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 - 국선변호사, 세상과 사람을 보다
정혜진 지음 / 미래의창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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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스쿨은 노무현 대통령이 만든 제도다. 부자들을 위한 음서제다 뭐다 말이 많지만 생각보다 장학금 제도도 잘 되어 있는 것 같다. 산속에서 몇 년을 공부해 고시에 합격하던 시대는 지나서 사시 또한 고시촌에서 이뤄진다. 둘 다 돈이 필요함은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사회로 배출되는 법조인이 많아지면 가난한 사람도 조금 더 양질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당직처럼 돌아가며 서던 국선 변호사는 이제는 하나의 직업이 되기도 했다. 국선 변호사는 변호사를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제도이기도 하다. (물론 개선점도 필요하지만.)

  한 명의 국선 변호사가 뉴스에는 다뤄지지도 않을 법한 생활 밀착형 범죄들을 변호하며 느낀 기억과 감정을 공유하는 이 작품은 미래의 창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온통 뉴스에 도배되는 사건들은 우리 삶으로 비춰보면 그렇게 흔한 일은 아니다. 나라에 큰 도둑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매일 뉴스를 채울 정도로) 서민들의 팍팍한 삶에서 일어나는 생계형 범죄들은 얼마나 많을까 상상이 되질 않는다. 검사들은 정치부나 경제 사범을 잡는 특수통들만 승진하고 형사 사건 검사들은 수많은 사건들을 떠맡으면서도 대우를 받지 못한다. 명예라는 것이 평등할 거라는 착각을 하지 말라던 얘기가 떠오른다.

  국선 변호사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이 이야기들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정말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른다.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질러 아무도 변호를 맡고 싶지 않을 때 마지못해 해 주는 것이 국선 변호사라는 이미지가 있지만 사실 돈의 문제가 더 크다. 변호사 선임은 적으도 몇 백이 든다. 일반인들은 감당하기 힘든 금액이다. 생계형 범죄나 탈선 등은 사회적 약자들이 더 많이 노출되는 환경이고 그들에게는 변호사가 필요한 것이다. 물론 돈이 많음에도 국선 변호사를 선호하기도 한다. 단진, 변호사비를 아끼고 싶은 마음도 있을 터이고, 거드름 부리고 싶은 사람도 분명 있었다. 이 점은 분명 개선이 필요한 제도임을 알 수 있었다. 

  국선 변호사는 변호사에게도 좋은 점이 있었다. 수임료를 받는 것이 아니라 피의자의 눈치를 보질 않고 사건 그 자체를 바라볼 수 있고 주체적으로 사건을 대할 수 있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무죄 판결을 많이 받아낼수록 자신의 커리어도 쌓을 수 있고 여러 법정에서 경험을 쌓을 수도 있다.

  책 속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모두 자신만의 사정이 있었고 그것은 개인만의 것이 아닌 경우도 많았다. 사회가 인간을 범죄자로 몰고갈 수 있음을 또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생계가 급박해서 재판받는 것마저 어려운 경우도 많았다. 가끔은 피의자들에게서 깨달음을 얻는 경우도 있었고 반대로 배려라고는 전혀 모르는 정말 진상 고객도 있었다.

   국선 변호사로서 일을 하면서 생긴 자신의 오만과 실수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적었다. 실수는 누구나 하는 것이지만 후회만 해서는 바뀌질 않는다. 저자는 반성을 하고 개선하려고 했다. 책에서 인용된 독일 어느 학자의 이야기는 인상 깊었다. 사례 문제를 풀 때 법적 사고방식을 체계적으로 동원해 결론에 도달한 후에는 그 결론이 정의의 관점에서 수긍할 만한 것인지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쉽게 얘기하자면 "우리 할머니는 이 결론에 대해 뭐라 하실까?"라는 질문을 던진다는 것이다. 일반인에게도 상식적인가. 지금의 판결들을 보면 지극히 상식적이지 못한 것이 너무 많지만 적어도 그런 질문은 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이 단지 피하기 위한 용도가 아니라면 말이다.

  몇 해전 AI 법률 조문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모든 판례를 AI가 찾아준다. 그럼에도 변호사가 필요한 사건들은 여전히 필요하다. 법전을 외우고 판례를 찾는 기계를 벗어나 정의를 고려하지 못한다면 법조인의 자리도 AI에게 내어줘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단순히 잘 외우는 것은 컴퓨터가 우리와 비교할 수 없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매번 읽는 법조인들의 글이 따뜻한 법조인들의 글이라서 아직은 그래도 희망이 있나? 그런 생각이 든다. 돈과 권력을 쫓는 법조인보다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법조인이 더 인정받는 사회가 꼭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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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약, 기나긴 악연의 역사 - 생화학무기부터 마약, PTSD까지, 전쟁이 만든 약과 약이 만든 전쟁들
백승만 지음 / 동아시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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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은 승자와 패자가 없는 모두가 피해자인 끔찍한 역사다. 야만은 전쟁터를 휩쓴다. 하지만 이기기 위한 절박함은 인간에게 새로운 발전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민족이 섞여 문화와 과학이 발전하기도 할 뿐 아니라 전쟁 그 자체를 위해 기술은 엄청난 가속력을 얻는다. 전쟁은 소모전이다. 만든 것을 끊임없이 소비하고 또 빠르게 생산해야 한다. 짧은 순간에 더 획기적인 것을 만들어야 한다. 전쟁이 끝나면 남아 있는 것들의 활용을 또 고민해야 한다. 전쟁은 약과 닮았다. 약이면서 독이다.

  전쟁 속에서 태어난 수많은 약들의 에피소드를 얘기하는 이 책은 동아시아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전쟁하면 폭탄과 폭격기, 탱크, 군함 같은 전쟁 물자가 생각날지도 모르겠지만, 핵과 더불어 비대칭 무기로 불려지는 생화학 무기가 사실 엄청 무시무시하다. 페스트나 탄저균, 천연두 한 시대에 큰 사건을 일으킨 이것들은 미국과 러시아 그리고 어디에선가 보관되어 있다. 코로나가 우한 연구소의 관리 미숙으로 퍼졌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도 이와 같다. 2차 세계 대전에서는 일본의 악명 높은 737 부대는 페스트를 어떻게 잘 뿌릴까 하는 실험도 했다. 하지만 그 장군은 전쟁이 끝나고도 잘 먹고 잘 살았다. 미국은 그 실험 자료를 가져갔고... 하...

  전쟁하면 화학약품을 빼놓을 수 없다. 일본의 오옴진리교가 뿌린 사린 가스 테러나 몇 해전에 김정은의 형인 김정남의 살해에도 화학약품은 사용되었다. 지금의 전쟁에도 언제 화학무기가 사용될지 알 수 없다. 백신과 치료제를 계속 만들고 있는 것 또한 이를 대응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그 또한 독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주의해야 한다.

  또 다른 약품은 아편, 모르핀, 헤로인 등의 마약이면서 환각제 그리고 마취약이다. 군대의 돌격을 하게 만드는 힘은 무엇일까? 커다란 이상과 동기. 명예 등 많이 있겠지만 명분이 없는 전쟁이라면 마약만 한 것이 없다. 일본의 돌격부대, 카미카제는 이런 약품이 사용되었을 거라 얘기하고 있다. 

  전쟁에서 사람을 구하는 약도 존재하기 마련인데, 말라리아를 해결하기 위해 안데스의 신코나 나무가 필요했다. 이 나무 역시 목화씨를 나르던 문익점처럼 누군가가 빼돌려 재배했다. 역시 생태주권은 예나 지금이나 중요한 것 같다. 베트남 전쟁에서도 말라리아가 기승을 부렸는데, 중국의 투유유가 개똥쑥에서 아르테시민을 추출해서 치료제로 공급했다. 하지만 재밌는 사실은 서방 국가들은 아르테시민을 대량 생산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결국 중국의 농민들에게 패배했다. 중국의 대량 생산은 정말 대단하다. 

  러일전쟁에서는 도정 흰쌀밥에 간장 종지만 먹다 각기병에 걸린 일본인과 너무 오랜 시간 갇힌 러시아인의 괴혈병이 있었다. 비타민 B와 비타민 C의 결핍으로 생긴 병이었다. 흰쌀밥을 먹기 위해 참전한 병사들에게 현미나 보리를 먹이는 것은 엄청난 저항이 있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 바로 카레라이스였다. 흔들리는 배 속에서도 흘리지 않고 먹을 수 있었고 맛도 좋았다. 

  2차 세계전쟁은 정말 끝없는 소모전이었다. 프랑스에는 파스퇴르가 독일에는 코흐가 있었다. 독일이 미생물학을 이끌던 시기였기도 했다. 많은 물자들이 독일로 향하는 것을 끊었지만 독일은 공기 중의 질소를 포집하여 비료를 만들고 무기 재료로 만들었다. 신코나의 수입이 막히자 버드나무에서 살리신산을 추출해 낸다. 살리신산으로 만든 것이 바로 아스피린이다. 

  버드나무 하면 생각나는 인물이 있는데, 바로 이순신이다. 이순신은 무과에서 낙마하여 다리를 다쳤을 때 버드나무 껍질로 다리를 고정하고 시험을 마저 치렀다. 이 버드나무 껍질은 마취에 효과가 있다는 것이 아닌가. (물론 이 책에서 읽은 내용은 아니지만..) 살리신산을 읽으니 이순신 일화가 생각났다.

  그 외에도 당연하기 등장하는 타이레놀, 페니실린 그리고 항히스타민제 등이 있다. 마지막에는 PTSD도 등장한다. (한국전쟁 참전용사가 환대받으며 귀국했다는 점은 동의하기 어렵지만) PTSD도 초기 진단이 중요함을 알 수 있었다.

  전쟁은 긴급한 사건이기 때문에 비윤리적인 실험도 조금 덜 완벽한 약품도 쓸 수 있게 만든다. 때로는 의도하지 않게 효능 좋은 약들이 발견되지만 모든 약은 곧 독일 수 있다. 약을 남용하면 질병들은 그것에 또 적응한다. 슈퍼 박테리아들이 등장하는 이유도 다르지 않다. 약은 적절히 계발하되 더불어 사는 방법을 찾는 것도 중요해 보인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약들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최근의 약들은 제약 회사들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다. 그렇지만 젊은이를 위한 약은 적다. 싸기 때문이다. 모든 제약 회사들이 불치병, 난치병에 도전하지만 어린이들을 위한 간단한 약에는 소원하다. 이해타산이 맞질 않기 때문이다. 혹자는 비싼 돈을 짧은 생명에게만 투자하고 있다고 혹평하기도 했다. 누구를 위한 약을 만들어야 할지도 생각해 볼만 한 문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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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개의 미생물, 우주와 만나다 - 온 세상을 뒤흔들어온 가장 미세한 존재들에 대하여
플로리안 프라이슈테터.헬무트 융비르트 지음, 유영미 옮김, 김성건 감수 / 갈매나무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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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생물에 대해서는 평소에도 관심이 있었다. AIDS는 늘 누군가가 부셔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살았고 DNA며 RNA를 그러면서 알게 되었다. 지난 팬데믹 동안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는 mRNA에 대해서 관심이 생겼고 아이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바이러스>, <바이러스 행성>을 재미나게 읽었고, 두 책과 많이 겹치지 않는 새로운 미생물들은 이 책에서 만나볼 수 있다. 굉장히 어렵고 긴 이름들이지만 미생물마다의 사연을 보고 있는 것이 즐거움이다.

  알게 모르게 우리에게 도움을 주거나 해를 끼치는 미생물. 세균, 고세균을 지나 바이러스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가진 에피소드와 함께 미시적인 세계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이 책은 갈매나무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우주에 수많은 별들이 떠 있어 셀 수 없을 지경이라도 1000억 개 정도면 넉넉히 셀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지구상의 미생물의 개수는 10의 30승이다. 억, 조, 경, 해..... 무량수까지 가도 10의 20승이다. 미생물을 늘어놓으면 안드로메다를 지날 수 있다는 얘기가 허튼 얘기는 아닐 것이다. 수많은 미생물들이 발견되고 있지만 우리가 찾아내지 못한 미생물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환경에서도 살아남는 미생물들은 심해에서도 뜨거워도 차가워도 방사능이 있어도 존재한다. 

  미생물은 운석을 타고 어딘가에서부터 날아왔을 수도 있고 반대로 우주선을 타고 우주로 나아가고 있다. 아무리 우주선을 살균하더라도 화성에 도착한 미생물들은 분명 있을 것이다. 그들이 어떤 영향을 줄지는 모른다. 반대로 달이나 운석에서 광물을 채취하는 일은 위험할 수도 있다. 그곳에 미생물이 없다는 보장은 없다. 우리는 우주만큼이나 미생물의 세계를 잘 모른다.

  미생물은 생태계에서 여러 가지 역할을 한다. 우리 몸안에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미생물들이 서식하고 있고, 그들은 여러 가지 역할을 하고 있다. 우선 장 속에는 음식물을 분해해서 흡수를 도우는 미생물들이 있다. 이들의 발란스에 따라 살이 찌거나 그렇지 않거나가 결정되기도 할 것이다. 임신을 하게 되었을 때 우리가 알을 놓지 않는 것은 바이러스의 도움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와 아예 함께 하게 된 미토콘드리아도 있다. 우리 몸을 벗어나면 맥주, 치즈, 초콜릿 같은 발효 식품에 효모가 필요함을 알 수 있다. 몸에 좋다는 사과에는 1억 개의 미생물이 존재한다. 세균들을 잡아먹는 박테리오파지는 대표적인 항생제다. 

  질병을 일으키는 미생물도 역시 많다. 감기 바이러스인 코로나는 생김새가 태양의 코로나와 닮아서 이름이 붙여져 있다. 이들은 코로나19, 사스, 메르스 등의 친척을 가지고 있다. 중세 인구 절벽을 만들었던 페스트를 비롯하여 결핵, 천연두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도 소개되어 있다.

  식물에게도 마찬가지로 질소를 식물에게 공급하고 영양분을 나눠 갖는 균류. 뜨거운 물에서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고세균들 바닷속의 미세 조류들도 있다. 반대로 바나나를 멸종시키고, 벌을 죽이는 미생물도 있다. 감자를 죽인 곰팡이는 아일랜드에 엄청난 기근을 가져다주었다. 

  재미난 것은 바이러스에 기생하는 바이러스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나일론 폐수에 서식하는 미생물 이야기에서 미생물이 얼마나 빨리 세상에 적응하는지도 알 수 있었다. 겨울철 스키장에 뿌리는 눈 속에도 미생물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주위 식물들이 냉해를 더 쉽게 입게 된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100가지의 미생물들을 나열하였지만 모두 개성이 있고 특별했다. 하나하나에 엮인 에피소드는 재밌었고, 미생물은 잘못 없다 다 인간이 잘못이다라는 뉘앙스 또한 조금 웃기면서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미생물은 굉장히 다양한 모습이고 다양한 형태로 살아간다. 굉장히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형태도 있지만, 그것 또한 생명체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은 것일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은 "기능하는 것은 존재한다"였다. 

  미생물과 완벽하게 격리될 수 없다. 우리는 미생물의 공격을 받지만 또한 미생물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미생물은 생물의 근원에 가까운 존재다. 유전자 편집 기술 역시 미생물로부터 시작하였고 우주에서 살아가는 실험 또한 미생물의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 미생물은 인간보다 강인하다. 미생물을 안다는 것은 지구의 원래 주인의 모습을 알아가는 걸지도 모른다. 식물, 곤충 그 무엇보다도 많은 개체를 자랑하는 원래의 우세종은 미생물일지도 모를 일이다. 

  100가지의 미생물과 만나는 즐거움이 유익하다는 것도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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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의 유전자 - 협력과 배신, 그리고 진화에 관한 모든 이야기
니컬라 라이하니 지음, 김정아 옮김, 장이권 감수 / 한빛비즈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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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가 발간한 이후 많은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 유전자는 사실 이기적이기도 이타적이기도 않기 때문이다. 그가 그런 제목을 붙여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사실 유전자는 죄가 없다. 최근에는 <공진화>를 다루는 책들이 많이 출간된다. 생물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같은 개체에서 협력은 어떻게 이뤄지는지에 얘기한다. 굉장히 감격스러운 장면을 만날 것 같지만 이 책 역시 유전자에게는 정이 없다. 

  경쟁과 협력 사이, 마치 얇은 종이 한 장 차이 같은 성질은 유전자의 또 다른 모습을 설명하기 좋다. 생물은 이기적인 행동을 하면서도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헌신을 보이는가를 설명하는 이 책은 한빛비즈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공진화>의 감격스럽고 아름다운 스토리에 비해 이 책은 이성적이다. 생물이 군집을 이루면서 서로 협력하며 살아가는 모습, 그리고 각자의 의무를 수행하고 긴급 상황에서 자신의 목숨을 거리낌 없이 내놓는 모습에 대한 설명을 한다. 인간에게 이런 모습은 성스럽기까지 할지 모르겠지만 이것 또한 하나의 유전 메커니즘일 뿐이다. 단독적인 개체는 없다. 모든 것이 얽혀서 살아가고 있다. 내어줄 것과 챙겨야 할 것의 손익 계산을 전 지구적으로 밸런스 있게 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 또한 유전자의 의지다.

  이렇게 얘기하면 너무 숙명적인 느낌일까. 하지만 인간은 유일하게 유전자의 의지를 거스르는 존재 중에 하나다. 그런 인간이라는 존재에게 저자는 협력이라는 가치를 깨우치고 싶었던 것 같다. 많은 생물체의 협력이라는 단어가 결국 개체 보존이라는 거대한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인간 또한 다르지 않음을 얘기하고 있지만, 인간만이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 자국 이기주의가 팽배하고 있는 지금의 시대 저자는 범지구적인 협력을 기대하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의 몸은 그 자체로 협력의 상징이다. 가장 주요하게는 미토콘드리아를 들 수 있다. 우리 몸을 이루는 세포들은 각자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소멸하기도 한다. 생존의 시각에서 본다면 세포자살은 이해할 수 없지만 생존에 불리한 조건이 되었을 때 자연스레 사라지는 것은 이치다. 이것은 노화의 의미이기도 하다. 개체에 부담이 되는 개체가 되었을 때에는 죽음에 이르게 된다. 생명 유지를 위한 죽음 <아폽토시스>, 세포자살의 다른 말이다.

  사회적 곤충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초유기체다. 모두 각자의 몸을 가지고 있지만 군집 그 자체로 하나의 생명체와 같은 것이다. 암컷 일벌들은 유성 생식은 불가능 하지만 때때로 무성생식이 가능하다. 여왕개미가 존재한다면 그 역할을 하지 않을 뿐이다. 하지만 자신의 자식을 피를 잇지 않을 경우 반란을 일으킨다. 그래서 군집을 이르려면 여왕들은 여러 수컷과 교미를 해서 일벌들이 자신의 유전자가 어딘가에 있다는 것을 믿게 해줘야 한다. 

  줄무늬 몽구스는 암컷 대다수가 새끼를 놓지만 우두머리 암컷이 새끼를 놓지 않았을 때에는 남의 새끼를 잡아먹는다. 하지만 우두머리 암컷이 새끼를 놓으면 다른 새끼들도 안전하다. 수많은 새끼 중에 자기 새끼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붉은쌍살벌도 마찬가지다. 여왕은 서열이 낮은 암컷들이 알을 놓지 못하도록 괴롭힌다. 

  육아 협력은 암수의 개체 수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암컷이 많을 경우 수컷은 교미 이후 다른 암컷을 찾아 나선다. 그것이 자신의 유전자를 더 잘 퍼트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암컷이 적은 경우 수컷은 교미한 암컷에게 잘 보이려 노력한다. 다음 교미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때때로는 암컷이 와서 알만 놓아주고 가버린다. 암컷이 적은 경우에는 수컷의 고환의 크기가 커진다. 다른 수컷보다 많은 양의 정자를 내보내서 수정에서 우위를 점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두머리 수컷만이 교미를 하는 고릴라보다 여러 수컷과 교미를 하는 침팬지의 정자 수의 차이는 무려 200배다.

  여러 동물 얘기를 했지만,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동물은 인간이다. 인간은 유일하게 협력을 통해서 육아를 하는 동물이다. 할머니는 손주들을 키우고 먼저 태어난 아이들은 동생들을 보살핀다. 물론 각자의 생존에 최선을 다하기도 한다. 아이가 수시로 우는 것은 배가 고픈 것뿐 아니라 젖을 자주 빨면 엄마가 임신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아이는 탯줄을 통해서 엄마와 유전자 교환을 시도하는데 이것은 아직 걸음마 단계의 미세 키메라 현상이라고 한다. 자연분만을 하는 아이는 엄마의 장기로부터 여러 가지 미생물을 받아온다. (조금 더럽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제왕절개를 하면 그것을 얻을 수 없다. 대략 7세 이전까지 자연 분만한 아이들이 더 튼튼할 수 있다.

  인간에게만 있는 유일한 존재 '할머니'다. 할머니는 딸과의 유전자 경쟁에서 벗어나 자신의 유전자가 잘 전달될 수 있도록 협력한다. 암컷의 아이는 암컷의 유전자임이 확실하기 때문에 모든 생물의 모계 친화적인 현상은 당연하다. 시어머니보다 친정어머니와 친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자신의 딸이 낳은 자식에게는 자신의 유전자가 확실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협력은 사회를 들 수 있다. 사회는 협력과 처벌이 존재한다. 협력은 협력하지 않았을 때보다 협력할 때가 유리한 점이 많을 때 성립된다. 처벌은 집단이 더 협력하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칼을 칼집에 있을 때 효과가 있을 뿐이다. 협력의 이유 중 하는 평판이다. 평판은 과거의 일을 바탕으로 앞으로 그 사람의 행동을 추측할 수 있다. 평판의 가치는 생존에 유리하다. 흡혈박쥐는 피를 구하지 못한 동료를 위해 피를 게워내 동료에게 나눠준다. 그것은 먼 미래를 위한 투자다. 인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평판이 높은 사냥꾼은 사냥을 잘하는 인간이 아니라 가장 인심 좋은 사냥꾼이다. 그들은 사냥을 잘하지 못해 고기를 구하지 못하는 날에도 고기를 나눠 받을 확률이 높아진다.

  협력과 평판의 관계는 중요한 것 같다. 평판을 추적하는 방식은 반드시 필요하며, 신뢰를 어겼을 때의 처벌 또한 필요하다. 부족 사회에서는 공동체에서 배제되었고, 지금은 공권력으로 억압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무조건 협력하지 않는다. 협력을 선호할 동기가 없으면 우리는 협력하지 않는다. 최근에 일어난 팬데믹만 봐도 알 수 있다. 선진국이라고 얘기되었던 수많은 국가에서 일어난 이기주의는 <죄수의 딜레마>와 같다. 신뢰가 무너진 사회에서 협력은 이뤄질 수 없다.

  협력과 방해의 행위는 다르지 않다는 것은 딜레마다. 공동체의 크기를 바꾸면 정의와 공정은 달라진다. 인간의 협력은 그 끈끈함에 비례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생명이 소중해도 내 가족만큼 소중하기 쉽지 않다. 협력과 경쟁은 굉장히 이해충돌적인 것이 되어 버린다. 누구와 협력하고 누구와 경쟁할 것인가의 선택은 늘 힘들다. 범지구적인 문제도 마찬가지다. 누구의 이해를 위해 얼만 큼의 미래를 위해를 위해라는 질문의 답은 모두가 다를 것이다. 

  인간이 지금의 위치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협력이었다. 하지만 세계는 구체적인 위협 속에서 신뢰를 잃어버리고 국경을 잠그기 시작했다. 서로를 믿지 못하며 대치하며 결국 전쟁 또한 생겨버렸다. 하지만 이대로 지속하다가는 인간은 멸종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생존을 위한 속도전은 시작되었다. 전 세계적인 협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가족을 넘어 앞으로 결코 만날 일이 없는 사람들과도 연대해야 한다. 

  고상한 말을 치우고 '인간 생존을 위한 협력'. 두려움에 우왕좌왕하다 전멸한다. 지금 우리에게는 신뢰와 협력이 필요하다. 그것은 우리 유전자에 새겨져 있다. 저자의 희망에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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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사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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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쪽의 일방적인 사랑이 불러일으킬 범죄를 연상하게 했던 제목과는 다르게 작품은 세상에 커다란 질문을 던지고 있다. <나미아 잡화점의 기적>에서는 감동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했다면 이 작품은 게이고의 치밀한 스토리에 젠더 문제를 담았다. 어떤 강요도 없이 스토리를 전개하면서 그들이 느껴야만 하는 압박과 편견에서 살아 남기 위한 노력에 대해서 보여준다. 세상을 그들의 잣대로 보질 않기 때문에 실마리를 잡아내지 못하는 모습 또한 우리 사회의 모습이었다. 세상의 모든 것은 경계가 모호하다. 젠더 또한 다르지 않다. 

  흑백으로 재단하려는 세상에 대해서 그라데이션 세상을 얘기하는 이 작품은 다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성소수자로서의 끊임없는 구애를 표현하고 있다. 성소수자를 받아들이지 않는 세상에서 제대로 살아가고 싶은 그들의 외사랑을 표현한 이 작품은 소미 미디어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세상에 성소수자라고 하면 신체와 다른 마음을 가진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차이라고 대부분 받아들인다. 하지만 생물체는 언제나 다양성을 확보하려 노력하고 있으며 정신적인 차이뿐 아니라 남녀의 성기를 모두 가지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다. 인간은 중성으로 태어나지만 유전자가 발동하여 둘 중 하나를 퇴화시키는데 그것이 제대로 되지 않는 사람 또한 있다. 호르몬 발란스에 따라 다른 정체성을 가지기도 하며, 염색체로 인해 XX, XY가 아니라 XXY, XXXY 등의 인간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경우를 지칭해서 인터 섹스라고 하고 성소수자를 나타내는 LGTBAIQP+ 중 I를 가리킨다.

  남성과 여성의 간극은 계단처럼 한 단계가 아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연속성이 있고 우리는 정보량을 제한하여 효율을 얘기하지만 남성중에도 부드럽고 예민한 사람이 있고 여성 중에도 험악하고 폭력적인 사람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세상은 늘 다수의 것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다. 단지 게이나 레즈비언의 문제만이 아니다. 

  여성과 남성의 한 중간에 서 있는 미쓰키는 사건을 일으키는 가장 중요한 인물이며 두 가지 세상을 이어주는 가교 같은 역할을 한다. 데쓰로는 다수의 대표 중 다정함을 가진 측이며 하야타는 다수의 대표 중에서도 이성적인 사람이다. 나카오는 소수자를 이해하는 사람이다. 물론 평범한 사람을 상징하는 스가이도 등장한다. 이 모두를 강하게 묶어주는 것이 바로 미식축구다. 그들은 모두 같은 동아리로 승리를 위해 강한 연대를 가지고 있었고, 행동과 눈빛만으로도 상대를 이해할 수 있을 정도였다. 세상을 강하게 나누는 '갈등'에 그들의 '끈끈함'이 대항하는 모습이 추리 소설을 넘어 뜨거운 무언가를 가져다준다.

  혈액형은 A, B, AB, O로 나누지만 아마두 사람들을 혈액형에 가두질 않는다. 최근에 유행하는 MBTI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젠더에 관해서는 남/녀의 카테고리에 강력하게 가둔다. 남자는 이래야 한다, 여자는 이래야 한다는 사회적 역할을 넘어 차별의 요소가 되어 버렸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거라고 그렇게 얘기하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많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사건의 세밀함과 해결 과정보다는 주인공 데쓰로의 심리의 변화가 더 주요한 스토리다. 리사코와 결혼한 데쓰로는 아내가 종군기자로 가질 못하게 하기 위해 피임을 하지 않는다. 아내는 그런 사실을 알고 자신을 기만했다고 느낀다. 그런 와중에 데쓰로는 자신을 이렇게 얘기한다.

결국은 자신 역시 낡아빠진 꼰대들과 같은 부류 일지 모른다는생각에 자기혐오에 빠졌다. 입으로는 아내의 자립을 바란다고 말하면서속으로는 강한 저항감을 품었다는 말인가.그런 것을 본인만 모르고 있었던 게 아닐까.- p106

  하지만 미쓰키와 대화를 나누고 그를 남자로 대하면서 그의 마음도 조금씩 바뀌어 간다.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집작 할 수밖에 없는 무언가.누구나 그런 것을 지니고 있다.미쓰키의 마음이 남자라는 증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p213

  남자의 마음으로 리사코를 사랑한 마쓰키. 그 마음을 받아준 리사코의 말은 남편으로써 아내에게 들은 말로는 치명적이면서도 깨달음이 있지 않았을까?

당신은 마음이 여자고 레즈비언이 아니면 남자의 육체를 가진 사람만랑하리라 생각하나 본데, 마음은 역시 마음에 반응해.여자인 내 마음은 마쓰키의 남자 마음에 호응했지.중요한 것은 마음을 여는 거야. 형태는 상관없어.- p401

  인간은 모두 뫼비우스의 띠 위에 있다. 왔다 갔다 하는 마음은 언제 다른 편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것이 젠더의 얘기만은 아니다. 밝은 사람이 어두운 사람이 되기도 하고 소극적인 사람이 환경에 따라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것이 감정의 영역, 마음의 영역이라고 해서 이해되지 못해야 하는지 작가는 얘기하는 듯했다.

  추리소설의 재미를 놓치지 않으면서 성소수자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그것을 이해하는 끈끈한 믿음과 우정 그리고 사랑을 얘기한다. 이미 대가의 위치에 들어선 히가시노 게이고라서 가능했을까. 700페이지를 한 번의 지겨움도 없이 읽어낼 수 있었고, 그 안에 녹인 메시지도 너무 명확했다. 세상에는 남자와 여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있을 뿐이다. 소외된 그들이 세상에 대한 절박한 사랑이 일방적인 '외사랑'이 되질 않도록 형태가 아닌 마음에 반응하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더 강렬하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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