다른 말로 표현하면 메타인지다. 자신의 상태를 사물화 하여 외부의 시선으로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다. 편향된 인식이나 감정 숨김 등을 하지 않은 채 있는 그대로 자신을 받아들이는 자기 수용과 맞닥뜨린 현실에 대한 인지부조화를 줄여나가야 한다. 자신을 인식하고 마음을 열어두는 것에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기 때문에 꾸준한 자기 관리 또한 필요하게 된다. 프리츠 펄스는 이런 시간을 비옥한 공백이라 했다.

  회복 탄성력은 특별하다기보다는 닥친 상황에 생각보다 잘 견디는 사람을 얘기한다. 어느 책에는 선천적인 능력이라고 했고,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받지 못하며 자란 아이들 가운데서도 훌륭하게 자라나는 아이들이 있다고 했다. 선천적으로 이런 능력이 없는 아이들은 후천적으로 만들어야 하기도 한다. 그리고 지속적인 훈련을 통해서 나아질 수 있기도 하다.

  인간이 빠르게 변하지 못하는 것은 본능적인 것이기도 하고 생물학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다. 인간은 안정적인 상황과 예측 가능한 환경을 좋아한다. 뇌는 정해진 패턴대로 움직이길 좋아하고 늘 예측한 대로 반응을 한다. 하지만 미래는 늘 과거와 같지 않기 때문에 인간은 늘 불확실성 앞에 서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 펼쳐졌을 때의 반응을 연습하는 것은 중요하다.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인정'이다. 지금 상황이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현실 부정과 자기부정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놓인 현실에 대해서 '왜?'라고 묻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는 5 Why 기법처럼 늘 '왜'라고 물어보라고 배웠는데, 지신의 심리를 파악할 때는 'How'로 물어야 한다. '어떻게 이렇게 되었지?'라고 묻는 방법은 감정을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신이 늘 틀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지적 겸손'은 다른 사람의 견해를 존중하고 자신의 의견을 기꺼이 수정할 수 있게 해 준다. 지적 겸손을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우리 뇌는 '인지적 구두쇠'이기도 해서 경직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지적 겸손을 유지하고 발달시키기 위해서는 상대의 말을 주의 깊게 듣는 태도와 성장하겠다는 마음가짐 그리고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세상에 변한다는 사실 이외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엔트로피 법칙'처럼 변화는 불가피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연구에서도 변화는 신체를 힘들게 하고 병들게 하기까지 한다. 그렇기 때문에 변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찾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누구보다 창의적인 사람은 누구보다 오랜 시간 함께한 물건이나 사람들이 함께 있다. 그들이 루틴을 만드는 것 또한 창의적 활동에 대한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하기 위함이다.

  굉장히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지만 너무 많이 담으려고 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교양서를 넘어 교과서가 되어버릴 것 같은 전문용어들의 등장은 나를 유식하게 만들겠지만 조금 어려운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생각보다 새롭다는 생각은 들지 못한 것은 그동안 심리학, 뇌과학 책을 많이 읽어서이겠지만 그럼에도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굉장히 어려운 것들을 굉장히 쉽게 할 수 있을 듯 적어 놓은 점은 대부분의 자기 계발서의 표현이라 이해하기로 했다.

  생각보다 두껍고 생각보다 신선하지는 못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노력을 조금 더 보태서 <생각에 관한 생각>을 읽어보는 게 여러모로 더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 책이 너무 두꺼워 읽기가 두렵다면 이 책으로 대안을 삼아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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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사카모토 유지.구로즈미 히카루 지음, 권남희 옮김 / 아웃사이트(OUTSIGHT)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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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21년 1월 <귀멸의 칼날>의 칼날의 흥행을 누르고 1위에 올라선 이 영화는 일본 로맨스다움을 그대로 담고 있다. 애니메이션이 유독 강세를 보이는 일본 영화계에서 히트를 치기란 쉽지 않다. 이 영화는 6주 동안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작품은 영화를 바탕으로 소설화했다. 사실 영화를 소설화하면 스토리가 빈약해져 소설 특유의 섬세함을 느낄 수 없는데 영화를 보질 못한 상황이어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비어있는 여백이 의미 있을 만큼 좋았다.

  일과 삶이라는 인생의 높은 허들을 체감하며 둘만의 사랑이 말라감을 표현한 이 작품은 아웃사이트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무기와 키누는 막차를 타며 생활하던 대학생이었다. 같은 작가, 같은 공연을 좋아하고 똑같은 흰색 컨버스화를 신고 다닐 만큼 비슷한 취향을 가진 스물한 살이었다. 어느 날 막차를 놓쳐버린 날 둘은 우연히 만났지만 필연적으로 사랑을 했다. 젊은 날의 특별하나 존재. 꿈을 향해 가는 동반자. 젊은 날의 사랑은 조금 특별했다.

  사랑이 낭만적이라는 것은 사회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사회로 나간다는 것은 취업을 한다는 것은 목욕탕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고 했던 키누 어머니의 말이 명언이다. 들어가기 전에는 망설여지지만 우선 다녀오면 개운하다는 그 말. 사회에서 힘겹게 살아감에도 그 속에서 적당한 행복을 찾아낸 어른들의 말이다. 젊은 날의 두 커플은 행복의 허들을 낮춘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다 이렇지, 뭐, 하면서 허들 낮춰서 살고, 그런 게 좋아?키누는 자기가 유치한 소리를 하는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조금쯤은 꿈을 꾸고 싶다. 희망을 품고 싶다.

  함께 프리터로 동거하다가 키누가 취업을 하여 사회생활을 함에 조급함을 느낀 무기는 어느 회사 영업직으로 입사하게 되고 빠르게 사회화되어 간다. 꿈은 현실에 묻혀 버리고 둘의 공감대 또한 함께 사라져 버렸다. 많은 것을 공감하고 나누고 싶었던 키누와 키누 그 자체만이 목적이 되어버린 무기의 이별은 당연한 수순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엉켜버린 이어폰 줄처럼 꼬인 사랑이고, 한쪽씩 나눠 낀 이어폰이지만 그 속에 흐르는 음악은 미묘하게 다르다. 어느 날 문뜩 서로에게 선물한 무선 이어폰은 꼬여버린 이어폰을 풀 행동조차 없애버림을 상징하는 물건이 되어 버린 듯했다. 나눠 낀 이어폰은 조금 다른 음악을 듣지만 각자 낀 이어폰에서는 완전히 다른 음악이 흐르기 때문일까. 둘은 그렇게 정중하게 이별한다.

  일본 로맨스의 특징은 흔한 소재를 아름답게 만들려는 노력이다. 설렁 그 결말이 행복하지 않더라도 애절함을 남겨둔다. 아주 오랜 시간 변하지 않는 공식 같은 전개이라서 신파라고 느끼는 사람도 밋밋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여전히 이런 장르와 이런 전개는 일본 로맨스의 강점이다. 단순한 스토리에 빼어난 영상미를 입히는 일본 감독들 특유의 노하우다. 

  영상을 글로 옮기면 영상미가 사라지고 빈약한 스토리가 채워지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영화에 감동해서 책을 들면 실망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은 영화를 보지 않은 상태로 판단할 수 없지만, 글 자체로는 잔잔한 로맨스다움이 있었다. 차분한 글귀에서 느껴지는 소소한 행복과 조여 오는 슬픔 그리고 담담한 이별. 그리고 에필로그에서 이뤄지는 회상. 일본 특유의 잔잔한 로맨스를 좋아하신다면 이 책 또한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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