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단단하게 살기로 했다 - 불안, 초조, 무기력, 번아웃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인생 전환법
브래드 스털버그 지음, 김정아 옮김 / 부키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1세기 들어서 '치유'를 주제로 하는 책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팬데믹 속에서 '마음 챙김'의 책들이 더 많아지고 있는 것은 아마 우리가 가진 불안과 초조 그리고 무기력을 해소할 창구가 줄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적 동물로 얘기되는 호모 사피엔스에게 대면할 수 없다는 것은 굉장히 취약한 상황에 놓여 있음을 뜻한다. 편지도 전화도 그리고 화상통화도 모두 관계를 엮을 수 있지만 직접 만나는 것만큼의 효과를 볼 수 없다. 오감을 통해서 전달되는 정보를 단편적인 연결로 채울 수 없기 때문이다.


  번아웃과 자기부정 그리고 고립에 대한 자기 치유를 위한 방법을 적은 이 책은 부키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열심히 뛰는 사람이 지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그동안의 경험으로도 많은 책으로 이미 알고 있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의 "아무리 대단한 결과도 지나친 야망을 따라잡을 수 없다."라는 말의 의미도 잘 느낄 수 있다. 야망은 지칠 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지칠 수밖에 없다. 일을 하지 못하면 하지 못해서 불안하고 하게 되면 잘하지 못하게 될까 불안한다. 우리는 모든 것을 다 해결 수 없는 존재이기에 관계를 맺고 살고 있는데도 영웅이 되고자 하는 마음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불안이 커지면 결국 마음은 그것과 융화된다. 편향된 사고는 '동기화된 추론'을 가게 되고 모든 것을 내가 인식하려고 하는 방향으로 받아들인다. 불편한 진실을 부정하고 합리화를 시작하게 되며 자신의 스트레스를 부정하고 채찍질한다. 그렇게 우리의 몸과 마음은 망가진다. 상처는 드러내고 치료해야 한다. 칭칭 감은 상처는 곪고 덧나게 된다. 때로는 더 큰 병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해야 한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원인을 알아야 하듯이.


  이를 위해서 저자는 5가지를 제안한다. 수용, 집중, 인내, 취약성, 유대, 운동이다. 이 제안은 그렇게 특별하지는 않았다. 많은 책들에서 제안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단계를 나눠 잘 정리되었다는 점은 좋았다. 모든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용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질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들러의 '자기 수용'과 동일한 내용이었다. 그런 면에서 '취약성'도 같은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잘 판단해야 하고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 나를 부정하면 내가 알고 있는 나와 실제의 나의 갭에서 오는 괴리감으로 힘들 수밖에 없다.


  집중은 어쩌면 행동과 같다. 불안하면 산만해진다. 반대로 산만하기 때문에 또 불안하다. 집중하고 있을 때에는 전혀 불안하지 않다. 지금의 사회는 주의력을 흩트리는 요소가 너무 많다. 핸드폰을 시작으로 너무 많은 기기와 정보에 노출되어 있다. 이것을 끊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초콜릿을 사방에 뿌려 놓고 눈앞에 쓴 약을 먹어라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내는 참고 행하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스트레스를 참아라는 얘기는 아니었다. 일을 급히 하지 말고 인내하고 여유를 가지라는 말이었다. 바쁜 사람들에게는 여유를 갖는 것도 인내의 한 덕목이 되는 것이다.


  치유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역시 '유대'다. 아들러가 말한 '타자 공헌'처럼 우리는 공동체에 기여함으로써 우리의 존재를 인식한다. 현대의 느슨한 연결 속에서는 이런 부분이 약할 수밖에 없다. 작은 공동체라도 유대를 느낄 수 있는 공감을 마련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운동'이다. 정신력은 결국 체력에서 나온다. 행복하니 웃는 것이지만 웃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기도 하다. 몸을 움직이면 뇌에 혈액 공급이 원활해지고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모든 것은 실천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누구보다 열심히 산 사람이다. 그런 자신이 공황에 빠지는 느낌을 받으면서 멈춤을 시작했다고 한다. 불교의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은 여느 명상 책들과 결을 같이 하고 있다. 심리적 어려움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비슷한 것 같다. 한 줄로 요약하면 '자신을 직시하고 사랑하라.'가 될 것 같다.


  한 시간의 휴식으로 회복할 수 있는 몸을 한 달을 쉬어도 회복하지 못하는 몸으로 만들지 말자. 어느 것이 더 효과적인지 자명한 일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굉장히 고등동물이지만 자신의 상태를 인지하는 것은 끓는 솥의 개구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아직까지는 괜찮다고 자신을 다독거리기 전에 정말 괜찮은 것인지 물어보며 챙기는 삶을 사는 것이 바로 저자가 얘기하는 단단한 삶이 아닐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계사를 뒤흔든 생각의 탄생 - 혼란의 시대를 돌파해 현대 경제 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꾼 11인의 위대한 생각들
송경모 지음 / 트로이목마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사상가들의 말을 연구하고 학습하는 게 아닐지 모른다. 그들의 생각을 재단해서 우리의 생각의 정당성을 부여하려고만 하려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애덤 스미스가 두 번 정도 언급했던 '보이지 않는 손'은 지금의 시대 유행어처럼 사용하고 뭐든지 잘 될 거며 적극적인 투자를 옹호하는데 '케인스'를 소환한다. 파레토는 생전에 말하지도 않았던 20:80의 법칙도 파레토의 법칙이 되어 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상가들을 오해하고 있는가? 그런 물음과 대답을 위해 이 책은 쓰였다.


  마치 3권 이상의 책을 읽을 느낌이 남을 정도로 함축이지만 강렬했던 이 책은 트로이목마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가장 먼저 얘기해야 하는 것이 애덤 스미스다. 소위 '자유'를 외치는 사람들은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을 항상 얘기한다. 시장은 자유롭게 두면 그 자체로 잘 작동할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시절 경제는 지금만큼 복잡하지 않았고 그런 애덤 스미스 조차도 국가의 역할을 얘기했다. 국가는 전쟁을 막고 구성원들이 정의롭지 못한 대우를 받거나 가하면 해결해야 한다. 시장의 힘으로 생산할 수 없고 유지할 수도 없는 공공의 업무를 해야 한다. 특히 생필품에 대한 과세나 사업 이익에 과도한 과세를 비판했다. 애덤 스미스는 경제학자로 알고 있지만 그는 도덕 철학자다. 그가 말한 사회상은 지금의 시대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지켜지지 않는다. 사람은 애덤 스미스가 생각한 만큼 도덕적이지 않은 것일까.


  애덤 스미스는 분업에 대해 얘기하면서도 파편화된 작업을 하는 노동자의 생각이 편협해질 것을 걱정해서 노동자의 교양을 훈련시킬 장치가 필요하며 가난한 자를 위한 공립학교 설립을 주장했다. 물질이 풍족해지면 번영하는 것처럼 보여도 노동자들의 마음이 퇴보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라고 얘기했다. 계몽과 도덕적 인간을 얘기한 애덤 스미스의 시선을 벗어났다. 인간의 물욕은 높은 수준의 덕성으로 억제되지 못했다. 경쟁만 교육하는 지금의 사회에서는 불가능한 일일지도.


  사회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생시몽의 생각은 시작되었을까? society가 처음 지녔던 말은 '함께하는 사람'이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의 공리주의와도 닿아 있다. 그는 개인이 행복하지 못한 것은 개인의 잘못과 책임이 아니라 그에게 올바른 지식 와 습관, 능력을 기를 기회를 주지 못한 환경의 잘못이라고 말했다. 인본주의 경영의 시작이었다. 사람 중심 경영과 이익 중심 경영의 모순을 깨트린 생시몽은 현재 HRD의 선구자다.


  '기업가'라는 단어는 프랑스의 자랑이다. 대부분의 경제 용어가 영어인데 반해 기업가만은 프랑스어를 차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 바티스트 세는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을 둘로 나눴다. 바로 기업가와 관리자다. 기업가는 혁신을 수행하는 사람이며 역동하면서 경제를 진화시키는 사람이다. 기업가는 남의 지식으로 이익을 창출하는 지식과 지식을 이어주는 매개자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뛰어난 발명을 뛰어난 이익 창출로 연결하는, 사람들이 미처 보지 못한 어떤 연결점을 기업가들은 찾아내고 비즈니스 할 수 있다.


  프리드리히 리스트는 국가의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그저 잘 살게 된 국가에서 태어나 살아온 사람의 생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부국 한 국가가 되기까지의 국가의 역할을 과소평가하면 안 된다. 바로 애덤 스미스의 '영국'을 예를 들어도 강한 영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앨리자베스 여왕 1세의 강력한 통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모든 경제대국들은 자신을 위해서 보호주의를 꺼내 들면서 다른 대륙에 대해서는 개방을 요구한다. 개방은 강한 자에게 유리한 것이다. 지금의 미국마저도 중요할 때마다 보호주의를 꺼내 든다. 풀뿌리 경제가 나무로 자라기 전까지 국가는 산업을 지켜줘야 한다. 세계 커피 시장의 크기를 비해 케냐의 소득 수준은 절망적이다. 산업의 기반을 강대국들이 모두 석권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이것 또한 자유 경제의 민낯인 것이다. 힘 있는 세력은 언제나 약자에게 자유방임이 가장 좋은 것이라며 꼬드긴다. 마치 돈 많은 사람이 '법대로 하자'라고 얘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신문 아니 모든 미디어는 기본적으로 '정치성'을 띄고 있다. 미디어는 권력의 나팔수 역할을 할 수 있는 역량을 지녔고 권력은 이를 가만히 놔두질 않는다. 이를 부정하고 나선 이가 바로 '퓰리처'다. 우리에게는 '기자들의 노벨상'이라고 더 많이 알려진 이는 올바른 것만 얘기하고 시민들이 관심 가지는 것에 집중하라고 얘기한다. 그는 언론인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배움을 통해 만들어진다고 믿었고 언론전문대학을 설립하는데 거금을 기부했다. 지금의 언론은 구독료보다 광고료에 의존한다. 광고료는 독자 수에 비례하겠지만 결국 광고료를 지불하는 이에게 당당해질 수 없다. 우리는 마치 공짜로 미디어를 접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권리를 잃어버린 건지도 모른다. 구독료만으로 유지되는 언론사여야지만이 세상에 당당하고 구독자가 원하는 기사를 쓸 수 있는 것이다. 기레기라고 불리는 아픈 사연이 이해가 가지만 이해하고 싶진 않다.


  파레토의 20 : 80 법칙은 여러 방법으로 해석된다. 세상의 나쁜 일의 80%는 나머지 20% 때문에 일어난다던지, 회사 수익의 80%는 20%의 아이템으로부터 나온다던지, 문제의 80%는 20%의 원인에서 기인한다던지 그런 식이다. 이런 공식은 자칫 잉여라는 단어와 결탁되는데 사실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평가라는 것이 절대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축구 경기가 있다 치자, 그 팀은 미드필드가 너무 좋아서 수비수까지 공이 잘 넘어오질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때 수비수를 잉여라고 볼 것인가? 편협한 정책은 때론 중요한 부분을 도려내는 악수로 이어진다. 사라졌을 때 비로소 중요함이 느껴지는 것들은 생각보다 많다.


  파레토는 '엘리트의 순환'이라는 이론으로도 유명하다. 사회는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엘리트가 교체되는 현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엘리트는 '여우형'과 '사자형'으로 나뉜다. 여우형은 뭔가를 계속 찾아다니는 사람으로 어떻게 보면 '진보 진영'처럼 보였고, 사자형은 체제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 사람으로 '보수 진영' 같았다. 여우형 엘리트가 사회를 발전시키면 사자형 엘리트가 자연스레 증가하고 결국 권력을 잡는다. 그리고 또 변화를 바라는 소망이 깊어지면서 또 교체된다. 역사는 이렇게 둘의 순환으로 흘러간다. 둘의 상태는 어느 쪽이 더 낫다고 얘기할 수 없다. 여우형이 지나치면 사회는 무질서화 되고 사자형이 지나치면 사회는 경직된다. 그리고 둘 다 국민의 뜻을 따른다고 얘기하지만 늘 자신의 이익을 관철하려는 의도에 불가하다는 점은 같다고 했다. 


   수학자에서 경제학자가 된 팔방미인 케인스와 자본주의는 스스로를 파괴하면서 새롭게 태어난다는 슘페터의 이야기는 정말 흥미로웠다. 케인스 역시 에덤 스미스처럼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려는 사람들에 의해 끌려 나와 '케인스주의'가 되었다. 나 또한 케인스주의를 '기술 최고주의' 혹은 '기술 낙관주의' 등으로 이해하고 있었지만 그는 광범위한 통찰을 하고 있었다. 슘페터는 '혁신'이라는 말과 가장 잘 어울린다. 리더의 역할을 할 때 가장 가슴 뜨겁게 다가왔던 '파괴적 창조'의 창시자가 슘페터였다는 것을 알게 되니 그의 책을 더 많이 읽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이 책은 사상과 경제학자, 기업가, 금융가 등 여러 분야의 인물들과 그의 생각을 정리 분석한다. 이 위대한 사람들은 자신의 시대를 통찰하고 해결책을 제시했다. 우리가 여전히 그들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분명 배울 점이 있어서 이다.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과거를 통해 최대한 빗나가지 않게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분명 시대가 변했다. 우리는 위대한 사람들의 말을 보기 좋게 재단해서 우리의 주장을 위한 근거로 사용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지금의 시대를 직시하고 그에 맞는 해결책을 연구해야 한다. 지금의 시대는 자본주의적이면서도 사회주의적이고 민주적인 것 같으면서도 전체주의적이다. 모든 사상의 장점들을 계속 이어 붙여가며 결국 통합된 방향으로 간다. 권력 투쟁을 위한 이념적 대립은 소모적이다. 덩샤오핑의 '흑묘백묘' 이야기처럼 고양이의 색깔이 뭐가 중요하겠는가? 쥐만 잘 잡으면 되지. (지금의 시대는 귀여우면 될련가) 


  현대에도 많이 인용되는 그들의 말의 참 의미를 파악하고 그 말 자체보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마음으로 그렇게 이르게 되었는지를 알게 된다면 분명 더 좋은 사회로 가는 길이 열릴 것 같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등불 2022-12-06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쓴 취지를 잘 간파해서 훌륭한 리뷰를 해주시어 저자로서 진심 감사드립니다
 
똑똑한 표와 대단한 그래프 - 인포그래픽으로 만나는 수학 그림책
스튜어트 머피 지음, 테레사 벨론 그림, 정희경 옮김 / 봄나무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랜만에 아이 책을 신청했다. 인포그래픽은 지금의 시대에 꽤나 중요한 분야다. 빅데이터로 인해 데이터양은 무지하게 늘어나 버렸고 사람들의 관심을 모우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이를 한눈에 알아보게 쉽게 해주는 것인 인포그래픽이다. 아이가 인포그래픽에 흥미를 느낄 수 있다면 곧 교과서에서 만날 그래프가 친근핼 것 같았다.


  재미난 소재로 데이터를 분류하고 이를 알맞은 그래프로 표현하는 이야기를 하는 이 책은 봄나무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인포그래픽은 어떻게 보면 디자인의 한 부분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데이터를 시각화하기 때문에 눈길을 끄는 디자인적인 요소는 중요하다. 하지만 기본이 되는 것은 표와 그래프다. 그래프는 다시 막대, 원, 선, 그림그래프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에 여러 기호와 사진들로 더 보기 쉽게 한다면 정말 멋진 인포 그래픽이 되는 것이다.


  표와 그래프를 그릴 수 있다는 것은 자료를 잘 모으고 분류할 수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식사 메뉴 정하기, 좋아하는 음식 나누기, 가족의 트림 수 세기, 친구들의 반려 동물 종류 등 흥미로운 소재로 재미나게 얘기한다. 실제 아이가 그린 그래프 마냥 귀엽고 엉뚱하기도 하다.


  한 권의 책으로 인포그래픽과 친해지는 시간을 가져 보면 수학과도 친해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에라스무스 평전 - 광기에 맞선 이성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정민영 옮김 / 원더박스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에라스무스>라.. 이름이 낯익은데 잘 기억나질 않는다. 때마침 창비에서 장바구니를 비워주는 이벤트가 있어 장바구니를 뒤지다가 찾았다. 에라스무스는 교육자였다.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광기가 흐르던 시절에 철저하게 중립적인 입장만을 취했던 신학자면서 철학자였던 그는 자신의 안위만 살피던 도망자였을까 극단주의 속에서 균형을 잡으려 노력했던 정신적 지주였을까. 가톨릭이 유럽을 지배하던 시절. 학문으로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고 하나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던 그의 정신은 혼돈의 세월에 철저히 비난당했다. 저자의 날카로운 분석으로 에라스무스라는 위대한 학자와 인문주의의 평가를 나눠 볼 수 있다.


  바람 부는 들판에 홀로 당당히 서 있을 수 있는 정신. 극단주의에 저항하고 모든 사상과 학문에 대해 포용력을 갖췄던 진정한 중립자의 모습을 원더박스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에라스무스는 오직 학문과 라틴어에만 관심이 있었다. 사제였지만 사제복을 입지 않으려고 애썼고 어떤 권위에 닿으려 하지 않았다. 극단적인 주장을 하지 않는 모든 이념에 대해 수용할 자세가 있었고 그것을 나누는 정신적인 노력을 사랑했다. 극단주의는 전쟁을 불러오고 그것은 대부분의 민중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도움이 되는 사람은 몇몇의 소수일 뿐이고 민중들에게는 삶의 파괴만 주어진다. 철저한 극단주의 배제 그리고 많은 이념의 수용은 이기적이며 제국적인 것이 아닌 자발적이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고 싶었던 그의 개인적 소망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큰 이상이 있어 그랬던 것 같지는 않다. 그가 바로 그런 세상에서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왠지 인간적이다.


  정의의 정신 속에서 해소되는 대립. 그것을 꿈꿨던 인문주의 낙원은 현실에서는 이뤄질 수 없을 것이다. 죽음을 무서워하며 논쟁에 휩쓸리는 것을 싫어했던 신학자는 자신의 명성과 경의를 마다하지도 않았다. 삶의 안위 속에서 학문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이상적인 삶이었던 것 같다. 평화로운 시대에 학문의 높이는 많은 존경을 받겠지만 격동의 시대에는 자기 면피를 하는 인물로 전락하고 만다. 마르틴 루터가 종교 개혁을 격렬하게 외칠 때에도 문제는 토론으로 풀어야 한다고 했다. 그의 사상은 지지했지만 그의 행동은 지지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교황의 편에도 서지 않았다. 그는 그동안 줄곳 타락한 가톨릭을 비판하고 있었으니까. 그는 모든 것을 평화롭게 해결하고 싶었다.


  "가장 정당한 전쟁보다도 부당한 평화가 훨씬 낫다"라는 키케로의 말을 옳다고 여긴 에라스무스는 "동물들이 서로 공격한다면 그건 이해할 수 있고, 그들의 무지를 용서할 수 있다"라고 했지만 인간은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폭력은 맹목적이며 목적도 없다. 그저 폭력을 부추기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폭발할 뿐이다. 인간은 두 부류 나눌 수 있고 그것은 교육받은 자와 받지 못한 자다. 참된 인간이 되려면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그의 인문주의는 그 교육이 대중에 닿지 못했다. 인문주의 학자들은 좁은 범위에서 서로 만족했을 뿐이다. 인문주의의 실패는 대중에 파고들지 못함에 있었다. 그에 비해 마르틴 루터는 뼛속부터 평민이었기에 그의 웅변은 민중의 가슴을 뜨겁게 했다. 싸우려 하지 않는 자는 싸우는 자를 이길 수 없다. 모든 면에서 월등했던 에라스무스였지만 사람을 움직일 힘은 없었다. 그리고 종교 개혁이 끝난 뒤에도 그는 적임자임에도 어떤 중재의 장소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저자는 에라스무스를 찬양하려고 작성하지 않았다. 인문주의의 장점과 단점을 나열하고 에라스무스를 양쪽 측면에서 평가했다. 세상을 회피하고 자신의 안위만 살핀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고 죽는 날까지 어떤 극단주의와도 결탁하지 않은 순수한 중립 주의자로 보이기도 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중요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이 책은 두 번의 절판이 있었고 다시 발행이 되었다. 승자독식 사회로 변해버린 세상은 <군주론>이 이끌었다. 아니, 군주론이 세상을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들은 모호하고 어중간한 것을 싫어한다. 극단적인 이념은 사람들을 잘 휘어잡을 수 있다. 그 통쾌함은 히틀러라는 괴물에게 환호하는 대중을 만들어 냈다. 다시금 민족주의와 국가주의가 고개를 들고 있고 사회는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 지금의 시대에 세상의 다양한 모든 것을 품어 내고자 했던 '에라스무스다움'을 꺼내 읽어봐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음을 치료하는 당신만의 물망초 식당
청예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음을 치유하는 상점을 소재로 다룬 소설은 많다. 얼마 전에 읽은 <초콜릿>을 소재로 한 작품이나 <점성술사>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음식을 소재로 한 작품 중에 나에게 가장 큰 감동을 준 작품은 <미스터 초밥왕>이다. 소설은 아니지만 테크닉과 품평의 깊이 그리고 마음을 움직이는 따뜻한 스토리를 모두 품고 있는 걸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미스터 초밥왕>이 생각나 작품이 비교되어 버린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이 책은 그것과 결이 조금 달랐기 때문에 괜찮지 않았나 싶다.


  음식으로 사람을 치유하며 성장하는 요리사의 면모를 보여주는 이 책은 책나누미님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꽤 유명한 음식점 <금귀비 정찬>은 순수 예약제로 운영되는 프라이빗 키친이다. 그곳의 후계자 수업을 받는 문망초는 어머니로부터 미션을 받게 된다. 7명의 편식을 해결하라는 것이었다. 요리사의 이야기지만 심리적인 부분이 더 강했다. 책보다는 드라마틱한 요소가 많았고 요리 기술의 절묘함 보다는 마음을 움직이는 방법을 택했다. 조금은 억지스러운 부분도 있었지만 감동적인 부분을 만들어내며 중간중간 좋은 표현들을 보여주었다.


  특히 수제비 편이 좋았다. 할머니와 아저씨의 심리와 조언 그리고 마음을 나누는 이야기의 전개는 모든 면에서 가장 깔끔하고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채식 떡볶이는 젊은 날의 꿈을 응원하는 이야기라 지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채소를 억지로 먹게 만든 이야기라던지 어머니의 편식을 해결하는 마지막 미션은 그 자체로는 좋았지만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전개였던 점은 조금 아쉬웠다. 그래도 '닭 수제비'편이 너무 좋아서 작품 전체를 다 품을 수 있는 것 같다.


  사실 '김치 만두' 편부터 머릿속에 계속해서 떠올랐던 <미스터 초밥왕> 때문에 요리 작품 자체의 디테일에 대한 아쉬움이 계속해서 생겼다. 편식을 하기 위해 준비하는 음식들이 머리에 그려지지 않고 그걸로 맛있겠다는 상상이 들지 않아 헛헛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반대로 작가가 이것을 쓰려고 얼마나 많은 조사를 했을까 싶었다. 읽는 것은 쓰는 것보다 훨씬 쉬우니까. 이상하게만큼 이 책에서는 작가의 노고가 계속 생각났다.


  요리와 로맨스 그리고 힐링이 잘 버물려진 작품이다. 요리 그 자체의 디테일함을 본다면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요리사의 드라마틱함을 본다면 나름 만족하게 볼 수 있을 것 같고 그저 치유받을 따스함을 찾아서 읽는다면 그 역할은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유독 햇볕이 많이 드는 곳에 자리 잡은 음식점. 유동 인구나 접근성은 고려되지 않고 그저 기분 좋은 한 끼를 대접할 수 있는 곳에 마련된 음식점. 그곳을 지켜나가는 도 모녀 요리사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