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태왕 담덕 3 - 여명의 기운
엄광용 지음 / 새움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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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덕 3권은 담덕의 성장과 해평의 역모가 큰 줄기의 이야기였다. 담덕은 일곱 살이었지만 이미 각궁을 쓸 만큼 완력이 있었고 백발백중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실력이 마치 주몽신화를 보는 듯했지만 사실 주몽은 훨씬 더 대단했다. 을두미를 사부로 두었던 탓에 문무의 깨우침이 남달랐고, 또한 조부의 정을 을두미에게서 느끼곤 했다. 담덕은 하대용의 집으로 가 을두미로부터 가르침을 받게 된다. 중국에는 역모가 일어나 전진이 무너지고 후연이 세워졌다. 하대곤은 연나부와 역모를 꾀하게 되는데.. 

  광개토태왕의 이야기 3편 여명의 기운은 새움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대왕 구부(소수림왕)는 인내의 상징 같은 인물이었지만, 아버지 사유(고국원왕)의 원수를 갚지 못한 것이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2권에서 대왕 사유는 백제의 근초고왕의 아들 수가 이용한 독화살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뿐만 아니라 부소갑(개성)을 잃어 되찾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반도에는 흉년이 들고 도둑떼가 기승을 부렸다. 어렵게 군대를 일으켰지만, 기근에 전쟁은 민심이반을 가져온다. 대왕 구부는 어쩔 수 없이 군대를 물리게 된다.

  백제의 근초수왕은 아버지 근초고왕만큼 군주의 덕목을 가지지 못했다. 대왕 수 역시 어려운 시절에 군대를 일으켜 평양성으로 진격했지만 을두미가 이끄는 고구려군에 대패하고 말았다. 어려운 시기에는 나라와 백성을 살펴야 한다는 충신들의 말을 살펴야 한다.

  책에는 담덕의 성장 묘사와 함께 군주로서 무사로서의 자세로 종종 언급되곤 했다. 첫 번째로 등장하는 것은 '살인검과 활인검'으로 무사를 소재로 한 이야기에 자주 등장한다. 무명 선사를 찾아 떠난 남장여인 '소진'의 이야기에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사람을 죽이는 검 또한 활인검이라고 할 수 없음을 얘기한다. 모두를 죽이지 않고도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겁만 주어 보내는 것, 천명의 백성을 구하기 위해 한 명의 탐관오리를 죽이는 것은 활인검으로 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담덕의 활쏘기가 백발백중인 것은 집중력이 좋은 것이겠지만, 화살이 활시위를 떠나기 전에 마음의 화살이 그곳에 명중된다면 화살도 쉬이 명중될 것이다. 이것은 목표에 대한 집중력이고 삶과 성공에는 이것이 중요하다. 담덕이 크게 될 것이라는 것은 태백산(백두산) 천지에서 보게 되는 신목의 에피소드로도 알 수 있었지만 기근에 황소까지 팔아버려 달구지를 사람이 밀고 가는 것을 가엽게 여겨 자신의 말을 내어주고 황소를 보내주고 말을 찾아오는 심성으로도 알 수 있었다. 광개토대왕이 크게 된 것은 스스로의 자질도 있었겠지만, 을두미와 같은 귀한 스승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우신 같은 스승이 있는 해평은 왜 그랬지..)

   2권에서 궁금했던 추수는 을두미가 다시 거두어 고구려의 해상 무역을 크게 키우고 해상력을 장악하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되었고 하대곤의 집사 두충은 조환이라는 이름으로 거상이 되었다. 하대곤의 역모가 실패하며 해평은 왜국으로 망명했지만, 추수와 조환의 역할은 여전히 남아 있을 것 같았다. 주연만큼 멋진 조연들의 활약이 기대된다.

  역모를 피한 담덕과 마동의 이야기도 4권을 기다리는 재미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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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해서 찾아왔습니다
한덕현.이성우 지음 / 한빛비즈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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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브레인의 보컬 '이성우'씨의 상담 기록이라고 해야 할지, 에세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정신의학박사 한덕현 교수의 교양 심리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팬데믹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고립되고 생계 전선에서 강제적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공연으로 삶을 지탱하던 노브레인의 이성우 씨도 그중 한 사람이다. 무대에서 뛰어놀던 사람들은 나와 같이 팬데믹 전과 후가 전혀 다르지 않은 사람들과는 다를 것이다. 그들이 내면에 쌓인 화와 불안감에 대한 얘기에서부터 삶과 행복에 이르기까지 넓은 스펙트럼으로 퍼져 나간다.

  코로나로 손발이 묶여 공연을 하지 못하고 줄어드는 수입에 동료들의 한숨이 깊어 간다. 우리 모두가 겪었을 고립과 불안 그리고 분노에 대한 록커 이성우 씨의 솔직한 질문과 담담히 대답하는 한덕현 교수의 글은 한빛비즈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사실 책 속에 들어간 내용은 여느 에세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고, 차분한 설명 또한 익숙한 말들이었다. 그런 면에서는 크게 새로울 것이 없는 책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조금 독특한 점은 상담자가 록커라는 것이고 담당의가 스포츠 정신의학을 전공한 의사였다는 점이다. 화려한 삶이면서도 비주류 속에서 세상을 헤쳐온 한 명의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도 괜찮은 이야기가 될 수 있었다. 특별할 것 같은 이야기가 우리 모두에게 적용된다는 점 또한 볼 수 있다. 사람 사는 이야기는 서로 많은 부분이 닿아 있는 것이다.

  우울증이 생기는 이유는 분출해야 하는 공격성이 바깥으로 향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다. 분노는 목표를 정해 분출해야 하는데 이번 팬데믹은 그 특정 목표를 지정하기가 쉽지 않다. 정부를 욕하는 사람들도 있고 무고한 시민들에게 화풀이하는 사람들도 종종 만나게 되지만, 어떻게 보면 배려가 있는 사람들은 공격성을 내뿜지 못한 채 내면을 파고드는지도 모른다. 

  사실 시작은 팬데믹의 답답한 마음을 풀고자 하는 상담으로 시작하지만 대화는 결국 인생 전반으로 퍼져 나간다. 나이 듦에 관한 얘기, 소울푸드, 고향의 존재뿐만 아니다. 꿈, 지속성, 정체성, 이별, 콤플레스, 페르소나 등 정말 다양한 주제가 거침없을 것 같은 라커의 문장으로 등장한다. 그래서 사실 교수님의 문장보다는 이성우 씨의 문장이 더 신성하고 좋았다. 

  그럼에도 정말 좋은 한 문장을 찾을 수 있었는데, (물론 전반적으로 모두 좋은 얘기다. 단지 너무 많이 보았던 문장이었을 뿐) 그것은 힘들다는 푸념에 대한 한덕현 교수의 스승님 답변이었다.

지금 네가 힘들다는 것이 커가고 있다는 것이다.안 된다는 것은 누군가가 너를 견제하는 것인데,그만큼 네가 큰 것이다

  이런 식의 위로가 참 좋았다. 대부분의 일은 눈앞에 갑자기 등장하는 것 같지만 물 밑에서는 정말 많은 일이 있다. 우리가 물에 떠 있는 오리를 자주 예를 드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전문가 아니라도 진심을 다하면 그것이 '진짜'라고 얘기하는 이성우 씨의 생각도 좋았고 인생은 꾸준히 하면 결국 잘하게 되니 걱정하지 말고 시작하기나 하라는 얘기도 좋았다. 비주류라서 심심한 세상에 재미를 던져줄 수 있어 좋다는 마인드와 록커라는 페르소나의 그림자에 숨지 않고 당당하게 '러블리즈'를 좋아한다고 얘기할 수 있는 덕밍 아웃 (워낙 유명한 일이라)도 멋있었다. 무엇보다 대단하다고 느낀 것은 자신의 목에 무리가 가는 창법을 고치려고 25년 차 보컬이 보컬 레슨을 받으러 갔다는 사실이었다.

  이 책은 '록커'의 입장에서의 삶에 대한 질문이라고 해도 좋고, 그저 대중 중에 한 사람의 이야기며 우리의 이야기라고 해도 괜찮다. 이런 구성의 책을 고르고 있다면 조금은 독특하고 조금은 유쾌한 이 책은 괜찮은 선택일 수 있다. 이런 책을 많이 읽은 사람에게는 몇 가지 새로움을 찾는 재미 정도는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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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소멸 - 우리는 오늘 어떤 세계에 살고 있나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전대호 옮김 / 김영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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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보화 시대를 지나 엄청난 속도로 연결되는 사회에 진입하였다. 그런 사회 속에서 우리는 또 빠르게 단절되어 간다. 이번 팬데믹은 개인이 연결과 단절의 모순적인 상황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음을 알려주었다. 그야말로 양자역학의 세상에 사는 우리의 웃픈 모습이다. 메타버스라는 가상의 세상은 빠르게 확장되어 간다. 디지털은 많은 사물을 데이터로 만들어 사라지게 만든다. 많은 사물들은 '반려-'를 접두어로 붙여가며 겨우 우리 곁에 머무른다. 사물은 소멸하고 인간은 단절된다.

  디지털화된 세상에서 우리가 관계나 소유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담은 이 책은 김영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사실 이 책은 굉장히 친절하지 못하다. 급격하게 변하는 세상에서 철학의 역할의 끝을 잡으려고 하는 것인지 그 자체로 성찰인지는 잘 모른다. 작가의 의도는 디지털로 바뀌는 사회에서 나올 수 있는 부조리에 대한 철학적 사유임에도 틀림없다. 하지만 딱딱한 문장, 수없이 언급되는 철학자들의 말, 전문적인 용어들은 하나의 각주도 달지 않고 달린다. 논문도 아니고 원론서도 아닌듯한데 대중적이지 못하다. 뭔 말을 하고 싶은지 어렴풋이 알 것 같은데 이렇게 꾸역꾸역 읽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마지막에 등장한 '주크박스에 관한 여담' 정도만 적었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싶었다.

  개인적 느낌은 각설하고 얘기하자면, 사물은 삶의 연속성 상에 존재하는 것이며 변하는 사람 앞에 머무르는 하나의 친숙함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디지털로 이뤄진 정보는 하염없이 나타나고 사라진다. 인간의 변화보다 빠른 정보는 인간에 안정감을 주기보다는 주의를 끈다. 존재의 증명이 진실이라고 한다면 이제는 정보의 효과가 진실이 되어 버린다. 그런 면에서 가짜 뉴스도 정보가 되어 버린다. 

  노동하는 인간(호모 파베르)은 이제 놀이하는 인간(호모 루덴스)으로 바뀌어 간다. 손은 노동과 행위의 기관이었다면 손가락은 선택의 기관이다. 인간은 행위하는 대신 선택하기 시작했다. 소유하려 하지 않고 단지 체험하려 한다. 그 속에서 사물의 존재와 가치는 희미해져 간다. 니체는 "마지막 인간"을 이렇게 묘사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노동한다. 노동이 오락이기 때문이다." 니체의 말에 따르면 우리는 종말의 앞에 선 인간의 모습이 되어가고 있는 것일까?

  소유는 사람과 사물이 맺을 수 있는 가장 깊은 관계라고 발터 벤야민은 말했다. 타자는 '여기 있음'으로 존재를 드러낼 수 있다. 하지만 디지털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정보일 뿐이다. 관계되거나 의미를 부여하거나 바라보는 것들에서 멀어져 그저 '선택'의 영역으로 들어가 버린다. 우리는 '관계'를 '소비'할 뿐이다. 느슨해진 관계는 언제든지 연결될 수도 언제든지 단절될 수도 있다. 닿을 수 있는 것의 의미는 '온기의 전달'로 얘기할 수 있지만 디지털 세상에서 온기는 과연 전파를 타고 전달될 수 있을까?

  사물의 가치는 '변하지 않음'에 있을까. 변하지 않는 것은 없으므로 '사람보다 느리게 변함'에 있을까. 시간을 공유하는 사물에게 사람보다 느리게 변하는 사물에게서 안정감을 받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을까? 세상은 점점 더 빨라지고 아날로그가 디지털화된다고 얘기되고 있지만 그것의 구분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사물의 의미는 '소유', 물건의 의미는 '형체', 형체의 의미는 '생김새', 모양은 결국 '어떠한 방식'으로 귀결된다. 인간이 부여한 방식과 의미에서 사물은 그 형태만 바뀌어 온 건 아닐까? 석판에 새긴 글이 붓으로 쓰이고 그것이 다시 인쇄되고 현재에 이르러 화면 속에 점들의 집합이 되었다고 해서 의미가 바뀐 것일까?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차이는 결국 '정보량'의 차이다. 아날로그에서 나타나는 예기치 못한 정보의 첨가가 그것의 향수라면 그 또한 의미가 있다. 단지, 더 빨리 소비되고 더 쉽게 변경할 순 있다. 오감으로 느끼는 정보가 현재는 눈과 귀에 집중되고 있지만 그것이 신경으로의 확장을 가져온다면 디지털의 정보량은 아날로그에 가까워질 수도 있을 것이다. 정보의 관리가 우주의 섭리에 의해 이뤄지는 대신 인간의 관리 아래 놓인다는 불편한 심리가 있을지라도.

  사물은 소멸하지 않고 그냥 그 형체가 변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책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인간이 사물을 소유하던 시대를 지나 사물(기계)에 인간이 맞춰지는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깨어 있음을 실천하고 지속적으로 사유하지 않으면 사물의 소멸을 넘어 인간의 사물화가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인간은 인간이 만든 덫에 빠져버릴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는 이런 식의 조금은 불친절하고 어려운 텍스트를 읽어 보는 것도 나쁠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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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철학의 최전선 - 가장 뜨거운 다섯 가지 주제와 그 사유의 지도
나카마사 마사키 지음, 박성관 옮김 / 이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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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덮은 지금 내 머릿속은 핑핑 돈다. 복잡한 미로 속에서 빠져나온 기분이다. 책은 철학자의 단편적인 부분을 발췌해서 알기 쉽게 얘기해주질 않았다. 마치 철학을 하려면 이 정도는 각오해라는 느낌이 강했다. 수많은 철학자와 함께 등장하는 엄청난 수의 철학 이론들을 정의와 비판을 오고 가다 보면 내가 지금 누구의 얘기를 듣고 있는지 종잡을 수 없다. 그만큼 이 책은 철학에 진심이다. 현대에서 회자될만한 철학들이 싸우고 있는 이론과 논거, 반박을 끊임없이 제시한다. 그야말로 전쟁의 최전선처럼 치열하다.

  스스로 철학하고 싶은 사람에게 욕망을 환기시키려는 목적으로 작성되고, 철학적 원론으로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그야말로 제대로 된 개론서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은 이비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과학의 발전과 빠르고 복잡해지는 사회의 변화를 따라 잡기는 역부족인 듯하다. 원론적인 해답을 제시하는 철학은 엄청나게 복잡해져 버리는 상황을 사유를 하기 전에 이미 다른 것으로 변해 버린다. 마치 동시성이 없는 느낌이다. 철학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역할은 점점 줄어들고 현실성은 멀어져 간다. 그러다 보니 출판되는 많은 철학책 들은 단순한 위로서가 되거나 그냥 까탈스러운 철학 그 자체가 되어 버린다.

  철학은 다른 학문과 마찬가지로 '이것만 알면 끝' 같은 것은 없다. 기본적인 사고의 줄기를 스스로 밟아가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저자는 얘기한다. 철학은 얼마큼 배워야 충분한지에 대한 것도 없다. 다음 목표를 제시하지 못하는 입문서는 그 자체로써 실격이다. 이것은 철학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현재의 철학 입문서들은 그런 면이 많다고 했다.

  이 책은 '정의론', '승인론', '자연주의', '마음 철학', '실재론'을 다루며 각 이론의 역사 반박과 옹호의 요소를 다루고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마이클 샌들 교수까지 나오는 롤스로부터 시작한 '정의론'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인 공리주의를 보완하는 것으로 출발했지만 복지 사회를 얘기하는 '후생 경제학', 정부의 개입을 반대하는 '자유주의자'들에게 공격을 받곤 했다. '정의'에 대한 공방은 여전히 치열한 철학의 최전선이다.

  '승인론'은 존재는 타인으로부터의 인정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매슬로우 4단계 욕구 '인정 욕구'와도 닿아 있다고 얘기할 수 있다. 여기엔 헤겔이 주장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 유명하다. 사람은 사회 속에서 자유로운 주체이기 위해서 타자로부터 지배당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해야 한다. 그래서 자신이 주인임을 만인이 인정하게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주인은 늘 노예에게 의존하는 생활 능력을 가지고 단지 노예에게 인정 받음으로써 간신히 주인인 상태가 된다. 양자의 힘의 역학관계가 뒤집어질 때 다시 투쟁이 일어나고 둘 사이는 역전이 일어난다. 결국 만인에게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는 자유 민주주의 승리에 의해 역사는 마무리된다.

  '자연주의'는 '과학주의'나 '물리주의'와 비슷하다. 인간의 행동이 인과 법칙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여기에는 리처드 도킨스의 '밈'이 등장하기도 한다. 자연주의 철학은 진화론적 생물학과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보다 한 발짝 더 나가게 되는 '마음 철학'이 있다. 

  마음 철학은 뇌과학의 발전으로 최근에 가장 뜨거운 분야이기도 하다. '물리주의자'의 원조는 러셀이다. 여기에는 신경학자, 수학자들이 뛰어들기 시작한다. 대표적인 인물로 튜링이 있다. 그는 '튜링 테스트'를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초지능이라고 하여 AI가 인간과 같을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게 된다. 여기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존 설의 반론이었다. 그에 따르면 주어진 지시대로 작업을 계속하는 것이 이해한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얘기였다. AI 역시 그저 입력과 출력의 연결하고 있을 뿐 자신이 하는 일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주장이었다. 행동의 실체화는 가능하지만 의식의 지향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마음 철학'의 뜨거운 논쟁 속에서 새롭게 '실재론'이 재등장했다. 물리적으로 모두 실재한다고 해서 개인이 모두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물들과 '함께 느낌'이 우리가 존재하는 우주에서 실제의 기반이 되는 것이다라고 샤비로는 말한다. '존재'한다 함은 어떤 사물이 다른 사물에게 주는 '느낌'이 현재화되는 일인 것이다. 마음이 아닌 정신에 초점을 맞춰 인간의 행위를 밝히려 한다. 

  지금까지 당최 이해할 수 없던 소위 철학이라는 것이 갑자기'꿋꿋하게 살아가기 위한 지혜'로 보이기 시작했다면, 주의해야 할순간이다. 그런 시점이야말로 좀처럼 이해를 허용하지 않는, 신체적으로 거부감이 들게 하는 빡센 테스트를 읽어야 할 때다.

  저자의 약력을 보면 이 책의 깊이를 수긍할 수 있다. 20여 년의 세월 동안 50권의 집필하였고 수많은 철학을 다뤘다. 그렇다고 가벼운 책들도 아니다. 그런 책들을 한데 모았다. 시중에 등장하는 많은 철학자들의 도서가 있지만 우리는 유행처럼 그들의 텍스트를 읽는다. 하지만 철학을 한다면 내가 좋아하는 철학자가 어느 위치에 있고 어떤 것을 주장하고 어떤 반론을 받고 있는지도 궁금해야 해야 한다. 아니 궁금하게 만들게 해야 한다. 그런 궁금점을 바탕으로 이 책을 읽는다면 나는 무엇을 더 읽고 생각해야 하는지 바로 알 수 있을 것 같다.

  수많은 철학자, 수많은 논문과 도서들이 등장하는 이 책은 철학을 공부하려는 사람들에게 이정표 같은 책이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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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빙 파워 - 성공한 리더의 제1원칙
매슈 바전 지음, 이희령 옮김 / 윌북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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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사를 다니며 리더십 교육을 받다 보면 예전에는 능력 있고 강한 리더십을 가진 사람을 요구하는 것 같았다. 그야 그럴 것이 빠른 의사 결정은 급히 변화하는 세상에서 필요하다고 인식되고 있었기도 했고,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오너 경영이 주를 이루고 있기도 하고 전략적 리스크가 있는 선택은 회사의 대주주인 오너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대단한 착각일 수밖에 없다. 자신의 책임을 오너에게 미루려는 면식 의식을 키우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너가 결정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진행되지 못하는 사태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최근에 들어서는 서번트 경영이라고 하여 여러 인재들을 우대하며 그들이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하는 경영이 생겨나고 있다. 과연 이것 또한 하나의 트렌드가 될 뿐일까?

  '존경하라, 권한을 부여하라, 참여시켜라'를 내부적인 슬로건으로 내세웠던 그들의 확장성은 상대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내 것을 내어놓는 전략이었다. 포섭과 같은 사냥의 원리가 아닌 식물이 뿌리를 뻗어가듯 확장을 가져오는 'Giving'에 대해 강조하는 이 책은 윌북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기업의 대표적인 습성이 불확실성을 없애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목표를 세우고 그것에 맞춰서 모든 것을 관리, 감독한다. 일하는 사람에 비해 관리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고 정점에 서 있는 CEO는 그 역할에 비해 대단한 혜택을 가져간다. 리더는 조직을 강력하게 이끌어야 한다는 착각이 진리로 통용되고 있다. 책은 여러 리더들의 이야기를 하며 진정한 리더가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해서 얘기한다.

  책은 미국의 건국에 대해서부터 시작한다. 미국의 건국의 시작을 알기기 위해서는 각종 문건에 사용될 국새를 만드는 일이었다. 여러 번의 컨설팅과 도안이 나왔지만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하지만 최종 결정된 도안의 앞에서 나온 아이디어를 모두 통합하려 했다. 미국을 시작한 13개의 주 그리고 흰머리 독수리와 방패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뒷면에는 피라미드 위의 만물을 꿰뚫는 섭리의 눈을 보존했다. 자는 미국 국새의 앞면에 있는 별자리는 '상호 의존'과 통합의 상징이라면 '피라미드'는 힘과 지속성을 상징했다. 하지만 시대가 흘러 지금은 '힘'을 상징하는 피라미드의 사상이 중요시하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의 시대가 바로 별자리의 '상호의존'의 의미를 되새겨야 할 때인 것이다.

  사실 Taker와 Giver에 대한 얘기는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의 리더십 강의에서 등장하기 시작했었다. Taker는 손해를 보질 않기 때문에 성공할 확률이 높고 성공한 사람들 중에는 Taker가 많다고 했다. 그리고 Giver들은 손해를 보며 살기 때문에 성공하기 힘들다고 했다. 하지만 위대한 성공을 한 사람들 중에는 Giver가 많았다는 것은 또 아이러니한 일이라고 했다. 이 Giver들은 보통의 Giver들과 달리 그저 나누는 것이 아니라 기준이 있고 Taking만 하려는 사람에게는 Giving을 멈추는 단호함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런 세세한 얘기까지는 하질 않고 '상호의존'의 중요성과 그런 태도를 가진 인물들의 일화를 소개한다.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세상에는 이기고 지는 것으로 구분할 수 있는 일이 생각보다 적다'라는 말이었다. 이기다의 반대말이 진다라면 '이기다, 진다'의 반대말은 '참여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대부분의 용어들이 이런 승패의 단어들을 너무 많이 사용한다고 했다. 우정과 사랑, 가족 등 우리는 사실 이기는 것이 무색한 상황에 더 많이 놓이게 된다. '지는 것이 곧 이기는 것이다'라는 모순 같은 얘기가 명언이 되는 것 또한 세상의 이치가 그렇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참여하고 몰두할 뿐이기 이기고 지고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독립성이라는 말은 '상호 의존'이라는 개념을 약하게 하고 '개인 의존'이라는 개념을 강하게 했다. 나 이외의 것들은 싸워서 쟁취해야 할 것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우리는 복잡하게 얽혀 있다. 지금을 살아가는 나 또한 많은 사람들이 연대하여 만들어진 하나의 귀한 작품이다. 그런 내가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것 또한 모순 같은 얘기다. 상대의 말을 잘 듣고 생각을 나누고 함께 연대하여 살아가는 것이 어떻게 보면 순리일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모습이 가장 두드러지는 곳이 바로 정계다. 얼마나 논리적이건 설득력이 있건 중요하지 않다. 단지 이기기를 위한 정치는 무조건 상대를 부정한다. 그것이 내가 주장하던 이념이었다 하더라고 상대를 부정하는 것에 집중하고 상대를 쓰러트리는 것에만 집중한다. 그토록 지는 것이 싫다면 논쟁을 하지 않으면 되지 않을까. 그저 나라에서 느끼는 공포와 희망을 공유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기업도 마찬가지다. 결국 최고 책임자가 결정하게 되겠지만 많은 것을 내어 보이고 참여시키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신의 열중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결과가 나오는 일은 없다. 리더는 방향을 잡아주고 수많은 참여자가 능동적으로 참여하길 유도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가치관 경영이며 아메바 경영이다. 회사가 지향하는 가치가 나의 가치와 맞아떨어졌을 때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아이디어를 아이콘으로 표시할 때 빛나는 전구를 그린다. 하지만 이런 독립성은 현실에서는 가능하지 않다. 에너지가 있어야 하고 그것을 연결해야 한다. 세상의 변화를 만들고 싶은 젊은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냐는 질문에 오마바는 이렇게 얘기했다. '기꺼이 다른 사람들이 가진 파워를 보려는 마음을 가집시오.". 세상에 홀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우리는 기꺼이 상대의 파워를 인정해야 한다. 그 파워를 얻기 위한 '상호 의존' 그것은 물질적인 Giving이 을 넘어 당신의 참여를 위한 자리를 기꺼이 내어주겠다는 Giving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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