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기의 기술 - 본질에 집중하는 힘
라이디 클로츠 지음, 이경식 옮김 / 청림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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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은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 그것은 개인에게도 기업에게도 중요한 덕목이다. 가지가 무성한 나무는 멋스럽긴 하지만 높게 자라는데 오랜 세월이 필요하다. 과실수는 적당한 가지치기로 풍성한 과일을 얻을 수 있다. 우리 뇌 또한 마찬가지도 자주 상용하지 않는 뇌신경은 자연스레 느슨해진다. 무언가를 뺀다는 것은 굉장히 효율적인 일이다.


  빼기가 가져다주는 긍정적인 효과와 본질에 집중하는 힘에 대한 생각은 청림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빼기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사진이다. 사진은 '뺄셈의 미학'이라고 한다. 프레임 속에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 하면 사진은 번잡해지고 볼품없게 된다. 집중해야 하는 피사체와 그에 어울리지 않는 배경을 제거해 가는 과정은 사진 찍기의 중요한 과정이다. 작가가 표현하려는 것에 가까워지는 일이다. 글 또한 다르지 않다. 스티븐 킹은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창작은 인간의 영역이고, 편집은 신의 영역이다'라고 했다. 그만큼 걷어내는 기술은 어렵다.


  빼기 하면 또 생각나는 것이 바로 '미니멀 라이프'다. 읽으면서 '곤도 마리에'가 등장할 것 같았는데 역시나였다. 그녀는 "우리가 정말 필요로 하는 것을 찾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가 하지 않는 것을 없애는 것이다"라며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에서 자신의 고집스러움을 표현했다. 


  사실 빼기의 기술은 여러 분야에서도 미덕이다. "Simple is Best"라는 문장에서 알 수 있듯이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은 중요하다. 창의적 발명법인 트리즈에서도 분할, 추출, 통합, 다용도, 포개기 등으로 필요 없는 것을 제거하거나 하나로 여러 기능을 할 수 있는 것을 고민하기도 한다. 뺄셈은 효율이다. 저 적은 자원으로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빼기가 아무것도 하지 않을 즐거움 같은 것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로버트 브라우닝의 "Less is more"은 적은 것에 집중하는 것이 우리를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의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지 않을까. 생텍쥐페리는 "완전함이란 더 이상 보탤 것 없는 상태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더 적은 것에 더 강렬하게 집중하라는 말인 듯싶다. 다양함은 종종 우리의 주의력을 뺏곤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더함'을 본능으로 가지고 산다. 오랜 시절 더함은 '유능함'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얻는 기쁨보다 상실의 아픔이 더 크게 느낀다. 줬다 뺏는 것만큼 나쁜 정책은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의도적으로 빼기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때론 더하고 빼기를 해야 하기도 한다. 더하기 혹은 빼기의 선택이 아니다. 빼기는 우리를 더 풍족하게 해주는 수단이다.


  우리는 의도적으로 무엇을 더 하려 한다. 이것은 종종 부작용을 가져온다. 회사에서 품질을 향상하기 위해 품질부서를 더하는 일은 인건비와 생산량에 손실을 가져다준다. 불량이 나지 않는 쪽에 투자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도요타의 생산 프로세스 TPS 또한 하나씩 빼 나가며 이익을 만드는 방법이다. 회사의 얘기가 조금 어렵다면 최근 이슈가 되는 기후 위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는 친환경 제품을 쓰려고 하고 재활용을 하려고 힘쓴다. 하지만 정작 가장 효율적인 것은 적게 쓰는 것이다.


  사실 책의 내용은 우리 삶에 깊이 들어와 있는 내용이다. 여러 지점에서 강조되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잘하질 못한다. 책만 보면 달려드는 이 버릇 또한 '빼기'를 못하는 나의 본능이다. 서평을 빼고 글을 적어야 하는데 오늘도 서평으로 책장 넘치는 나를 보며 '빼기'를 해볼 것을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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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의사의 코로나
임야비 지음 / 고유명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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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자기 우리를 덮친 유행병. 어. 어. 하는 사이에 갑자기 일상은 멈춰 버렸다. 중국 현지에 나가 있던 직원들의 상황과 복귀를 조율하고 그 위험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중국으로 투입되어야 하는 인원을 뽑는 것은 고욕이었다. 2년이 넘은 지금까지 큰 무리 없이 업무를 진행하고 있지만 한 달에 한번 꼬박꼬박 돌아왔던 출장은 짧게는 3개월 길게는 일 년 가까이가 되었다. 타국에서 힘겹게 일하는 동료들을 보면 괜히 미안해지긴 했지만 무서운 생각은 어쩔 수 없었다.


  코로나의 공포가 세상을 뒤덮을 때 가장 위험한 코호스트 병원으로 그것도 정신병동에서 봉사해 온 한 명의 의사의 이야기는 고유명사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100일 간격으로 부모를 모두 보낸 저자는 자신의 마음을 위로하고자, 육체의 고통으로 정신의 고통을 잊고자 폭탄 같았던 격리 병원으로 향했다. 지병을 가지신 부모님들에게 다가온 질병은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웠고 결국 운명하시고 만다. 어머니의 생명을 연장하고자 했던 수많은 선택들은 행여 자신이 잘못된 선택을 한 게 아닌지 죄책감으로 이어졌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전문가라는 사실은 그 무게가 더욱 심했으리라.


  25년 의사 생활을 하고 벗어나 시작한 작가의 길이었지만 힘겨움은 그를 다시 의사로 돌려놓았다. 자신을 내던지듯 달려간 소현정신병원에서 그는 구원을 받듯 천사들을 보았던 게 아닐까 한다. 홀로 코로나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던 미리암 수녀와의 만남은 그에게 구원과 같았다. 그리고 한 마음으로 환자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일을 해내는 사람들의 사이에서 점점 회복해 간다. 그리고 부탁을 받고 간 두 번째 격전지. 공공정신병원은 그야말로 개판이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들이 모여 있어도 자신들만을 하고 있으면 아무것도 되질 않는다. 사공이 제 잘난 맛에 노를 저으면 배는 아무 곳으로도 갈 수 없다.


  어머니로부터 받은 X 염색체 23X와 아버지로부터 받은 23Y염색체로 소제목을 지었다. 코로라 봉사를 하며 겪었던 에피소드와 부모님을 보내드리며 겪었던 에피소드를 연결했다. 내 가족을 돌보는 것만큼 환자를 돌보는 일은 중요했다. 답은 현장에 있고 해결책은 관심으로부터 나온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저자는 몸소 보여준다. 지난 코로나 시절 '덕분에' 캠페인은 그런 의료진에 대한 존경의 표현이었다. 


  이 책은 저자의 의료 기록을 바탕으로 하는 실화다. 에세이 같기도 하고 르포 같기도 하다. 한 개인의 성찰과 고뇌로부터의 탈출 같기도 하고 우리 시대 코로나 사각지대의 고발 같기도 했다. 힘든 상황에서도 환자만 보며 고공분투하는 의료진의 모습과 의료진이라는 명찰을 달고 회피하기 바빴던 이들의 모습을 함께 보여 준다. 그리고 마지막 요양 병원에서의 의료를 마지막으로 환경을 대하는 의사의 마음 가짐에 대해 간접적으로 얘기한다.


  지옥 같았지만 천사들과 함께 했던 이야기. 악인은 없었지만 지옥 같았던 곳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 저자는 자신의 성찰에 대한 얘기였지만 독자에겐 어쩔 수 없는 공공 정신병원의 행태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래도 다행인 건 지옥에도 천사들이 있었다는 점이고 그들의 날개를 꺾은 건 말도 안 되는 행정이었다는 사실이다. 비참함은 콤마 1의 숫자도 되질 못한 채 사라져 갔고 환자의 생명보다 자신들의 워라밸이 중요했던 사람들의 모습에 치가 떨린다. 무섭다면 떠나면 될 일을 현장을 일을 공보의나 간호사에게 맡겨두고 뒤에 숨는 일은 너무 심했다.


  단지 할 일을 한 것뿐이라는 저자는 내가 보기에도 단지 할 일이 한 것 같지는 않았다. 제대로 일하는 사람이 적은 곳에 업무가 얼마나 과중되고 편중되는지 않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조금 잘한다 싶으면 일이 쏟아진다. 왜냐면 일을 마무리하는 사람이 그 사람뿐이기 때문이다. 다들 눈치 보면 쉬쉬한다. 능력 없음을 응징하지 않으면 다들 그게 미덕이 된다. 괜히 나서서 일을 받아오면 꾸지람을 듣는다. 조직이 썩어 가는 걸 막는 건 쉽지 않다.


  의사이지만 작가이기에 글이 너무 재밌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아주머니들이 왜 막장을 보는지 이해가 가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그리고 감사했다. 코로나가 흔해져 버린 지금 오히려 다행이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지난날의 감사함은 늘 그렇듯 자연스레 잊히고 있다. 그런 세상이 되고 있다는 건 분명 보람찬 일일 것이겠지만 우리의 마음에서는 사라지고 그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을 상흔을 치유하는 일도 필요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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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널 살아 볼게 - 그림 그리는 여자, 노래하는 남자의 생활공감 동거 이야기
이만수.감명진 지음 / 고유명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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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 하는 남자와 그림 그리는 여자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 속에서 함께 한다는 것의 소소한 의미를 찾아가는 책이다.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내 편을 만들어가는 방법일 것이다. 두근거리고 감미로운 이야기 너머에 존재하는 섬세하고 따뜻한 이야기다.


  같이 살고 있는 두 남녀의 이야기는 고유명사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작품은 하나의 주제에 대한 둘의 생각에 대해 얘기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어 간다. 하나의 글과 하나의 삽화가 함께 한다. 아무래도 여성 작가 분이 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글에 맞는 그림을 넣었지 않았나 싶다. 


  일상의 얘기를 담은 소소 함이라 그렇게까지 특별함은 없지만 잔잔한 글귀를 읽으며 느낄 수 있는 흐뭇함과 평온함이 있다. 독자가 어느 정도의 결혼 생활 해 본 독자라면 어린 친구들이 서로를 생각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대견하기도 하고 예전 생각이 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퍼엉 작가님의 책 느낌도 나고 좋았다.


  다이내믹한 사랑 얘기가 아닌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삶의 존재에 관한 이야기. 불투명한 미랭에 불안하고 초조해한 젊은 영혼들이 서로의 등에 기대어 따뜻함을 느끼는 휴식 같은 존재. 서로의 꿈을 응원하고 허한 곳을 채워주는 이야기. 결국 닮아 버린 두 사람의 이야기.


  타인이 같은 공간에서 쌓아가는 작은 삶의 이야기를 읽으며 흐뭇함과 온기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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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본성의 악한 천사 - 스티븐 핑커의 역사 이론 및 폭력 이론에 대한 18가지 반박
필립 드와이어.마크 S. 미칼레 엮음, 김영서 옮김 / 책과함께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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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균쇠>, <사피엔스>로 대표되는 인류의 빅스토리는 얇지 않은 책이지만 한 권에 인류의 이야기를 담았다는 점에서 이슈가 되었고 또 많이 읽혔다. 하지만 이런 긴 역사를 서술하는 책에 대해 반론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여러 학문이 걸쳐 있는 이런 책들을 반론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시간을 투자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영역에서 깊이 있는 연구를 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어쩌면 시간 낭비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도 비슷한 위치에 있다. 많은 반론이 있었지만 여전히 이슈가 되고 있기도 하다.


  핑커 교수의 선한 천사의 역사학적 입장에서 비판하는 이 책은 책과함께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를 비판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은 선하다'라는 주장을 뒤집을 수 있는 근거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인간은 대체로 원하는 것을 믿는 경향이 있다. 성악설보다는 성선설이 믿고 싶은 이야기며 그런 맥락에서 우리 속의 천사를 옹호하고 싶어 진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를 일고 난 뒤에 알게 모르게 느껴지는 안도감이랄까. 그것을 반박했을 때 마주해야 하는 따가운 시선을 견뎌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학회에서의 갑론을박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대중서로 대응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자극적인 제목과 전투적인 서문에 비해 학자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는 젠틀했으며 그들만의 논리를 정확하게 펴고 있었다. 그들의 주된 스텐스는 핑커 교수의 서사가 아무리 훌륭한 것일지라도 정확한 데이터의 사용과 해석이 필요하며 누락된 데이터들을 추가하는 것이었다. 역사학자들의 분노는 핑커 교수가 자신의 서사를 완성하기 위해서 짓밟고 무시한 나머지 역사에 대한 분노이기도 했다.


  역사 연구 또한 과학 연구와 동일한 과정을 거친다. '불확실성의 원리'는 많은 학자들이 우유부단하다는 오해를 가져오게 만들지만 증명되지 않은 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자세는 중요하다. 역사학자들 또한 마찬가지다. 여러 사료를 살펴보고 맥락을 파악해야 한다. 기존의 역사와 다르게 최근 역사의 트렌드는 약자의 역사를 연구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사료는 대부분 승자의 기록이며 이들은 패한 자의 역사를 왜곡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수록 어느 하나 단정하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핑커 교수의 도전을 폄하하지는 않는다. 폭력의 역사성에 대한 연구는 꽤 오랜 과제였고 이런 노력은 분명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럼 핑커 교수는 어떤 오류를 범하고 있을까?


  첫째로 폭력의 정의다. 폭력은 시대에 따라 그 정의가 변화해 왔다. 핑커 교수가 정의하는 폭력은 오늘을 기준으로 하고 있으면 그것 또한 의지에 의한 폭력. 즉 살인에 대한 데이터와 잔인성에 대해 얘기한다. 하지만 여기서 두 가지 반론을 할 수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살인이 고대의 살인과 같은 의미가 될 수 있을까라는 것이다. 그들에게 그것은 하나의 축복일 수도 있다. 중세 가톨릭의 순교를 생각해 봐도 그것은 폭력인가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그렇지 않더라도 아주 적은 몇 가지 사실로 폭력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의지가 없다면 폭력이 아닌가 하는 문제가 있다. 


  두 번째는 폭력의 가변성이다. 폭력은 그 형태와 모양을 바꿀 수 있다. 돌도끼가 검이 되고 총과 미사일이 된다. 모두 바로 확인할 수 있는 폭력들이다. 하지만 최근에 이뤄지는 폭력의 형태는 조금 다르다. 자본주의는 양극화를 가져왔고 자연 파괴라는 심각한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지금의 세대의 폭력을 다음 세대가 맞게 되며 선진국이 휘두른 폭력이 글로벌 사우스로 향한다. 이를 '느린 폭력'이라고 하며 '마멸적 치명성'이라고 한다. 지구 온난화의 주범들은 선진국들이지만 그 피해는 여전히 발전하지 못한 나라에서 받게 된다. 우리가 일으킨 기후위기는 다다음 세대들은 힘겹게 견뎌야 한다. 너무 먼 이야기라 우리의 폭력은 눈에 띄게 사라져 보이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또 다른 폭력의 형태는 자신으로 향하는 폭력이다. 외부로 분출되지 못했던 폭력은 자신을 향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핑커 교수는 자살에 대한 언급하지 않는다. 자살은 시대가 흐를수록 많아지고 있다. 그것을 본성과 연결시키긴 쉽지 않지만 핑커 교수가 말한 자본주의의 취약한 부분을 파고든다. 자본주의는 인간에게 고립과 우울증 그리고 공황장애를 선물했으며 높은 자살률로 보답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트럼프를 선두로 세계 각국은 민주주의를 위협할 만한 지도자들이 선출되고 있으며 중국과 러시아는 더욱 폭력적으로 바뀌고 있다. 


  세 번째는 계몽주의다. 계몽주의는 아주 넓은 범위를 아우르고 있지만 핑커는 자신이 계몽주의를 이끌고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며 그 외의 계몽주의에 철저하게 무시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성'의 가치를 주장하면서도 '감정'에 기댄다. 소설과 에세이가 가져다준 심리적 공감능력이 그것이다. 그리고 '문명화 이론'이다. 엘리아스의 <문명화 과정>은 역사학자 사이에서는 이미 유명한 책으로 깜짝 놀라만 한 사람은 아니다. 예절고 매너는 폭력을 줄이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했지만 나치즘과 같은 파시즘에 대해서는 그냥 언급만 하고 넘어간다. 파시즘을 일으킨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 엘리트 층이었다는 사실과 오랜 시간 쌓여온 문명화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깨어지는 것이라면 애초부터 무슨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설명을 누락하고 있다.


  중세 유럽은 핑커 교수가 말한 것만큼 잔인하지 않았으며 러시아 경우는 문명화가 느렸음에도 유럽과 같은 잔인한 고문과 형벌이 존재하지 않았다. 러시아는 차르의 말이 즉시 시행되기 바랐기 때문에 '즉시 처형'했기도 했고 넓은 땅을 이용한 유배와 노역을 이용하여 노동력 부족을 해결하기도 했다. 폭력이라는 것은 국가 권력의 목적에 맞게 쓰이는 것이다. 모든 폭력은 여러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그 목적은 하나일 수 있다.


  핑커 교수의 역사 인식은 휘그식 역사주의다. 인류는 진보하며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목적론적 역사 해석을 한다. 이는 경제적으로 보면 케인스주의랑 닮아 있다. 인류는 진보할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역사학자는 이런 방법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계몽주의는 근본적으로 문명인과 미개인으로 나누게 된다. 문명의 꽃을 먼저 피웠던 서양에게 명분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제국의 침략의 명분이며, 백인이 흑인을 노예로 부리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며 그 기록 속에는 누락된 기록이 너무 많다. 이 점은 핑커 교수도 언급하고 있다. 단지, 역사학자는 사료를 찾아 하나씩 검증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핑커 교수는 샘플링과 비율로 퉁친다는 점이 다르다는 것이다. 역사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으며 한 사회의 사료가 다른 사회로 넘어갈 때에도 그 해석은 새롭게 해야 한다. 핑커 교수는 그 점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해석한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많은 것들이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를 읽을 때 드는 불편한 부분을 그대로 파고들었다. 핑커 교수의 허점에서 내가 불편함을 느꼈던 걸까? 내가 느끼는 폭력성을 너무 아무렇지 않게 얘기해서 그랬던 걸까? 우리는 점점 더 선해지고 있다는 서사 아래 짓밟힌 작은 (혹은 작지 않은) 역사의 아픔에 대해 이 책은 분노하는 것 같았다. 그 점은 핑커 교수도 얘기한다. 역사는 승자의 것이지만 피해는 약자의 것이다. 


  기획자는 '자극적'인 프레임을 설정했지만 책은 오히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를 제대로 읽기 위한 부록 같은 느낌이었다. 책의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아주고 다른 의견을 제시하여 혹함에 끌려가는 생각에 전환점을 만들어 준다. 이 책을 읽으면 보다 풍성한 생각이 들게 될지 모른다. 인간이 착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은 누구나 바라는 것이다. 폭력은 그 형태를 바꿔가며 우리와 대적하고 있다. 핑커가 말한 "새로운 평화"는 어쩌면 "새로운 전쟁"으로 불려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 세상은 오늘도 자연에 대한 폭력, 약자에 대한 폭력, 사회를 부수려는 폭력등과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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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하는 파이썬 데이터 분석 - 도시 생활 데이터를 활용한 데이터 분석 방법
김규석.김현정 지음 / 한빛미디어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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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 파이썬의 기세는 무섭다. 간단한 코딩과 엄청나게 많은 라이브러리로 인해서 정말 빠른 개발이 가능해졌다. 최근에는 RPA에서 파이썬은 많은 역할을 하고 있는 분위기다. 자료를 받아와 분석하고 데이터를 만들고 보여주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인터넷에서 자동으로 자료를 취득하는 것도 가능하다. 일련의 과정은 C++과 비교해 보면 정말 경이롭다.


  파이썬을 배워보려고 주피터 노트북도 깔아보고 Visual Code로도 해봤지만 역시 가장 귀찮은 것은 라이브러리 설치다. 명령어만 치면 설치되긴 하지만 가끔은 설정이 꼬이기도 하고 반응하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책에서 소개한 구글의 Colab을 이용하면 대부분의 라이브러리를 지원해서 좋았다. 처음 시작할 때 시간이 약간 걸리는 것을 제외하면 파이썬을 공부하기에 좋은 환경을 제공해 주었다. 코랩의 좋은 점은 웹상에 존재하기 때문에 PC에서 하다가 태블릿으로 하다가 심지어 폰으로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파이썬을 이용하여 데이터 분석을 하는 예제들을 포함하고 있다. 지방청이나 국가에서 제공하는 자료 등을 이용해서 데이터를 분석하고 지도로 표시해 보는 것부터 데이터를 수집하는 크롤링, 그리고 직접 하려면 난감한 상관분석, 회귀분석, 시계열 분석에 대해서도 다룬다.


  직접 코드를 짜보기 때문에 일단 재미가 있다. 그리고 지도와 그래프를 이용하여 결과를 바로바로 볼 수 있으니 그 또한 즐겁다. C++로 이걸 해내려면 상상도 하기 싫다. 물론 라이브러리를 이용하면 조금 더 편하긴 하겠지만.. 힘든 일을 이렇게 간편하게 해내니 조금만 해도 벌써부터 고수가 된 느낌도 든다. 예제가 있다는 건 활용은 쉽게 할 수 있다는 얘기니까.


  앞부분에 간단한 설명이 있지만 이 책은 기본적인 언어적 지식은 있어야 할 것 같다. 파이썬을 하지 않았더라도  다른 코딩을 해봤다면 분명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 같다. 파이썬의 간단한 코드를 짜봤다면 더 쉽게 접근할 수 도 있다. 사실 DB와 연동해서 보여주는 것도 궁금했는데 그 부분은 찾질 못했다. 대신에 크롤링은 재미나게 했다.


  저자가 준비해 둔 자료를 가지고 작업하는 게 아니라 어디서 자료를 찾을 수 있는지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국가 기관에서 이런 데이터를 제공하고 있었고 그 종류도 무척이나 다양했다. 데이터 분석이 필요한 여러 사람에게 간단하게 접근하기 좋은 책이었다. 매뉴얼과 조금만 비교해서 코딩하면 훨씬 다양한 앱도 가능할 듯했다.


*한빛미디어 <나는 리뷰어다> 활동을 위해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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