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옳은가 - 궁극의 질문들, 우리의 방향이 되다
후안 엔리케스 지음, 이경식 옮김 / 세계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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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빠른 기술 발전 속에서 철학과 윤리는 뒷전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인간답게 살아가는 사색보다는 당장 잘 살기 위해서 익히는 기술들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IT와 경제 그리고 그 사이를 채우는 인간관계와 리더십의 문제는 늘 중요한 관심사다. 그런 와중에 갑자기 등장한 마이클 샌들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신선한 질문이었고 꽤 오랜 시간 회자되는 책이 되었다. 하지만 책 자체가 매우 어려웠기 때문에 그리고 현실에 매칭 시키기에는 많은 고민이 필요하기 때문에 어렴풋이 알게 된 정의가 현실에서 좌절되는 모습에 실망만 더 커졌는지도 모르겠다.


  같은 질문으로 그럼 '무엇이 옳은가'라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윤리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세상을 통해서 조금은 더 포용성 있고 조금은 더 유연한 사고를 바라고 있는 이 책은 세계사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책은 우리가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는 '옳은 일'에 대한 정의로부터 파고들며 의문을 제시한다. 당신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는 그것은 절대적인 것인가?라고 묻는다. 인간은 자신의 옳고 그름의 판단의 기준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은 옳은 판단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과거의 평범했던 모습에 대해서 미개하다니 잔인하다니 평가를 한다. 그렇다면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모두 비윤리적인 사람들이었을까?


  실내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진을 보여 주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물론 나이 든 흡연자들은 그때가 좋았었지라고 반응할지도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실내에서 담배를 필 수 있느냐고 화를 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여전히 실내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옳다는 것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것이다. 


  옳다는 것은 어떻게 익히게 될까? 당연하게도 우리는 부모님이나 선생님처럼 우리보다 한 두 대 앞선 사람들의 가르침을 받으며 옳음을 익힌다. 그것도 아주 강압적인 방법으로 말이다. 그러는 중에 혁명적인 집단이 이의를 제기하고 그것이 다수의 의견이 됨으로써 옳음의 기준은 옮겨 간다. 이 변화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지금 옳다고 하는 나의 행동이 시간이 지난 뒤에 악인의 모습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기술의 발달은 이런 윤리적 변화와 함께 맞물려 간다. 특히 바이오산업은 더 밀접할 수밖에 없다. 인간을 연구하는 일은 항상 윤리적인 문제 앞에 놓여 있다. 유전자 재조합에 의한 개량된 인간을 만드는 일은 그렇게 먼 미래의 일만은 아닐 것 같다. 지금도 논쟁 중인 줄기세포를 이용한 장기 이식은 어디까지 생명이라는 문제 앞에 놓여 있다. 낙태를 여성 인권을 위해서 옹호할 수 있던 것이 인공 자궁에서 잉태하는 태아에 대해서는 적용할 수 없게 된다. 식탁 위의 가짜 고기들은 진짜 고기를 먹는 사람들을 야만인 취급하게 할 수도 있다. SNS에서 증발되지 않는 기록을 남기는 우리는 어느 날 갑자기 엄청난 비난 앞에 놓일지도 모를 일이다.


  옳고 그름의 잣대는 사회적 구조나 시스템에도 적용할 수 있다. 노예 제도는 비인간적인 제도였다는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다. 정신병으로 치부되었던 성소수자들 또한 이제는 인정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사회적 구조는 지금의 형태가 옳은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는 최고이고 사회주의는 공산당이나 하던 거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지금의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는 승자독식을 만들어내고 있고 많은 부를 가진 사람이 더 많은 부를 가지는 형태를 만들었다. CEO의 역할이 중요하기는 일반 사원의 수십 배에서 수백 배를 받을 만큼의 존재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더 많이 버는 사람에 대해 더 강한 세금 정책이 있어야 함에도 사회 구조는 정반대로 흘러갔다. 


  부의 양극화는 또 다른 곳으로 번진다. 최대의 이윤을 쫓아가는 자본주의에서 인간의 기본권이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늘어나는 임금 대비 충분한 이윤이 나질 않는 부분에서는 급격한 비용 상승이 발생하기도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교육과 보건이다. 지금의 교육은 예전에 비해서 그렇게 나아지지 않았지만 투입되는 비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인간은 농경을 시작한 이래 더 나은 뇌를 가진 적이 없다. 그저 기록/검색하는 방법이 개선되고 서로의 지식을 나누는 방법이 발전했을 뿐이다. 그렇다고 학업 성취도가 월등히 늘어난 것도 아니다. 장난감 가격이 반 값이 되는 동안 학비는 2배를 훨씬 넘어 버렸다. 의료의 경우에도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지만 돈이 되지 않는 약은 만들지 않는다. 돈을 지불할 능력이 없는 가난한 나라에서 창궐하는 질병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치료비가 상승하는 만큼 병원장과 의사들의 급료는 올랐지만 의료 환경은 그렇게 많이 개선되지 않았다.


  이 책 또한 <정의란 무엇인가>처럼 어떤 답을 주려고 쓰인 것은 아니다. 옳고 그름에는 여러 요소들이 작용하고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두 의견에도 개개인의 신념이 자리하고 있다. 저자가 얘기하고 싶은 말을 한 문장으로 줄이면,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아닐 수 있다'이다. 자기 의심과 고민을 하고 상대의 의견을 단칼에 잘라내지 말고 들어 볼 수 있는 아량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저자는 여러 방면에서 생각해볼 만한 화두를 던졌다. 그 속에서 경제 선진국, 복지 후진국 미국의 민낯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세월이 흘러도 생산성은 늘지 않고 비용만 증가하는 보건과 교육에 대해서는 국가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기술과 함께 윤리는 빠르게 변화할 것이다. 어제는 옳음이 오늘은 그름이 될지도 모른다. 빠르지 못한 변화는 어쩌면 인류에게 재앙을 안겨 줄지도 모른다. 그리고 후대 세대에게 어리석음에 대한 혹평을 견뎌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고 미래의 윤리에 대해서까지 예측하며 살아갈 수는 없다. 단지 타인의 옳음에 대한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생각해 봄으로써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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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색 여인에 관한 연구 레이디 셜록 시리즈 1
셰리 토머스 지음, 이경아 옮김 / 리드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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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추리 소설을 좋아한다면 한 번쯤을 읽어봤을 책이며,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그 존재는 알고 있는 세계적인 탐정이 바로 '셜록 홈스' 다. '셜록 홈스가 여성이었다면?'이라는 궁금증에서부터 시작하는 이 책은 많은 부분 '셜록 홈스'의 내용을 따라간다. 단편인 줄 알았는데 시리즈 물이며 셜록 홈스의 에피소드를 모두 이용할 생각인 것 같았다.


  여성의 대우와 활동이 억제되어 있던 빅토리아 시대에 여성인 셜록 홈스가 사건을 맡고 해결하는 이야기를 하는 이 책은 리드비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이 책의 제목 '주홍색 여인에 관한 연구'는 셜록 홈스의 '주홍색 연구'를 그대로 가져왔다. 셜록과 왓슨이 만나 처음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이다. 첫 번째 작품답게 사건보다는 배경과 인물에 대해서 많은 부분을 할당할 수밖에 없다는 느낌이 강했다. 더 군다니 빅토리아 시대이고, 주인공이 여성이었고 그 당시에는 좀처럼 할 수 없었던 사회 활동을 하게 된 명분을 만들어야 했다.


  셜록 홈스는 가상의 인물이며, 그에게 지혜를 빌려주는 사람은 '샬롯 홈스'이다. 어려서부터 특별했던 아이는 결혼보다는 사회생활을 원했고, 그것을 위해 아버지와 약속을 했지만 아버지는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샬롯은 어떤 이와 성관계를 맺어 혼사를 입에 올리지 못할 사람이 되려 했고, 결국엔 집을 떠나게 된다.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이 머물 곳은 많지 않았고 돈을 번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절망으로 떨어지면서도 냉정함을 유지하던 샬롯에게 왓슨이 나타난다. 그녀는 다른 이들보다 꽤 진취적인 생각을 가진 인물이었다.


  샬롯에게 투자를 하기로 한 왓슨은 여흥으로 시작했지만 샬롯과 함께 당시 사건을 파헤치게 된다.


  최근에 등장하는 많은 추리소설들은 심리적이면서도 과학적인 부분이 많아서 굉장히 전문적이며 디테일하다. 그런 면에서 오랜 시절이 흐른 이 소설에서 그런 긴박감을 느끼는 것은 조금 무리가 아니었나 싶었다. 사건은 정지된 상태였고 비밀을 풀어가는 단서를 모우는 단계에서도 어떤 극적인 장면이나 위험이 출몰하지 않았다. 단조로운 단서 하나하나에 감탄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원래의 셜록 홈스에서도 오류가 여럿 있다고 했고 첫 권은 습작의 느낌도 많았으니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 최근의 과학수사 추리물에 익숙해서 전개가 조금 느리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단순 추리물을 넘어서는 부분이 있는데,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음으로써 그 시대의 여성 차별과 그것에 대항하는 샬롯의 모습에서 공감을 받고자 하는 흔적이 많았다. 좋은 가문과 결혼하는 것이 가장 좋은 삶이었다. 여성이 직업을 가지려면 전문 교육 기관을 졸업해야 하는데, 그마저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런 시대에 당당히 반기를 들은 샬롯에게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닥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세상은 아직 여성에게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에 결국 사건 해결로 돈을 벌게 되지만 그 모든 것들에 어느 남성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독립적인 존재가 되었다는 여성상 또한 독립적으로 달성할 수 없었음 얘기한다.


  익숙한 존재들이 여성으로 바뀌면서 나타나는 신선함이 있었고, 추리물이라고 하기엔 아직은 추리에 본격적이지 않다. 샬롯이 셜록이 되려면 꽤 많은 이야기가 필요했고, 느닷없이 여탐정 셜록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말을 귀 기울지 않는 시절에 지성의 최고봉에 있기 위해서 어떤 행동이 필요한지를 보여주며 독자와 신뢰를 얻는 작업을 하는 듯했다. 그 이야기는 고전에 닮아 있었기 때문에 첫 페이지부터 사건이 터지길 기대하며 페이지를 넘긴 독자에게는 당황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다.


  충분한 상황 설명을 마친 첫 번째 이야기였기 때문에 두 번째 이야기부터는 보다 본격적이게 전개가 될 것 같다. 사건도 해결해야 하며 여성인 것도 숨겨야 한다. 어쩌면 원래의 셜록보다 더 어려움이 많고 더 흥미진진할 것 같기도 하다. 사실 남장을 한 셜록을 기대했지만 당당하게 여성의 옷을 입고 추리를 하고 있는 모습에 예상이 빗나가는 신선함은 있었다.


샬롯이 앞으로 어떻게 지성체로 인정받을지가 더 궁금한 추리소설이면서도 인문학적인 작품이다. 등장하는 여성들이 툭툭 던지는 말속에 존재하는 뼈를 찾아보는 재미도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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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을 그리면서 배운 101가지 101가지 시리즈
이종범 지음 / 동녘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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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들은 글 쓰는 법에 대한 책을 쓴다면 웹툰 작가들은 그림을 그리는 법에 대한 책을 많이 쓴다. 조금 더 나아가면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레이터, 매디방, 클립 스튜디오 같은 전용 앱의 사용법에 대한 책도 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은 웹툰을 그리는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다. 사실 글을 쓰는 마음가짐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 페이지에 한 문장씩 영단어 노트처럼 한 페이지 한 페이지 글과 그림을 통해 생각을 만들어내는 이 책은 동녘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나에게 익숙지 않은 작가의 이름은 야구 선수를 떠올렸지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첫 문장으로 만나니 만감이 교차했다.


'재미있는 만화를 그리는 유일한 방법은 재미없는 만화를 그려보는 것이다'


  재밌는 글을 적어보려 여가 시간마다 꾸준히 읽고 쓰고 있지만 나의 작품에 대한 첫 문장도 시작하지 못하고 있는 나를 질책하는 듯한 문장이었다. 글쓰기 책은 글을 써 본 사람에게 유용한 책이라는 어느 분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재미없고 형편없는 작품이라도 끝을 맺어 보았을 때 비로소 레벨업을 하는 것이다. 경험치 게이지가 아무리 채워져도 100%가 되지 않으면 아무런 능력도 증가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면서 한 문장 한 문장씩 경험에서 나오는 얘기들을 해 준다. 사실 책이라기보다는 그냥 툭툭 던지는 대사처럼 받아들이는 쪽의 생각을 물어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개중에는 작품을 만들면서 필요한 스킬도 있었고 힘든 일에 대한 푸념도 있다. 그럼에도 만화를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오랜 세월이 흐르더라도 만화에 대한 그런 감정이 있는 사람이야 말로 만화를 그리게 되는 것이다.


  무언가를 창작하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가볍게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한 번씩 무심코 열어 아무 페이지나 읽어보면 많은 위로가 될 것 같다. 무언가를 시작하려면 지금 바로 시작해라.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고 모두에게 사랑받는 사람도 없다. 부단히 고민하고 그리다 보면 어느새 성장해 있지 않을까.


  나도 하나를 마무리하면 일정을 다시 조절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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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에 속지 않고 숫자 읽는 법 - 뉴스의 오류를 간파하고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가이드
톰 치버스.데이비드 치버스 지음, 김성훈 옮김 / 김영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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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학은 우주의 진리를 풀어나가는 하나의 도구로 어렵지만 그만큼의 신뢰를 가지고 있다. 세상에는 수학을 좋아하지 않는 수포자들이 많이 있지만 그들도 숫자에서 오는 믿음은 가지고 있다. 회사에서는 '정량적'인 것을 좋아한다. 숫자는 객관적이다. 하지만 그것을 해석하는 것은 모두 옳은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정보화 시대. 많은 미디어는 엄청난 양의 뉴스를 쏟아내고 있다. 어제와 다른 오늘의 이야기를 마치 진리인 마냥 얘기한다. 하나 같이 연구를 인용하기도 하고 당당하게 숫자를 제시한다. 그들은 미디어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는지 누군가 던져 준 미끼를 덥석 물어 베끼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분명한 것은 '출판 편향'은 가지고 있다.


  출판 편향은 한 가지의 주제에 대해 여러 자료가 있지만 자극적이거나 흥미로운 주제만을 다루는 경향을 가지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언론만의 문제는 아니다. 연구 자료 또한 편향성을 가진다. 식당에 애국가가 나오면 한식을 먹을 확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그렇지 않다는 연구 결과보다 흥미롭고 두 연구가 동시에 연구자료를 내놓더라도 한쪽만 출판될 가능성은 얼마든 지 있다. 이것이 사람의 생명에 관련된 것이라면 웃어 넘기기 힘든 문제가 된다.


  숫자는 연구를 하는 사람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표본의 크기를 지운 상태의 데이터로 사람들을 자극하기도 하고 때로는 상대적 지표만 가지고 엄청나게 크게 느끼게 만들어 버린다. 더 심하게는 표본을 모우는 시간과 방법을 바꿔서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심한 확신을 가지고 시작한 연구는 해당 결과가 나오는 순간 표본 수집을 그만 둠으로써 주관적인 연구 결과를 만들어 내고, 많은 교란 변수들이 있는 변수를 가지고 상관성을 비교한다. 마치 초콜릿 소비가 많은 나라가 학력이 우수하다고 얘기하는 것과 비슷한다. 잘 사는 나라는 학력 수준도 높고 부의 수준도 높아서 초콜릿을 맘껏 먹을 수 있는 사람이 많은 것뿐인데 말이다. 바다에서 썰물 때만 표본을 수집하여 지구의 수면은 점차 낮아지고 있다고 주장할 수 도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미 만들어진 결과로 예측 모델을 만들어서 진리인 것처럼 말하기도 하고, 모여진 표본에서 몰려있는 부분만을 골라내 마치 어떤 이유로 인해서 그 일이 생긴 것처럼 말하기도 한다. 만들어진 표본은 수 천 가지의 이유가 모여서 생긴 것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팩트풀니스'가 생각이 났다. 세상에는 진실이 아닌데, 진실인 것처럼 통하는 것이 많다. 1차적인 책임은 제대로 연구하지 않는 연구자와 교묘하게 숫자를 처리하고 때로는 편향 출판을 하는 언론사에게 있다. 하지만 의도하지 않았다면 그들의 일도 어느 정도 이해는 할 수 있다. 결국 최종 소비자인 우리의 몫으로 돌아온다.


  이해관계가 바뀌거나 정권이 바뀌면 논조가 확 바뀌는 이유는 같은 일을 해석하는 자세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정보가 넘쳐나는 지금의 시대에 결국 자신의 책임으로 남겨지게 되는 게 조금은 씁쓸하다. 숫자가 왜곡되거나 왜곡되게 보이게 하는 22가지의 오류에 대해서 이 책을 읽으며 익히면 세상을 조금 더 사실적으로 볼 수 있게 될 것 같다.


  세상에 믿을 게 없는 건지, 선택적 믿음이 필요한 건지 참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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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뒷모습 안규철의 내 이야기로 그린 그림 2
안규철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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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이 너무 좋아 무의식적으로 장바구니에 담고, 그렇게 구매를 해버린 기억이 남은 책이다. 책장 속에 한동안을 보내다가 눈에 띄어 꺼내어 읽어본다. 사물의 뒷모습이라니 참 멋진 말과 시선인 것 같다. 동전에도 양면이 있듯 우리가 보는 모든 것들에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면이 분명 있을 것이다. 스웨덴의 시인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의 '작은 잎'이라는 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보며 아무것도 보지 않는다.'


  자신에게 세상은 자신의 인지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지만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은 어쩌면 내 눈에 닿은 그것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싶다. 12개의 얼굴을 가진 어느 관음보살상처럼 여러 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은 없지만 그래서 고민하고 사색하는 행위는 참 중요한 것 같다.


  그렇다고 이 책이 엄청난 통찰력을 얘기하는 책은 아니다. 살아가면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생각들을 적어 둔 에세이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그렇네'라며 시큰둥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렇구나'라고 돌 트이는 소리가 나기도 한다. 그런 글과 함께 담긴 담백한 삽화는 보는 눈을 즐겁게 하기도 한다. 


  몇 가지를 얘기하자면 이렇다.


  코로나 시대에 집안에 틀여 박혀 쓰는 말은 스무 단어나 될까 싶다. 반대로 시끌벅적한 바깥세상에서도 쓰는 말은 스무 단어보다 많을까? 무의미한 대화를 하며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지는 않은지, 그저 획일화된 대화만 하고 있진 않은지 고민해 본다. '안녕하세요', '수고하세요', '그럼, 이만'. 사실 그렇게 다양한 단어를 써가며 논쟁할 일도 사색을 나눌 일도 없다.


  우리가 만들어 내는 문장에는 항상 주어가 존재한다. 생략을 하든 하지 않든 말이다. 주어는 동사를 하는 주체라고 하지만 정말 그럴까. '바람이 분다'와 '봄이 온다'에서 주어인 '바람'과 '봄'은 정말 스스로 불고 스스로 오는 것일까. 태양이 있고 지구가 회전하고 기체의 대류가 발생하고 그런 온갖 것들이 행위를 만든 거라면 주어의 의지대로 동사를 사용하는 것이 성립하는 걸까. '나는 공부한다'는 순수하게 내가 공부하는 것일까. 무언가에 의해 공부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사실 말장난 같지만 그것이 우리가 쓰는 말의 뒷모습이 아닌지 생각해 본다. 물론 말꼬리 물기를 하면 결국 모든 의지의 주체는 '빅뱅'이 되겠지만, 주어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가능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어느샌가 자신의 일 외에 것을 알지 못하는 세상에 살고 있을지 모른다. '사용자 편의성'이라는 단어를 통해서 격리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요즘 TV는 예전보다 훨씬 좋아져서 많은 부분을 알아서 해주고 쉽다. 하지만 고장이 났을 때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고작 전문가를 부르는 일이다. 사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도 거의 없다. 그저 부품 모듈만 교체해 줄 뿐이다. 사실 이런 관계는 우리 삶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가 사물 혹은 사건의 겉에만 관심이 있고 그 내부에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장 난 것이 우리 자신이거나 우리가 속한 집단일 때 혹은 그 집단을 움직이는 제도일 때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평범한 사람이 평범하게 만날 수 있는 상황에서의 개인적 사색을 담은 책이다. 속지가 빳빳해서 펼쳐보기 힘든 점이 있지만 마치 도화지를 사용한 화가의 느낌처럼 글을 담았다. 그래서 두꺼운 종이가 마음에 들었다. 무심코 지나쳐도 살아가는데 큰 문제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스친 많은 것들과 나 자신의 뒷모습을 보며 자신이 깨닫지 못했던 모습을 보려는 노력은 나에 다르게 보는 능력을 가져다주는 동시에 조금 더 따뜻한 사람으로 만들게 해 줄 것 같다.


  빠르게 걷는 것만이 미덕인 시대에 잠깐 서서 쳐다봐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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