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회의 599호 : 2024.01.05 - #우리가 사랑한 책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지음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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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회의는 25주년 600호를 눈앞에 두고 있다. 시장 규모가 우리나라의 두 배 이상인 일본에서도 출판 전문지는 2010년대가 되기 전에 모두 사라졌으니 꽤나 자부심이 있을 법한 일이다. 

  평생 삼 만권은 읽었을 법하다고 얘기하는 한기호 소장의 말은 의미 심장하다. '서울의 봄'을 겪으면서 감옥살이를 하면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그는 하루에 한 권씩 읽고 서평을 올리는 마쓰오카 세이고를 좋아하는 듯하다. 매일 같이 쏟아져 드는 책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그는 출판이 적성에 잘 맞는 듯하다.

  세상에는 많은 추천도서가 있지만 기획회의 599호는 조금 특별하다. '내가 사랑한 책'이라는 주제로 5권을 선정하는 전권 특집이다. 편집장, 편집자, MD 그리고 본지의 소장이 사랑한 책을 소개하는 이 매거진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인플루언스나 비평가들이 소개하는 책들과 달리 편집장, 편집자들이 선정한 책은 사뭇 색다르다. 그 속에는 아주 유명한 책들도 있지만 그들의 시선은 그곳에만 닿아 있지 않았다. 때로는 사랑하는 책을 때로는 아직 읽지 않을 책을 때로는 반복해서 읽어야만 하는 책을 선정하기도 했다. 편집자라는 직업답게 자신이 열정을 쏟았던 혹은 그런 희열을 목격한 책들이 선정되기도 했다. 자신만의 철학과 사상에 닿아 있다.

  25인이 선정한 125권의 책 이야기. 어디서 추천받기도 힘든 책들이 가득하다. 덕분에 안 그래도 무거운 장바구니가 더 무거워졌다. 그리고 추천하지 않으면서 은근히 드러내는 수많은 책들 덕분에 사실 125권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친절하게도(?) 마지막에 리스트를 만들어 두었다.

  애착이 가는 책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 같다. 회사를 다니면 당연히 자신의 손이 닿은 것에 애착이 생기기 마련이다. 다른 사람을 통해 만들어진 것들보다 더 사랑할 수밖에 없다. 글은 작가가 쓴다지만 책은 함께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편집자들의 글 솜씨는 작가 못지않다. 서평을 이렇게 아름답게 쓸 수 있다니, 역시 전문으로 책을 다루는 사람들 다뤘다.

  책들 중에는 절판된 책도 많았고 다행스럽게(?) 복간된 책들도 제법 있었다. 퇴사를 불사하고 제안해서 만든 책도 있었다. 책에 밥벌이를 걸다니 얼마나 좋으면 그랬을까라는 생각도 자연스럽게 한다. 고전이라고 불리는 것들보다 진흙 속의 진주가 많았고 호기심을 가지고 서점 앱을 열어 검색을 하면 수많은 하트가 책을 장식하고 있다. '세상에, 나만 모르는 책이었다니.'라며 약간 억울하기까지 하다.

  소외에 관한 책, 약자를 위한 책, 페미니즘 책 더 나가면 옥살이를 한 사상가의 책, 시인의 책 들도 있다. 수많은 장르가 쏟아진다. 편집자의 스타일에 따라 출판사의 신념에 따라 책은 선정된다. 흔한 베스트셀러 추천 말고 정말 깊이 있는 책 추천이 필요하다면 바로 기획회의 599호는 꽤나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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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 코난처럼 생각하라 - 코난의 사건 해결 사례로 익히는 맥킨지식 로지컬 씽킹
우에노 쓰요시 지음, 안선주 옮김 / 현익출판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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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작가겠지?라는 예상은 당연하다. 만화에서 배우는 이야기는 대부분 일본스럽다고 할까? 그들에게 만화는 재미 이상의 집착이 있기 때문에 이해가 간다. 마스터 셰프 코리아 시즌2 우승자 최강록 셰프는 '미스터 초밥왕'이라는 만화로 음식을 배웠다고 한다. 나도 읽어봤지만 정말 걸작이다. 바둑왕도 그렇고 일본 만화의 깊이는 남다르다. 

  코난의 사건 해결은 이 만화를 보는 한 가지 이유가 될 수 있다. 귀엽고 멋진 캐릭터에 잘 짜인 스토리는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열광하게 만든다. 여전히 콘텐츠가 만들어지는 이 장수 작품에서 어떤 이야기를 배울 수 있을까? 현익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매킨지식 로지컬 싱킹 또한 얼마나 오래된 기법인가? 매킨지 하면 바로 손사래를 칠듯하다. 딱딱하고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로지컬 싱킹을 해보려고 책도 샀었는데 완독 하지 못했었다. 그러니 생활에 일에 적용하는 건 무리가 아니었을까? 

  이 책을 잡은 것도 순전히 '코난' 때문이다. 딸아이가 무척 좋아해서 호기심을 보일까 싶어서다. 그리고 쭉 읽어보니 생각보다 싶다. 코난 이야기는 전체 줄거리를 꿰고 있다면 바로 장면이 드러날 테지만 기억나지 않은 장면은 살짝 무슨 얘길 하는지 잘 이해되지 않았다.

  이 책은 로지컬 싱킹이라는 것을 간단하고 쉽게 풀었다. 어떻게 보면 입문서라고 해도 될 듯하다. 최근 캐릭터가 등장해서 말을 거는 학습지를 보는 듯한 기분이랄까. 캐릭터는 하나도 나오지 않지만 그런 기분의 책이었고 독서였다. 술술 읽힌다고 해야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물론 하나씩 따져가며 읽으면 또 오래 걸릴 것 같기도 하다)

  책을 읽다 보면 코난의 추리에 논리적인 접근법이 있었구나를 더 명확히 알 수 있다. 로지컬 싱킹에 대한 흥미보다 코난의 대단함을 느낀다고 할까나? 그러고 보면 로지컬 싱킹이라는 것도 그렇게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가 살아가며 알게 모르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슈를 설정하고 3개 정도의 구조를 만들어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는 방법은 이미 하고 있지 않은가? 그것을 보다 체계적으로 하고 있지 않을 뿐이며 때때로 샛길로 빠지는 일이 많아서 그랬을 뿐이다. 어떻게 보면 로지컬 싱킹이라는 게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게 아닐까 싶다. 단지 글로 적고 표로 만들고 하는 게 귀찮을 뿐이지만..

  필요한 모든 것은 만화에서 배울 수 있다는 저자의 마인드가 마음에 든다. 특히 매니악한 소재가 많은 일본 만화라면 더욱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코난에서는 이렇게 문제를 설정하는 방법과 접근법에 대해 배울 수 있다. 그리고 보이는 것을 전부 믿지 않고 뭐든 정답이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하며 각각의 가설을 검증해 나가는 것이 필요함을 알 수 있었다.

  코난의 스토리로 로지컬 싱킹에 가볍게 다가가기에 괜찮은 책이었다. 단지, 가볍게 접근하다 보니 깊게 배우려면 더 진지하게 다루는 책이 필요할 것 같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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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보니, 시간 - 바로 지금에 관한 이야기 33한 프로젝트
이권우 외 지음, 강양구 기획 / 생각의힘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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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과 인문학이 이렇게 조화롭게 섞일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시간'이라는 단어에 '살아보니'를 엮은 제목이 내용을 잘 아우르고 있다. 있지만 없는 없지만 느끼는 시간이라는 것과 그것의 의미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인간에 시간의 의미란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이 책은 생각의 힘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인간의 삶에서 시간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그리고 과학에서도 시간은 중요하다. 하지만 각자의 영역에서 시간을 대하는 자세는 사뭇 다르다. 인간이 사고하면서 느끼기 시작한 시간이기 때문에 그것이 동물에게도 있을지 우주에도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물리학에서 시간은 그저 정의되는 것일 뿐이다. 본질을 얘기하는 것은 과학의 몫은 아니다. 그래서 인문학이 필요하다.

  학부모에게 전화를 받은 한 과학 교사의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선생님, 아이에게 시간이 뭔지 모른다고 하셨다면서요. 시간도 모르면서 아이를 가르칩니까"

  과학 카페는 웃음바다가 되었지만 보통의 학부모라면 심각할 내용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뉴튼도 모른다고 한 '시간'을 어떻게 설명하라는 건지 다들 난감해했다. 

  물리적으로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도 미래도 없다. 그저 세상은 변하고 있을 뿐이고 인간은 그것을 기억할 뿐이다. 물리에서 시간은 변화가 발생한 틈을 정의한 도구니 미라니 과거니와 같은 방향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북극점에서 북쪽이 어디냐고 묻는 것과 같다. 하지만 인간은 시간의 흐름을 또렷이 느낀다. 우주의 변화의 방향과 인간 기억의 방향이 같은 쪽을 향해서 그렇단다. 결국 무질서하게 된다. 우주가 팽창을 멈추고 수축한다면 우리의 과거와 미래는 뒤집어질까 궁금하기도 하다.

  생물학적 시간은 '노화'로 설명을 할 수 있지만 '노화'라는 것도 방향일 뿐 방향을 설명할 순 없다. 생명은 탄생과 소멸로 볼 수도 있고 성장과 순환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진화의 시간은 '대멸종'을 전재로 한다. 꽉 찬 공간에 여유가 생겨야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는 것과 같다. 

  어려운 테마지만 과학을 삶에 들이댈 필요까진 없다. 과학이라는 게 가정으로 한정해 놓은 채 여러 사실들을 알아내는 학문. 즉 측정 가능한 것이 곧 존재한다고 설명하는 학문이기에 비어 있는 공간은 너무 많다. 그래서 여전히 인문학적 채움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과학적이라고 떠들어 대는 것 중에 과학적인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는 얘기일지도 모른다. (정치인들처럼..)

  끈 이론이 시들해졌다는 사실을 책을 통해 알았다. 차원은 끝이 없고 무한히 증명해야 하고 셈은 어렵고 측정 불가능해서일까? 그리고 '양자고리중력'이라는 학문이 재조명받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상대성 이론은 건재하다. 최근 이론물리학은 측정 불가능한 것이 대부분이니까. (근데 2센티 높이 차로 시간 차이가 있다는 걸 측정한 사람들이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는 건 또 처음 알았다. 2 아토초만큼 시간이 다르게 흐른단다. 와우~)

  과학이 발달하고 통신이 수월해지면서 비과학과 유사과학이 더 활발해졌고 이를 비판하는 쪽은 결국 '과학지상주의'로 흐르게 된다. 과학이라는 것이 삶에 녹아들며 인간을 얼마나 풍요롭게 했냐라고 주장하는 신계몽주의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스티브 핑거 교수가 있다. 삶 속에 녹아든 과학을 비판하는 것은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인문학이 필요하다.

  지금은 어떻게 보면 과학의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과학은 하나의 종교가 되었고 나는 그 신자 중에 한 명이다. 종교가 종말론을 말하지 않음으로써 오만해지고 탐욕만 추구하게 되었다는 이권우 님의 말에도 공감했다. 과학이든 뭐든 한계를 인정하고 성찰하는 일이 사라지면 안 된다. 양극화가 심해지고 사회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고 있는대도 합리성이나 자유경쟁을 들먹이며 과학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사회과학은 과학적이지 않은 면이 많은데도 과학이라는 말이 붙어서일까. 숫자로 표시되지 않는 소중한 것들이 계속 소외되는 듯하다.

  결국 우리의 시간에 필요한 것은 자기 성찰인 것 같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바로 앞의 미래 정도를 생각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서로 우기지 않고 토론하며 나아가는 일이 중요하다. 두루 잘 사는 세상이 이렇게 어려울까? 노동의 신성함이 사라지지 않아서일까. 없어도 되는 일이 계속 생겨난다. 몇십 년 전 보다 훨씬 발전했지만 그것만큼 편해지지도 않았다.

  수렵채집의 시대는 하루 세 시간 노동했다. 농경의 시대에 '분'이라는 시간은 필요하지 않았고 중세에도 시간은 15분 단위였다. 현대는 초를 세어가며 산다. 인간의 시간이 아니라 기계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지금 우리는 '시간'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할 필요가 있다.

  과학과 인문학의 절묘한 콜라보가 돋보이는 책이며 또한 우리 세상 또한 그래야 함을 얘기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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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 문장의 기억 (양장) -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하여 Memory of Sentences Series 1
박예진 엮음, 버지니아 울프 원작 / 센텐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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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지니아 울프라는 작가는 워낙 유명한 탓에 (자기만의 방으로 유명한) 이름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글로 만나는 것은 처음이다. 사실 이 책을 먼저 만나지 말았어야 하는 생각이 든다. 왜냐면 이 책은 이미 작가에 대해 깊은 감동을 받은 이후의 독자를 위한 책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문장 하나하나가 섬세하고 서정적인 것은 느낄 수 있었으나 저자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을 책 속의 짧은 문장으로는 알 수가 없었다. 역사의 설명이 있지만 과연 그것만을 얘기하는 것일까?라는 물음표가 떠나지 않는 것도 아쉬움이었다. 이 책은 버지니아 울프의 찐 팬을 위한 책이 아닐까 싶다.

  버지니아 울프의 문장들을 한 권에 담아 그녀의 작품 세계를 음미하기 위해 만든 듯한 이 작품은 리텍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버지니아 울프는 여러 면으로 소개가 된다. 하나는 페미니즘으로 또 하나는 우울증이다. 그녀의 '자기만의 방'은 페미니즘의 교과서 같은 작품으로 독립적인 여성을 위한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그녀의 우울증 역시 널리 알려져 있다. 남편의 적극적인 지지와 사랑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결국 자살하고 만다. 그래서 그녀의 문장과 행동은 심리학 서적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짧은 문장으로 만나본 버지니아 울프의 글은 꽤나 섬세해서 기대하게 만들었지만 꽤나 난해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우울증이 그녀를 평가절하하는 요인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나 개인적으로는 그녀의 작품을 페미니즘에 너무 가두고 있지 않냐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러 책을 얇은 한 권의 책으로 묶었고 게다가 원문까지 넣는 바람에 그 내용은 절반으로 줄어든다. 그리고 그녀의 글에는 뭔가 긴 호흡이 필요한 듯했고 한 문단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 뒤로 몇 장을 읽어야 할 듯했다. 결국 엮은이가 전달하고 싶은 내용은 버지니아 울프의 글과 의미를 이미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되어 버리게 된다. 그녀의 문장을 처음 접하는 나에게는 좋을까 하는 순간에 흥을 잃는 순간이 너무 많았다.

  결국 그녀의 대표작 몇 개를 읽어봐야겠다. 비슷한 분위기의 다자이 오사무의 경우에는 문장 자체에서 말하고 싶은 것을 알아챌 수 있었는데, 그래서 이 책은 개인적으로 조금 아쉽다. 물론 나를 버지니아 울프로 좀 더 빨리 가게 만들긴 했다. 그런 점에서는 역할을 한 듯하기도 하다. 아마 몇 권의 책을 읽고 다시 읽으면 분명 좋아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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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레리뇽 고원 - 선함의 뿌리를 찾아서
매기 팩슨 지음, 김하현 옮김 / 생각의힘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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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의 역사는 대부분 '전쟁의 역사'다. 야만의 역사는 기록하기 쉽다. 생명은 숫자로 치환되고 눈으로 보여줄 수 있는 기록 들이 많아. '선'에 대한 연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에 대한 연구는 눈으로 표현하기 어렵다. 그리고 변함없는 선을 얘기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작가는 인간에게서 순수한 선의 덩어리를 찾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 연구가 필요함을 얘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인간의 악함은 그만 얘기해도 될 정도로 많으니까.

  2차 대전, 홀로코스트와 같은 상황에서 발생한 '집단적 선행'이라는 낯선 행위로부터 선의 결정을 찾으려 했던 저자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이 책은 생각의 힘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위급한 상황에 닥치면 인간의 본색을 드러낸다라고 한다. 생존의 문제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고난 속에서 자신을 컨트롤할 수 있음을 우리는 고고한 사람 혹은 성인이라고 얘기한다. 작가는 그 모든 것에 사랑이 있음을 얘기한다.

  2차 대전 나치를 피해온 수천 난민을 품은 마을 비바레리뇽 르 상봉 마을. 그리고 그곳에서 어린이를 지킨 귀족 청년 다니엘 트로트메. 전쟁의 역사를 더 이상 연구하고 싶지 않았던 인류학자가 좇았던 '선의 역사'. 아무리 종교적이라고 해도 아무리 과학적이라고 해도 '아름다움'을 잃어버린 곳에서 살아가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우리에겐 아름다움이 필요하다. 그것은 우리 모든 것을 바꾼다. 어린 왕자가 행성에 두고 온 장미처럼 어딘가에 있을 아름다움은 세상을 눈부시게 한다. 작은 것은 무한의 힘을 가진다.

  집단은 함께 기억한다. 오늘을 위해 함께 기억한다. 내가 그러고 싶거나 다른 사람이 그래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종종 전체주의에 악용되는 것처럼 타락되기도 하지만 사회의 기억은 중요하다. 신경 쓰이는 것이 많을수록 과학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집단적 선'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과학이 아니다. 과학의 입장에서는 너무 복잡하다. 하지만 우린 너무 싶게 답을 알고 있다. 그것은 사랑일 수밖에 없다.

  선을 행한 사람들은 상대를 인간이라는 사실 이외에 것에 신경을 쓰지 않은 듯했다. 사회는 똑똑한 어른들이 바꿔나가는 것이 아니라 아무 편견 없는, 제멋대로 구는 아이들이다. 그들이 없이 어떻게 새로운 세상을 꿈꿀까?

  종족이나 인종. 그리고 국가. 그리고 문화. 인간은 자신이 살아온 테두리에 의해 만들어진다. AI가 순식간에 번역을 해내는 시대가 되더라도. 한 문화의 언어는 다른 문화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짧은 단어로 번역을 하면 오해가 생긴다. 말이 많아진다는 건 서로가 이해할 준비가 되었다는 거다. 자기의 것을 완벽하게 설명해 내기 위함이다. 열린 마음이다. 그것은 변화의 시작이다. 

  모두가 합리적인 것만을 얘기하는 동안 비합리적 선택을 할 수 있는 것. 그건 꽤나 신선하면서도 아름다운 건지도 모른다. 세상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많은 이야기는 가까이 보면 비합리적인 행동들이다. 작가가 찾아 떠나는 다니엘의 이야기도 그런 이해할 수 없음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행동은 그의 언어가 아닌 우리의 언어로 표현했기에 오해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의 이해할 수 없을 행동에는 그를 만든 언어가 존재했을 것이다.

  비바레리뇽 고원은 현재도 유럽 전역의 난민들을 품고 있다. 고원은 지금도 많은 아이들을 품고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 끔찍한 전쟁의 기억을 지워내고 있다. 전쟁을 숫자놀음으로 바꾸는 것이 과학이라면 과학을 신뢰하더라도 신뢰하지 못한다고 저자는 얘기한다. 어느 순간에는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사랑이 주는 진실을 믿어야 한다.

  인류학자인지 인문학자인지 구별이 가지 않을 정도의 서정적인 문체와 어느 소중한 것을 찾아 나서는 저자의 간절함이 묻어난다. 여행을 하는 동안 새로운 생각이 덮치고 보통의 인간이라면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들이 일어날 때마다 감동을 받는다. 인간은 어쩔 수 없는 것을 알면서도 감동적인 장면을 만나길 기대하는 동물이니까. 인간에게는 아름다움이 필요하다.

  장면전환과 생각이 파고드는 문장이 많아 쉽게 잃히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한 문장 한 문장에 그리움이 녹아 있는 느낌이다. 뭐라고 딱 정리할 수 없지만 머릿속에 잔상이 남아 있다. 이 또한 비합리적인 경험일까. 책 속의 메시지가 뚜렷하게 남지 않지만 어떤 아름다움을 만났었던 희미한 추억이 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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