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센 뤼팽 10 - 아르센 뤼팽의 수십억 달러 어린이 세계 추리 명작 시리즈
모리스 르블랑 지음, 이혜영 옮김 / 국일아이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추리에 흥미를 느낀 딸이 가장 먼저 접하게 된 건 "셜록"이었다. "셜록은 너무 멋져"라는 감탄사와 함께 셜록이란 책은 죄다 구매했던 것 같다. 소년 셜록도 그 속에 포함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셜록보다 루팡을 좋아하는 나는 딸에 루팡을 존재를 알려줬다. 딸은 루팡이 더 멋진 거 같아라며 곧 루팡에 빠지게 된다. 그 뒤로 여러 루팡 책을 섭렵했다. 특히 멋진 일러스트가 있는 책을 유독 좋아했다. 최근에는 아빠의 루팡 책도 찾아볼 정도다.

  새로운 귀공자의 탄생을 알리는 뤼팽 시리즈는 국일아이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뤼팽 + 귀공자는 거부할 수 없는 프리패스 같은 것이다. 책을 집에 가져 보여주자마자 딸은 낚아채듯 책을 가져간다. 그리곤 소파에 누워 그대로 완독해 버린다. "오오, 이건 처음 읽는 스토리인데.. 재밌네" 라며 감탄을 하며 씻으라는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대로 끝까지 읽어 버렸다. 아직 아빠의 루팡 전권을 다 읽지 않은 상태라 띄엄띄엄 스토리를 알고 있다. 그리고 자신만이 특히 좋아하는 사건들이 있다.

  한참을 읽더니 "호랑이 이름이 싸이다야 싸이다"라며 깔깔 거린다. 뭔 소린가 했는데 읽어보니 정말 호랑이 이름이 싸이다다. 무슨 뜻인지 모르겠지만 내 귀에는 '칠성 사이다'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박 씨 물어온 제비도 아닌데, 호랑이가 은혜를 갚는다. 아이들 이야기니 가능하겠지만 어쨌든 루팡이 멋있으면 된다.

  이 책은 총 10권인 듯하다. 그리고 순서가 내가 가진 루팡 전집과 순서가 똑같다. 정말 아이들을 위한 함축된 이야기인 듯하다. 루팡이 자신의 전 재산을 걸고 싸우는 사건이야 말로 마지막 권으로도 적절하다. 그래서 더 재밌었는지도 모르겠다. 축약된 스토리와 큼직 막 한 글자는 쉽게 읽히고 박진감 넘친다. 딸이 아빠 책은 이야기를 쭉 늘려 놓은 것 같아 재미없어라고 얘기하는 이유를 알겠다.

  이 책은 청소년 소설과 어린이 책 사이 정도의 글밥이라고 할 수 있다. 글자 크기와 자간이 충분히 넓어서 한 장 한 장 읽기에 지겨움이 없다. 게다가 중간중간 삽화도 있어서 눈이 즐거워지는 시간도 있다. 멋진 루팡과 아름다운 패트리샤를 보는 것은 읽기를 지속해 나가기에 충분한 듯하다. 

  그럼에도 약간의 걱정은 존재한다. 추리 소설에는 어김없이 사건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들은 이런 책을 무서워한다. 총을 쏘고 사람이 다치고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명탐정 코난에 푹 빠져 있고 '찰리 9세', '셜록', '해리포터'까지 섭렵한 딸에게는 그냥 멋있는 영웅물이다. 잘 생겼는데 성격은 쿨하고 다재다능하니 어찌 빠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명탐정 코난에서도 괴도 키드를 좋아하니 그 취향 어디 가지 않는다.

  추리를 좋아하는 아이라면 사실 셜록, 뤼팽 보다 나은 선택지는 많지 않다. 적당한 글밥으로 읽기에도 좋고 재밌으니 여러 번 읽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책의 뤼팽은 충분히 잘 생기고 멋지다. 한 번도 접하지 않았다면 루팡의 매력에 빠져보는 것을 추천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클래식 비스트로 - 입문자를 위한 솔티클래식의 음악 편지
원현정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등학교 점심시간. 친구를 따라 음악실에 갔다. 피아노를 쳐다보던 친구는 "한번 쳐볼까?"라며 피아노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캐논 변주곡'을 연주했다. 피아노를 치는 걸 처음 가까이서 봤다. 친구가 너무 멋있었고 캐논은 너무 좋았다. 그 뒤로 나에게 클래식은 곧 캐논이었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 '로망스'가 나에게 왔다. '레이크 루이스'를 더 많이 들었지만. 그렇게 유키쿠라모토는 애정하는 연주가가 되었다. 그리고 클래식에 대한 편견을 바꿀 녀석이 다가오는데 바로 <노다메 칸타빌레>였다.

  음악이든 미술이든 그에 엮인 스토리를 알면 더 깊이 이해하고 즐길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클래식과 작곡가의 이야기를 풀어낸 이 책은 한스미디어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노다메>는 정말 탁월했다. 클래식이 이렇게 즐길 수 있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드라마 도입부에 치아키가 노다메의 연주를 '비참'이라고 얘기했던 베토벤 소나타 8번 '비창', 치아키를 각성시키기 위해 준비된 모차르트,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미네와 노다메의 연주를 '장마' 같다고 얘기했던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5번 '봄'. 그리고 지휘자가 된 치아키의 첫 곡 베토벤 교향곡 7번. 치아키 없는 오케스트라가 준비한 '랩소디 블루'. 치아키의 마지막 피아노 협주였던 라흐마니노흐 교향곡 2번. 정말 명곡이면서도 대중적인 곡들이 나를 덮쳤다. (괜히 노다메 후기 같다)

  노다메 유렵 편에 보면 이런 얘기가 나온다. 악보에는 작곡가가 말하고 싶은 모든 것이 쓰여 있지 않다. 밖으로 나가서 작곡가가 어떤 시대에 어떤 생각으로 곡을 만들었는지를 공부해 보라고 한다. 실제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바이올린리스트 한수진 님은 체력적으로 4시간 이상 연습할 수 없어서 남은 시간엔 음악학을 공부하기도 했다고 한다. 대가들의 레슨을 보면 테크닉에 대한 얘기보다는 분위기, 풍경, 생각에 대한 얘기가 훨씬 많다. 

  그래서 클래식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작곡가의 이야기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곡에 어떤 사연이 있는지 알면 곡을 이해하고 감상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두꺼운 작곡가 개개인들의 평전이나 서양음악사 같은 책들을 읽는 것도 좋지만 담백하게 풀어놓은 이런 책들이 부담스럽지 않고 좋다.

  노다메 이후로 베토벤 바이러스, 피아노의 숲, 4월은 너의 거짓말로 이어지는 클래식 콘텐츠를 소비하며 이제는 클래식을 즐길 만큼 좋아하게 되었다. 앞에서 말했듯 한수진 님의 바이올린에는 특별함이 있다. 정경화 님처럼 날카롭게 날이 서 있는 초절기교파의 느낌과는 다른 온화함과 따스함 위에 올려진 카리스마가 있다. 최근에는 바이올린리스트 고소현 님의 바이올린도 즐겨 듣는다. 우리나라 임윤찬이나 조성진 님의 피아노도 좋지만 최근에 알게 된 스미노 하야토의 피아노도 좋다. 그리고 클래식은 아니지만 한규희 님의 기타도 좋다(클래식 기타니까 클래식이라 하자).

  하나같이 좋은 곡들이 재미난 에피소드와 함께 담겨 있다. 바람둥이도 있고 절절한 로맨티시스트도 있다. 최고의 연주를 QR코드로 남겨두어서 감상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감상할 수 있다. 나는 지금 고소현 님의 사라사테 카르멘 판타지 Op.25를 듣고 있다. 

  열정적인 바이올린 음색과 함께 읽으면 더 좋을 듯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Release의 모든 것 - 대규모 웹 분산 시스템을 위한 운영 고려 설계 | 아마존 소프트웨어 공학 분야 베스트셀러
마이클 나이가드 지음, 박성철 옮김 / 한빛미디어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조금 더 체계적인 소프트웨어 관리를 위해 이 책을 선택했다. 모든 S/W는 현장에서 다시 시작된다. 일반적인 IT 관련 프로그래밍이 아닌 24시간 가동되는 공장에서 작업을 실시하는 자동화 장비를 제작하는 나에게는 S/W는 멋스러움이 아닌 보수적인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이 책은 기대가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지만 꽤나 어려웠다.

  보통의 책은 만드는 것 자체에 관심을 두지만 현실은 운영일 시작하고부터다. 운영 고려 설계에 초점을 맞춘 이 책은 한빛미디어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응용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은 복잡하지만 꽤나 즐거운 일이다. 새롭게 뭔가를 만들어내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프로그램이 고객의 손에 들어가는 순간 악몽이 시작된다. 고객은 개발자의 생각을 넘어선 행동을 마다하지 않는다. 예상하지 못한 행동뿐만 아니라 예상하지 못한 트래픽은 재앙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시간이 곧 돈인 현장에서의 대응은 피 말리는 일이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메카닉을 직접 구동하는 나의 업무는 데이터를 처리하는 보통의 IT업무에 비하면 단조로운 편이다. 대신 굉장히 보수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잘못된 동작은 하드웨어의 파손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하드웨어의 파손은 직접적인 손해가 된다. 그래서 나의 경우는 인터록이 중요하다. 물론 인터넷상에서 처리해야 하는 프로그램도 그 위험성은 존재한다. 은행업무와 같은 보안의 문제라든지 쇼핑몰 이벤트에서의 서버 다운 같은 일은 심각한 손해를 초래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운영 환경을 고려한 설계에 대해 얘기한다. 안정성 패턴과 안티 패턴 및 운영 고려 설계와 배치 고려를 얘기한다. 아키텍처와 버전 관련 그리고 카오스 공학까지 두루 이야기보따리를 펼쳐 놓으니 나에게는 버거운 지식이 되어 버렸다. 현장에서 마주하는 문제들을 이야기로 풀어내어 관련 업종에 근무하는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낼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생경하는 풍경이었다.

  하지만 프로그램을 안정적으로 설계해 내야 하는 관점은 동의할 수 있었고 여러 환경에 대한 이해도 할 수 있었다. 단순히 잘 설계된 프로그램보다 더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있음도 동의할 수 있었다. 하나의 에러는 시스템 전반으로 전염되어 시스템을 통째로 마비시키기도 한다. 이에 대응하는 얘기들도 해 주었다.

  이쯤 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개발을 완료하곤 하지만 현장은 늘 생각 이상의 것들로 넘쳐 난다. 이 책은 그런 상황에 대한 얘기로 가득하다. 접점이 부족하여 모두를 공감하며 읽을 수 없었고 꽤나 어려운 개념들이 나를 덮쳐 읽어내기 힘들었지만 개발자들에게는 좋은 해결책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한빛미디어 <나는 리뷰어다> 활동을 위해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을 죽인 여자들
클라우디아 피녜이로 지음, 엄지영 옮김 / 푸른숲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만들어진 신>, <이기적 유전자>를 쓴 리처드 도킨스는 종교인을 매몰차게 공격하는 학자 중에 한 명이다. 그의 저서들은 과학으로 종교를 부정한다. 종교라는 것이 공동체를 위해 만들어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 타인을 위해 목숨을 내어 놓기 위해서는 신념이라는 것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종교는 제국을 만들었고 왕은 신이 되고자 했다. 종교는 권위가 되었고 필요 이상의 힘이 되었다. 

  존재의 이유는 종교가 아니라 행복이라고 얘기하는 알프레도의 말처럼 죽음, 사랑 그리고 믿음에 관한 이야기는 푸른숲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책의 장르가 오묘하다. 일단 스릴러임은 분명하다. 종반부에 드러나는 사건의 재구성에서 느껴지는 역겨움은 하드보일드한 장르를 연상케 한다. 하지만 이야기 전체에 흐르는 메시지는 조금 다르다. 행복에 대해 얘기하고 사랑에 대해 얘기한다. 그리고 광신에 대해 비판한다. 어쩌면 이 책은 종교 비판적인 책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시대를 근대로 설정함으로써 페미니즘의 분위기도 가지고 있다. 

  가볍게는 신을 믿지 않는 자가 신을 믿는 집단에 있을 때 어떤 대우를 받게 되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종교는 꽤나 폭력적이다. 적어도 지금의 종교의 모습은 더욱 그렇다. 종교를 행하는 자 또한 그 의문이 없는 것도 아닌 듯하다. 고행과 수난은 수행자의 기본 값이기 때문이다. 복종이라는 것을 요구하는 거친 폭력이다. 

  초입이 굉장히 난해하다. 책은 꽤나 높은 집중력을 요구한다. 주위의 잡음소리에도 이야기가 끊어져버리는 느낌이다. 마치 소곤대는 소리 같다. 비밀을 얘기해 줄 듯 알듯 말듯한 얘기들이 전개된다. 어느 하나 확신을 들지 않는다. 화자 별로 이야기를 구성한 것이 좋았다. 각자의 얘기는 묘하게 잘 섞여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진다. 초반의 느슨했던 이야기는 마르셀라의 이야기에서 긴장감이 오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법의학자의 독백과 같은 구성으로 범죄는 점점 풀려나간다.

  이 작품은 종교를 넘어 인간의 근원적인 믿음에 대해 얘기한다. 자신의 죄를 신의 뜻으로 돌려버리는 무책임감은 (내가 고해성사를 가장 싫어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깊은 빡침을 준다. 그리고 그런 자를 남편으로 받아들이는 여성의 모습에서 자신의 행복이 완전해야 한다는 믿음도 보였다. 나르시시즘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인지부조화라고 해야 할까. 인간은 자신이 믿는 것을 지키기 위해 세상을 다르게 해석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인간은 나약해지고 기대고 싶은 존재가 필요할 때 신을 만들어 낸다. 이성적으로 과학적으로는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이 들어도 위급한 상황 앞에서 모두 기도하게 된다. 믿음이라는 건 순진한 자기 속임일지도 모른다. 과학자들이 종교인이 부러운 때가 딱 한 번 있다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죽음을 앞두고서라고 했다. (물론 죽음을 축복으로 여기는 깊은 신앙심을 가진 사람들의 얘기겠지만..) 인간은 나약하니까 언제든 종교가 파고들 틈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늘 자신의 생각에 의심을 해보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지독한 믿음으로 출발한 슬픈 사실은 끔찍한 살인 현장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이다. 믿음에는 행복과 사랑이 있어야 한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마르셀라와의 대화를 통해 늦은 나이에 진정한 사랑을 한 알프레도의 모습은 죽음의 문턱 앞에서도 필요한 것은 신이 아니라 사랑임을 얘기하는 듯했다. 그리고 마르셀라의 필기 마지막에 남겨진 하트는 또 다른 따뜻함을 내보여 준다.

  온갖 부조리함으로 가득한 얘기로 읽기 힘들 수도 있다. 작가는 중간중간 작은 기쁨의 장치를 심어 놓음으로써 독자를 격려하는 듯하다. 훌리안 편에서는 깊은 빡침을 카르멘 편에서는 분노를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알프레도의 이야기로 모든 것을 감싸 안으며 마무리한다. 

  작품은 범죄 해결을 위한 작품이라기보다는 미제로 끝난 사건의 주인공들을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로 옮겨두고 내면의 마음을 풀어낸다. 범인이 누구고 어떻게 살해된 게 중요한 게 아닌 듯했다. 작가는 죄의 무게와 잘못된 믿음의 결과를 얘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결국 신 보다 인간의 사랑의 귀함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태어났고 사랑하기 위해 살아가는 듯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측정의 세계 - 저울과 자를 든 인류의 숨겨진 역사
제임스 빈센트 지음, 장혜인 옮김 / 까치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측정은 인지는 한 부분이다. 그리고 측정은 인지 중에서도 가장 집중해서 보는 행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언어와 문자가 세상을 살아가는 인류들의 집단 지성을 가능하게 해 줬다면 측정은 세상을 이해하는 능력을 가져다줬다. 나태주 시인의 시처럼 자세히 보고 오래 보아 할 수 있게 된 측정은 인류가 세상을 사랑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측정의 역사에 대해 얘기하고 현대에 측정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는 이 책은 까치글방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측정은 고수준의 인지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측정은 인류의 인지에 비약적 도약을 가져왔다. 교환을 위해 물건을 들고 다니는 불편함 대신에 기준이 될 만한 다른 것들을 만들었다. 인간의 추상화 능력은 인류 발전의 큰 이정표가 되었다. 

  측정이 인류의 발전에 긍정적인 측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측정은 기득권들이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만들어지기도 하고 왜곡되기도 했다. 사실 도량의 단위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평소 사용하려는 단위가 가장 편한 것이었다. 세금을 위해 혹은 무역을 위해 만들어지는 단위들이 최초 생산자에게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표준이라는 것에 대한 싸움도 실제 사용할 일이 없는 기득권층의 싸움이었다.

  시대가 흐르면서 온도와 무게가 수량화되고 시간 또한 수량화되었다. 측정할 수 없는 연속적인 현상들은 조금씩 측정 가능한 것들이 되어 갔고 인간의 인식 또한 변하게 되었다. 측정은 세상의 생생한 활력을 그저 숫자로 표기하는 어리석은 행동일 수 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세상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다. 정확하게 측정하려는 욕망은 더 구석구석을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인간이 세상을 더 자세히 들여다 봄으로서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여러 곳에서 측정을 하다 보니 단위 또한 우후죽순으로 자라났다. 단위는 도시 하나만 건너도 통용되지 않을 수준에도 이르렀다. 그래서 단위의 통일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단위는 전 세계적이어야 했다. 프랑스의 탈레랑은 국제 도량 단위를 만들었다. 길이, 부피, 질량을 기본 단위로 하는 십진법적 도량 단위 법으로 단위끼리 환산도 가능하다. 미터법 보급은 순조롭지 않았고 민족주의처럼 자신들만의 단위를 지키려는 노력에 부딪혔다. 그래서 프랑스에서는 1840년 강제 집행하기에 이르렀다. 미터법 초기에는 표준을 나타내는 물건이 있었지만 현재는 빛으로 거리를 나타내는 것과 같이 추상적인 정의로 변화되었다.

  세상은 여전히 10진법, 12진법, 64진법 등의 뒤섞여 있고 몇몇 예전 단위로 남아 있다. 미터법은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사용하지만 미국, 미얀마, 라이베리아만이 공식적으로 채택하지 않고 있다. 

  인류는 축적된 미덕에 대한 믿음, 진보에 대한 믿음이 있다고 콩도르세는 말했다. 측정은 과학이 되었고 진보로 가는 열쇠이기도 했다. 많은 결과는 수치화되었고 통계로 만들어졌다. 그 속에서 평균의 문제나 우월성의 문제도 발생하였다. 하지만 덕분에 상관계수에 대한 해석도 가능하게 되었다. 세상은 점점 더 숫자로 표현되고 있다.

  저자는 측정의 세계를 나열한다. 그러면서도 반대 방향의 질문을 던진다. '수량화된 자아'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우리의 신체는 수많은 숫자로 나열되고 있다. 그 숫자에 생명의 열쇠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자아에 대해 자유 의지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다. 우리는 매일을 수치화하며 조금 더 나은 숫자를 위해 TODO 리스트를 챙기고 있다. 이것은 정말 진보를 위한 길일까? 저자는 질문한다.

  세상을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은 근대 문화를 이끄는 힘이다. 하지만 우리는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마주할 때마다 세상을 느낀다고 얘기한 로자의 말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수치화된 아이들 어느새 IQ, EQ, SQ 등이 측정되고 수많은 시험의 결과로 숫자와 마주한다. 사회생활을 하며 KPI와 같은 숫자와 마주한다. 정말 그것이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전부일까? 수치화된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본다.

  저자는 측정에 대한 흥미진진한 얘기와 더불어 숫자로 표현되어 가는 세상 속에서 수량화된 인간의 모습에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숫자는 인류의 진보를 이끌었지만 인간마저 숫자에 삼켜질지도 모른다. 우주를 이루는 하나의 숫자가 되어 버린 인간. 인간은 사라지고 통계만 남는다. 베트남 전에서 승리를 숫자로 만드니 민간인 학살이라는 일이 이뤄지듯 숫자 이면에 묻혀버린 질문에 답할 시간을 가져 보는 좋은 시간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