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하지 않는다 (눈꽃 에디션)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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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공 경하의 꿈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왠지 모르게 슬픔이 있었다. 주말에 보았던 부모님의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음인지 책장을 넘길 때마다 그 감정은 나를 뒤쫓고 있었다. 그리고 친구 인선의 전화와 손가락이 절단되어 봉합 후 치료하는 과정의 세밀한 묘사로 나도 모르게 섬뜩함을 느꼈다.


  친구 인선으로부터 제주도 집에 홀로 있을 새에게 모이를 주는 일을 부탁을 받는다. 그것은 새를 살리는 일이라고 했다. 경하는 평소 부탁을 잘하지 않는 인선이었기에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제주로 나서게 된다. 절망으로 향하는 행운인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비행기를 탔지만 괴로운 비행이었고 제주도는 폭설이었지만 경하는 또 아슬아슬하게 마지막 버스를 탈 수 있게 된다. 인선의 집은 한 번 밖에 가보지 못했어서 길을 헤매다 얼어 죽을 수도 있는 노릇이었지만 또 그렇게 도착을 하게 된다.


  인선의 집에 도착한 직후 경하는 제주 민간인 학살과 얽힌 이야기와 마주하게 된다. 다큐멘터리를 위해 모아둔 인선의 수많은 자료들이 마치 인선이 이끌 듯 경하에게 전하는 전개는 병실에서 힘겨워하던 인선의 혼이 찾아와 경하에게 스며들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제주 민간인 학살 사건을 자연스럽게 독자에게 이야기해준다.


  제주 4·3 사건은 1947~1948년에 발생한 일이며 제주도에서 일어난 무력충돌에 대한 강경 진압에 의해 발생되었다. 민간인 희생자가 최대 3만 명까지도 추정될 정도로 엄청난 사건이었지만 군부 정권이 끝나고 나서야 진상규명에 대한 특별법이 통과되었고 2019년에 이르러서야 공소기각과 함께 무죄를 인정받게 되었다. 70년 만의 일이다.


  그 긴 시간의 유족들의 아픔을 인선의 손가락으로 표현하고 있다. 제주 4·3 사건은 여전히 아픈 사건이다. 잘린 손가락을 접합하지 않은 채 봉합하면 금방은 아프지 않겠지만 그 고통은 평생을 가게 된다. 반대로 접합하려면 피가 굳지 않게 끊임없이 주사를 놓고 소독을 해야 한다.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3분에 한 번씩 해야 할 정도로 자주 해줘야 한다. 제주 4·3 사건의 아픔을 제대로 치유하기 위해서는 아픈 일이지만 피가 돌 수 있도록 더 많이 더 자주 이 일에 대해서 나누고 공감해야 한다는 것을 작가는 얘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인선이 살려달라고 했던 <새>는 제주 4·3으로 인해 희생된 사람들이었다. 경하가 인선의 집에 도착했을 때 새는 이미 죽어 있었다. 경하는 새를 잘 묻어두었지만 이내 인선의 혼과 함께 인선의 집에서 살아났다. 그 사실은 우리가 과거의 사실을 제대로 마주할 자세를 가진다면 그들은 죽었지만 그들과 진정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작품은 인선이 이끄는 그 시절의 기억 속에 스며들 수 있도록 폭설이 쏟아지는 제주를 선택했다. 눈은 세상을 뒤덮어 본 적 없는 세상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눈이라는 것 자체도 지상에서 날아오른 먼지에 물방울들이 붙어 만들어지는 것으로 끊임없이 없는 순환하는 물이라는 존재와 제주의 표면에서 날아오른 무언가와의 결합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게 작가는 현재와 과거를 이어준다.


  우리가 아픈 과거를 마주하는 일은 그렇게 쉽지 않다. 제주의 일이 인선의 입장에서는 잘려나간 손가락처럼 아픈 일이지만 경하의 입장에서는 귀찮은 일이지만 친한 친구가 부탁해서 겨우 움직일만한 일이며 그곳에서 도착하기까지 너무 많은 힘겨움이 있다. 아픈 과거를 들추어 마주하는 것은 경하가 인선의 집에 도착하기까지 만나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일과 같다. 그 여정에 함께 한 '운'처럼 우리에게도 '운'이 필요할지도 모를 일이지만 혼자가 아닌 많은 사람의 '운'이 더해져 그 마음이 널리 퍼진다면 과거가 잊히는 것이 두렵지 않을 것이다. 그야말로 작별하지 않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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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
데니스 존슨 외 지음, 파리 리뷰 엮음, 이주혜 옮김 / 다른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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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 리뷰>는 타임지로부터 '세상에서 가장 강한 문학잡지'라는 격찬을 받은 미국의 문학 계간지다. 프랑스 파리에서 창간하여 그 간 수백 명의 작가가 글을 투고하였다. 대단한 작가들의 단편들의 모음이었지만 나에게는 조금 어려웠다. 글이 눈에 잘 들지 않았고 머릿속에 정리가 잘 안되었던 것 같다. 바쁘게 읽어서 더 그런 것 같다.


  다채로운 15편의 단편들을 모아 만든 이 책은 다른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단편 소설은 어때야 하는지 도입에서 설명을 하며 들어간다. 단편은 그냥 짧기만 한 글은 아니다. 글에서 계속 들어냄으로써 정말 필요한 단어들로만 이뤄지게 만들어야 한다. 책에서는 단편에서 남은 문장은 사라진 모든 문장들을 함축하고 있어야 한다고까지 얘기한다. 단편은 쓰는 사람들도 힘들지만 읽는 사람에게도 그렇게 쉬운 장르는 아닌 듯하다.


  단편은 금방 읽어낼 수 있을 것 같지만 이 책에 실려 있는 단편을 보자면 한편 한편을 장편을 읽을만한 수준의 시간을 할애해야 할 것 같다. 다행스럽게 매 글 뒤에는 글에 대한 감상과 평가가 함께 기재되어 있어서 읽어보면서 많은 도움이 되었지만 정말 이렇게까지나 느낄 수 있을까라는 수준의 차이를 실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런 글을 전문적으로 읽는 사람임에도 3번을 읽었을 때 비로소 그 느낌이 뚜렷해졌다고 하니 10쪽에서 30쪽 정도의 단편이지만 300페이지의 글을 읽을 만큼의 노고가 필요한 듯하다.


  글 하나하나는 메시지를 가지고 이야기를 전개한다.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 건지 어렴풋이 알 것 같은 글들도 있었지만 스토리가 지나가고 나서도 무엇을 읽었는지 감지 잘 잡히지 않기도 했다. 아무래도 곱씹고 곱씹는 작업을 하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다.


  이 책은 즐겁게 읽는다는 느낌보다는 공부하며 읽는다는 느낌이 강했다. 글을 적을 때 어떻게 하면 군더더기 없이 적어낼 것인가. 어떤 묘사로 긴 글을 대체할 것인가에 대한 해법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인문학에 대해 깊이 있게 즐기는 사람에게는 수학 문제를 푸는 듯한 즐거움이 있을 것 같으나 나처럼 가볍게 즐기는 사람에게는 여전히 어려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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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허리 교과서 - 통증을 없애고 재발과 만성을 막는 개인 맞춤형 솔루션
안병택 지음 / 블루무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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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성인의 80%가 허리 통증을 가지고 산다고 한다. 허리를 소중히 하라는 말은 우스개 소리처럼 하지만 신체를 지지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이기도 하다. 의학이 많이 발전하여 이제는 수술보다는 적응 치료, 생활 치료를 더 많이 하는 편이지만 우리는 여전히 치료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편이다. 자신의 아픔을 널리 알리고 생활을 개선하지 않고는 쉬이 치료하기 어려운 것이 또 허리 통증이다.


  허리 통증에 대해서 진심인 저자가 작성한 이 책은 블루무스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사회인, 그중에서 중년의 나이가 되면 다들 '아이고, 허리야'라는 말을 자기도 모르게 내뱉어 봤을 것이다. 허리 통증은 인간이 직립보행을 하고부터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숙명과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대부분 질병이 그러하듯 잘 준비하고 치료하면 또 많이 괜찮아진다. 특히 관절과 같은 부분은 생활 습관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 잘 알아 두어야 한다. 건강한 삶을 지키기 위해서 저자는 꽤나 진지하게 책을 만들었다.


  아프면 알리세요라고 시작하는 이 책은 허리 통증이 혼자만의 노력으로 치료하기 힘들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려 준다. 집안일을 줄여야 할 수도 있고 회사에서 업무 조정이나 도움을 받아야 할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약해 보인다고 생각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그 상태로 더 악화되면 모두가 힘들어지는 상황에 빠지고 마니까 말이다. 그다음으로 좋았던 것은 저자가 <세컨드 오피니언>을 권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컨드 오피니언은 진단받은 병원과 다른 병원의 전문의로부터 추가 소견을 듣는 것이다. 허리 통증은 어느 한 분야가 아니라 여러 분야에 걸쳐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 진료과목의 전문의에게 소견을 물어보는 것을 권했다. 특히 수술을 해야 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최근에는 수술을 최대한 지양하는 방향으로 치료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허리 통증은 우리가 알고 있듯 보통은 잘못된 자세, 무리한 운동이나 업무에 의해서 발생하는 줄만 알았다. 하지만 보다 광범위한 원인이 있었다. 호흡법에 따라 횡격막이 영향을 줄 수도 있었고 여성의 경우 호르몬의 변화로 자궁 수축이 척추를 자극하기도 한다고 했다. 그래서 생리 때 허리가 아프다는 것이다. 게다가 소화장애가 있으면 복부에 가스가 차 척추를 압박할 수 있다고 했다. 스트레스는 신체의 항상성을 깨트려 호르몬 불균형을 가져와 척추를 약하게 만든다고도 했다. 정말 많은 원인들이 척추를 괴롭히고 있었다. 허리는 나이가 들면 아픈 건 줄 알았는데 청소년들 중에서도 허리가 아픈 아이들이 많다는 걸 보니 참 안타까웠다.


  책의 중간 부분을 지나면 허리 통증에 좋은 운동들을 소개하고 있다. 삽화까지 넣어서 따라 하기 편하도록 신경 써 놓았다. 모두 컬러로 인쇄되어 있다. 허리에 가장 안 좋은 자세는 움직이지 않는 것이라 했다. 여러 좋은 운동도 있지만 수시로 자세를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아프다고 누워만 있다가는 몸이 그 상태에 적응해서 나중에는 움직이려면 더 아프게 되고 결국 만성으로 간다는 것이다. 심한 상태가 아니라면 통증을 느껴지는 쪽으로 계속해서 시도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리고 치료에 가장 중요한 것은 통증에 대해서 잘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쓰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통증에 대해 두려움이 생기면 근육이 긴장을 해서 치료에 좋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 또한 <조건 반사>가 되어 버려서 심리적 통증인지 정말로 아픈 것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되어 치료의 방향을 잡는데 어렵다는 것이었다.


  13년간 현장에서 진료하고 치료하며 쌓은 노하우를 책에 고스란히 담아 두었다. 허리 통증에 관심 있는 사람이 읽어보면 도움이 될듯하다. 준전문서적 수준으로 적어 두었다. 인체 해부도를 넣어 근육의 위치와 동작 원리를 들어가며 통증이 생기는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너무 많은 걸 적어두어 결국엔 전문가를 찾아가고 싶은 생각도 살짝 들게 만들었다. (이건 진담 반 농담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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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은 아이는 외로운 어른이 된다 -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나 관계를 치유하는 시간
황즈잉 지음, 진실희 옮김 / 더퀘스트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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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심리적 차이는 생물학적 요소보다 사회와 문화에 의해서 차이가 생긴다고 주장한 카렌 호나이의 이론처럼 성인의 반복되는 심리적 현상이 어린 시절의 부모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다. 스스로 알아채지 못한 채 같은 굴레에서 괴로워하고 있다면 자신의 과거를 치유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그녀의 학문의 프로이트보다는 아들러에 닮아 있기도 하다. <가족이라는 병>, <나는 내가 아픈 줄도 모르고>에서 나는 꽤 혹평을 했는데 이 책은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개인의 사사로움이 아니라 사례를 들어 분류해 놓은 점이 아주 좋았다.


  과거의 생존 전략은 현재 삶을 살아가는 큰 자산이지만 그것이 맞지 않을 때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대인 과정 이론을 바탕으로 한 이 책은 더퀘스트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부모는 아이를 키울 책임이 있다. 그것도 잘 키워야 한다. 모든 인간은 사회로부터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주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내가 아픈 것은 반은 사회의 책임이고 반은 개인의 책임이다. 이 말은 알뜰신잡에서 유시민 작가가 말한 행복에 대한 얘기와 비슷했다. 개인의 행복은 사회만의 문제도 아니고 불가에서 말하는 일체유심조도 아닐 것이다. 그 둘 사이 어딘가 즈음에 있을 것이다라고 유시민 작가는 얘기했는데 인간은 '타자 공헌' 즉, 자신에 남에게 영향을 미칠 때 비로소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은 30가지의 사례를 들어서 인간의 행동에 대해 3가지로 분류해서 설명을 한다. 첫 번째는 아이가 상처를 받았을 때 어떤 어른이 되는지, 두 번째는 외로운 어른은 어릴 때 어떤 상처를 받고 자랐는지, 마지막으로 부부는 무엇으로 살고 왜 멀어지는가에 대해 얘기한다.


  아이는 어쩔 수 없이 부모에게 귀속된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자아조차 인지하지 못했을 때부터 부모와 함께 하여 빠르면 경제 독립을 이룰 때 즈음 아니면 평생을 귀속된 삶을 살기도 한다. 그러면서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다. 부모에게서 받은 영향이 다시 자식에게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는 자신을 더 잘 알아가야 하고 육아에 대해서 더 많이 공부하려고 하게 된다.


  아이는 부모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했다. 결핍은 누구나 채우고 싶어 한다. 잘해주는 것만이 최선이 아니다. 아이를 비난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것 못지않게 나쁜 것이 부모가 해결사가 되어 주는 것이다. 그것은 아이에게 독립심과 자주성의 결핍을 가져다준다. 육아는 어떻게 보면 유리구슬을 다루듯 소중하고 섬세해야 한다. 하지만 부모인 우리들도 어딘가 결핍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완벽하게 해내기는 어렵다. 특히 아이에게서 내가 싫어하는 모습을 보게 되다면 분노 조절 장애가 된 듯 폭발하는 자신을 만나기도 한다.


  요즘 두서없이 발행되는 책들이 많아서 재탕인 경우가 많다. 기대하지 않고 펼쳤는데 생각보다 많이 괜찮은 책이었다. 서두에서도 얘기했듯이 자기의 무의식적인 반응과 반복되지만 이해되지 않는 패턴이 있는 어른들이 꼭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더불어 아이를 키우는 양육자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듯하다. 자신의 묻어 두었던 결핍을 똑바로 마주하지 않으면 자신이 판 구덩이에서 헤어 나올 수 없을 것이다.


  결핍이 더 많이 생길 수밖에 없는 사회다.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키우다 보면 아이는 치유할 필요가 없는 어른으로 키워낼 수 있을 거다. 나 자신도 잘못하는 점이 많지만 꾸준히 고민하고 고치다 보면 꽤 괜찮은 어른이 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가지고 노력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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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케
매들린 밀러 지음, 이은선 옮김 / 이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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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접한 건 김겨울 작가의 유튜브 채널에서다. 그리스 로마 신화 중에서 비중이 낮은 한 캐릭터를 가져와 집필하였다는 점이 독특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법한 대단한 존재가 아니었다. 오디세이아에서 오디세우스의 발목을 잡은 하급 신이며 마녀였다. 작가는 왜 그녀에게 끌렸는지는 책을 읽어보며 알 수 있었다. 너무 재밌는 책이었다.


조연 중에서도 아직 작은 부분을 차지했던 존재 키르케를 재해석한 이 책은 이봄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키르케는 님프라는 종족이었으며 신들 사이에서는 어떻게 해도 되는 그저 순응을 강제당하는 존재들 중에 하나였다. 그녀는 태양의 신 헬리오스의 딸이며 바다의 신 오케아노스의 외손녀였기 때문에 조금은 다른 대우를 받았지만 신보단 인간을 닮은 덕에 많은 주위로부터 외면을 받으며 산다. 님프에게 아름다움이 없다는 것은 능력이 없다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녀의 삶을 뒤 바꾼 사건은 인간을 사랑하면서부터다. 그를 '신'으로 만들어주며 자신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깨닫게 된다. 신들은 하급 여신인 님프에게 그런 능력이 있을 거라고 믿지 않지만 키르케의 동생이 마법을 선보이자 헬리오스는 키르케를 제물로 삼아 영구히 유배를 가게 된다. 그곳에서 그녀는 마녀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 아무도 오지 않는다는 것. 아무도 올 일이 없다는 것. 그 자체가 두려운 사실이었지만 공포로 얼룩진 긴 밤을 보내고 났더니

모든 게 사소하고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가장 못난 겁쟁이의 면모가 진땀과 함께 날아갔다. 아찔한 번뜩임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키르케가 변모하는 결정적인 장면이었다. 자신에게는 선천적으로 가진 힘은 없지만 게으른 신들이 가지지 못한 끈질김이 있었고 마법이라는 것은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힘이었다. 섬에서 재료를 구하고 마법을 익힌다. 가끔씩 표류해 오는 사람들을 구해주기도 하고 은혜를 모르고 덤비는 사라들은 모두 돼지로 만들어 버렸다. 하지만 오디세우스는 달랐고 그는 그녀에게 호감을 이끌어 낸다. 그렇게 오디세우스가 발목이 잡힌 에피소드와 겹치게 된다. 작가는 둘을 이해와 사랑의 관점에서 그려 나갔다. 그이 아이를 놓고 아테나에게로부터 아이를 지키는 스토리까지 쭉 이어졌다.


오디세우스의 아들이 아테나의 제안을 거절하고 대신 키르케의 아들이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녀는 아들을 보내고 나서 자신이 걸어온 인생을 정리하려고 한다.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던 아버지 헬리오스를 불러 협박을 하고 유배에서 벗어나 자신이 괴물로 만든 스킬라의 명을 정리해 준다.


📖 너는 언제나 내 자식들 중에 못난 녀석이었지.내 이름에 먹칠하는 일이 없도록 해라.

📖 저한테 더 좋은 생각이 있는데요. 그냥 제 마음대로 살 테니까 앞으로 자식을 꼽을 때 저는 빼주세요.


천년의 세월을 사는 신이었지만 인생의 후반부에 이르러서 비로소 아버지 헬리오스를 마주할 용기가 생겼다. 스스로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는 의지와 용기가 생겼다. 가장 미천한 여신인 님프로 태어나 자신이 가진 다른 능력을 알아채고 성장해 가는 키르케라는 여신의 일대기를 유배를 끝내고 이곳저곳을 여행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물론 평범하지만 따뜻한 행복과 함께.


이 작품은 최초의 '마녀'로 기록된 키르케를 주인공으로 삼음으로 페미니즘 도서로 구분하는 사람들도 있다. 마녀라는 것이 어두운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지만 어떻게 보면 능력 있는 여성을 대변할 수 있다. 능력 없이 수동적인 삶을 사는 님프 키르케에서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가게 되는 마녀 키르케로의 변화에서 그런 점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존재가 성장하는 그것 자체로도 충분히 훌륭했기 때문에 문장이 너무 매끄러웠기 때문에 너무 즐겁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이 책을 통해서 잠깐 등장하는 조연도 이런 멋진 스토리를 가질 수 있구나라고 감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스토리의 끊김 없이 너무 매끄럽게 진행되었기 때문에 500p의 양이 그렇게 많다고 느껴지지도 않았다. 신화의 요소를 비틀지 않으면서도 이렇게 완벽하게 집필해낸 작가의 대단함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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