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검 - 정민 교수의 세설신어 400선
정민 지음 / 김영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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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만 보며 뛰고 뒤쳐지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부단히 그리고 허겁지겁 살아가고 있다. 무엇이 중요한지 잊은 채 살아가진 않는지 세상과 마음을 살필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 책은 옛글을 뒤져 오늘의 문제에 비춰 본다. 기술의 수준은 비교할 바가 아니겠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이치는 변하지 않았다. 


  400개의 옛글로 오늘을 성찰해 보는 시간을 가지는 이 책은 김영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400개의 옛글은 그냥 간략하게 ㄱ, ㄴ, ㄷ, ㄹ 순으로 나열되어 있다. 이 책은 기존에 출간한 <일침>, <조심>, <석복>, <습정> 그리고 <옛사람이 건넨 네 글자>에 수록된 글 들을 가려 엮은 통합본이다. 그렇기 때문에 1000페이지에 이른다.


  옛 선인들의 깨달음을 엮어 놓으니 좋은 말씀이 많다. 나라를 다스리는 것, 회사를 운영하는 것 그리고 관계를 대하는 것에 대한 좋은 깨우침이 있었다. 그리고 공부, 독서에 대한 마음가짐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드는 것은 심입천출(深入淺出, 세게 공부해서 쉽게 풀어낸다.)이다. 지난해 나는 빠르게 둘러보는 것에 치중하였다. 두고 볼 책을 골라내는 많은 시간을 들였다. 올해도 여전히 그 작업을 하겠지만 올해는 깊은 독서도 해야겠다. 심장불로(深藏不露, 깊이 감춰 드러내지 않는다)의 몸가짐도 생각해볼 만하다. 고수들은 한 번에 자기 수를 다 보여주지 않는다. 깊이 감춰 좀체 드러내는 법이 없다. 하수들이나 얄팍한 재주를 믿고 찧고 까분다. 잠깐 두드러져도 이내 흔적도 없다. 조금 더 깊이 공부하고 드러냄에 더 많은 고민을 하고 상대의 의견도 깊이 생각해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2022년에는 생사사생(生事事省, 일 만들기와 일 줄이기) 해야겠다. 정신없이 바쁠 때도 한결같아야 한다. 홍석주는 일과는 하나라도 빠뜨리면 안 된다고 했다. 사정이 있다고 거르면 일이 없을 때도 게을러진다고 말했다. 아주 바쁜 중에도 한 글자를 읽을 만한 틈이 생기면 한 글자라도 읽는 것이 옳다고 했다. 계획한 일을 할 수 없다고 자기 합리화하는 것이 아니라 글자 하나를 읽듯 끊어짐 없이 하도록 노력해야겠다.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각곡유목(刻鵠類鶩, 좋은 것을 배우면 실패해도 남는다)을 유의해야겠다. 좋은 것을 본뜨면 실패해도 얻는 것이 있지만 폼나고 멋있다고 잘못 흉내 내면 그것으로 몸을 망치게 된다. 열심히 하는 것 이전에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보고 어떻게 배우느냐다. 톨스토이의 <인생독본> 첫 장에도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좋은 책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 나온다. 어떤 책이 좋은 책인지 알려면 우선 많이 읽어봐야 하니까라고 여전히 자기 합리화 중이지만 말이다.


  고생 뒤에 낙이 온다는 말이 있듯, 감취비농(甘脆肥農, 달고 무르고 기름지고 진한 맛) 이란 말이 있다. 우리의 도는 괴로운 뒤에 즐겁고, 중생은 즐거운 후에 괴롭다는 송대 마단림의 말과 같다. 달고 무르고 기름지고 맛이 진한 음식은 이름하여 창자를 썩게 만드는 약이라 한다. 감취비농을 취하는 행위는 파멸을 향해 돌진하는 것과 같다. 이 말은 능내구전(能耐久全, 더뎌야 오래간다)이라는 말과도 비슷하지 않을까? 공부함에 있어 가장 두려운 것은 오래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오래 견딜 수 없다면 아주 작은 일조차 해낼 수 없다는 이항로의 말은 나에게 다시금 각오를 다지게 만든다.


  너무 좋은 내용이 많아서 옆에 두고 계속해서 봐야 할 책이다. 진정 다독을 위한 도서다. 400개의 문장 중 허투루 볼 문장은 없다. 하나 같이 통찰을 주는 글들이다. 읽다 보면 지금 회사의 경영자들의 잘못된 점들이 보이고 정치인들의 허물이 보이기도 한다. 무언가를 다스리는 일이 수 백 년이 지났다고 무엇이 달라졌을까. 왕정 정치의 시대였지만 백성을 헤아리지 못하고 신하를 능히 다스리지 못하면 파멸로 이어짐은 다르지 않았다.


  올해도 계속해서 글을 쓸 예정이다. 많은 적은 것이 나에게는 하나의 연습이다. 하지만 인묵수렴(忍默收斂, 말의 품위와 격)의 자세를 잊지 않아야겠다. 말이란 정말 통쾌한 뜻에 이르렀을 때 문득 끊어 능히 참아 침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청나라 부산의 말을 잘 기억해 두려 한다. 그리고 해현갱장(解弦更張, 거문고 줄을 풀어 팽팽하게 다시 맨다) 하여 초심의 긴장을 유지하며 한 해 잘 살아내어야겠다.


  한 해를 시작한 지금 이 책을 만난 것은 정말 좋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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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의 디자인 (특별판)
하라 켄야 지음, 민병걸 옮김 / 안그라픽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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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뺄셈의 미학>은 우리가 흔히 사용한다. "Simple is the best"라는 말이 아인슈타인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은 시각적인 디자인뿐 아니라 수치적 디자인에서도 <단순함>은 중요한 화두인 것임이 분명하다. 일본 디자인계의 거장이자 <무인양품>의 아트디렉터인 하야 켄야의 디자인 철학 또한 다르지 않다. 디자인이라는 것은 과잉된 메시지를 담으면 안 된다. 제품의 근원적인 가치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디자인은 시대의 문화에 대해 끊임없이 소통하는 작업인 것이다.


  하라 켄야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무인양품>을 알게 되면서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산업화 이후 경제에 끌려다녔던 디자인 철학은 본연의 가치를 잃고 대량 생산과 소비를 촉구하는 디자인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기술팀과 디자인팀의 콜라보는 높은 효율과 합리적인 행위였다. 대표적인 일본 기업으로는 <소니>가 있다.


  나는 여전히 하이테크 이미지를 가진 소니의 디자인을 좋아한다. 또한 <무인양품> 만의 특유의 따뜻하고 심플함에 눈길이 가는 것 또한 당연하다. <무인양품>이 1980년도에 내걸었던 캐치프레이즈는 '이유가 있어서 싸다'였다. 우리가 생각하는 싸구려가 아니라 생산 과정의 합리화와 간소화를 통해 가격을 낮추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독창적인 디자인을 내세웠다. 하라 켄야가 아트디렉터로 참여하게 되었을 때는 낮은 가격만으로 승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새로운 상징이 필요했다. 


  무인양품의 목표는 '이것이 좋다'가 아니라 '이것으로 충분하다'였다. 이것은 디자인의 타협이 아니다. 시장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욕망의 수준'을 끌어올리겠다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수준에 맞는 제품이 출시되면 '이것으로 충분해'라고 말한다. 하지만 더 높은 수준의 제품을 보고 나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무인양품의 '이것으로 충분하다'라는 목표는 세계 누구의 욕망이라도 만족시킬 수 있는 제품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만들려고 하는 것의 근원적인 의미를 찾아야 했고 보편타당한 메시지를 알아내야 했다. 그들은 메시지를 내는 제품을 만들려고 하지 않고 욕망을 담을 그릇을 내보이려 했던 것이다. 


  <하라 켄야>를 얘기하려면 exformation을 빼놓을 수 없다. exformation은 information의 반대 개념으로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지만 알지 못하는 것에 집중한다. 정보의 홍수라고 불리는 시대에 사는 우리는 너무 많은 것들을 접하며 살아간다. 그러다 보면 스치듯 만난 것들에 대해서 '안다'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알아?', '알아!'라고 이어지는 대화에는 엄청난 다양성이 있지만 자신의 지식에 대한 만족감일 뿐일 때가 많다. 


  무엇인가를 안다는 것은 사고의 '입구'에 불가한 것이다. 그것은 상상력의 시작이지 끝이 아니다. 지식을 상상하고 승화하는 과정을 가져야 하는데 심화시키는 귀찮은 과정은 피하고 정보를 던지고 받는 일에만 치중하고 있다. 이렇게 '이미 아는' 정보 교환의 순환 속에서 더욱 신선한 미지의 영역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exformation이 아닐까 한다.


책 속에 예를 들었던 '리조트'를 보자.

긍정적 이미지 : 편안함이 있다/기분 좋고 마음이 편하다/긴장을 푼다/일상에서 벗어난다/이국적 정서를 느낀다/자연을 경험한다.

부정적 이미지 : 사치스럽다 / 게으르고 나태하다 / 퇴폐적이다

상황의 이미지 : 풍부한 자연 / 쾌적한 기후 / 정숙함 / 독립적 공간 / 숙련된 서비스

감각 정 인상 : 느슨한 느낌 / 떠도는 향기 / 정숙 / 자연의 소리 


이런 다양한 의견들이 있었다. 사람의 생각의 현대화된 이미지에 영향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을 하나로 얘기할 수 있는 씨앗 같은 단어는 '휴식'이었다. '휴식'이라는 단어 집중하니 튜브 모양의 도로 표지판, 밖에서 자기, 아이스크림, 느긋한 타이포그래피 그리고 리조트 버튼 같은 프로젝트들을 만들 수 있었고 페이지를 보는 나는 기발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산업화 이후 기술의 진보는 필연적인 것이 되었다. 산업 혁명이나 기술 문명에 반기를 든 사람들은 자본주의에 의해서 철저하게 내쳐지고 찬밥 신세를 면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지구 상의 모든 나라와 사람들은 기술에 대한 강박이 있다. 변화에 쫓아가지 못하면 도태된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룬 것들을 누리지 못하고 또 다음을 위해서 끌려가고 있다. 저자는 이 변화가 조금 더 천천히 이뤄졌다면 어땠을까라고 얘기한다. 우리는 완성된 지 못한 채 다음을 향해 간다. 불안정한 토대에서 불확실성을 향해 나아간다. 어쩌면 기후 위기라는 것도 그런 불완전함이 만들어낸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최근에는 디자인이 많은 일을 해내고 있다. 기술의 진보가 제품이나 의사소통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할 때마다 디자인은 꾸준히 최상의 답안을 찾아내는 역할을 해내고 있다. 디자인은 단순히 만드는 기술이 아니다. 오히려 귀를 기울여 눈을 의심하고 생활 속에 새로운 질문을 발견하는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이 책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작품집이 아니다. 그런 책을 내려했다면 <하라 켄야>는 책을 내지 않았을 것이다. 디자인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얘기하는 것을 하고 싶었다. 이 책은 <디자인의 디자인>이라는 책의 특별판으로 기존 책에는 없던 '햅틱', '센스웨어', '白', '익스포메이션'이 추가되었고 기존보다 많은 글을 덧붙였다. 


  <단숨함>은 미니멀니즘과 달랐다. 끊임없이 관찰하고 질문해서 본질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exformation은 말로 표현되기 전의 이미지를 디자인해 내는 것이다. 그 디자인을 다시 말과 글로 표현하는 것 또한 디자인이다. 이 책의 제목이 <디자인의 디자인>인 이유다. <하라 켄야>가 얘기하는 디자인의 본질과 그의 철학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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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도요타 생산방식 솔루션
홍덕진 지음 / 카론앤컴퍼니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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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몇 해나 지났지만 도요타 자동차 생산라인과 협력업체에서 일하는 방식에서 받는 충격은 제법 컸다. 1초도 허투루 쓰지 않겠다는 개선팀의 의지가 보이기도 했지만 걸음걸이 하나 움직임 하나도 정해진 듯 움직이는 로봇 같은 사람들의 움직임 때문이기도 했다. 잃어버린 20년을 견뎌 온 도요타만의 저력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 연수를 진행해 주신 분이 이 책의 저자 홍덕진 님이다. 낮에는 공장을 견학하고 밤에는 강의실을 빌려 강의를 들었다. 20년을 넘게 TPS 연수를 진행해 온 저자의 자신감 있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오랜 커리어로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해주시고 강행군이었던 연수에 재미도 주셨다. 당시 경험으로 조금 더 긴 연수를 받아보고 싶었지만 교육이라는 것이 회사의 방침이기도 해서 그야말로 맛만 보며 끝났다. 이 책은 그 연수를 위한 참고서다.


  많은 도요타 생산방식 책들이 있었지만 이렇게 현장 중심적으로 쓰인 책은 많지 않다. 지금은 단종이 되어서 중고 책을 찾아봐야 하지만 일반적인 도요타 생산방식의 문서 같은 것을 나열한 재미없는 책들에 비해 도요타 정신 그 자체를 많이 얘기하는 점이 인상 깊었다.


  도요타 하면 다들 세계에서 자동차를 가장 많이 파는 회사로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도요타는 이 연수로 벌어들이는 돈도 어마어마하다. 우리나라도 2002년에 삼성전자가 연수를 시작하면서 우리나라에도 붐이 일었다. 하지만 대부분 눈에 보이는 것에 집중했고 70여 년간 노력해 온 도요타의 정신에는 집중을 하지 못한 것 같다. 바로 성과가 나지 않으면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마음 급한 한국 경영진의 문제이기도 할 것이다.


  책은 도요타 생산 방식에 대해서 잘 나열해서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았던 것은 작은 소단원의 TPS 혁신의 3단계였다. 점의 개선, 선의 개선, 면의 개선으로 이어지는 TPS의 관점의 변화를 보는 것이 좋았다. 우리는 현장에서 TPS+라는 최종 결과물만 보고 감탄하고 흉내 내려 하지만 첫 발을 내딛는다면 TPS 1.0부터 차근차근 밟아가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았다. 직원이 협력업체가 공감하지 못하는 경영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TPS에 관현 많은 서적이 있지만 TPS를 처음 입문한다면 이 책은 정말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도요타가 왜 이런 생산 방식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 같다. 절판되어 구할 수는 없지만 어떤 기법의 책이라도 이런 종류의 책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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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 유혹과 저주의 미술사 해시태그 아트북
알릭스 파레 지음, 박아르마 옮김 / 미술문화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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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녀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 등장하는 키르케다. 그 뒤로 마녀는 유렵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만들어졌으며 16-17세기에는 그 절정을 이뤘다. 마녀의 분포도를 보면 유럽에 집중되어 있으며 이외로 미국과 러시아 정도다. 아무래도 토속 신앙이 없이 가톨릭으로 통일된 그들에게 샤먼은 하나의 악으로 판단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남성 중심적 사회를 만들었던 가톨릭은 이 사회구조에 대항하는 여성들을 마녀로 만들지 않았을까? 그 당시 여성은 남성에 비해 미천한 존재로 대우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여성은 잠정적 마녀였고 아무런 증거 없이 마녀가 되고 또 처형되었다. 이런 <마녀 사냥>은 한 동안 계속되었다.


  그럼에도 마녀에 매력을 느끼는 예술가들은 많았다. 광기를 가진 마녀는 초자연적 존재였다. 마녀라는 존재를 통해 강렬한 상상을 하는 것은 예술가들의 감각을 자극했던 것 같다. 마녀를 표현은 수많은 작품들에서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은 '꼭 봐야 하는 작품'과 '의외의 작품'으로 구분 지어 40점의 명작을 보여 준다. 마녀라는 존재는 예술가들이 에로티시즘을 표현하는데 중요한 요소였던 것 같다. 19세기에 누드를 그릴 때에는 백인 여성의 누드를 사실적 표현하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마녀라는 존재는 영감의 또 하나의 원천이었던 것 같다. '팜 파탈'이라는 것을 표현할 때에도 마녀는 잘 어울렸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마녀는 또 한 번 반전을 맞이한다. 페미니즘 운동과 함께 그동안 마녀에 쓰인 환상이 벗겨지면서 마녀는 여성 혐오 및 폭력에 맞서는 강한 여성의 상징이 된다. 수난과 핍박 속에 존재했던 마녀는 가부장제 사회가 꺼리는 여성의 힘의 상징이 된 것이다. 지금의 마녀는 '섹슈얼리티'라는 이미지로 매력적인 여성을 표현하는데 곧잘 사용되고 있다. 마녀라는 것이 생겨난 이후로 가장 긍정적인 단어가 되었고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마녀의 역사는 여성이 가지는 사회의 위치적 변화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 책은 시대 별로 그려진 명작과 함께 꼼꼼한 해설이 그림을 즐기는데 큰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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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 강의 이름 모를 여인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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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읽는 기욤 뮈소의 작품이라 사실 조금 갸우뚱했다. 기욤 뮈소가 글을 이렇게 적었던가?라는 생각을 잠깐 했다. 세밀한 묘사보다는 닮은꼴을 얘기하고 알 수 없는 결말을 내어 놓고 마무리해 버렸다. 


  디오니소스 신화를 이용하여 범죄를 저지르는 예술인 집단을 글에 녹여낸 이 작품은 밝은 세상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BNRF(국제 도주자 수색대)에서 리더를 맡고 있던 록산은 BANC(특이 사건 국)으로 전출된다. BANC는 원래 독특한 사건을 주로 맡는 조직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한직이 되어 있다. 범죄를 해결하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록산에게는 좀이 쑤시는 공간이 될 터였지만 이내 사건이 터지고 만다. 센 강에 나체로 투신한 여인을 하천 경찰대가 구하면서 범죄 집단과 록산의 싸움은 시작된다. 록산은 BANC의 전 국장이었던 마르크 바타유의 조사 자료에서 이 사건의 실마리를 얻는다.


  그리스 디오니소스 신화를 숭배하는 집단. 디오니소스 교로 칭하는 이들에게는 축제였다. 술과 노래에 취한 다음 횃불을 들고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며 눈에 보이는 동물들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고 제물로 바쳐진 짐승 또는 어린아이를 산채로 뜯어먹고 피를 마시기도 했다. 이것은 그들에게 신과의 합일이었고 영생의 행위였다. 디오니소스 교는 그리스의 에로티시즘과 결합되면서 통음과 난무가 생겼고 이 행위는 현실을 벗어나 신의 세계를 느낄 수 있는 신비적인 요소 인해 사람들에게 엄청난 매력으로 다가갔다. 그것에 위기를 느낀 그리스는 이를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축제 형식으로 만들어서 행하게 했다.


  작품 속 범죄자들은 자신의 행위를 축제라고 했다. 죽을 사람들은 제물이었고 그들에게는 염소 가죽을 씌었다. 그들에게 자유는 현실에서 완벽하게 벗어나는 것이다. 그것은 현실 파괴였고 그들은 완벽한 연기를 통해서 새로운 세상을 잠깐 살아갈 수 있는 자유를 누린다고 느꼈다. 


  센 강에 이름 모를 여인이 투신을 한 그날은 축제의 서막이었다. 축제는 5일 동안 계속된다. 사건의 실마리를 쫓으면 쫓을수록 이해할 수 없는 증거들만 나타나지만 디오니소스 신화와 연결 고리가 생기면서 점점 범죄의 본체에 다가갈 수 있게 된다. 3명의 제물의 필요한 때, 제물로 지명된 사람들은 마지막까지 목숨을 유지할 수 있을까?


  범죄의 동기가 생각보다 신선했고 디오니소스 교에 대해서 찾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굉장히 부드러운 문장 때문인지 긴장감이 조금 덜했다. <양들의 침묵> 같이 심장을 죄는 느낌은 조금 부족했던 것 같다. 기억으로는 저자가 문장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보다 문장의 세밀함으로 글을 이끌어 가는 것을 더 잘하기 때문인 것 같다. (이건 희미한 기억 속의 예전 작품의 느낌이다.)


  그럼에도 독특한 범죄 동기. 물 흐르듯 흘러가는 문장들. 잘 엮여있는 스토리는 역시 기욤 뮈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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