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회의 611호 : 2024.07.05 - #지속 가능한 로컬 브랜딩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지음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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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회의 611호는 지속 가능한 로컬 브랜딩이 주 테마다. 기획회의는 로컬 브랜딩에 대해 지속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 정도면 진심이다. 출판 전문지로서 로컬의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다루는 것이 출판과 관련된 일일지 아니면 의무감일지는 아직까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다만 지속적으로 비슷한 얘기의 연속이 되는 것만은 사실이다.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조명해 보는 이 잡지는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로컬'의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제주나 양양이 로컬로서 가지는 의미는 있지만 로컬은 여전히 대도심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의 하나가 되어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단순한 일탈의 한 영역만으로는 지속적일 수 없다. 

  로컬이 지속 가능하려면 결국 로컬에서 지속적으로 살아온 사람들 혹은 살아갈 사람들이 주를 이뤄야 한다. 이번 호에도 역시 '삶'을 강조하고 있다. 지연주민의 삶이 빠진 '로컬'은 있을 수 없고 그것을 '브랜딩'하는 일은 존재할 수 없다. 브랜딩에는 인내가 필요하다. 인내한다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을 수 있다.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것이 더 어울릴 것 같다.

  로컬리티는 그 자체로 고정된 의미가 없다. 그래서 우리말로 번역하지 못하고 '로컬'로 쓰인다. 여러 의미를 담는 동시에 여러 상징성을 가진 것도 사실이다. 탈식민성, 소수성, 타자성, 주변성, 다양성 등등으로 결합할 수 있다. 로컬을 살리기 위한 노력은 여러 방면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지역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도시재생, 지역혁신, 균형개발. 지역을 활성화시키려는 노력은 지역을 브랜딩 하려 한다. 지역의 자원을 이용한 다양한 시도는 다양한 방식으로 지역을 변화시키려 한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삶은 이어져야 한다. 브랜딩이 끝나면 그것으로 끝나 버리는 것이 브랜딩이 삶과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호에서 유심히 살펴본 챕터는 '사랑입니다'였다. 최근 딸아이는 로맨스를 자주 읽는다. 소개해 준 책들은 딸이 벌써 읽은 것들이었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송수연 평론가의 큐레이션으로 더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소개해 준 <박하네 분짜>는 장바구니에 담아 뒀다. 아이들의 꽁냥꽁냥은 언제 봐도 귀여운 것 같다.

  기후 위기에 대한 칼럼과 에세이에 대한 얘기, 그리고 웹소설에서의 로맨스에 대한 얘기도 담겨 있다. 더불어 여전히 무거운 문제지만 해결되지 않고 있는 의료 증원에 대한 글은 이번 문제를 '부양'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서 설명해 줬다.

  계속해서 등장하는 로컬이라는 단어의 중요성은 인지하게 되었지만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글들의 연속은 신규  독자에게는 의미 있을 것 같지만 계속 읽어오는 입장에서는 반복의 느낌이 강했다. 대신 큐레이션이 좋았다. 다뤄지는 모든 것이 좋을 순 없기 때문에 이번 호도 좋은 책 여러 권 소개받았다는 점에서 괜찮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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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파의 시간 - mRNA로 세상을 바꾼 커털린 커리코의 삶과 과학
커털린 커리코 지음, 조은영 옮김 / 까치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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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벨생의학상을 받은 커털린 커리코의 자서전이다. 과학자의 삶이 늘 돌파의 시간이었을 거라 이런 제목이 이상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적을 만한 것일까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하지만 그녀의 삶은 늘 돌파의 시간이었다. 남들이 주목하지 않는 일을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과학에도 돈이 필요하니까. 돈이 되지 않는 일은 늘 핀잔을 받는다. 하지만 성공하면 그들은 태세 전환이 빠르다. 참 잔인한 세상이다. 그 속에서 mRNA하나만 보고 달려온 인생이다. 그 모든 인연이 행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는 본인의 생각에 나 역시 깊은 감사를 하게 된다.

  과학의 외곽에서 단숨에 중심으로 들어설 수 있었던 것은 신념을 가지고 묵묵히 돌파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까치글방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코로나19가 터지고 화이자 백신이 세상이 나오기까지 세상은 공포 속에 살았다. 팬데믹은 많은 것을 가져갔지만 새로운 과학을 우리 앞에 가져다주었다. 다음 팬데믹과 싸울 무기가 될 것이다. mRNA백신은 그렇게 세상 사람들에게 처음 선보였다. 기존의 방식과 다른 방식이어서 여러 논란이 있었지만 결국 세상을 바꾼 건 mRNA였다.

  백신에는 크게 DNA, mRNA, 돌기 단백질 같은 방식으로 제작된다. 개발 기간이 오래 걸리는 단백질 방식을 제외하면 대부분 DNA 혹은 mRNA형이다. 지금껏 백신은 대부분 병원균을 죽이거나 약화시켜 사용했지만 최근에는 병원균의 표면 단백질만 이용한다. 이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DNA나 mRNA가 필요한 것이다. 

  DNA 백신은 이미 널리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에 많이 널리 사용된다. 그래서 초기 mRNA 백신이라는 말에 다들 두려움이 있었다. 나도 RNA라는 말은 에이즈 관련을 글을 읽을 때 자주 봐서 그런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RNA가 DNA보다 안전한 것 같다. RNA는 사라지지만 DNA는 아주 낮은 확률로 DNA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세상은 mRNA는 오랜 시간 연구되어 온 기술이라며 안전한 기술이라고 했다. 하지만 책을 읽어보면 의학계가 RNA를 얼마나 푸대접했는지 알 수 있다. 모두가 DNA나 게놈이 빠져 있을 때에도 홀로 RNA를 연구한 커리코 박사의 집념이 아니었다면 이번 팬데믹은 지금과 다른 결과로 이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의 학계는 얼마나 대단한 학술지에 투고하고 얼마나 많이 인용되어 얼마나 많은 연구비를 따올 수 있냐가 중요하다. 과학자이기보다 경영자의 같은 과학계의 이면을 책은 비판하고 있기도 한다. 그것이 기초 과학을 하는 사람의 가장 어려운 점이다. 마음 놓고 연구를 할 수 있는 환경. 과학은 알지 못하는 것을 향해 가야 하는데 돈벌이로 향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자신의 선생님의 이야기로 시작하고 몇 권의 책을 이야기한다. 누군가에게 영감과 신념을 만들어 주는 것은 생각보다 단순한 것일 수 있다. 그녀에게는 어디에서 누구와 라는 것보다 무엇을 한다는 것이 더 중요해 보였다. 끝까지 RNA를 연구하고 싶었다. 그것이 공산국가였던 헝가리에서든 미국에서든 교수가 되지 못해 선임연구원이 되어서든 상관없었다. 그저 연구만 할 수 있으면 되었다. 

  RNA로 치료제를 만들고 싶었던 그녀는 면역학자 드루 와이스먼을 만남으로써 RNA가 백신으로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합성된 RNA가 인체에 들어오면 선천면역 반응이 일어나는데 이것은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하지만 연구와 연구를 거듭함으로써 siRNA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녀의 많은 인연들은 끊어질 듯 한 그녀의 연구를 이어주는 좋은 사람들이었다. 늘 자신의 연구에 대해 끊임없이 설명해야 했던 그녀는 어느새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때를 만났다. 모더나와 같은 업계 관계자들은 학계와 달리 그녀의 연구에 주목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말한 연구 research는 결국 re-search로 끊임없이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이었다. 지린한 시간을 반복하며 결과를 내는 것이었다. 그녀의 집념은 무서울 정도였다. 모든 선택은 자신이 연구를 이어갈 수 있냐 없냐의 문제였다. 그녀를 지지한 가족들을 만난 것도 큰 행운이었고 육아를 모두 나라에서 해결해 주는 헝가리에서 시작한 것도 다행이었는지 모를 일이다.

  핑계는 할 생각 없을 때나 하는 거라고 말하는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매진했다. 리더가 없어도 재료가 없어도 제조 방법을 몰라도 그녀는 끊임없이 만나고 물었다. 그녀는 여러 학문과 연결되었고 그것이 면역학까지 연결될 수 있었던 과정이었다. 여러 학과에서 사용하던 그들만의 노하우를 배워가며 자신의 연구에 연결하던 그녀의 행동에는 정말로 핑계라는 것은 없었다. 오직 행동만 있을 뿐이었다.

  모든 과학은 서로의 영역을 조금씩 걸쳐 있다. 여전히 경계를 나누는 것은 좋지 못하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때 해결되는 문제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것이 요즘 강조하는 다양성이다. 우리에게 매우 어려운 작업은 다른 이들에게는 쉬운 작업일 수 있다. 문제를 드러내 놓고 서로 공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더불어 미지의 것을 향해가는 과학자를 믿어주는 일도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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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 살지 않으면 남을 위해 살게 된다 - 지혜에 관한 작은 책, 엥케이리디온
에픽테토스 지음, 노윤기 옮김 / 페이지2(page2)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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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예 신분으로 태어나 한쪽 다리가 불편했던 에픽테토스. 그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았길래 수많은 이들의 스승이 되어 존경을 받았을까. 스토아 철학의 정수라고 하는데, 아직 스토아 철학을 파보진 않아서 이해할 순 없지만 책의 모든 문자를 하나로 뭉치면 결국 "바꿀 수 없는 것을 걱정하지 마라"가 된다.

  손에 들고 다닐 만한 작은 것이라는 뜻의 "엥케이리디온"인 이 책은 포레스트북스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53개의 문장을 담아 가볍게 설명하고 있는 이 책은 작지만 알차다. 순식간에 후루룩 읽어버릴 수도 있지만 한 문장에 오래 머무를 수도 있다.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라는 듯한 메시지가 주요했다.

  에픽테토스의 말은 우리가 이미 익히 들어 알고 있을 법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만큼 많은 인용이 된 문장들이었다.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려 하지 마라'라는 말은 가장 많이 듣는 말 중에 하나다. 그것은 개인의 영역에서든 사업의 영역에서든 두루 쓰인다.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은 '운'의 영역인 것이다.

  남의 행복과 불행에 왈가왈부하지 않으며 남의 시선과 평가에도 집착하지 마라고 한다. 집착은 곧 자신을 노예로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판단의 기준을 외부로 돌리면 우리는 결국 스스로 만족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린다. 통제가 되지 않는 것에는 짜증과 조바심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들러식 사고가 종종 보이는 걸로 봐서 아들러는 에픽테토스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은 자신이 그렇게 하기로 했기 때문이라는 것과 같은 말이 그렇다. 그것이 자신을 지키는 내면의 기재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본능이든 이성이든 결국 자기 보호 기재가 동작했다는 것이고 그것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것이니 틀린 말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무엇을 바라보고 생각할지도 자신에게 달려 있음 또한 마찬가지다. 내가 보고 싶고 내가 되고 싶은 그런 것들은 모두 자신에게 달려 있다. 자신이 하기로 한 일은 세상과 상관없이 하면 된다. 물론 올바른 일을 해야 한다. 스스로 올바르다고 생각하면 세간의 시선이 두렵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문장은 실패에 관한 얘기였던 것 같다. 모든 인간은 과녁을 세울 때 맞추기 위해 세운다. 화살이 과녁에 맞지 않았더라도 좌절할 필요는 없다. 그저 맞추겠다는 그 마음만 잘 간직하면 된다. 떨어진 화살을 주워 가슴에 찌를 필요는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행동이다. 무엇을 안다고 떠드는 행위는 자랑할만한 것이 못된다. 양은 먹은 풀을 토해내 자기가 먹은 풀의 양을 확인받지 않는다. 충분히 소화시켜 양털과 젖으로 보답한다. 아는 것을 떠들어 대는 것보다 그저 행동으로 보여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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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의 너를 나는 영원히 잊지 않아 토마토미디어웍스
후유노 요조라 지음, 박주아 옮김 / 토마토출판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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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로맨스의 클리셰라고 하기엔 이야기의 전개가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와 거의 동일했다. 작가는 '스미노 요루' 작가의 찐 팬이거나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를 감동적으로 읽었거나 했을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이 형식이 일본 로맨스의 하나의 틀이라고 해야겠다. 클리셰 위에 스토리를 올리는 일은 만만한 작업은 아니다. 하지만 작가는 꽤 잘 해낸 듯하다.

  진짜 웃음. 혹은 행복을 주고 싶은 소년의 간절함이 담겨 있는 이 작품은 토마토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클리셰를 쓴다는 것은 양날의 검이다. 너무 뻔한 스토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반대로 독자가 기대하는 그 장면을 맛깔나게 보여준다면 독자는 환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보여주고 싶은 것, 듣고 싶은 것을 들려주는 것. 뻔한 걸 뻔하지 않게 하는 것이 바로 클리셰를 이용하는 작가의 힘이다.

  병원, 소녀, 불치병, 기록지, 해맑음, 옥상, 여행, 선긋기, 죽음, 고통 그리고 추억을 안고 나가는 소년. 일본 로맨스의 클리셰를 넘어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에서 쓴 대부분의 것을 가져왔다. 그럼 물을 수밖에 없다. 작가는 그런 비난을 어떻게 이겨 낼 건가?

  작품은 이야기와 와전 동떨어진 한 프로 사진작가의 코멘트로부터 시작한다. 회상이라는 클리셰마저도 동일했지만 기대가 되는 도입부부터 잘 풀어나갔다. 그리고 에필로그까지 잘 갈무리했다. 

  작품은 매끄럽게 기대감을 품고 잘 쓰였다. 단지 내가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를 오디오 파일로 외우다시피 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즐겁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첫째로 내가 의외로 이런 장르를 좋아하는 듯하다는 것과 둘째로 매끄럽게 잘 쓰여 있다는 점이다. 작가가 문장으로 클리셰를 덮어주었다.

  늘 당돌하고 해맑은 아이에게 진짜 웃음을 선물하고 싶은 남자아이를 응원하게 된다. 그 마음 하나면 작품은 어떤 전개든 어떤 클리셰든 중요해지지 않는다. 비슷한 노래를 계속 듣게 되는 것과 비슷한 다큐멘터리를 계속 보게 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 작품에 빠질지 말지는 바로 남주의 마음에 동화되느냐 마냐가 결정할 것 같다.

  눈물을 흘리고 있지만 누구보다 행복한 듯 웃는 사진에서 모든 것이 말해주고 있다. 가지고 싶을 만큼 예쁜 커버, 말랑말랑한 스토리. 이야기의 진행을 모두 간파할 수 있지만 읽게 되는 그런 맛이 있는 책이었다.

  이런 것이 점점 좋아지는 나는 청춘인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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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공학 - 불확실한 세상에서 최선의 답을 찾는 생각법
빌 해맥 지음, 권루시안 옮김 / 윌북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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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학이 삶이라는 이 책은 분류가 무려 '인문'이다. 인문은 '삶'에 가깝지만 공학과는 또 한 없이 멀어 보인다. 저자는 무슨 말이 하고 싶었을까? 공학의 사고방식을 얘기하다가 자연스럽게 공학 역사를 짚어본다. 그러다 마지막에 울분을 토하듯 말한다.

 공학이야 말로 인간적인 것이야!,라고.

  공학적 사고방식은 어떤 것인지에 얘기하는 이 책은 윌북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한 명의 공학자로서 이런 책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공학이야 말로 실천적이며 실용적인 학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학이야 말로 허공을 휘두르고 있는 손에 뭐라도 쥐어줄 수 있는 학문이다. 공학은 인간에 가장 가까이 닿아 있다.

  책의 시작과 함께 저자는 공학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

 '성공하면 과학의 기적이고 실패하면 공학의 실패다'

  많은 기술들은 결국 과학적이지 않고 공학적이라고 할 수 있다. 공학은 과학을 현실화해 주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성공은 늘 과학의 뒤편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다. 리더가 된다라고 외쳐도 실무자가 해내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것과 같다. 하지만 과학은 진리로 인정받고 말고의 여부만 있을 뿐 성공과 실패 위에 올려져 있는 것 같진 않다.

  과학과 공학은 애초부터 지향점이 다르다. 과학은 진리를 찾지만 공학은 방법을 찾기 때문이다. 과학은 공학이 쓸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해 줄 뿐이다. 어떤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해내고야 말겠다는 절실함이 공학에는 존재한다. 그래서 공학은 완전무결한 이론 위에 존재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의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발전한다. AI의 동작 원리를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AI는 발전하고 있다. 양자 역학이 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백색 LED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완벽하지 못하다는 점에서 공학은 그 자체로 책임을 가지고 있다. 기술이라는 건 그것을 개발한 사람의 마음이 담겨 있다. 결국 편향적 기술이 된다. 에어백 기술이 백인 남자 기준을 테스트하던 거라든지(지금은 가족 세트로 테스트) 코닥이 처음 개발한 필름에는 흑인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는다라는 지가 대체로 그렇다. 몇 해 전에는 구글에서 만든 안면 인식 기능이 여성이나 유색 인종에 제대로 반응 않는 문제도 있었다. 많은 테스트들은 개발자 주위 환경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자연스레 결과의 편향도 존재한다.

  공학은 누구 한 명의 천재가 턱 하니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다른 학문도 마찬가지지만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야만 이룰 수 있다. 공학자를 영웅시하면 그 긴 역사를 만든 많은 공학자들의 이름은 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가장 위대한 공학자가 이름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가장 성공한 공학자만 이름을 남긴다. 대표적인 예가 에디슨이라고 할 수 있다.

  단독 발명자에 대한 추앙은 공학적 방법을 지워버린다. 모든 공학적 경이를 과학적 혁신으로 치부하기 쉽다. 그 과정 속에서 많은 사람의 업적까지도 가려버린다. 개발 과정에 참여한 사람들의 공은 무대 밖으로 밀려난다. 공학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동료를 잃는다. 

  공학은 많은 기술을 인간을 위해 사용하려 노력해 왔다. 레이더 앞에 있다가 호주머리의 과자가 녹아버리는 원리로 전자레인지는 만들어졌다. 세계 대전 이후 너무 많이 남아버린 탱크 때문에 굴삭기는 발명되었다. 우연한 계기와 어느 곳으로 연결시키려는 끈질김이 공학적 사고방식이다. 인간이 도구를 처음 쓸 때부터 가지고 있는 본능과 같은 학문이다.

  공학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학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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