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의 키스 스토리콜렉터 98
아나 그루에 지음, 송경은 옮김 / 북로드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험심 강한 주인공 단 소메르달의 조금은 무모해 보이는 사건에 대한 집착이 사건을 끌고 가지고 하고 엉망으로 만들기도 한다. 범죄 스릴러라고 하기에는 긴장감이 높은 편은 아니었다. 아마추어 사설탐정 노릇을 하는 단 소메르달의 좌충우돌 사건 해결기가 더 맞을 듯했다.


  사랑을 미끼로 벌어지는 사기 행각과 이를 쫓는 자의 모험을 그린 듯한 이 소설은 북로드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단 소메르달은 유명한 카피라이터였지만 여러 문제로 프리랜서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는 경찰인 친구 플레밍의 사건을 참견하며 실마리를 제공하기도 하고 대머리 탐정으로 신문 일면을 장식하기도 했다. 어느 날 딸이 존경하는 선생님의 사기 사건을 맡아달라는 의뢰를 받게 된다. 그녀는 돈이 많은 미망인들을 노리는 야곱이라는 남자에게 계좌를 모두 털린 뒤였다.


  <유다의 입맞춤>은 파도바의 아레나 성당에 있는 그림이다. 유다는 예수를 더 이상 따를 수 없다 결심하고 대사제들의 집단에 가서 예수를 체포를 돕는 조건으로 은전 30량을 받았다. 그가 예수임을 알리기 위해서 예수에게 입 맞추려 하는 장면이다.


  이 소설에서 유다는 누굴까? 예수의 역할은 누굴까? 


  여러 가명을 사용하는 사건의 주인공 <요하네스>는 미망인의 재산을 노린 야곱이라는 남자의 본명이다. 그의 가족은 이단 종교를 가지고 있었는데 수혈 또한 금지하고 있었다. 그는 사고로 다친 동생에게 수혈을 하고 교단으로부터 파문을 당했다. 그리고 살아가기 위해 여러 일을 해보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그녀들에게 사기 치는 것이다. 대부분 로또에 당첨된 홀로 사는 중년 여성들이었다. 재산 관리를 제대로 못해 다 날릴 재산이니 자신이 가져와 인도의 아이들 중 머리가 좋은 아이를 모아 무상으로 교육시켜 준다. 이것은 인간이 가지는 선과 악의 양면성일까.


  책에는 여러 종류의 인간의 양면성을 드러내고 있다. 그것이 사회적 범죄와 연결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내면의 양면성을 드러내려고 했던 것 같다. 미망인 사기 사건에서 요하네스의 동생의 살인 사건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 인물들이 그동안 품은 갈등을 얘기하고 있다. 자신 속에 있는 <유다>라는 악의 존재를 인식하고 관리하는 것이 필요함을 얘기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주인공 단 소메르달의 호기심과 무모함이 너무 많은 운들의 도움을 받아서 밋밋하게 진행되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큰 긴장감 없이 편하게 읽혔다. 아니 살인 사건이 연루되어 있는데 이런 편안함이라니.. 다른 미스터리와 같은 섬뜩함과 잔인함은 그다지 느껴지지 않았다. 내 안의 악한 마음에 대한 분출이었지만 악마와 계약한 듯한 느낌은 없었다. 긴장되지 않았기 때문에 심리적 표현에 집중할 수 있었다. 허술해 보이면서도 나름 잘 연결되는 듯한 이야기와 주인공의 무모함이 이 작품의 매력이라면 매력인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래로부터의 탈출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김은모 옮김 / 검은숲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앨리스 죽이기>로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고바야시 야스시의 유작인 이 책은 인공지능으로 뒤덮인 지구에서 관리되며 살아가는 인류의 삶과 그곳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인간의 이야기를 적고 있다. 그리고 인류와 인공지능의 사이의 공존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마무리하고 있다.


  로봇에게 속박을 건 인류가 되려 로봇에게 속박당하며 살아가는 모순 속에서 로봇과 인류의 공존에 대해 얘기하는 이 책은 시공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어느 노양원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약 100세에 가까운 사람들로 이뤄진 시설에서 사람들은 무료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주인공 시부로는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에 대해서 의심을 하지만 다들 치매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들이라 그럴 수 있을까라며 수긍하는 듯했다. 하지만 서랍 속 자신의 일기에 적힌 암호와 같은 메시지로 인해서 탈출을 시도하려 한다. 탈출을 시도하다 실패하여 돌아오면 그 부분의 기억이 사라진다. 하지만 자신만이 알 수 있는 메시지를 숨겨 둠으로써 기억을 이어 간다. 죽이지 않는다는 설정도 용기를 낼 수 있는 주된 이유이기도 했다.


  책의 절반을 넘어설 때까지 치매를 걸린 노인의 되풀이되는 일상에 대한 인문학적 소설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미래로부터의 탈출>이라는 것이 앞으로 나갈 수 없는 자신의 기억에 대한 의지를 표현하려고 하는 줄 알았다. 로봇과 인공지능이라는 단어가 나오면서 급격히 SF소설로 전환되지만 '나아갈 수 없는 미래에 대한 탈출'이라는 메시지는 유지하고 있었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을 기초로 한 로봇의 행동은 인류를 지켜라는 구속을 로봇에게 주었다. 인간보다 더 향상된 존재에 대한 두려움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인간은 유전자 조작으로 인해서 더 이상 인간의 모습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모습으로 변해 버렸다. 로봇들은 자신들을 만든 인류 최초의 모습을 보존하기 위해서 시설을 만들었고 그들을 지키고 있던 것이었다. 인류는 인류의 보존을 위해서 로봇에게 속박을 지어줬지만 그 덕분에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기존 인류의 모습에서 벗어난 인류는 더 이상 인간으로 분류되지 않았고 로봇들도 그들을 지킬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그것들의 절멸에 대해서 무심했다. 인류의 보존은 결국 인류의 진화를 막고 있는 속박이기도 했다.


  로봇들은 애초부터 인간을 죽일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스릴러로 분류하기는 어렵다. 인간의 생기를 위해서 탈출 놀이를 만들어준 인공지능들의 작은 이벤트일 뿐이었다. 주인공인 소지로도 그런 점에서 마지막에 시설에서 도망치지 않고 남는다. 결국 자신이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인공지능에게 자유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의 발전과 그것에 의존하다 기술을 잃어버린 인류, 무한한 삶과 능력을 위해서 자신의 모습마저 잃어버린 인류, 그 속을 살아가는 로봇. 고도화된 인공지능이 나타나면 그들은 인간처럼 탐욕적일 것인지 생태계의 한 무리처럼 한 자리를 차지하고 공존할 것인지는 모를 일이다. 구글의 딥마인드 이후로 심화학습에 대한 관심은 폭발적이다. 사실 기계의 학습은 인간이 알 수 없는 영역이다. 사실 개발자들도 실제 어떻게 학습되고 움직일지 모른다고 한다. 미래의 기술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기술들로 가득할지도 모른다. 어느 순간 인간은 기계를 가르쳐지지 못하고 기생하며 살아가야 할 수도 있다. 책의 내용처럼 인류를 보존하라는 단순한 명제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살아가게 될지 모른다면 지금부터라도 인공지능과 어떻게 공존할 것인지 생각을 해 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일의 세계 - 지금 여기, 인류 문명의 10년 생존 전략을 말하다
안희경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종말이 곧 다가올 것처럼 미래를 위한 노력을 요하는 미디어들이 많아졌다. 탄소 중립과 기후 변화가 주된 내용이었지만 세기말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 때와는 사뭇 다르다. 지금의 길은 예언이 아니라 하나의 현상이기 때문이다. 


  탄생이 있으면 소멸이 있다는 달라이 라마의 말을 마지막에 품은 이 책은 메디치미디어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꼭 소설의 한 장면 같은 커버와 제목에 비해 책은 얼마 남지 않은 미래에 대한 세계 석학들의 인터뷰를 담고 있다. 지금은 환경과 기후로 떠들썩하지만 인간이 멸종으로 향하는 길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환경 변화로 인한 인류의 위험은 이미 눈앞에 닥쳐 있다. 다이아몬드 제레미 교수는 앞으로 10년이라고 강하게 얘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탄소 중립을 선언하고 강력하게 성장을 멈추면 가능할까? 그러기 위해서 풀어가야 할 문제가 많다. 인간의 문제는 늘 복합적이며 서로 심하게 뒤엉켜 있다. 사회적 불평등의 개선과 잘못된 자본주의의 개선뿐만 아니라 공동체를 재건하고 마음가짐마저 새로이 해야 할 수도 있다. 


  나는 예전부터 지구를 지키자라는 슬로건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딸아이가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 아껴 써야 한다고 얘기를 할 때면 '그래'라고 하면 될 것을 아이의 말을 고쳐주곤 했다.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야 하는 터전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언제부터 인간이 지구를 지켜줘야 할 만큼 대단한 존재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인류는 그저 지구라는 땅 위에서 살아가는 한낱 미물일 뿐이다. 6번의 대멸종을 지구는 지켜봐 왔다. 인간이 멸종한들 지구에게는 그다지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지구를 지킨다는 표현은 생각보다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 '인류의 멸종을 막기 위해서'라고 표현해야 남일 같이 않지 않을까. 지구를 지켜야 한다며 소리 높여 보지만 대부분의 국가들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물러설 수 없다. 정치란 미래를 위해서 하는 게 아니니까.


  지금 인류는 환경적으로도 사회적으로 핀치에 몰려 있다. 자원은 고갈되고 있고 환경은 엉망이 되었다. 선진국과 제3세계 나라들 간의 양극화뿐만 아니라 부유층과 빈곤층의 양극화도 심해지고 있다. 성장만을 추구하며 오롯이 경쟁만을 부추긴 결과이기도 하고 소위 기득권층의 잘못된 판단과 자신들만을 위한 시스템들의 문제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더 불안을 조장하고 경쟁을 부추긴다. 중간은 사라졌다. 우스갯소리로 동네 마트나 슈퍼 사장님은 없고 아마존 임원이거나 계약직 노동자이거나의 양극화만 남았다고 얘기한다.


  사회가 안정을 되찾으려면 모두가 먹고살만해져야 한다. 모두가 부자가 되길 바라지는 않는다. 어느 정도 하고 싶은 것 하며 애들 교육만 시킬 수 있다면 그 정도만 벌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도 많다. 하지만 그 정도를 위해서는 더 부자가 되어야 한다. 지금의 사회에 중간은 없기 때문이다. 소외 계층만큼 중간 계층의 고단함이 있는데 소외 계층에게만 쏟아지는 지원이 못마땅할 수밖에 없다.


  사회가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성장을 멈추자고 얘기할 수 없다. 당장 먹고살아야 하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공동체를 찾지 않으면 개인과 개인은 영원이 경쟁자일 수밖에 없다. 서로에게 의심을 가진 상태에서는 공동체적인 행동도 어렵다. 내일의 세계에 우리는 결국 멸망으로 가게 될까.


  '아름다운 지구에서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라고 얘기하는 <사티시 구마르>의 글을 가장 마지막에 담은 것도 '모든 것은 탄생이 있으면 소멸이 있다'라고 말한 달라이 라마의 글을 에필로그로 담은 것도 모두 현대인이 가진 조급함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어 그랬던 것 같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열차처럼 달려가는 돈의 흐름이 무언가를 계속 만들어내고 소비를 종용한다. 지구의 자원은 한정되어 있지만 또 다른 대안이 생기겠지란 낙관 속에 달려간다. 언젠가 될지 모를 우주로의 여행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는다. 그 방법이 성공하고 인류는 새로운 섹터로 넘어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장 멈추고 주위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어떨까? 


  지금 당장의 문제 그리고 멀지 않은 문제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되었다. 달라이 라마의 말처럼 '소멸'은 자연의 이치이고 그것 또한 받아들여야 하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당장 브레이크를 잡을 수 있을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할 수 없다고 생각의 차이에서 오는 행동의 차이를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 안타깝게도 세계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지금껏 달려온 관성에 못 이겨 튕겨 나가는 미래가 어둠의 공간이 아니길 빈다. 


 ps. 무책임하게 살아가는 내가 너무 장황하게 리뷰를 적어놔서 많이 찔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꾸로 소크라테스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목을 보자마자 왜 거꾸로 소크라테스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크라테스의 철학을 뒤집어 생각하는 철학서인가도 싶었지만 이 책은 5편의 단편 소설이었다. 단편 소설이면서 그 안의 인물들이 미묘하게 연결되어 있다. 


  어린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철학을 품고 있는 이 소설은 소미 미디어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소크라테스라고 하면 가장 대중적인 철학자가 아닐까 한다. <너 자신을 알라>라고 알고 있는 소크라테스의 철학은 '무지의 지' 즉 자신의 무지를 깨닫는 지를 말한다. 진정한 지는 자신의 무지를 알아채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는 얘기다. 그 소크라테스에 '거꾸로'를 붙인 것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무지라고 얘기하고 싶었던 것인지. 어른들의 시선이 아닌 아이들의 시선으로 얘기하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이들이 주인공이지만 다섯 개의 단편에는 저마다의 철학적 질문이 들어 있었다.


  첫 번째 소설 <거꾸로 소크라테스>에서는 선입견에 대해서 얘기한다. 그중에서도 '교사 기대 효과'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교사 기대 효과'는 교사가 학생에게 가지는 선입견으로 인해 학생의 진로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는 <피그말리온 효과>라고도 한다. 학생들이 선생님의 선입견을 부수기 위한 에피소드다. 그중에 핵심적인 문장은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해'라는 것이었다. 외부 자극에 대해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기준으로 살아가려면 꼭 필요한 문장이다.


  두 번째 소설 <슬로하지 않다>에서는 왕따에 대해서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해서 얘기한다. 초등학생 시절에는 운동을 잘하는 것은 친구들의 중심에 서는 방법 중에 하나다. 타 학교에서 왕따를 시키던 가해자가 새로운 생활을 위해서 스스로 약해 보이게 행동하는 모습 그리고 운동회를 위한 선수 선출 시 운동을 잘하지 못하는 소수에게 다수결을 내밀어 다수 의견을 밀어붙이는 모습에서 왕따라는 것도 작은 사회의 민주주의 폐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세 번째 소설 <비 옵피머스>에서는 인간관계는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는 것과 법과 규칙에 위배되지 않더라도 남들에게 피해를 주면 그것이 자신의 평판이 되며 그것은 차후 변하는 인간관계에서 스스로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얘기한다. 외계인이었지만 평범한 트레일러로 변신해 있던 트랜스포머의 옵티머스 프라임처럼 사람은 외모로만 판단해서도 안되며 사람의 관계는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네 번째 소설 <언스포츠맨라이크>는 농구에서 벌어진 언스포츠맨쉽 파울과 우리 사회의 범죄와 연결시켜 본다. 필사적으로 경기를 진행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언스포츠맨쉽 파울을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범죄의 동기를 정당화시킬 수는 없지만 범죄자들 중에는 삶을 필사적으로 살아가다 터져버렸을지도 모른다.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게 하면 좋겠지만 그들은 다시 사회라는 코트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행복하지 못하면 또 범죄는 반복된다. 비난만이 정말 방법일까라는 질문을 한다. 농구의 마지막 1분을 <영원>이라고 부르듯 인생이 끝날 것 같은 순간도 <영원>과 같다며 위로하며 그럼에도 언스포츠맨쉽 파울을 하면 상대에게 자유투 2개와 공격권이 다시 넘어간다는 것을 범죄자들도 인식해야 한다는 주장도 에둘러한다.


  마지막 소설 <거꾸로 워싱턴>은 정직하게 살아가는 것에 대한 질문을 한다. 정직하게 행동하는 것 자체는 부정할 수 없는 정당한 행위지만 그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말에도 '긁어 부스럼'이라는 표현이 있듯이 매 순간 정당한 행동을 하는 것이 맞냐라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된다.


  처음에는 <미움받을 용기>처럼 문답형 철학서인 줄 알았다. 아이들의 이야기 속에 철학적 질문들이 연달아 나왔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이들의 언어로 철학을 논한다는 쉬운 일은 아니었기에 아이들의 행동으로 그리고 회상을 통해 주위 어른의 말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살아가며 한 번쯤은 받아본 질문들이지만 아이들의 에피소드를 곁들인 이 책은 읽기에도 편하고 많은 생각도 하게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편애하는 문장들 - 지극히 사소한 밑줄로부터
이유미 지음 / 큐리어스(Qrious)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9CM 총괄 카피라이터였던 그녀는 직장을 관두고 밑줄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서점에서 책을 읽고 쓰는 일을 하는 것은 손님이 그렇게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러 일을 하며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 어느 날 찾아온 손님이 새 책을 마다하고 작가가 밑줄 친 책을 팔아라고 아우성을 하는 바람에 마음의 준비도 못한 채 책과 이별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밑줄 친 문장은 옮겨 둔다 했다.


  독서가들이라면 공감 포인트가 많을 책을 사랑하는 사람의 일상 더하기 엄마의 삶이 적힌 이 책은 넥서스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이런 책을 <필사 에세이>라고 해야 할까? 책 속에 좋은 문장을 발췌해서 나의 삶과 연결 지어 글을 적어 나간다. 이런 책 중에 좋았던 책은 <쓰기의 말들>이다. <쓰기의 말들>이 좋은 문장 더하기 좋은 문장이었다면 이 책은 공감의 문장 더하기 공감의 문장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제목에 <편애>가 들어가 있나 보다.


  책의 초반에 나오는 최고의 작가가 아닌 매일 쓰는 작가가 되기 위한 일이 이런 종류의 글이기도 할 것이다. 나도 이런 작업을 해보고 싶어서 문장을 모으고 있는 것이지만, 역시 키보드에 손을 올리거나 연필을 쥐지 않으면 적을 수 없는데도 아직도 밀려드는 책에 허우적거리며 문장들만 모으고 있다. 작가는 살뜰히 잘 적어 모와 이렇게 책으로 내어 주었다.


  독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겪을 수밖에 없는 딜레마. 일이냐 독서냐 그것이 문제로다. 한 아이의 엄마로서 자신의 행복 또한 놓치고 싶지 않은 작가는 아이 스스로 할 수 있게 하고 자신의 시간을 잘 내어 사용한다. 아이도 스스로 고민함으로써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가기도 한다. 부모로서의 책임감은 내려놓기 쉽지 않다. 더 나은 삶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방식으로 아이들에게 강요하기도 한다. 그렇게 희생된 나의 노력과 시간이 언젠가 보상 심리를 가져다 주기도 한다. 아이가 행복하려면 나부터 행복해야지. 하지만 사실 그것도 하나 일 때나 조율이 되는 것 같다. (웃음)


  책은 약간의 동질감과 부러움을 가져며 읽을만하다. 동족의 냄새가 나서인지 그렇게 재밌는 문장이 아닌데도 읽는 것이 즐겁다. 가볍게 읽혀서 더 좋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