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디자인 프리미어 프로 & 애프터 이펙트 CC 2023 - 누구나 쉽게 배워 제대로 써먹는 그래픽 입문서 맛있는 디자인 시리즈
김덕영 외 지음 / 한빛미디어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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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야흐로 영상의 시대라 글도 적지만 영상 작업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편집툴을 기웃거리다가 우리 세대에는 소니의 베가스와 어도비의 프리미어 프로가 주류였는데, 지금은 정말 많은 S/W 들이 넘쳐난다. 맥을 사게 되면 파이널 컷을 사용할까도 생각이 들었는데, 맥을 언제 살 수 있을지 미지수인 데다가.. RTX가 탑재된 PC가 있는 관계로 프리미어로 접근하는 것이 여러모로 좋을 것 같았다. 마침 한빛에서 좋은 책을 제공해 줘서 유익하게 즐길 수 있었다.

"한빛미디어 <나는 리뷰어다> 활동을 위해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이 책은 프리미어를 처음 시작하는 나에게 아주 잘 맞는 도서다. (물론 완전 처음은 아니다. 아무것도 보질 않고 오직 감으로만 자르고 붙이기만 하던 시절이 있었다.) 간단한 영상 편집 용어부터 프리미어 프로의 세세하고 기본적인 부분을 친절히 설명해 준다. 아주 기초적인 것을 알고 싶은 나에게는 충분히 좋은 책이었다. 

  최근에는 IT 서적보다는 구글이나 유튜브를 보는 것이 대세이긴 하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바이블을 한 권정도 가지고 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바르게 훑고 나면 어떤 기능들이 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기능이 없는데도 계속 있을 거라 헤매는 시간을 일단 줄여줘서 좋고, 영상으로 휙휙 지나가는 부분을 삽화로 정리해 놔서 따라가며 실습하기가 좋았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부분은 자막 편집이 아닐까 싶다. 가장 많이 쓰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가장 필요한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최근 포토샵을 보면 ai 기능이 탑재되어 있는데 자막을 음성 인식으로 넣는 게 참 적응이 안 되면서도 재밌는 기능이었다. 글로 치는 게 더 편한 나에겐 그다지 유용한 기능은 아니겠지만, 손이 불편한 사람들에게는 너무 좋은 기능이지 않을까 싶다.

  말로만 듣던 애프터 이펙트는 따라 해 보긴 했지만 아주 잘 설명해 주셨지만 이 녀석은 기본적으로 예술적 능력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스케치와 스토리보드 작성부터 나에게는 넘사벽이다. 물론 PPT에서 간단하게 만들어 효과를 넣을 수 있긴 하겠지만 멋지지 않으면 넣지 않으리라..

  스케치 연습을 해서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날이 오면 다시 도전해 보겠다. ㅎㅎ 

  내용이 기본에 가깝고 기초적이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유용할 것 같지만 중 고수들이 보기엔 아쉬움이 많을 것 같기도 하다. 실용적인 측면의 레벨업 도서는 아니기 때문이다. 출판사에서도 처음 배우는 사람이나 취미로 하고 싶은 사람들의 대상으로 하고 있다.

  유튜브를 시작해보고 싶은 사람, 아이의 동영상 수업에 도움이 되고 싶은 부모 혹은 그 당사자 정도의 위치라면 재미나게 따라 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재미난 예재를 따라가다 보면 간단한 영상 정도는 뚝딱뚝딱 만들 수 있게 된다. 

동영상.. 재밌는 녀석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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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것이 있다면 끝까지 버텨라 - 급하고 성취욕 높은 당신을 위한 인내심 습관
메리 제인 라이언 지음, 이주영 옮김 / 시크릿하우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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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내의 뿌리는 쓰지만 그 열매는 달다'라는 옛 명언은 아주 오랜 시간 우리의 지속성을 건드리는 훌륭한 문장이었다. 아무리 열심히 했더라도 끝맺음이 없다면 우리가 그 열매를 맛볼 수 없다. 모든 일에 시작은 반이지만 나머지 반은 끝맺음이다. 성공은 마지막까지 버틴 자의 몫이다. 포기하기 전까지는 그 무엇도 실패한 것이 아니다. 변화 속에서 빠르게 갈아타기, 오랜 고민을 비효율적으로 바라보는 사회. 신속이 팽배한 우리 사회에서 인내라는 아주 고전적인 명제를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실패하는 것은 빠르게 포기하기 때문이며 그것은 조급하거나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조금 더 인내를 가지고 본질적인 것에 가까워지길 노력한다면 성공을 떠나 조금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얘기하는 이 책은 시크릿하우스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최근 자기 계발의 트렌드는 '일단 해라' 다. 그만큼 사람들이 고립되어 있거나 좌절하고 있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움직이지 않으면 변화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진리다. 움직였다면 지속해야 한다. 지속한 뒤에는 마무리를 해야 한다. 지속하는 힘, 마무리하는 힘은 시작하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지속하는 동안 느낄 수 있는 성취도 있지만 고통과 회의감은 끊임없이 인간을 괴롭힌다.


  인내심은 무언가를 해내기 위한 정신력 이전에 우리 사회를 제대로 굴러가게 만드는 소중한 것이다. 자유를 자유답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인내다. 사회를 구성하며 살아가면 우리는 분명 참아내야 하는 시간이 많다. 법과 질서를 지키려고 노력해야 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인내할 수 있어 가정을 꾸미고 대를 이어나갈 수도 있다. 모든 관계는 인내를 기본으로 한다. 


  얼마 전 '어쩌다 어른'이라는 방송에서 '막말러'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 막말은 일종의 충동이며 자신이 가진 것이 위태로울 때 나온다고 했다. 자신의 화를 참을 수 없을 만큼 불안한 사람들이다. 다른 유형으로는 자신의 권력이 절대 사라지지 않겠다고 믿는 권력자들이나 생에 희망이 없는 사람들이 막말을 한다고 했다. 이들은 자신이 아무리 막말을 해도 자신의 위치가 바뀌지 않을 거라도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인내심에는 '희망'이라는 키워드가 필요하다. 희망은 지속하게 할 수 있는 보상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경험자일수록 더 확신을 가질 수 있다. 한번 성공한 사람은 끝까지 버텼을 때의 열매의 맛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좌절하는 것은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통 일이나 공부를 할 때 '집중력'을 발휘해라고 한다. 하지만 집중력은 하고 싶은 일을 깊게 하는 능력이다. 실제로 우리를 성공으로 이끄는 힘은 '주의력'이다. 주의력은 하기 싫은 일을 해내는 힘이다. 하기 싫은 일을 하는 동안에 하고 싶은 일이 보이더라도 참아내는 힘이다. 집중력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주의력이 힘들다. 인내심이 필요하다. 하기 싫은 공부를 하는 아이에게는 '집중력'이 필요한 게 아니라 주의력이 필요하다. 그 아이도 게임이나 TV를 볼 때 너무나도 높은 집중력으로 보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점점 빨라진다. 편지로 주고받으며 상대를 생각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시절은 지나 직접적인 대화를 요구한다. 긴 글은 단문의 단어로 대체되고 있다. 우리의 대화의 길이 짧아지는 만큼 우리의 생각과 인내는 짧아진다.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힘. 경청이라는 말로 쓰이고 있지만 결국 인내심이다. 상대의 말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힘 또한 인내다. 긴 글을 읽어내지 못하는 것도 인내력의 문제다. 


  얼마 전 본 동영상에서 두 부자의 얘기가 있었다. 스테이크가 주문한 대로 조리되어 나오지 않으면 어쩌겠냐는 질문에 그들은 '그냥 먹는다'라고 얘기했다. 운전을 하다가 갑자기 끼어든 차에 대해 화를 내고 욕설을 하고 경적을 울리는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우리가 가진 에너지는 유한하다. 아까 두었다가 꼭 필요할 때 써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도 인내는 필요하다. 


  인내를 마치 수도의 자세로 느끼지 않아도 된다. 그저 숨 한번 크게 쉬어도 되고 5까지 세어도 된다. 우리 뇌가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도록 환기시켜주기만 하면 된다. 몇 초만 지나면 부끄러운 행동을 제어하지 못하고 해 버리는 일을 줄이면 된다. 그것이 인내하는 힘이다. 그리고 인내의 효용감을 많이 느낄수록 더욱더 쉽게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고통의 시간을 다른 즐거운 시간의 의미를 주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굉장히 당연한 이야기가 담겨 있지만 제대로 신경 쓰지 않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술술 익힐 수 있도록 쉬운 문장으로 되어 있고 하나하나 공감할 수 있는 예시가 나열되어 있다. 우리가 잠깐의 인내를 함으로써 얼마나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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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와의 키스
케이시 지음 / 플랜비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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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릭터의 설정 때문인지 아니면 작가의 의도인지 알 수 없는 중2병과 같은 주인공의 행동과 문장들, 그리고 필요 이상으로 나열되는 글들에서 느껴지는 불협화음이 읽기 어려운 장르가 아님에도 읽기 어려운 상황을 종종 만들어내곤 했다. 약간은 공감할 수 없는 남성상에서 지속적인 의문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처음엔 그저 괴짜의 모습을 표현하려고 했나 싶었다. 그렇게만 판단하자니 작품에 대한 실망이 들었다. 분명 반전은 있을 거라며 계속해서 읽어 나갔다.


  어느 남성의 고독과 철학을 얘기하려다 불현듯 미스터리로 전환하는 이 작품은 케이시 작가님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0125>라는 작품으로 처음 만난 저자는 예쁘고 귀여운 이야기를 잘 써내는 작가로 기억에 남아 있다. 이 작품에서도 작가는 애정에 관한 부분이라든지 여성이 주도한 장면 등을 묘사할 때에는 여전히 좋은 문장을 보여줬다. 어떤 상황에서로 감정선을 잡아가는 걸 잘하는 작가구나라는 느낌이 있다.


 이전 글을 너무 재밌게 읽어 장르 전환에 주관적인 감정이 투영되었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치밀함도 양들의 침묵의 썸뜩한 분위기도 없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이우 작가님의 '레지스탕스'를 닮아 있지만 그 묵직함이 아쉬웠다.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탓일까. 글 속에 녹아있는 작가의 노력이 전달되지 않는다.


  문제는 남자 주인공에 대한 설정이라고 할까. 어디까지 내용을 드러내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느낀 점은 작가가 그려놓은 큰 세계와 반전을 이해하는 노력을 얼마나 많은 독자가 해낼 수 있을까라는 약간의 걱정이랄까. 남자는 굉장히 철학적이려고 애를 쓰지만 중2병에 걸린듯 허세에 취한 모습을 계속 보여 준다. 저자는 왜 이렇게까지 묘사할까 계속해서 의문이 들었다. 의도가 없다고 생각하기엔 너무 허술한 느낌마저 들었다.


  책을 다 덮고 나서야 주인공은 정신분열 상태였던 게 아닌가 싶었다. 어디선가 한 번씩 들었던 수많은 문장들이 쏟아져 나오는 모습이 뭔가 싶었지만, 정신분열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주인공의 일관적인 허세를 읽어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싶었다. 


  사실 이 책은 대단한 반전을 시도하고 있다. 책을 덮는 순간에 책을 둘러싼 세계가 다른 세계였음을 인지하게 된다. 책 속의 세상은 주인공이 그려낸 공상의 세상이었을 뿐이며 어떻게 보면 정신 분열의 세계였다. 위험 천만한 세상에 대한 투쟁은 내면의 처절한 저항이었을까. 대단한 반전에 대한 메시지가 여전히 전달되지 않음은 아쉬움이 있긴 하다.


  사건 진술서로 밝혀지는 본래의 사건을 읽어가며, '뭔 소리 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면 남자 주인공에서 그려진 세상과 사건이 그만의 세상이 아었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반전은 대단히 성공했지만 흥미롭다고 하기엔 여기저기 아쉬운 부분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야기보다 플롯과 반전에 너무 많은 힘을 준 탓일까. 큰 줄거리보다 중간중간에 나오는 짧은 대화, 씬의 전환에서 오히려 더 많은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덮고 난 뒤에야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고 줄거리를 되새겨 볼 수 있는 구성을 하고 있다. 그게 독자에게 좋을지는 여전히 알 수 없고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이기도 하다. 일단 책을 펼쳤다면 끝까지 읽어보고 판단하는 게 좋을 것 같긴 한다. 행여 마지막까지 그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더라도 주인공이 쉴 새 없이 던지는 명언들과 지식 대방출 덕분에 소설 이외에 많은 것들을 얻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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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티움의 역사 - 천년의 제국, 동서양이 충돌하는 문명의 용광로에 세운 그리스도교 세계의 정점 더숲히스토리
디오니시오스 스타타코풀로스 지음, 최하늘 옮김 / 더숲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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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이름은 빨강>이라는 작품으로부터 시작된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하는 동서양의 용광로를 지배했던 역사에 대해 궁금증이 생겼다. 서양과 동양의 세력들이 주거니 받거니 하며 지배했던 이 땅은 서로를 적대하면서도 서로를 탐했다. 수많은 민족, 수많은 문화가 섞여 새로움이 만들어지던 공간. 많은 학자와 예술가를 품었던 공간. 그중 하나인 비잔티움의 역사에 대해 자세히 적혀 있었다.


  로마의 뿌리 위에 그리스를 탐하던 제국. 기독교 세계 최대의 도시였던 비잔티움의 역사를 담고 있는 이 책은 더숲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서양사를 읽을 때마다 곤욕스러운 것은 역시 엄청나가 긴 이름들이다. 게다가 비슷하기도 하고 2세, 3세 등으로 이름을 붙여 나가 머릿속이 복잡하다. 소설이야 등장인물이 반복해서 등장하기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는 지점이 있지만 역사는 익숙해질 만하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린다. 그럼에도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니 물 흐르듯 읽어 나갔다.


  이 책을 펼친 이유는 비교적 명확하다. 베네치아의 문화가 어떻게 오스만에 영향을 끼쳤을까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오스만의 이야기에도 비잔티움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문장이 있기도 했기 때문이다. 궁금증에 대한 대답은 책의 마지막 부근에서 짧게나마 알 수 있었다. 비잔티움이 오스만에 의해 멸망했기에 때문이다. 오스만 제국의 7대 술탄인 메흐메트 2세는 21살의 나이에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하고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켰다. 그는 비잔티움의 성물을 좋아했고 그리스어로 황실사를 편찬하기도 했다. 말년에는 베네치아 화가를 통해 초상화를 선물 받기도 했다.


  비잔티움은 이스탄불의 본래 이름이다. 후대 이 도시는 콘스탄티노폴리스란 이름으로 동로마 제국의 수도가 되었다. 그리고 다시 오스만의 수도가 되었다. 비잔티움은 하나의 도시였을 뿐인데 이를 두고 비잔티움 제국이라고 말하는 것은 영국을 런던 제국, 프랑스를 파리 제국으로 부를 만큼 이상한 일이다. 그렇다고 콘스탄티노폴리스라고 부리는 것은 '로마 황체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도시'라는 뜻으로 꽤나 노골적이다. 자연스럽게 사용하지만 저자는 그 의미는 알아 두자며 서문을 열고 있다.


  책은 여느 역사서와 마찬가지로 제국의 탄생과 발전 그리고 몰락에 대해 설명한다. 1000년의 역사를 가진 제국은 그 길이만큼이나 여러 일들이 있었다. 그 속에서도 학문과 예술을 하는 이들이 몰려들었고 이들의 활약 덕분에 고대의 작품들이 필사되어 지금에 이르게 되기도 했다. 로마에 기원을 두었지만 그리스 학문을 탐닉했고 이슬람 문화에 자극을 받았다. 


  지중해 교역의 중심이었기에 수많은 제국들의 이해관계가 얽힌 곳이었다. 서양과 동양의 문화가 서로를 탐닉하는 공간이기도 했으며 그리스교와 이슬람교가 서로를 이도교로 정하며 핍박하고 학살하던 공간이기도 했다. 그만큼 종교는 권력과 닿아 있었고 권력은 종교를 이용해 그 권위를 세웠다. 황제가 이교를 포용하면 정교회는 경멸했고 황제는 다시 그들의 권력을 몰수했다. 그리고 그리스교에서 신은 오직 하나이기 때문에 황제의 신적 존재감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성상을 숭배하는 것 또한 신에 대한 배반이라고 성상 파괴를 했을 정도다.


  기독교의 나라답게 십자군의 도움을 받은 전쟁이 자주 등장한다. 그리고 제국 안에는 그들이 정착하고 지배하는 지역도 많았다. 그들 사이에는 서로 다른 기록을 남기기도 하지만 대주교가 있는 비잔티움과 십자군은 꽤 잘 어울리는 조합이기도 한 듯하다. (하지만 멋진 이름에 비해 이슬람 세력에게 자주 대패 당한다.) 비잔티움 제국에 많은 제국들이 도움을 준 이유가 이슬람에 제국을 내어주면 지중해 교역의 불리함이 생기는 실질적인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학술가와 예술가들은 전쟁과 제국의 여부를 떠나 자신의 업을 얼마나 제대로 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기도 한 듯하다. 얼마 전에 읽은 에라스무스만 보더라도 전쟁에 이기고 지기보단 자신의 학문을 지속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했던 같다. 콘스탄티노 폴리스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이들은 오스만 제국이 도시를 함락하자 크레타 섬으로 이동해 열심히 활동을 했다. 베네치아가 오랜 시간 지켜냈지만 결국은 오스만 제국의 손에 떨어지고 말았다.


  비잔티움 제국은 세계사에 이름을 남긴 커다란 제국이라는 점도 있지만 고대의 학문과 예술을 세계에 전달한 점에도 집중할 필요가 있다. 그 시대를 지낸 수많은 학자와 예술가들은 고대의 문헌을 필사하고 집대성했다. 엄청난 수의 사본이 만들어졌다. 이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고대의 이야기를 제대로 알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비잔티움의 역사를 오스만 제국에게 멸망된 시점으로 이후로 까지 볼 수밖에 없는 것은 그들이 만들어낸 문화의 영향이 그 시대를 살아온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전해졌기 때문이다. 


  이름을 이해하기도 바쁜 한 장 한 장이었지만 장미의 전쟁, 십자군, 정교회 등의 조금은 신비한 명사들의 등장에 호기심이 발동하기도 하고 베네치아가 비잔티움이 어떻게 오스만에게 영향을 주게 되었는지도 조금은 알 것 같은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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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스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8
엘레나 포니아토프스카 지음, 구유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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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별에 대한 얘기를 할 때에는 다수가 행하는 소수에 대한 횡포 정도 정의할 수 있지만 대체로는 강자가 약자를 대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조금 독특하다. 자신의 주무대가 아닌 곳에서도 강자들은 약자를 억압하는 모습을 늘 보여왔다. 그리고 그것은 분노와 공감을 일으키기 충분했다. 반면 이 작품은 강자가 약자를 대하는 모습, 약자가 강자에 분노하는 모습 그리고 그 사이에 끼여 있는 인물을 묘사하며 여러 면을 보여주려 노력했다. 실제 작가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으며 사실감보다는 세밀한 감정선이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작품의 마니아나와 똑 닮은 삶을 살았던 작가의 멕시코에서의 이야기. 저널리스트로서 사회의 아픈 민낯을 들추어내는 이 작품은 픽션인지 에세이인지 알 수 없는 경계선을 넘나 든다. 이 책은 은행나무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폴란드의 왕족이며, 멕시코계 어머니를 둔 저자는 실제로도 귀족이며 멕시코에서 살며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기사와 책을 쓰는 저널리스트다. 이 작품은 그런 면에서 소설과 차별되는 면이 있다. 굉장히 짧은 문단들이 이어 붙여져 있다. 마치 짧은 인터뷰 같은 문장들이다. 유려하게 흐르는 문장을 품은 소설이 아니라 장면 전환이 굉장히 많은 느낌이 있다. 어디까지가 경험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경계가 모호하다. 차라리 에세이라고 하는 이해하는 편이 나을 정도다.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가족, 마리아나, 소피아, 루스는 프랑스를 떠나 멕시코로 이주하게 된다. 세계 2차 대전이 발발하였고 아버지는 프랑스군으로 징집되었고 어머니는 멕시코계였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멕시코로 떠나기 전까지 어머니가 멕시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멕시코에는 새로운 문화와 새로운 환경 그리고 새로운 가족이 있었다.


  작품에서 등장하는 세 명의 여성은 어떻게 보면 서로 다른 유형의 사람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소피아는 당당하며 다른 사람들의 눈을 크게 의식하지 않는다. 그에 반해 마리아나는 관찰력과 호기심이 많지만 내성적이며 순종적이다. 루스는 이성적이지만 자신의 본분에 충실한 사람이라고 할까. 그리고 빌런으로 퇴펠 신부가 등장한다.


  이 책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책을 읽으며 줄곳 의문이 드는 생각이었다. 반 정도의 이야기는 잔잔한 에세이 느낌이 강하며 마리아나가 화자가 되어 여러 상황을 설명해 주는 느낌이다. 할머니, 어머니, 하인들에 대한 그녀의 생각과 이야기가 펼쳐진다. 사실 어떤 얘기를 하고 싶은지 종잡을 순 없었다. 완벽해 보이는 어머니 루스, 얽매이지 않는 성격의 동생 소피아에 대한 동경. 어쩌면 고독에 대한 이야기, 그런 존재에 대한 이야기 인가 싶었다.


  퇴펠이라는 신부가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방향을 전환한다. 이것을 투쟁의 이야기가 될 것인지 스릴러가 될 것인지 종잡을 수 없다. 물론 책 소개를 감안한다면 인권에 대한 얘기로 전개될 것이라는 것 정도만 어렴풋 느낄 뿐이지만 마치 혁명가 같이 등장한 퇴펠이라는 신부는 책을 읽어낼수록 모순적인 인물이 되어 간다. 어느새 혁명가는 사이비 교주 같이 느껴졌고 그가 말하는 여성 해방은 어느새 여성을 현혹하여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듯한 느낌을 들게 한다. 타락한 사제와 혁명가의 이미지를 연이어 보여주는 그를 어느 쪽에 두어야 할지 몰라 혼돈스러웠다. 마지막에 가서야 역시 첫 느낌은 틀리지 않는군이라는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귀족 사회라는 안전망을 벗어난 가족들은 처음으로 계급에 대해 느꼈을지 모른다. 하인은 원래부터 하인이었기에 그것에 대한 특별한 정의가 필요하지 않았지만, 멕시코에서는 달랐다. 멕시코를 착취하는 많은 프랑스 귀족들을 '양키'라고 불렀고 멕시코스럽지않다고 공격했다. 퇴펠은 자신들의 특권을 내려놓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찾으라며 주장한다. 마리아나는 그를 신처럼 추앙하기에 이른다.


  고독 속에 갇혀 있던 마리아나에게는 신과 같은 존재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녀에게 어머니 루스는 그런 존재다. 문장 곳곳에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완벽함에 대한 묘사가 자주 등장한다. 퇴펠에 대한 믿음 또한 그러하다. 멕시코인으로 프랑스에서 살아온 루스 또한 어쩌면 고독했는지도 모를 노릇이다. 프랑스 공동체에서도 멕시코 공동체에서도 인정받지 못한다. 혼혈인 소피아와 마리아나 또한 그러하다. 그들에게는 혁명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고 신처럼 기댈 곳이 필요했던 것 같다. 하지만 정작 제대로 이겨낸 건 자신을 사랑한 소피아뿐이다.


  책은 마리아나의 성장 소설이라고 생각하며 읽다 보면 루스의 성장 소설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마리아나가 방황 속에서 사랑을 느끼고 변화를 꿈꿨지만 그 무엇도 이뤄내질 못한다. 그저 퇴펠 신부의 모순만 확인할 뿐이다. 그녀의 고독과 신념 그리고 사랑은 굉장히 복잡 미묘해서 마음에 전해지는 메시지를 온전히 받아내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인간은 얼마나 고독할 수 있는가? 그녀를 이해하는 것보다 이해할 수 없는 쪽이 더 많은 이유가 남자이기 때문일까?


  반면 루스의 성장은 확실했다. 멕시코인, 프랑스인의 정체성 같은 것에서 벗어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줬다. 멕시코에서 프랑스어를 배워 놓고, 파리에서 태어나지도 않았으면서, 멕시코 음식을 먹으며 자란 그들이 프랑스인 척하는 것이 우습기 짝이 없었다. 하인이 화상을 입었을 때 어떤 남자의 도움 없이 당황하지 않고 지시를 내리고 상황을 수습했다. 루스는 퇴펠에게 기대던 마음의 변화를 가졌다. 그 순간 퇴펠은 천사에서 악마가 되었다.


  이방인으로서의 삶 속에서 겪는 고독을 다룬 작품이며, 그 속에는 사회에 대한 고발이 담겨 있다. 그들을 깨운 것은 퇴펠 신부였지만 그는 '천사'이면서 '악마'이기도 했다. 그의 말은 혁명을 말했지만 그의 행동은 권의 속에 갇혀 있었다. 인종 차별, 여성 차별 그리고 신념에 대한 맹목적 충성의 부작용. 그런 것까지 얘기하고 싶지 않았겠지만, 사이비 교주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있는 나였기에 퇴펠의 언어는 사기꾼의 언어 같았고 그 말이 정당했지만 공감할 순 없었다. 그리고 왜 고통을 수반하여만 깨우칠 수 있는가? 에 대해 또 한 번 의문이 들었다.


  스토리가 아닌 마음을 읽어내야 하는 작품이었기에 쉽지 않았고, 그런 상태에서 이 작품은 소설이라고 보단 르포의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함께 괴로워하고 공감하기보단 타락한 종교에 이성을 맡기는 행위 대한 거부감이 더 많이 들었던 것은 내 속의 방어기제가 작동했음이다. 아, 이 어쩔 수 없는 이과형의 마음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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