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씽킹 WEALTHINKING (양장) - 부를 창조하는 생각의 뿌리
켈리 최 지음 / 다산북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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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안 '시크릿'이라는 도서가 불티나게 팔린 적이 있다. 사실 나는 '시크릿'이라는 책을 읽어보지는 않았다. 여러 통로로 그 내용을 조금 알 뿐이다. 부에 대해 비난하면서 부를 얻기 바라는 것은 모순이다. 부를 간절히 원하고 매일매일 다짐하고 생각하다 보면 자연스레 부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까지 생각이 미치게 된다고들 한다. 나는 아직 그 간절함이 덜 한지 여전히 부유하지 못하다. (웃음)


  가난한 환경을 벗어나 수많은 실패를 경험하며 결국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 낸 캘리 최의 성공 방정식은 다산북스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캘리 최의 부의 정의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부라는 것은 단순히 '돈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다는 거다. 돈이 많아도 모자를 수 있고 돈이 적어도 행복할 수 있다. 그렇다고 적게 벌어라는 얘기는 아니었다. 인생의 수레바퀴에 돈이라는 것은 한 축이고 모든 것이 잘 버티어 줄 때 무리 없이 굴러가며 그것이 진정한 부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명료하고 단호해서 잘 읽힌다.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한 강한 긍정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어려웠던 과거사를 시작으로 성공에 이르기까지의 에세이 형식에 더하여 자신의 삶에 신념, 성공에 관한 철칙을 알려주었다. 그녀는 성공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성공한 사람을 만나서 배워야 한다고 했다. 그 사람들을 만날 수 없다면 그들의 책과 강의 등을 완전히 체득할 정도로 익히라고 한다. 성공한 사람들은 그들 나름의 가치관이 있기 때문이다.


  캘리 최는 웰 싱킹이라는 것을 통해서 부에 대한 생각부터 바꾸려고 했던 것 같다. 돈을 좋아한다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돈을 벌어서 의미 있게 나누는 일 그것이 진정한 부라는 것을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고 본인도 그렇게 행동하고 있다. 자신만의 가치관과 신념을 만들고 이뤄질 때까지 행동하는 것 그것이 그녀의 주장의 뼈대였다.


  그녀가 추구하는 생각의 뿌리는 핵심가치, 결단력, 선언, 믿음, 신념, 질문이었다. 그녀 또한 많은 도서에서 볼 수 있는 얘기를 나열하고 있다. 그녀 스스로가 많은 책을 읽고 그것이 체화될 정도로 익혔다고 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도 이해가 간다. 결국 부로 가는 사람들의 행동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도 알았다. 얼마나 절실한지 얼마나 과감했는지 얼마나 지속했는지의 결과만이 남을 뿐이다. 그녀는 목숨을 버리려 센 강 위에 섰던 다음 날부터 더 절실하고 더 과감하게 성공할 때까지 행동했던 것 같다. 


  책을 읽어보면 당연한 얘기라는 생각이 든다. 성공을 바라고 그 성공을 시각화하고 매일 외며 자기 신념으로 만드는 과정 또한 많은 베스트셀러들에서 읽었을 법한 내용들이다. 그럼에도 그녀가 성공했던 것은 행동했기 때문이다.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을 믿어가며 자신은 성공하고 말 것이라는 강한 긍정의 마인드가 그녀를 지금의 위치에 올려놓았을 거다. 사실 그런 그녀였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다.


  자기 계발서는 읽는 것보다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완독을 하려면 우선 책을 집어 들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은 많은 자기 계발서의 요약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책에서 보았던 그중에서도 고개를 끄덕일만한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성공에 대한 강한 집념이 필요하거나 연단 실패에 자기부정에 빠져 있다는 분들에게 괜찮은 책일 것 같다. 그녀의 단호한 표현은 에너지가 강해서 멱살 잡고 끌고 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의 인스타그램에서는 100일 필사 도전도 하고 있다. 자기 암시는 강한 신념을 만드는 좋은 방법임으로 혼자 해내기 힘들다면 SNS 등을 통해서 함께 도전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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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은 어떻게 디자인하는가 - 인클루시브 디자인 이야기
애니 장바티스트 지음, 심태은 옮김 / 유엑스리뷰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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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오징어 게임'의 오영수 배우님을 남우조연상으로 뽑은 골든글로브는 인종차별 논란에 휩싸여 비공개로 진행되었다. 세계는 차별을 없애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려 하고 있지만 뒤로는 기존의 차별이 발목을 잡고 앞으로는 효율과 합리성 같은 것들이 가로막고 있다. 그럼에도 많은 부문에서 '다양성'의 중요성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구글도 예외는 아니다.


  구글이 제품을 디자인하는 방법에 중요시되는 <포용성 디자인>에 대해 얘기하는 이 책은 유엑스 리뷰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이제까지의 사회는 복잡해져 가는 가운데 더 합리적이고 더 효과적으로 변화기 위해서 '심플함'을 강조해 왔다. 'Simple is Best'라는 말은 유행어처럼 사용되었다. 하지만 이런 방법들은 때때로 많은 사람을 배제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단순함 하면 떠오르는 스티브 잡스 또한 모든 사람에게 편한 사이즈의 폰을 고수한다고 했지만 그것 역시 백인 남성의 평균치였을 뿐이었다.


  자본주의를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은 다윈의 '적자생존'을 좋아한다. 적응하는 자가 살아남는 것이다. 이런 맹목적 추종은 '사회진화론'까지 생겨나게 했다. 이런 과정에서 사회 갈등과 양극화는 필연적인 일이다. 여전히 많은 기업들은 주소비그룹을 focusing 하여 제품을 디자인하고 마케팅한다. 가장 빠르고 효과가 좋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구글은 어떻게 디자인할까?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구글의 디자인 전체가 아니다. 이미 완벽하게 갖추어진 시스템 속에서 <포용성>이라는 큰 명제를 덧씌우는 작업을 얘기하고 있었다. 구글은 이미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해당 업무를 진행하는 팀이 있고 체계화까지 끝난 상태다. 그렇다면 구글은 왜 이렇게 비효율적인 작업을 진행할까?라는 의문이 사실 들지는 않는다. 구글은 이미 세계적인 기업이고 마케팅 대상 또한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글의 위상은 미국의 백인들만을 위한 제품을 만드는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구글이 포용성 디자인을 추구하는 것 또한 포커싱 하지 않은 대상으로부터의 예상하지 못한 수입을 위한 부분이기도 하다. 결국 모든 사람을 위한 일이 기업의 성장을 이끄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책에서 강조하는 <포용성 디자인>은 십분 공감이 되었으나 쓰일 수 있을까라고 했을 때에는 조금 회의적이었다. 이 책의 내용이 회의적이었다기보다는 지금의 환경이 기존 시스템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는 수준인데 구글의 최신 트렌드를 감당할 수 있을까 싶었다. 삼성 같은 글로벌한 기업이나 네트워크 망을 이용하는 게임이나 콘텐츠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면 이 책은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


  책은 1, 2장을 제외하면 포용성 팀을 운영하는 법, 포용성 원칙을 세우고 전파하는 법 등의 실전적인 책이다. 12장에서는 각 분야에서 제품 포용성의 예를 설명한다. 지구촌이라는 단어는 아주 오래전부터 사용되고 있지만 팬데믹을 기점으로 세계는 어마어마한 속도로 결합되고 있다. 더불어 여성, 성소수자, 종교, 장애인 등의 소수자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제품에서 배제되는 부류는 강하게 항의할 수 있고 이런 목소리는 사회를 거쳐 더 강해져 제품의 존폐를 넘어 회사 경영에까지 미친다. 제품의 포용성은 이제는 필수가 되어 가는 듯하다.


  몇 해 전부터 '공진화'에 대한 얘기도 많이 나온다. 생물은 살아남기 위해서 싸운 것뿐만 아니라 서로 연대에서 이겨냈다는 흔적이 많았다는 것이다. 자연은 기본적으로 단순함을 싫어한다. 단일종은 멸종의 대상이 되었다. 인간은 지구의 대표 단일종이다. 산업화, 자본주의, 세계화 등의 영향으로 종의 다양성마저 잃어가고 있다.


  다양함을 인정하는 것은 여러모로 장점이 많다. 소수를 위한 기술은 다수에게 더 유익하다는 얘기가 있다. 장애인들을 위해 만들어진 기술은 장애인들보다 비장애인들이 더 편하게 사용하고 있다. 다양성이 존재할 때, 그건 아니야라고 얘기할 수 있는 존재가 있을 때 기술은 진보하고 인간의 삶은 더 윤택해질 것이다. 그런 점을 잘 아는 구글이었기에 이렇게 시스템을 만들었고 그 경험자가 책을 내어 놓을 수 있었을 것이다.


  다양성, 포용성에 대한 중요함은 다른 책에서 더 심도 있게 다루고 있지만 그런 포용성 정책을 회사에 어떻게 접목시킬 것인지가 궁금하다면 이 책이 꽤 괜찮은 대안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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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보그가 되다
김초엽.김원영 지음 / 사계절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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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청기를 사용하는 김초엽 작가와 휠체어를 타는 김원영 작가가 시사인에서 장애에 대해 적은 글을 모아 만든 책이다. 가장 놀랬던 것은 김초엽 작가가 장애가 있었다는 것이었고 가장 좋았던 것은 우리 사회가 다루는 장애라는 것이 정말 올바른 방향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실 이 책을 꼽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아서 굉장히 재밌는 SF소설인가 싶었다. 김초엽 작가의 글을 워낙 좋아하기도 했기 때문에 사실 어떤 책인지 살펴보지도 않은 채 구매를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꽤 무거운 사회적 문제이면서 소수자의 얘기를 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어느 책들보다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다.


  사이보그는 쉽게 풀어쓰면 인조인간이다. 기계와 인간이 결합된 하이브리드적인 생명체라고 하면 될까? 우리가 눈여겨보던 사이보그는 영웅적이거나 파괴적인 양면 측면에 위치하고 있다. 나 역시 사이보그라고 하면 만화나 영화 정도의 이미지만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어가 가지는 정의를 놓고 본다면 나 역시도 사이보그일 수 있다. 기술의 발전은 인간에게 보철물을 선물하였다. 단순하게 안경부터 틀니나 보청기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인공 관절, 스턴트 등은 이미 보편적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사이보그가 되다는 것은 결국 기술의 지원을 받게 되는 위치에 있다는 것이었고 그 장애의 경중이 다를 뿐 우리 대부분은 사이보그이기도 하다는 얘기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장애라는 것은 개인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굉장히 다른 대우를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안경은 이미 패션의 일부가 되었지만 보청기는 여전히 감추고 싶은 물건이었고 일반적인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것은 동정 어린 시선을 받지만 아주 고가의 휠체어를 타는 것은 비뚤어진 시선의 대상이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본다면 장애를 위한 보조 기구들이 장애인들의 입장에서 만들어지는지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구부러지는 빨대처럼 간단하면서 지금 당장 삶의 질을 향상해줄 수 있는 것들도 많다.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도 장애인 보조 기구들은 최첨단만을 향해 가고 있는 것 같다. 마치 아이언맨을 위한 기술 같다.


  결핍된 A는 B나 C가 될 수 없을까? 이 질문은 두 저자의 주요한 생각이었다. 결핍된 A는 그 자체로 하나의 존재일 수 없을까? 결핍된 A가 그대로 살아가거나 극복하거나의 두 개의 선택지를 내밀어 줄 수는 없을까. 장애라는 것의 부정적인 감각은 쉬히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이겠지만 비장애인의 생각보다 그들 자신의 생각이 존중받을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자신의 보철물에서 이물감을 느끼는 것은 애착이 형성되는 것도 더 나아가 일체화가 되는 것도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책은 장애라는 것이 단순히 극복해야 하는 대상만은 아님을 공감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인간의 <정상성>에 대한 추구는 장애를 극복의 대상으로만 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장애에 대한 지원금은 장애인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장애를 극복하기 위한 기술에 더 많이 집중된다. 결국 현재를 살아가는 장애인의 행복은 주요하지 않은 것이다. 어떻게 보면 비장애인들의 일방적인 사랑의 표현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포스트 휴먼>이라는 것을 생각해 볼만 하다. 인간은 농경 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전혀 진화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체격은 줄었고, 그 전의 체격을 회복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렇다면 인류의 진화는 이제 기술에 힘을 빌려 스스로 진화해야 하는 것일까? 기계를 붙이거나 유전자 조작을 통한 <강화 인간>으로 가는 길만 남았을까? 그 속에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정체성의 혼란은 지금 장애인들이 갖는 정체성의 혼란과 비슷하지 않을까? (비록 그들의 생각을 이런 단편적인 글로만 읽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오만한 것일지도..)


  인간은 인간을 닮을수록 친밀감을 느끼지만 인간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닮으면 적대적으로 바뀐다고 한다. 장애는 늘 결핍을 가진 대상이었다. 그들이 그 자체로의 새로운 존재 더 나아가 종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 스스로도 장애는 <안스러움>의 대상이었다. 돌봄이라는 것이 필요한 존재 일 수 있지만 그들 자체를 패배자로 만들지 않아야 하는 것 서로 다른 위치에 서 있는 만큼 마음으로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닐 거다.


  그럼에도 이 책을 통해서 그동안의 장애를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 달라졌다. 몸으로 체화되기까지 또 긴 세월이 걸릴지도 모르겠지만 몰랐던 새로운 단면을 알게 되는 시간이었다. 더불어 김초엽 작가의 생각에 대해 더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고 그녀의 작품에 대한 이해도 더 깊어질 것 같았다. 엘리자베스 문의 <어둠의 속도>를 읽었을 때 바로 김초엽 작가가 생각났었는데, 그녀가 그 작품에서 깊은 영감을 받았다는 글을 읽었을 때는 소름이 살짝 들면서 나름 뿌듯하기도 했다. (생각보다 잘 이해했다는) 


  소설이 아니었음에도 끊어 읽을 때마다 아쉬움이 있을 정도로 끌어당기는 깊이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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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를 읽다, 마음을 읽다 - 뇌과학과 정신의학으로 치유하는 고장 난 마음의 문제들 서가명강 시리즈 21
권준수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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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뇌에 대한 연구는 마음의 연구이기도 하다. 마음이 심장에 있다고 생각하던 중세 이전의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마음은 일종의 뇌의 작용이다는 게 과학적인 생각이 맞을 것이다. 마음이 고장 난 병도 이제는 과학적으로 접근하며 여러 가지 치료법이 생겨나고 있다. 임계점을 넘어버린 마음의 병은 더 이상 의지만으로 이겨낼 수 있는 병이 아니라는 것도 알 수 있다.


  이 책은 뇌의 일반적인 지식과 함께 마음의 병에 대해서 얘기하는 이 책은 21세기 북스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사실 이 책을 펼치며 기대했던 것은 심리병 혹은 마음의 병이라고 얘기하는 것들에 대한 지식과 치료 접근법 등에 대한 기대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런 지식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뇌에 대한 지식을 설명하는 것 필요하다는 것은 공감했지만 생각보다 짧은 페이지에 어려운 뇌과학의 이야기를 많이 풀어놔서 얼마나 쉽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다행스럽게도 심심 북스에서 출판된 바이블 수준의 <뇌 과학의 모든 역사>를 읽은 후라 굉장히 빠르게 읽혔다. 사실 책의 절반 이상은 복습의 시간이었다.


  이 책에서 가장 관심 있게 본 부분은 마음의 병에 관한 이야기와 행복에 관한 이야기였다. 감성적인 사람들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무미건조한 내용일지도 모르겠지만 마음의 병은 결국 뇌의 병이고 행복은 뇌의 영향을 미치는 호르몬의 문제이기도 했다. 우울하다는 것은 뇌의 기능이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운동은 신체 활동을 활성화하기 때문에 우울할 때 운동을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우울하다는 것의 어느 임계를 벗어나면 의지로 해결할 수 없다. 의지가 곧 뇌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때에는 적절한 치료가 필요하다.


  한국인의 네 명중 한 명은 정신 질환을 가지고 있지만 그 절반만이 전문의와 상담을 한다고 합니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마음의 병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가 많아서이기 때문이겠죠. 그래서 정신분열을 조현병으로 명칭을 바꾸는 것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하네요. 그러고 보면 정신병원도 마음 병원으로 바뀌었죠. 마음의 병은 점점 늘어가는데 이제 우리 사회도 하나의 병으로 인정하는 분위기로 갔으면 합니다. 치료를 해야 좋아지지 놔두면 사고로 이어질 수 있으니까요.


  행복은 철학적으로 얘기해야겠지만 신경학적으로 본다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호르몬들이 몇 가지 있지요.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엔도르핀입니다. 하지만 이 호르몬은 짧은 시간밖에 행복하게 해 줄 수밖에 없다네요. 긴 행복을 가지려면 신체적 고통이나 가혹한 시련이 있을 때 나오는 코르티솔이라는 호르몬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 인문학과도 연결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고생 뒤에 낙이 온다>, <인고의 뿌리는 쓰지만 그 열매는 달다> 같이 말이죠. 이 코르티솔이 도파민과 섞이면서 엄청난 행복감을 준다고 하네요. 운동 중독이라는 것도 이런 한 측면이 아닐까 합니다.


  최근에는 AI를 이용해서 정신 건강을 관리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 직관의 인간이 AI의 연산에 뒤진 것을 확인한 <알파고> 이후의 세상은 인간과 AI의 공존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두꺼운 뇌 과학 서적이 부담스럽다면 이런 책도 꽤 좋은 대안일 것 같다. 두꺼운 바이블을 읽은 사람에게는 조금 아쉬운 부분을 느끼게 될 수도 있다. 짧은 시간 교양 지식을 쌓듯 뇌에 대해 알아가고 싶은 분들에게는 부담스럽지 않은 서적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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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두려워하는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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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에서 느껴지는 감각은 단순했다. 사회의 어두운 면, 혹은 뱀파이어 이야기, 마지막으로 XP(색소성 건피증)에 걸린 사람의 이야기 정도로 추측해볼 수 있었지만 이 책의 내용은 생각보다 철학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은 광명을 찾았다고 확신을 가지는 사람들에 대한 어두운 면을 얘기하는 이 작품은 밝은 세상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제목에서 들었던 생각은 몇 장을 읽자마자 그저 나의 상상일 뿐이었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이야기를 끌고 사람은 자신의 삶을 자신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강직한 아버지의 의지에 끌려 다녔고 말년에 우버 기사를 하고 있는 조금은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이었다. 빛을 두려워할 만한 위치도 아니었고 빛날 만큼의 위치도 아니었다.


  전체적인 이야기는 여성의 삶을 옹호하며 출산의 결정권을 가지겠다는 진영과 철저한 가톨릭의 신앙을 바탕으로 낙태는 살인이라고 외치는 사람들 사이의 갈등의 이야기였다. 페미니즘이나 근본주의적인 입장에서 이 책을 본다면 한쪽으로 치우진 페미니즘 도서가 될 수 도 있다. 낙태를 죄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너무나 폭력적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래도 여성의 선택권을 어느 정도 존중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책을 읽는데 불편함은 없었지만 낙태를 몹쓸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쉽지 않을 것 같은 생각도 잠시 들었다.


  이런 페미니즘과 근본주의적인 얘기를 거둬두고 본다면 이 책의 제목과 메시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게 된다. 


  사람들은 모두들 빛을 찾아서 방황한다. 그 빛의 종류는 사람마다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빛을 하나의 행복이나 진리라고 가정한다면 우리는 아무 끊임없이 그것을 찾아서 헤매야 하는 입장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빛이 어디에 있는지 안다는 사람들은 그들의 확고한 고집이 세상을 어둡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외면하고 있다.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는데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 바로 광신도이다. 이 책에서도 그런 면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빛을 찾았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의 확고한 신념은 그들을 넘어 세상을 지배하려고 하고 그것이 때로는 폭력으로 행사되더라도 죄의식을 가지지 않는다. 그들의 신념이 모든 사람들에게 맞지 않을 터인데도 지나친 믿음은 강요를 낳고 사회와 충돌하게 된다. 


  빛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세상을 비춘다고 생각되는 빛이라는 존재에 무작정 딸려가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빛은 대체로 좋은 의미로 쓰였지만 여기서는 빛은 너무 강한 빛이었다. 우리는 매일 태양으로부터 빛을 받아서 살아가고 있지만 태양과 아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빛은 종교적 믿음일 수도 있고 자본주의에서의 돈이 될 수 도 있다. 독재사회에서는 독재자일 수도 있다. 빛이 너무 강하면 양지와 음지의 색깔은 더욱더 극명해진다. 그것은 빛을 두려워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될지도 모르겠다. 


  가볍게 보면 갈등이 있는 재밌는 소설. 조금 더 생각해보면 페미니즘 소설. 더 깊이 들여다보면 비판 없는 확고한 믿음이 가져오는 사회적 어둠에 대한 소설이었다. 어떻게 읽고도 괜찮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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