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끼리도 잘 살아 - 뜻밖에 생기발랄 가족 에세이
한소리 지음 / 어떤책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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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서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퀴어는 아직도 악마화 되어 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마치 사탄의 저주를 받은 사람들을 대하듯 호들갑을 떠는 사람들을 흔치 않게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성소수자들이 살아가기 그렇게 좋은 공간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러라도 종종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필요는 있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읽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그들도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이고 사회를 이루는 이웃일 뿐이었다.

  레즈비언 작가의 세 가족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어떤 책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내가 성소수자들의 인식 변화에 강한 영향을 받은 것은 TED에서 만난 앤드류 솔로몬의 강의 '어떻게 삶의 최악의 순간들이 우리를 만드는가'를 만난 뒤였다. 게이로서의 삶을 살은 앤드류는 악몽 같았던 청소년기를 보냈지만 누구보다 훌륭한 사람이 되었다. 그는 자신 또한 소수자였지만 더 소수자였던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러 편의 TED 영상이 있었지만 그의 멋짐은 나의 기억 속에 여전히 남아 있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찾아보는 영상이 되었다.

  소수자의 삶은 쉽지 않다. 정상은 얼마나 다수에 가깝냐로 정의 내려지기 때문에 소수자들은 늘 비정상으로 취급받는다. 언제나 고쳐야 하는 대상이 된다. 언제부터 주변에 관심이 많았다고 소수자들이 나타나면 어김없이 비난의 목소리는 터져 나온다. 그것은 공동체를 위한 나의 다짐인지 나의 감정을 버릴 쓰레기통을 찾고 있었던 것인지 스스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레즈비언의 에세이인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전혀 비정상적이지 않다. 작가가 <L>이라고 선언하지 않았다면 그냥 평범한 에세이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겪은 삶은 여느 사람들의 에세이와 다르지 않았고 인생의 희로애락이 잘 담겨 있었다. 뭔가 특별함을 찾는 것이 아니라 특별할 것이 있을 것 같은 사람에게서 평범함을 느낀다는 것이 특별함이 아닐까 싶었다. 세 명의 여자가 살아가는 집. 누가 봐도 녹록지 않았을 생활에 서로 티격태격하며 살아가는 가족의 모습은 그야말로 잘 살고 있는 모습이었다.

  수업 시간에 야외에 나가 햇살을 만끽하고 시를 써서 제출하겠다는 학생에게 그게 공부라고 답한 교수님의 모습도 좋았고 나이를 먹을수록 멘털의 상태를 숨길 수 있는 기술이 늘어난다는 차장님의 얘기도 공감이 갔다. 동생의 에피소드에서는 가족 사이에도 생길 수 있는 무심함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었다. 아버지의 권위에 도전하기 위해서 맞담배에 도전했지만 막상 이루고 나니 구역질이 났다는 표현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자살에 관한 에피소드에 나오는 나카시마 미카의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이라는 노래에 대한 해석이 좋았다. 나도 이 노래를 좋아한다 (죽을 생각은 없지만). 죽으려는 마음은 이유를 만들려면 무엇이라도 만들 수 있다. 낙엽이 떨어져서라든지 신발끈이 풀려서라든지 이유가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노래 말미에 나오는 세상이 조금 좋아진 것은 당신이라는 사람을 만나서였다는 가사가 압권이다. 이 가사가 주는 무게와 진정성을 좋아했는데, 작가가 잘 표현해 주었다.

  사실 동성을 좋아하는 것은 별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게이나 레즈비언에 심겨 있는 이미지가 우리를 잠식하는 것일 뿐이다. 브로 멘스는 작품화될 정도로 흔해졌고, 여성 아이돌에 푹 빠진 소녀들이나 남자 배우에 취해 있는 소년들을 찾는 것도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가요 프로그램 가면 널렸다.)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어둡게 만드는 것은 지나친 관심이 아닐까 싶기도 한다. 그들도 그저 이웃에 사는 사람들이고 그들이 남자를 좋아하든 여자를 좋아하든 크게 문제 될 것도 없다. 인정하고 이해하기 싫다면 관심을 끄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생태계에는 수컷이 없을 때 암컷끼리 번식을 하는 생물들이 많이 있다. 때때로는 수컷이 멸종된 생물도 있다. 암수가 결합하는 것은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하려는 생존 본능에 가깝다. 사실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크게 문제 될 게 없지 않을까? 미국의 어느 대학처럼 성을 5가지로 분류해주지는 못하더라도 그들의 다양성 정도는 인정해 주는 게 어떨까 싶다. 혹시 그것이 걱정된다면 다윈의 '성 선택설'을 믿고 자연의 진리에 맡겨 두자. 

  그냥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에피소드가 담긴 에세이다. 저자의 이력은 전혀 신경 쓸게 아니다. 그냥 평범한 이야기, 종종 만나는 좋은 글귀 그리고 고뇌가 잘 섞인 그런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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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사이먼 싱 지음, 박병철 옮김 / 영림카디널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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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의 수학 문제가 이렇게 긴 이야기를 서사를 가질 줄은 몰랐다.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했다. 수학을 취미로 하던 천재가 자신의 책 모퉁이 끄적거린 하나의 문장이 이토록 오랜 시간 수학자들을 괴롭힐지는 몰랐을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던 천재 수학자들이 차례차례 등장하고 힌트를 만들어주었고 앤드루 와일드가 결국엔 풀어냈다. 천재들이 만드는 이야기의 빌드업과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하는 절정. 그리고 3장에서 발견된 오류로 인한 좌절. 그리고 극적으로 해결책을 찾아낸다는 것이 그 어떤 소설보다 짜릿하고 재밌었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증명되는 350년의 시간을 서술하며 문제가 증명되는 장대한 서사를 기록하고 있는 이 책은 영림카디널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유명한 것은 굉장히 단순한 물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을 증명하려고 덤빈 많은 수학자들은 여지없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하나 같이 천재적인 수학자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부분의 성공을 거둠으로써 후대에 희망의 씨앗을 남기고 있었다. 

  수학의 시작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피타고라스로부터 시작되었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만큼 대중적이다. 직각삼각형의 짧은 두 변의 제곱의 합은 나머지 변의 제곱과 같다는 것이다. 페르마의 정리는 이것을 조금 변형시켰을 뿐인데, 증명에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이다. 하지만 그 문제는 너무나도 쉽고 명료하다.


피타고라스 정리 : x² + y² = z²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xⁿ + yⁿ = zⁿ (n > 3 면 정수해는 존재하지 않는다.)

 

  페르마는 수학자는 아니었다. 페르마는 부유한 가죽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고급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그는 가족의 뜻에 따라 시의회 의원이 되었고 유능한 공무원이었다. 당시에는 공직자들이 음모에 연루되기 쉬웠기 때문에 그는 청백리의 길을 걷고 인간관계를 최소화했다. 그렇게 남은 시간을 모두 수학에 쏟아부었다. 그는 전문 수학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자신의 증명을 남들에게 친절하게 정리해서 보여주질 않았다. 그는 자신이 발견한 수학 정리를 아무런 증명도 없이 적어놓고 "당신도 한번 증명해 보시죠"라며 사람들을 애태우곤 했다. 그는 자신의 취미를 남들을 위해 쓰기에 시간이 아까웠고 증명 과정을 공개하면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질문을 받을 것을 귀찮게 생각했다.

  이런 아마추어 수학자의 정리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의외이긴 하지만 페르마가 죽고 난 뒤 아버지의 위대함을 알리고 싶었던 장남은 페르마의 흔적을 정리해서 출판하게 된다. 그의 흔적은 결코 아마추어적인 것이 아니었고, 그는 파스칼과 함께 확률이론을 발전시키기도 했다. 

  페르마의 마지막 이론에 많은 상금이 걸리게 된 사연은 또한 예사롭지 않다. 볼프스켈은 어느 여인을 열렬히 사랑했지만 그 여인은 그의 구애를 일언지하에 거절해 버렸다. 그는 자살을 결심한다. 평소에도 계획을 치밀하게 세우던 그는 자살을 위해서도 계획을 세워 둔다. 자살을 하려고 한 자정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남아 있어 그는 서고에서 수학 논문을 보았고 그 안에서 논리적 허점을 발견한다. 그는 논리적 오류를 찾아내기 위해서 완전히 몰두해 버렸고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동이 트고 있었다. 그는 당대 최고의 수학자 쿰머의 오류를 수정하여 더 완벽하게 만들었다는 자부심을 얻었고 수학으로 인해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았다. 그리고 그는 지난날의 유서를 찢어버리고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재산 대부분을 기부하겠다고 했다.

  페르마의 마지막 이론이 유명해진 것은 이런 상금 때문이기도 했고 희대의 수수께끼를 풀어 명성을 얻고 싶었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도전은 수학자로서의 올인을 의미했다. 젊을 때가 전성기인 수학자들에게 7-8년 족히 투자해야 하는 이 작업은 순수한 열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한 앤드루 와일드 역시 그랬다. 그는 도서관에서 만난 마지막 문제라는 책에서 너무 간단하지만 아무도 풀지 못한 이 문제를 자신의 평생의 숙원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수학자가 되었고 아무도 모르게 7-8년을 투자했다. 그는 이 사실을 숨기기 위해 자신의 미발표 논문을 6개월마다 투고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아무도 그가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에 도전하고 있다고 눈치 채지 못했다.

  무언가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려면 한 문제에 완전히 집중한 채로 엄청난 시간을 인내해야 합니다.다른 생각 없이 오로지 그 문제만 생각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완전한 집중, 그 자체지요.그런 다음에 생각을 멈추고 잠시 휴식을 취하면 무의식이 서서히 작동하기 시작합니다.바로 이때 새로운 영감이 떠오르게 되지요.와전한 집중 뒤의 휴식, 이때가 가장 중요한 순간입니다.

  앤드루 와일드가 처음으로 지인에게 증명을 공개한 이야기부터 그 증명을 이해하기 위해서 대학원 수학 과정을 개설했다는 것. 그리고 마침내 아이작 뉴턴 연구소에서 열린 학술회에서 발표하는 스토리까지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박함마저 느낄 수 있었다. 전 세계의 환호 속에 다시 철저한 검증에 들어갔고 찾아온 오류와 절망도 있었지만 결국 이겨내고 쟁취하는 모습은 독자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했다.

  책에는 수학적 지식과 역사과 천재 수학자들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사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많은 수학자들은 도전했고 수학은 발전했다. 350년이 흐르면서 0과 마이너스가 생겨났고 무한대의 개념이 생겼다. 그리고 복소수도 생겼다. 괴델의 불확정성의 원리도 세상에 나타났다. 그러는 사이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의 증명은 '대통합 수학'으로 가는 길을 열어 주는 열쇠가 되어 버렸다.

  훌륭한 수학 문제라는 무엇인가? 문제 자체의 수학적 가치보다는 연구 과정에서 새로운 수학적 관심사를 창출해내는 문제다. 페르마의 마지막 문제에 도전하며 만들어진 수많은 이론들은 지금을 지탱하고 있다. 그 어떤 수학 역사서보다 재밌고 짜릿하다. 그 어떤 소설보다 재밌는 350년의 수학사. 수포자라도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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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 지식재산권으로 평생 돈 벌기 - n잡러시대 방구석에서 창업하기
남궁용훈 지음 / 리텍콘텐츠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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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기업들의 특허 분쟁 소송은 경제면을 달구는 뜨거운 이슈다. 폐업하는 기업들의 특허권만을 대량으로 사들여서 소송만을 전문으로 하는 특허 괴물 회사들도 등장했다. 지식재산권이 등장한 이후 특허는 회사의 존폐를 결정하는 꽤나 중요한 무기가 되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가져가는 현상이 생긴다.

  특허의 중요성과 발명과 특허 그리고 이를 유지하는 기술적인 내용을 담은 이 책은 리텍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사실 특허로 돈을 번다고 하길래 어떤 얘기를 하려는지 궁금했다. 특허라는 것은 개인이나 학교에서 등록할 수 있지만 대부분 기업의 활동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경우에는 학교의 지원을 받아서 특허를 등록할 수 있다. 회사의 경우는 자신의 발명을 회사에 양도하면서 그에 대한 기여에 따라 보상금을 받는다. 십수 년 전 삼성의 천지인을 발명한 연구원들이 제대로 된 특허 보상비를 받지 못해서 삼성에 대해 소송울 제기한 적이 있기도 하다.

  특허권은 새로운 시장으로 진출에 대한 허들을 만들기 때문에 빠르게 진출하는 기업에 대한 혜택과 보호의 역할을 한다. 하지만 선두의 기업들은 시장의 파이를 키워야 하는 고민도 있기 때문에 로열티에 대한 고민이 없을 수 없다. 무너져 가던 퀄컴을 살린 건 CDMA를 상용화시킨 우리 기업의 기술력이다. 삼성은 반도체 하나를 생산할 때마다 TI사에 로열티를 지불해야 한다.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다. 특허는 20년 동안 유효하다.) 삼성과 애플은 디자인 권리로 소송을 벌리기도 하고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핵심 기술이 도요타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장은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건너 바로 전기차로 돌입해 버린 게 아닌가 싶다.

  특허를 개인이 관리하기는 쉬운 일은 아니다. 등록비와 유지비 그리고 변리사 선임 비용을 합하면 개인이 부담하기 힘든 금액이 된다. 그리고 큰 기업에서는 대형 로펌을 선임해서 무효화시켜버리는 것은 부지기수다. 방어할 때에도 변리사 선임을 해야 하기 때문에 개인 입장에서는 빠른 특허 등록 후 기업에 판매하는 것이 오히려 이득일 수도 있다. 

  이 책은 n잡러 시대라고 해서 개인이 특허로 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고 얘기하고 있지만 실제적으로 내용으로 들여다보면 개인보다는 기업에서 특허를 등록하고 관리하는 것에 더 적합한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에게 유용한 내용은 상표권 등록이라던지 저작권 그리고 실용신안 정도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창업을 목표로 둔 개인이라면 특허는 분명 꼼꼼히 살펴야 한다. 선행 기술이 언제 등록되었고 권리는 소멸되었는지를 검토해야 한다. 발명이 뺄셈이 미학이 되려면 엄청난 파워를 얻지만 쉽지 않다. 우리의 발명은 대부분은 기존 발명에 기능을 추가하여 편리함을 더하는 일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행 기술의 권리가 남아 있다면 로열티를 지불해야 하거나 아예 생산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 있기 때문에 꼼꼼히 살펴야 할 것이다.

  발명은 창의적인 행동의 결과이기 때문에 돈과 연관될 확률은 아주 높다. 하지만 특허 그 자체로 개인이 돈을 벌 수 있는 경우는 크게 없다. 이 책은 스타트업을 준비하는 사람들 혹은 회사에서 특허 업무를 맡게 된 신입 사원들이 보면 좋은 내용인 것 같다. 그리고 특허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도 유용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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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어리의 웅변
빌 프랑수아 지음, 이재형 옮김 / 레모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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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학적인 제목을 가지고 있는 책은 사실 소설일 줄 알았다. 머리글을 읽고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정어리가 스토리의 키워드가 되겠구나 싶었다. 계속 페이지를 넘기다 보니 작가의 글과 함께 다분히 과학적인 생태학적인 얘기들로 채워지다 싶더니 꽤나 전문적인 내용이 쏟아졌다. 뭐지? 하고 저자 소개를 읽어보고 그제야 이해를 했다. 이 책은 과학 서구나.

  바닷속 생물들의 삶을 얘기하며 바다의 아름다움과 함께 바다와 바다 생물을 대하는 자세의 개선을 얘기하는 이 책은 레모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저자는 수산시장에서 만난 수많은 생선들로부터 막연한 두려움은 있었지만 해변가로 밀려온 반짝반짝 빛나는 정어리는 저자를 바다의 세계로 인도했다. 저자는 바다 생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서 우리에게 바다 생물과 더불어 사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웅변하고 있어 정어리는 어쩌면 '항변'하고 있는 것일 줄도 모를 일이다.

  책은 저자의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바닷속으로 빠져 들고 다시 돌아오곤 한다. 모든 생명은 바다로부터 시작되었지만 인간의 몸은 유독 바다에 가깝다고 느낀다. 다른 동물처럼 털이 있는 것도 아니고 딱딱한 외피질이 있는 것도 아니다. 추위에도 외부의 공격에도 모두 취약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오히려 매끈한 피부를 가진 물고기들과 비슷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고래처럼 말이다. 

  우리는 엄청나게 복잡한 네트워크 속에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순식간에 서로의 얘기를 들을 수 있다. 하지만 바닷속은 더 복잡한 네트워크 속에 있다. 바다는 고요하고 모두 제각각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듯 하지만 바다는 우리가 듣지 못하는 얘기들을 가득 담고 있다. 수천 킬로미터를 떨어져 있는 고래들이 서로 얘기를 나눌 수 있고 물고기들이 바다 라에서 길을 잃지 않고 이동하는 것. 그리고 연어들처럼 자신의 살던 물의 냄새를 맡으며 돌아가는 것 모두 바닷속의 얘기를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말과 문자를 배우지 않았지만 그들은 인간들보다 복잡한 소통을 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인간 이외의 생물들이 학습을 한다는 것은 이제는 사실로 인정하고 있다. 문어는 그중 대표적인 생물이다. 다만 알을 놓고 체력이 다한 어미가 죽어 지식을 전달할 수 없을 뿐이다. 인간은 학습이 주된 능력이 아니라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주된 능력인 것 같기도 하다. 인간의 진화는 멈춘 지 오래지만 계속해서 발전할 수 있는 것은 지식의 저장과 공유 덕분이다.

  예전의 인간은 바다의 생물들과도 소통을 했다. 범고래와 함께 고래 사냥을 했던 에덴 항의 이야기뿐 아니라 동물들과 오랜 시간 함께 한 원주민들은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안다. 공생인지 길들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충분히 어울려 살 수 있다. 예전에는 필요한 만큼 사냥하고 또 그것을 나누고 했었는데 기술의 발달은 쌍끌이 그물처럼 필요하지 않은 것마저도 모조리 쓸어버린다. 규모의 경제는 효율과 합리로 포장되어 있지만 결국 '낭비가 이득'이라는 인식을 바닥에 깔고 있다.

  인간은 자연에서 황금을 놓는 거위를 여럿 가지고 있었지만 계속해서 그 배를 갈라 황금알을 빨리 꺼내려고 든다. 거위가 죽고 나면 더 이상 황금을 가질 수 없다. 얻은 황금으로 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많지도 않다. 우리는 이제 한계를 지키고 자연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인간이 먹이 사슬에서 벗어난지는 오래되었다. 식탁에 올려진 네모난 모양의 횟감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먹는다. 우리의 천적은 무엇이고 우리의 먹이가 무엇인지도 모른다. 이제는 먹이 사슬에서 우리의 위치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필요한 만큼 취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살생에는 존중이 필요하다.

  바다는 여전히 모르는 것이 더 많다. 우주에 흩어진 태초의 빛을 읽으려고 노력하듯 우리는 바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바다는 여전히 우리에게 너그러울지 혹은 비명을 지르고 있을지도 들어야 한다. 저자처럼 '너네 지금 뭐 하는 거야'라고 항의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인간이 잠깐 자리를 비워주면 자연은 그 자리로 돌아온다. 과욕을 부리지 말고 자연이 돌아올 자리를 마련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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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학, 조선을 관통하다 -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정민 지음 / 김영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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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학을 서양의 학문이라 이해하여 조선 시대 서양 문물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궁금함에 책을 펴보았지만 서학은 그 단어와 다르게 천주교에 대한 내용이었다. 조선시대 학자들이 판토하의 <칠극> 같은 책을 보았고 중국을 드나들던 관리들은 중국에서 서양의 과학을 겪을 수 있었을 것이다. 마테오 리치가 저술한 <천주실의>는 조선 사대부의 서가이 제법 있었던 것 같다. 우수한 문물과 함께 전파된 천주교는 어느새 학자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반역의 종교가 되었고 핍박받는 역사를 남겼다. 

  조선 시대 불었던 서학 열풍과 남인들의 붕괴와 역적으로 몰린 천주교의 역사 기록을 분석한 이 책은 김영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정조가 나라를 다스리고 있을 즈음에 중국에서는 서양의 문물들이 들어오고 있었고 이는 자연스레 조선으로 전달되었다. 많은 학자들은 서양의 학문을 접했고 그 사상은 그동안의 진리와 크게 다르지 않으면서도 깊이가 있어서 빠져드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이와 함께 천주교도 전파되기 시작되었다. 서학은 자연스레 전파되는 것 같았으나 기존의 유교와 대척점에 있는 몇 가지 이유로 이를 받아들인 남인들 사이에서도 갈등이 시작되었다. 정조는 체재공을 좌상으로 등용하여 노론과의 힘의 균형을 맞추려고 했으나 남인 사이의 갈등으로 빛이 바래고 말았다.

  초기 천주교는 당파 싸움 속에서 핍박받았지만 황사영이 서구의 배 수천 척에 바다로 몰려와 조선을 점령하고 천주교를 핍박에서 해방시킬 것이라는 예언을 인용한 <백서>를 조정에 들킨 이후로 천주교는 국가 전복 세력으로 낙인찍혔다. 고종의 상 중에는 죄인을 잡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천주교 활동이 활발해지긴 했지만 상이 끝나지 마자 천주교인들은 잡혀 들어갔고 참수당했다. 신해박해 혹은 진산 사건으로 시작된 탄압은 신유박해, 을해박해, 기해박해, 병오박해, 병인박해 등으로 이어지며 수많은 천주교인들이 죽임을 당했다.

  이 책의 또 다른 논란은 다산 정약용이 서학을 얼마나 깊이 하고 있었느냐의 문제다. 정약용에 대해서는 배교했다는 측과 박해를 피하기 위해서 숨기고 있었다는 측으로 나뉘고 있다. 이 책은 후자의 근거를 제시한다. 여러 증거가 하나를 이룰 때에는 수긍을 하면서도 한 가지 증거로 주장할 때에는 사람들을 너무 강직하고 착하게만 본 것 아닌가 싶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무교이면서 유일신을 숭배하는 종교를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크게 관심이 없던 내용이라 빠르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행간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았기 때문이다. 수능 문제 풀듯 핵심 문장만 찾아가듯 독서하니 벽돌 책이었지만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 힘들게 정착시킨 종교인데 이렇게 변질되었나 하는 생각과 박해받던 시절의 포교활동이 현재까지 잔존하는 건가 싶어 조금은 안타깝고 조금은 더 싫어진 느낌이다. 사실 나에게 다산 정약용이 서학을 믿었던 그렇지 않았던 그저 괜찮은 위인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의외로 호감이 더 생긴 인물은 정조이고 연암 박지원이었다. 나라의 운영하기 위해 균형을 맞추려고 부단히 애쓴 모습이 보인 정조였고 천주교보다는 서양의 학문에 더 관심이 있었던 박지원으로 천주교를 믿는 사람을 중립의 입장으로 바라보았던 것 같다. 박제가처럼 서양의 문물만 받아들이고 천주교는 빼자라는 실용적인 생각을 한 사람도 있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종교가 그렇게 쉽게 관리될 거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천주교는 핍박받았기 때문에 포교의 보안을 중요시했고 먼저 가까워지고 포교를 하고 무리를 챙겨 주었다. 믿으면 천당을 간다는 말에 순박한 사람들은 그대로 믿었고 제사를 지내지 말아야 한다는 말에 배교를 하기도 했다. 지금은 오히려 득세하고 있는 기독교지만 포교의 방식은 그때와 다르지 않은 듯하고 그들이 말하는 이단은 이 방법을 더욱 제대로 실행하고 있는 듯하다.

  유일신은 모두의 신을 하나의 신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에 늘 분쟁 속에 휘말려 들어간다. 조선 시대에 받은 핍박도 어떻게 보면 예견되어 있던 건지도 모른다. 그에 반해 유럽에서 가톨릭은 워낙 득세해서 초기 가톨릭의 모습은 나는 잘 모른다. 하지만 내가 믿는 것이 아니면 모두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는 듯한 행동들은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과 달라 보인다고 얘기한 남인들의 생각에도 동의할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20세기를 마무리할 때 교황 요한 바오르 2세는 가톨릭의 과오 7가지를 얘기했다. 그곳에는 '다른 종교에 대한 박해'도 들어 있었다. 목사님의 여식이 결혼할 때 신부님이 주례사를 하고 스님이 축가를 불러 준 것처럼 어울리면 좋겠다.

  이 책은 천주교를 믿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보면 좋을 듯하다. 우리나라 천주의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같이 무교인 사람들에게는 그저 예쁜 벽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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