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은 짧고 일 년은 길어서 - 레나의 스페인 반년살이
레나 지음 / 에고의바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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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때 제주도 한 달 살이가 꽤나 유행을 했었다. 쉼이라는 키워드로 자신의 시간을 멈추는 방법 중에 하나였다. 숨을 돌리고 에너지를 채워 다시 달릴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보통이지만 그저 그곳을 느끼고 싶어 떠나는 사람들도 많았다. 마음의 환기는 짧은 여행, 한 달 살이 아니면 조금 더 긴 여정으로 느낄 수도 있다. 다른 장소에서 다른 사람들과 살아 본다는 것은 꽤나 좋은 경험이 되기도 한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훌쩍 스페인으로 떠나 6개월을 지낸 작가의 일기 같은 이 책은 에고의 바다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멈춤은 변화를 위한 것도 아니고 우리는 모두 길을 잃을 자유가 있다고 얘기하는 저자는 그렇게 직장을 그만두고 스페인으로 떠났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하려고 했던 건 아니다. 6개월의 스페인 살이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같은 직종에서 근무한다고 했다. 커리어 단절은 생각보다 큰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새로운 커리어로 그것을 엮어 내고 책도 썼으니 손해 본 것 같진 않다. 무심코 잃었던 길에서 진주를 발견하기도 하니까.

  사실 스페인 살이라고 해서 스페인에서의 소소한 일상을 얘기할 줄 알았다. 맨 처음 등장한 발렌시아는 그런 느낌을 채워주었다. 열정의 나라 스페인은 작은 도시마저 아름다울 것 같았는데, 그곳을 살아가는 소소한 재미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하지만 잠깐의 여행이고 어학과 여행의 목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일상을 살아가는 소소한 시선이 아닌 한 편에 기행문에 가까웠다.

  발렌시아가 지나곤 계속 다른 도시와 국가들이 등장한다. 벨기에, 스위스, 이탈리아, 모로코, 이집트, 오스트리아, 독일로 이어지는 기행기였다. 발렌시아는 유럽 여행을 위한 전초기지 느낌일까. 그래도 돌아와서 쉴 수 있다는 집이 있다는 사실은 참 좋은 것 같았다. 6개월 동안 스페인에 머물면서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던 이야기를 엮었는데 아마 그 점이 저자는 특별했던 것 같다. 

  그 긴 시간 동안 조금은 특별하지 않았을 발렌시아의 소소한 풍경들을 기대했던 나에게는 조금 주제를 벗어나는 글들이 많았다. 기행문을 읽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실세 없이 전환되는 여행지로 여행을 즐기는 이들에게는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았으나 스페인 그 자체를 즐기고 싶은 나에게는 많이 아쉬운 부분이었다. 발렌시아에서 외국인 친구들과의 티 기타가가 나는 좋았다. 잘 통하지 않는 말에 세계 각 국에서 모인 친구들의 의사소통, 친구가 되어 서로의 국가로 초대하고 놀러 간 이야기. 함께 파티를 준비하기도 하고 식료품을 사러 여기저기 다닌 에피소드가 좋았다.

  문화도 성격도 다른 친구들이 모인 곳이라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 법도 한데 발가락이라도 닮았지라는 옛말처럼 그 속에서 서로의 닮음을 인정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이 좋았다.

  사실 이 책은 소개에서 많이 비껴간 부분이 많다. 스페인에서 6개월 살이는 맞지만 책 속에는 스페인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스페인 그 자체에 집중된 에세이를 읽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아쉬움이 남는 책일 테고, 여행을 즐기는 이들에게는 스페인을 중심으로 둘레의 국가들을 여행 다니는 방법, 모습 그리고 소소한 팁들이 좋은 책일 것 같다.

  개인이 찍은 듯한 사진들이 함께 하고 있어서 그림으로 즐길 수 있는 그런 에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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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는 뇌, 망각하는 뇌 - 뇌인지과학이 밝힌 인류 생존의 열쇠 서가명강 시리즈 25
이인아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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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공지능에 대한 꿈은 아주 오래전에 등장했다. 인간과 기계가 대화하는 모습을 기대했던 앨런 튜링은 '튜링 테스트'라는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인간의 신경을 모방하여 처음으로 등장한 퍼셉트론의 등장으로 진일보하는 듯하였으나 그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인공지능은 긴 겨울을 겪게 되었다. 컴퓨터의 발달과 함께 21세기에 들어 등장한 딥러닝과 병렬 연산 처리 컴퓨터 시스템은 구글의 '딥마인드'와 함께 인류의 관심 속으로 재등장하였다. 단순히 게임뿐 아니라 자연어 처리나 미해결 수학 문제도 풀어냈고 각종 기술 영역에서 그 힘을 내어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인공 지능이 초지능을 가지거나 자의식을 가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 남아 있다. 그저 다 복잡한 문제를 빠른 속도로 풀어낼 뿐 궁극적인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뇌의 기능 중 '학습'이라는 테마에서도 일부를 취하여 만든 시스템이다. 우리의 뇌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다.

  우리의 뇌의 기능 중에서도 '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이 책은 21세기 북스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우리는 공부를 잘하려고 하고 또 그러려고 노력한다. 수많은 방법들을 찾아 해내지만 결국 이상적인 학습 방법은 '동기 부여'로 귀결된다. 이것은 단순히 학습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을 하는 것에도 살아가는 것에도 모든 '동기'는 중요하다. 개인에게는 꿈이나 신념이라고 얘기하고 공동체에서는 가치나 비전이라고 얘기된다. 근본적으로 움직이는 힘이 바로 '동기'가 되는 것이다.

  모든 동물에게 가장 강한 동기는 '생명 유지'다. 인간 또한 다르지 않다. 행동 기재는 두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나에게 위험으로부터 피하는 것'과 '나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취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는 위험을 피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에 위험을 피하는 것이 강하게 작동한다. 이것은 나쁜 기억이 좋은 기억보다 오래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상을 인지하는 것을 '재인'이라고 한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재인식'이다. 기존의 보았던 좋았던 것과 나빴던 것을 인식해야 한다. 여러모로 대상을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리고 우리는 무엇보다 빠르게 인식해내야 한다. 그래서 뇌는 '애매함'을 무엇보다 잘 처리한다. 여자 친구가 옷을 바꿔 입든 헤어스타일을 바꾸든 화장을 하든 잘 구별할 수 있다. (물론 화장도 정도가 있겠... ) 인공지능처럼 모든 패턴을 다 기억하고 학습하면 우리 머리는 아파 터져 버릴지도 모르고 그 많은 데이터베이스에서 대상을 찾다가 포식자에 잡아 먹혀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뇌의 또 다른 학습은 '절차적 학습'이다. 어떠한 환경에 놓이면 평소에 하던 대로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것이다. 이것은 인지에 필요한 에너지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한 뇌의 노력이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도 자연스럽게 해내는 것들이 대부분 그렇다. 걷는 것이나 문을 열고 들어가는 행위가 그렇다. 습관과 루틴은 우리의 행동에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기 때문에 최근 자기 계발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것이다. 책에서 다루고 있진 않지만 이런 절차적 학습은 논리적인 상황에서도 적용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고정관념이나 편향이 생기는 것 같다.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얘기하는 시스템 1. 이것은 '절차적 학습'으로 이뤄진 시스템인 듯하다.

   그 외에 특별한 능력은 기억의 특정 지점을 꼽아 기억해 낼 수 있다는 점. 상대의 경험에 내 경험을 빗대어 공감하는 점. 비어 있는 기억을 적당히 채워 넣는 것들이 있었다. 

  인간의 뇌에 대한 연구는 여전히 진행형이고 신경 과학과 심리학이 엮여 새로운 학문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인공지능도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지만 어느 순간에 정점을 찍고 나면 또다시 겨울이 찾아올지도 모를 일이다. 몇 번의 겨울 겪으면 인간과 아주 닮은 인공지능이 나타날지도 모르겠지만 여전히 인공지능은 독립적인 개체라기보다는 도움을 주는 개체로 사용되고 있다.

  딱 하나 동의할 수 없는 것은 뇌는 우리에게 '완벽한 기억'을 제공한다는 내용이었다. 많은 책을 보아 오면서 우리 뇌는 경험한 것을 그대로 기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뇌는 생각보다 편집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나의 생존의 알고리즘을 유지하고 자하는 능력이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사실들이나 비어 있는 기억에 나의 패턴에 맞는 사실을 끼워 맞추기도 한다. 내가 아는 사실이 사실이 아닐 수 있다고 계속해서 의심하라고 하는 점도 바로 그것이다.

  사실 읽기 쉬운 문장은 아니었다. 어려운 뇌과학을 대중에게 쉽게 전달하고픈 저자의 노고가 드러나는 책이었지만 역시 학술적인 느낌이 많이 나는 점은 조금 아쉬웠다. 그럼에도 뇌과학에서 '인지'라는 부분을 떼어내어 자세하지만 어렵지 않게 설명하고 있는 책이라서 좋았다. 새로운 사실과 조금은 전문적인 용어도 익힐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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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태왕 담덕 2 - 천손신화
엄광용 지음 / 새움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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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누구보다 큰 뜻을 가진 무 왕제의 큰 뜻일 잘못 이해한 하대곤 장수와 그에게서 길러진 해평. 인생은 누구에게서 태어난 것도 중요하지만 누구에게 길러졌는가도 중요하다. 자신의 권력을 위해서 기꺼이 손을 내밀고 잡는 권력의 모습. 그 속에서도 굳건한 대왕의 자세. 자신의 행동을 끝없이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현자의 자세. 새로운 대왕의 탄생을 알리는 시작이었다.

  광개토대왕의 출생과 소수림왕의 됨됨이를 알 수 있었던 이 책은 새움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늙은 대왕이 자리를 유지하고 있어 불혹을 넘긴 나이에 자식이 없이 홀로 태자에 자리에 있던 대왕 구부는 어쩐지 연약해 보였다. 능력 없는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고구려 연대표를 보고 그가 소수림왕이었다는 사실일 알곤 판단이 바뀌었다. 대왕 구부의 진가는 1권에서 진중하고 사료 깊다는 것이 중간중간 언급되었으니 대왕 사유의 아들이라는 점과 늙은 나이까지 태자였다는 점이 나에게로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 같다.

  소수림왕은 어떻게 보면 인내의 왕이다. 감정을 인내하고 국가의 기강을 잡고 나라가 강해지는 법을 알았다. 백성들의 세금을 감면해주고 농사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전쟁을 피했다. 불교를 받아들여 백성들의 마음을 모으고 태학을 설립해서 문무를 겸비한 인재를 양성하였다. 출신에 연연하지 않고 인재를 등용했다. 주위의 말을 헤아릴 줄 알았고 또한 단호한 결의도 있었다. 그는 진정으로 성왕의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

  1권부터 등장하는 해평이 광개토대왕일까 잠시 생각이 들었지만 그의 저돌적이고 독단적인 행동은 아무래도 대왕의 면모가 아니었다. 2권에는 비로소 담덕이 출생하게 되고, 해평은 그저 반란의 중심에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었다. 훌륭한 아비인 무 왕제의 바람 따라 훌륭한 장수가 될 수 있을지는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쥐를 막다른 길로 몰지 말라는 말처럼 국사 을두미는 권문세가를 너무 밀어붙이지는 않았다. 권력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면 결국 사달이 나기 때문에 좋은 선택이라며 읽으면서도 끄덕일 수 있었다.

  대왕 구부와 을두미 국상이 한 자씩 내어 만든 '담덕'. '깊고 그윽하다'는 뜻의 '담'과 '은혜를 베풀다', '바로 서다'의 '덕'을 담아 만들었다. 대왕에 걸맞은 멋진 이름이었다. 자신은 아들이 없지만 동생이 아들을 낳은 것이 왕가에 더 없는 기쁨이라고 얘기하는 소수림왕의 됨됨이는 더 멋졌다. 왕권 찬탈로 얼룩져 있는 사극 드라마들만 보다가 이런 훈훈함을 보니 소수림왕이 더 존경스럽게 되었다.

  2권에서는 죽었을 것 같았던 두충이 조환으로 대상의 행수로 들어간 것과 추수가 살아 돌아왔다는 것이 좋았다. 모두 충심이 가득하고 됨됨이 괜찮은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멋졌던 것이 고구려와 백제의 전투 중에 백제의 태자 수가 독약을 썼다는데 크게 분노한 근초고왕이었다. 도의 어긋난 전투 방식과 상대의 국왕이 운명하여 '상'을 지내게 되자 순순히 병력을 물려주는 모습이 약탈의 전쟁이 아닌 자웅을 겨루는 전쟁이라는 것이 또한 대단했다. 그것을 기억해 수곡성을 수복하고 여세를 몰아 진격할 수 있었지만 그것이 근초고왕의 병세가 심해 지원군이 없었음 알고 더 이상 진격을 하지 않은 소수림왕의 결단도 멋졌다.

  2권은 광개토대왕의 탄생과 함께 소수림왕의 됨됨이를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짧게 소비하기엔 너무 매력적인 캐릭터인 두충과 추수의 소식을 짤막하게나마 전해줘서 좋았고 서역의 아가씨와 잘되었으면 좋겠다는 기대가 생겼다. 해평과 하대곤의 생각은 무 왕제의 생각과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왕위를 찬탈하라고 하기엔 무 왕제의 행동은 고구려 그 자체를 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갈수록 흥미진진한 광개토대왕의 이야기 3권에서는 거상 조환(두충)의 이야기가 많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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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태왕 담덕 1 - 순풍과 역풍
엄광용 지음 / 새움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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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장 훌륭한 왕을 언급하다 보면 세종대왕과 함께 어김없이 나타나는 왕이 있는데,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이다. 이 좁은 땅에 사는 우리에게 광활한 광야를 평정했던 왕의 모습은 우리의 욕구를 채워주기 충분하다. 명장 이순신의 이야기도 충분히 훌륭하나, 때론 위기에서 나라는 구하는 얘기가 아니라 넓은 땅으로 의지를 내달리는 진취성을 보고 싶은 욕망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주 오랜만에 만나는 장편의 역사 소설은 새움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고구려는 우리의 위대한 역사의 한 페이지를 담당하고 있지만 그 영토가 북한과 중국에 닿아 있어 우리나라의 역사 자료는 충분치 못하다. 오히려 북한의 역사학자들의 연구가 훨씬 정확하다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의 역사 인용 대부분이 조선에만 닿아 있어 아쉬울 때가 많다. 그런 아쉬움에서 시작된 이 소설은 분명 픽션이겠지만 최대한 역사에 가깝게 담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1권은 고구려 16대 왕(고국원왕, 사유)부터 18대 왕(고국양왕, 이련)까지 등장한다. 아직 신분을 숨기고 있는 해평이 광개토대왕인지는 아직은 알 수 없다. 연약해 보이는 태자 구부가 소수림왕이었다니 책을 리뷰하려고 검색해보다가 조금 놀라기도 했다. 이때 백제는 근초고왕의 시대였던 것 같다. 백제의 기세가 잘 드러나기도 한다. 우유부단하면서도 고집이 있는 대왕 사유와 차분했지만 후손이 없었던 태자 구부. 아직은 어리지만 왕손인 이련. 사실 해평이 역모를 일으키거나 해서 왕권을 잡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고구려 왕의 연대표를 보고 내려두게 되었다. 순리대로 왕이 되는구나.

  하가촌에서 종마장을 운영하며 서역과 교역을 통해 부를 쌓고 있는 하대용과 책성의 수장 하대곤은 1권의 주요 인물이다. 대왕 사유는 태산(백두산)에서의 행사를 겸해서 하대용의 종마장을 방문한다. 이때 아들 이련을 동행하게 하는데 이를 계기로 하대용의 딸 연화와 왕태제 이련은 연분을 쌓을 수 있게 된다. 연화는 하대용의 심복인 추수와 하대곤의 양아들인 해평도 연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경상도 여자가 서울 남자의 젠틀함에 끌리듯 그렇게 인연을 만든다.

  하대곤의 집사 두충은 말갈족이었지만 하대곤이 거둔 하대곤의 심복이다. 그는 하대곤을 위해 일하고 괴승 석정을 알아보고 그를 귀히 대한다. 그리고 하대용의 하인 중에 한 명이었던 사기를 거두는데 사기는 백제의 밀사였다. 책을 계속 읽다 보면 사기가 두충의 역 밀사(?) 일 가능성도 없지는 않을 것 같았다. 황개에게 곤장을 친 주유의 '고육지책'처럼 두충은 사기에게 당하는 것처럼 해서 사기에게 백제의 신임을 얻게 하려 했다고까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두충이라는 인물이 너무 맘에 들어서 그가 당하는 모습이 괜히 안쓰러워 이런 생각까지도 들었다. 두충은 분명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하대용의 딸 연화의 왕자비. 자신을 죽이고 거상이 되려고 한 두충. 왕의 피를 가진 해평 그리고 그를 거둔 하대곤. 왕의 처가라는 권력을 잡았던 대사자 우신 그의 딸 소진. 결코 가볍게 소비되지 않을 인물들의 앞으로의 사건들이 기대된다. 

  백제가 평양성을 공격해 오고 대왕 사유, 태자 구부 그리고 추수, 해평 그리고 동수 장군의 아들 동관. 모두가 평양을 향하며 1권은 마무리된다.

  역사는 가장 완벽한 서사라는 얘기가 있다. 국사 시간에 지루하게 외우던 왕들의 이름이 이렇게 한 권에 책 속에 들어온다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다. 이 책을 쓰기 위해 고구려에 대해 공부하고 고구려의 왕들이 내달렸을 광야를 보고 온 작가의 노력에 감사할 따름이다.

  민심을 거슬러고 하더라도 결국 민심의 바람에 이끌릴 수밖에 없고 바람의 방향이 바뀌더라도 그것에 따라 유연하게 살다 보면 꺾이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를 하는 듯한 내용을 가진 '순풍과 역풍'이었다. 광개토대왕이 등장하기까지 아직 꽤 많은 시간이 남은 듯 하지만, 오랜만에 만나는 고구려라는 이름만으로도 가슴 뛰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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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탐사선을 탄 걸리버 - 곽재식이 들려주는 고전과 과학 이야기
곽재식 지음 / 문학수첩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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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재밌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방향으로 사건은 뛰어다닌다. 과거와 현재를 뛰어다니고 과거의 이야기를 현재의 시야로 풀어보고 신화에 과학을 빗대어보고 그런 시선이 좋았다. 단지, 표지는 내용을 잘 담고 있는데 제목은 조금 생뚱맞다. 화성의 얘기도 걸리버의 얘기도 잠깐 스치듯 지나가기 때문이다. 차라리 <타임머신을 탄 걸리버>가 나았을지도 멋스럽지는 않지만 말이다.

  길가메시 서사시부터 인도의 로켓 이야기까지 서로 연결되지 않을 것은 얘기를 절묘하게 이어가며 즐거운 이야기를 내어놓은 이 책은 문학수첩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SF 작가들 사이에는 <곽재식의 속도>라는 것이 있다. 반년에 네 편의 단편을 집필하는 속도다. 그만큼 다양한 분야에 대한 호기심과 방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문장 중에는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축복받은 일이라고 했는데, 작가가 딱 그런 사람인 것 같기도 하다. 얼마나 다양한 종류의 작가와 책을 언급하는지 서점 앱을 몇 번이나 들락날락했는지 셀 수가 없을 지경이다.

  길가메시가 있던 우루크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생지 근처인 유프라테스 강과 멀지 않은 곳에 있었고 밀이 처음 탄생한 곳이었기 때문에 충분히 대도시를 이룰 수 있었다. 우트나피슈팀의 영원한 생명에 대한 에피소드는 재밌었다. 노아의 방주에 영향을 준 것도 이 신화일까? 실제로는 홍수가 아니라 기후 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이나 폭우였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해빙기에는 해수면이 200미터나 올랐다고 알고 있다. 

  길가메시에서 기후 변화로 일리아스에서 철기문화로 그리스 신화에서 콘크리트로 천일야화에서 알고리즘으로, 이런 식의 과거와 현대를 종횡무진 왔다 갔다 한다. 하지만 그 연결의 끈이 확실해서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리스에 예술품과 동상이 많았던 이유가 글을 아는 사람이 적었기 때문에 입으로 전해지는 전설의 실체를 보여줌으로써 기억을 자극하려고 했다는 점이 신선했다. 인도에서 0이 생겨서 인간의 수학적 상상력은 극대화되었다는 점과 알고리즘이 인도의 알콰리즈미라는 학자에서 유례 되었다는 점도 알게 되어 좋았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에서 강남은 서울이 아니라 송나라의 강남이었다는 것과 우리가 얘기하는 먼 거리 '9 만리'는 지구 상에 정반대 편에 있는 위치까지의 거리(6만 리 정도) 보다 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근데 9 만리 설명하다가 우리나라 대척점인 아르헨티나로 넘어가는 이 설정은 대단하다.)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이야기를 잘 엮는다는 것이다. 정말 하나의 연결 고리도 없을 것은 사실들로 이렇게 절묘하게 이어 붙이니 작가의 상상력과 지식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재미난 사실이 넘쳐나고 좋은 책들 소개가 많았다. 8번째 챕터까지는 호기심을 느끼며 즐겁게 읽어 나갔고 나머지 5개 챕터는 문학적 사실과 시대 배경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즐겁게 읽어서 좋았지만 작가님이 너무 많은 작가와 좋은 책들을 소개해 놓아서 장바구니가 또 무거워졌다. 세상에는 아직도 모르는 작가와 책들이 많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며 너무 술술 읽혀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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