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디바이스 AI
로런스 모로니 지음, 곽도영 외 옮김 / 한빛미디어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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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는 일반인들에게도 익숙한 AI. 거대한 시스템이지만 어디에나 녹아 있다. 이 책은 모바일 기기에서 사용할 수 있는 머신러닝의 기초를 제공하고 있다. 온디바이스라는 제목처럼 학습에 대한 모델은 작아질수록 그 능력을 월등해질 것이다. 디바이스들도 모델들도 함께 발전해 나가고 있다. 이 책은 안드로이드와 iOS에서의 사용할 수 있는 라이브러리로 가볍게 경험해 볼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1장에서는 간단하게 AI와 머신러닝의 기존적인 개념과 관련 용어에 대해 설명한다. 기존의 정답을 찾으려고 했던 Rule-Base 코딩과 다르게 머신러닝은 규칙을 찾아가는 방법이다. 공식을 찾으려 했던 기존과는 달리 학습이라는 것은 확률을 기반으로 한다.


  AI가 가장 도드라지게 사용하는 영역이 컴퓨터 비전의 영역이다. 책은 가장 기초적인 모델 중 하나인 MNIST를 소개하며 간단한 실습을 제공한다. 더불어 MLKit 라이브러리를 이용한 안드로이드와 iOS에서의 얼굴 인식, 손 글씨 인식에 대해 설명한다. 예전에 지문인식이나 손글씨 인식은 정말 복잡한 영역이었는데 정말 쉽게 되어 조금은 복잡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구글의 텐서플로의 모바일 버전인 TFLite를 이용한 여러 가지 애플리케이션도 제작해 본다. 안드로이드, iOS 양쪽을 모두 설명한다. 그리고 클라우드 모델에 접근하는 법까지, 모바일로 만들 수 있는 간단한 애플리케이션을 완성해 볼 수 있게 도와준다. 물론 조금 더 심도 있는 학습이 필요하다면 <개발자를 위한 머신러닝>이나 <핸즈온 머신러닝>을 이용할 것도 추천한다.


  기술서적임에도 마지막 장은 윤리, 공정성 그리고 개인정보에 대한 얘기로 마무리한다. AI라는 것이 학습 기반이라 이런 부분에 더욱 민감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 GAN을 이용하여 얼굴 합성 관련 세미나가 있었는데, 마스크를 착용했음에도 서양인들은 제대로 합성이 되는 반면에 일본인들은 제대로 합성되지 않았다. 사용했던 모델이 서양인에 편향되어 학습되었기 때문이다.


  구글은 이를 위해서 데이터 편향을 확인할 수 있는 도구들을 제공하고 있다. 구글 또한 AI를 맨 처음 만들 때 이런 윤리적인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얼굴 인식이 흑인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던 것이다. 이것은 필름과 카메라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흑인을 제대로 찍어내지 못하던 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윤리적인 부분, 공정성에 대한 부분에 대한 고민도 놓지 말아야 할 것이고, 책은 그런 부분까지 세심하게 짚어주고 있었다.


  라이브러리로 간단하게 학습 모델을 경험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좋은 경험을 제공해 주는 책이다. 간단한 파이썬이나 코틀린, xcode의 경험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코드를 제시하지만 코드 전체를 다루기엔 양이 방대해짐으로) AI 시대로 접어드는 시점에서 좋은 경험을 제공해 주는 책이다.


한빛미디어 <나는 리뷰어다> 활동을 위해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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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공비행 - 또 다른 디자인 풍경
하라 켄야 지음, 서하나 옮김 / 안그라픽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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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을 대표하는 디자이너의 한 명으로써 그는 사회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을 위해 디자인을 통해 해법을 제시한다. 대가는 하나의 작품을 위해 노력함을 넘어 세상을 생각하고 있다. 더욱 낮게 더욱 천천히 세상을 세심하게 관찰하자는 그의 <저공비행>은 지금의 시대에 그가 던지는 하나의 해결책이다.


  성장이 멈춰버린 일본에 던지는 하라 켄야의 질문은 비단 일본만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비서구권 아니 전 세계적으로 중요한 화두가 될 것이다. 그의 통찰과 디자인으로서의 풀이법을 설명해 나가는 이 책은 안그라픽스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이제껏 우리는 높이 나는 새를 모티프로 삼았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더 먼 미래를 보고 더 먼저 준비해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높이 나는 것이 전부가 아닌 듯하다. 미세먼지가 가득 차거나 폭풍우가 몰아친다. 높이 나는 것이 의미가 사라진 듯하다. 각자의 속도로 날아가고 있지만 방향이 명확하지 않다. 기술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사람들도 기후 위기에 멈춰야 한다는 사람들도 넘쳐 난다. 미래에 대한 준비는 점점 더 알 수 없는 것이 되어 간다. 일등을 좇는 것이 희망을 향해 가는 것인지 절망을 향해 가는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 우리는 우리에 대해 보다 섬세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지구 공동체로 나아가는 것은 단일화되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희석되어 평균이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세계는 많은 것을 공유하지만 각자의 것을 만들어 간다. 문화라는 것은 로컬에 존재할 때만 특별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후추가 귀했던 서구에 아낌없이 사용하는 후추를 제공한 동양의 향신료라든지 보기만 해도 매워 보이는 훠거에 들어간 아메리카의 고추가 그렇다. 식재료는 연결되었지만 그 문화는 더욱더 독특해지고 있다. 문화 또한 그렇지 않을까. 우리에겐 우리의 것을 더욱 갈고 다듬어 세계에 내어 보여야 하지 않을까. 그것을 위한 저공비행이다.


  어쩌면 K-컬처로 대표되는 우리의 문화는 이미 저공비행을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여러 장르를 섞어 다이내믹하고 독특한 음악으로 세계를 주름잡고 있는 K-팝이라든지 우리의 문화가 적절히 섞인 K-드라마가 그러하다. 영화는 꽤 오래전부터 약진을 하고 있다. 그런 우리에게도 '저공비행'은 필요하다. 문화 산업을 넘어서는 국자 자체의 비전을 위해서 말이다.


  본업이 아닌 활동에는 사실 미래가 잠들어 있다.

당장은 도움이 안 될 것 같아도 몸을 던져야 하는 행위에는 일의 본질이 숨어 있다. 

분명 지금 '나를'를 포함한 '우리'에게 새로운 상황이 시작되고 있다.


  디자인의 역할은 '본질을 꿰뚫고 가시화하는 것'이다. '저공비행'은 제대로 알지 못했음을 깨달아가는 여행이며, 이 땅이 지닌 잠재력에 눈을 뜨는 체험이다. 세상은 글로벌화할수록 지역의 고유성이나 전통과 문화에 관심을 가진다. '글로벌'과 '로컬'은 반대말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부각하는 말이다. 정밀 제조업으로 편향된 일본의 산업은 '관광'이라는 산업에 집중해 볼 필요가 있다. 일본은 공업 국가로 여전히 관광이라는 카테고리에 대해서는 미숙하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관광과는 조금 다른 접근도 필요하다. 과잉 관광이 아니라 정말 즐기고 싶은 관광에 대해서 말이다. 


  하라 켄야가 던진 화두는 '럭셔리'다. 이는 호화롭다는 뜻이 아니라는 측면에서 '럭셔리'라고 번역한 것보다 그냥 고급스러움이라고 하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다. 하라 켄야는 로컬 자체에 집중하려고 한다. 지구에서 가장 앞섰던 동양은 약탈 보단 우러러 봄을 원했다. 하지만 치열했던 서구는 닿는 족족 파괴하고 약탈했다. 동쪽 끝에 있던 일본은 중국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빠르게 서구 문물을 받아들였다.


  메이지 정부가 내세운 정책은 자국 문화를 버리고 서양화로 전환하는 극단적인 것이었다. 이는 제국주의 색깔이 강했고 결국 부국을 향한 욕망은 아시아 패권을 노리는 폭주를 억제하지 못했다. 일본이 지금도 역사를 규탄받는 이유는 아시아 국가들 가운데 유일하게 서양 열강과 같은 만행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일본에게 남은 것은 310만 명의 전사자와 핵폭탄으로 잿더미가 되어 버린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였다. 그리고 주변국의 원망을 더할 수 있다.


  일본은 평화 헌법으로 인해 미국의 비호 아래 경제 발전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국우선주의로 바뀌는 지금의 시점에 미국은 극동의 다른 나라를 위해 헌신할 수 있을까는 생각해야 할 문제다. 일본은 평화 헌법을 지닌 국가로서, 근대사에 입각해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면서 어떤 미래 비전을 가질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한다. 


  대부분의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 나라들이 저지른 실수는 가스를 사용한 조명 기술을 배우기만 하면 되는데, 가스등의 형태까지 받아 드린 것이다. 전형적인 데드카피의 전형이다. 문명개화로 빠른 경제 성장을 이뤘지만 전통미를 잃어버렸다. 유럽풍이라기보다는 무국적풍이라고 하는 게 더 맞을 듯한 집의 구조는 그저 넓고 호화로운지가 그 기준이 되어 버렸다. 여기서 우리는 인테리어로서의 독창성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전통미를 불쑥 내미는 것은 불편함이다. 우리는 '환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전통미를 바라보는 내국인과 외국인의 시선은 분명 다르다. 이것은 해석과 사상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입장 차이일 뿐이다. 곧 '손님의 시선'과 '주인의 시선'의 차이에서 오는 문제일 수 있다. 일본스럽다, 한국스럽다를 해석하는 것이 주인과 손님의 입장이 다르다는 것이다. 


  ex-formation을 얘기하는 하라 켄야는 이 책에서도 자연과 전통에 대해 집중한다. 인공과 자연의 자연스러운 결합을 시도한다. 그는 호텔이라는 것을 조명해서 설명한다. 자연 속에 녹아든 자연스러우면서도 전통적인 고급스러움을 얘기한다. 격동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두 대륙판 위의 일본은 재난의 나라면서도 그로 인해 풍성한 토양과 산새 그리고 온천을 가졌다. 태풍이 몰아치는 덕분에 풍부한 물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 속을 살아왔던 선조들의 자연에 대한 순응을 얘기한다. 그런 것들의 일본스러움을 관광의 고급스러움에 접목해 본다.


  자연은 인간을 보호가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대로 두면 인간을 집어삼킨다. 인간의 자연에 대한 도전은 그렇게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그것이 지나쳐 자연을 보호하자는 운동이 대세다. 인공이 넘치는 시기에는 자연으로의 회귀를 하려는 습성 또한 인간의 것이다. 그 균형을 맞추는 작업이 '청소'이며 청소는 그 본질이다. 청소라는 개념은 '정원'으로 이어진다.


  너무 인공적이면 촌스럽다. '적당한 편안함'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며 '인위와 자연의 경계'가 꾸준히 관리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인류는 '메타'라는 새로운 세상으로의 진입을 위해 노력한다. 가상과 현실 두 세계에 적응하려 애를 쓰고 있다. 그리고 패권주의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멸망으로 향한 기차 위에서도 인간은 서로 싸우고 있다. 인간은 그다지 현명해 보이지 않는다.


  미래를 향한 비전에 자연을 두려워하던 예전의 자연주의자의 모습을 더하는 것은 어떨까. 메타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세상이 되더라도 자연과의 연결은 필요할 것 같다. 전에 없던 새로운 것에 대한 자원을 향해 시뻘건 눈으로 달려들지 말고 지금까지 함께 했던 우리의 재산 혹은 자원을 재인식하는 것은 어떨까? 세상은 혁신만으로는 움직일 수 없다. 과거부터 지켜오던 빛을 잃지 않는 것 또한 세계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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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오후 4시 반 - 당신의 성장은 계속되어야 한다
양윤정.이승우 지음 / 더퀘스트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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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버드의 새벽 4시 반>을 인상 깊게 읽었고 하버드의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았던 나에게는 그들의 치열했던 삶이 눈에 선하다. 삶의 목표를 향해서 달려 나가는 그들의 뜨거운 열정은 책을 읽는 내도록 혀를 내두르게 했다. 그런 궁금증으로 시작한 이 책은 나를 살짝 갸우뚱하게 만들게 했다. 치열했던 새벽의 4시 반을 지나 오후 4시 반이 되면 또 다른 삶이 시작되는 것인가?


  다양성이 살아있는 하버드의 오후 4시 반은 어떤 모습일까? 그들의 모습에서는 무엇을 느끼고 배울 수 있을까에 대한 이 책은 더퀘스트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여자 친구가 유학 간다고 했을 때 보내지 않으려고 미국 유수의 대학에만 지원하게 만든 남자친구의 마음과 유학가지 전 결혼하자는 급한 프러포즈. 사실 나는 이 대목이 가장 재밌었다. 이대로 진행되면 드라마 한 편일 텐데 책 이내 하버드 이야기로 돌아와 버린다. 타국에서 어렵게 공부하는 아내를 위해 휴직을 하고 전업주부를 선언하고 미국으로 향하는 모습 그리고 입국 심사에서의 인터뷰는 개인적으로는 계속 뒷 이야기가 궁금했는데 말이다.


  오후 4시 반이 새벽 4시 반과 다르지 않을 거란 생각이 있었고 다양한 커리큘럼을 갖춘 하버드라고 해도 그들의 치열함은 유효할 거라고 생각했다. 취미마저 지독하게 하는 그들의 모습이 그려지곤 했다. 하지만 책을 읽을수록 힘 빠진다고 해야 할까. 일반적으로 언급되는 하버드와 리더 양성 학교인 카네기 스쿨은 다른 모습인가 싶었다. 저자가 직접 겪은 이야기를 적었겠지만 사실 내가 만들어 놓은 이미지가 깨지는 것이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이형진의 <공부는 내 인생에 대한 예의다>라는 책처럼 치열했으면 좋았을 텐데...


  저자는 서문에서 강조하고 싶은 부분을 다양성, 강의실 밖의 배움, 여유에 대해 쓸 거라고 예고하고 있었지만 그 안에도 분명 치열함이 있을 거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버드의 오후 4시 반은 치열했던 자신을 격려하는 시간이었으면 했다. 아마 그런 것을 설명하기 위한 멘털 관리, 관계 관리, 시간 관리, 커리어 관리 등에 대한 얘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하버드가 치열하지만 그들도 자신을 추스르는 시간이 있다는 것을 얘기하는 시간이었지만, 하버드도 크게 다르지 않아요처럼 느껴지는 것 또한 어쩔 수 없었다. 마지막 즈음에 소개하는 '살기 위해 오디오북을 듣는다'는 하버드생의 에피소드가 책 전체를 통틀어 가장 좋았던 것도 아마 내 머릿속에 그려진 하버드라는 이미지와 가장 잘 맞아서인가 싶다. 책을 보며 길을 가다가 차에 치여 죽을 수도 있어 오디오북을 듣는다는 것. 너무 하버드스럽지 않은가. (나만 그런가)


  작품의 부부의 에피소드가 곁들여진 하버드의 이야기여서 사실 무겁지 않아 즐겁게 페이지를 넘길 수 있다. 그리고 하버드에서 전업주부 하기로 선언한 남편의 이야기가 곁들여져 있어 즐거운 면도 있다. 그런 면에서 하버드 그 자체에 집중하는 많은 책들에 비해 카테고리가 명확하지는 않다. 그럼에도 중간중간에 소개하는 '하버드 수업 간접 체험'은 유용한 경험이었다.


  하버드의 또 다른 모습. (서술된 것보단 훨씬 치열할 것 같지만.) 그래도 치열하기만 할 것 같은 하버드의 또 다른 면을 볼 수 있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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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연의 작업실 - 김호연의 사적인 소설 작업 일지
김호연 지음 / 서랍의날씨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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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모두에게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 중 일부는 그것을 글로 옮겨내고 있다. SNS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때론 긴 글을 책으로 엮어내기도 한다. 그렇게 글은 우리와 그렇게 떨어져 있지 않다. 전업 작가가 된다는 것은 조금 다른 의미의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이 책은 단순한 작법서라기보다는 그런 프로 작가의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다.


  작년 한 해 <불편한 편의점>으로 밀리언 셀러를 기록한 김호연 작가의 작가로서의 글쓰기에 대한 책은 in_time님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오르한 파묵의 말이 계속 생각난다. 김호연이라는 작가 또한 공통된 점이 많았다. 작가에게는 글을 쓸 수 있는 마음과 환경이 중요하고 그것을 만드는 것부터가 작가의 작업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글쓰기는 삽질과 같아 연속적인 애쓰기와 다르지 않다. 매일을 루틴처럼 써내는 것이고 글이 써지지 않는 것은 쓰질 않아서라고 한다. 타자기 앞에서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산책을 하면서 일상생활을 하면서 끊임없이 글감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작가는 디스크와의 싸움이기도 하니까. 의자에 앉기 전에 자신이 쓸 내용이 정리되어 있어야 한다. 아이템과 캐릭터를 만들고 시놉시스와 플롯을 만들어 내 글이 가야 할 길을 놓는다. 


  글을 쓰지 못하는 작가는 수입이 없는 건 둘째치고 밥 먹는 순간에도 죄책감이 든다. 수십 번의 샤워, 하루종일 상상과 구상을 한다. 때론 산책을 하며 떠오르는 것들의 환기도 필요하다. 작가라 함은 끊임없이 글과 마주하는 것이다. 마치 어질러진 방과 같은 초고에 실망하며 그만두는 일은 프로 작가에게는 있을 수 없다. 프로는 잘못된 부분을 수용하며 끊임없이 고쳐 나간다. 스티븐 킹이 그랬다. "창작은 인간의 영역이고 편집은 신의 영역이다."


  완벽한 글을 적는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할지 모른다. 탈고의 순간은 반드시 다가오며 세상에 내어놓지 못하는 글은 작품이 될 수 없다. 이럴 방지하기 위해 김호연 작가는 파일의 끝단에 탈고일을 기입해 둔다고 한다. 그날까지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리고 약속을 지키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신과의 약속, 독자와의 약속 그리고 출판에 관련 모든 사람들과의 약속이다.


  이런 글쓰기에 몰입해야 하는 작가에게 작업실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개인 원룸부터 공공 작업실, 문학관을 전전하며 글을 썼다. 문학관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가족이 있다면 전국을 돌아다니며 글을 쓴다는 게 그렇게 쉬운 일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작가는 출판사와 미팅도 잦기 때문에 웬만하면 수도권에 머무르는 게 좋다고 했다.


  작품을 쓴다는 것은 생각보다 준비가 필요했다. 단순히 소재만 가지고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 누구를 대상으로 할 것이고 얼만 큼의 길이로 쓸 것인지, 장르는 무엇으로 할 것이며 가격 또한 고려 보는 것은 중요하다. 이처럼의 내 작품이 위치할 자리를 상상한다는 것은 독자를 고려하는 중요한 작업이기도 하다. 그뿐 아니라 대중적인 글로 돈을 벌고 싶은지 작품성 뛰어난 글로 상을 받고 싶은지도 작품의 톤 앤 매너를 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스티븐 킹이 '욕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는 것과 같다'고까지 한 지루한 작업이 글쓰기다. 자신의 목표가 명확하지 않다면 끝까지 해내기 쉽지 않다.


  마감을 해보지 못한 작가는 여전히 작가 지망생이다. 마감을 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마감을 하고 난 뒤에는 일정 시간의 '양생'이 필요하다. 배우가 역할에서 빠져나오듯 작가도 글에서 빠져나올 시간이 필요하다. 독자의 시각, 편집자의 시각으로 작품을 다시 한번 들여다봐야 한다. 출력본은 그런 작업에 있어 효과가 있다. 더불어 자신의 글을 판단해 줄 지원자가 있으면 더욱 좋다. 


  무엇보다 자신의 글이 흥행할 것이라고 생각은 잘못되었다. 김호연 작가도 6번째 작품에서야 소위 대박을 맞았다. 첫 작품으로 흥행을 휩쓰는 경우는 로또와 다르지 않다. 그리고 그것은 반복되지 않는다. 꾸준히 쓰는 것만이 정답이며 흥행보다 글을 쓴다는 그 자체에서 보람과 행복을 찾아야 한다. '쓰기의 감각'을 쓴 앤 라모트는 이렇게 얘기했다.


 


출판을 했다는 건 당신이 당신의 글을 제대로 썼다는 인정을 사회로부터 받는 걸 의미한다.

...

그것을 깨닫는 순간 당신은 잔잔한 기쁨을 느낀다.

그러나 결국 당신은 다른 모든 작가와 마찬가지로

다시 자리에 앉아 빈 페이지를 마주해야 한다.

  

  재미나고 흥미로운 것들이 쏟아지는 시대에 '궁금한 것'을 적어야 한다고 얘기하는 김호연 작가의 말은 글이 어디로 향해야 할지 알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해 준다. 그러나 역사 그도 오르한 파묵도 말했듯 끊임없이 글과 마주할 수 있는 것이 작가의 재능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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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漢)의 몰락, 그 이후 숨기고 싶은 어리석은 시간 - 권력자와 지식인의 관계 100페이지 톡톡 인문학
최봉수 지음 / 가디언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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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에 로마의 역사가 있다면 동양에는 한나라의 역사가 있다. 서로마가 시시껄렁하게 멸망했다면, 한은 흐지부지 사라졌다. 한을 공중분해 시킨 네 명의 역적을 꼽는다면 왕망, 동탁, 조조, 사마의 다. 역사는 그들을 망탁조의라고 부른다.


  한의 몰락을 가져온 네 명의 인물과 함께 어리석은 지식인들에 대해 알아보는 이 책은 가디언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한의 역사는 초한지에서 시작하여 삼국지로 끝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삼국지는 '삼국지연의'로 소설이며 원래의 삼국지는 따로 있다. 삼국지연의가 워낙 유명해져 삼국지는 삼국지연의를 가리키게 되었고 원래 삼국지는 정사삼국지라 불린다.


  망탁조의는 자신의 나라에서 녹을 먹다가 스스로 황제가 되려 했던 역적을 일컫는 말이다. 동탁은 소제를 폐위하고 시해까지 했지만 황제에 오르기 전에 죽음을 당했다. 조조와 사마의는 황제를 꼭두각시로 만들었을 뿐 황제를 폐위시키지는 않았다. 하지만 왕망은 평제를 독살하고 스스로 황제체 오르고 새 왕조를 열었다. 


  왕망의 평가는 대사마에 올라 실권을 장악했던 때까지와 직접 새 왕조를 세운 후로 나뉜다. 마치 다른 사람을 만나는 듯하다. 어려서부터 유교에 빠진 왕망은 어떻게 보면 근본주의자다. 항상 겸손하고 검소했으며 차남이 노비를 함부로 죽이자 자결하도록 했을 정도다. 그런 그가 대사마에 오르자 바로 황제를 시해하고 스스로 황제에 올랐다. 그리고 그가 실행한 개혁은 가히 친 민중적이었다. 하지만 그의 개혁은 너무 이상적이었고 기득권층에 방해로 실패했다. 권력 자체가 무너진 왕망은 잔인하게 죽임을 당했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했던가. 근본주의자였던 그는 자신의 이상적인 세상을 꿈꾼 게 아니었을까? 이상은 권력 없이 불가능하다고 느낀 게 아닐까. 자신을 내던져 세상을 구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너무 미화시키는 느낌은 없지 않지만 이런 해석을 달지 않으면 이중인격자 같은 그의 기록을 이해할 수 없다. 그는 역사가들의 해석처럼 철저히 연기를 했던 것일까?


  도덕적 우위에 있다고 믿는 자들은 근본주의자가 된다. 근본주의자는 자신의 가치를 남에게 강요한다. 그 강요가 공격성을 띄면 도덕성이 사라진다. 도덕성이 사라지게 되면 그들의 가치도 무너진다. 목적이 정의롭다고 해서 과정이 이해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 어디에도 복속되지 못한 왕망의 이야기는 호기심을 자극한다.


  동탁은 사실 다른 이들과 논할 만큼 큰 인물은 아니다. 그저 운 좋게 역사의 한 페이지가 기록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조조와 사마의는 큰 사람이면서도 자신의 신분을 벗어던지지 못했다. 녹을 먹던 인물은 스스로 황제가 되지 못한 것이다. 결국 몇 대가 지나서야 황제를 폐위시키고 '위'를 열게 된다.


  한의 소멸은 위진남북조라는 혼돈의 세계로 들어서는 길이었다. 기나긴 분열의 역사였지만 다시 통합을 이뤄낸다. 아직까지 새로운 통합을 이뤄내지 못한 서로마와는 다른 길을 갔다. 400년이 가까운 분열의 시간을 들여다보는 것은 중요한 일이 아닐까 싶다.


  책에서 소개하는 어리석은 지식인들은 서로마의 몰락에 영향을 준 어리석은 권력자들과는 조금 다른 접근이다. 그들이 한의 몰락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진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들을 통해서 당시 지식인들의 풍모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있다. 


  대부분의 혁명가들은 혁명이 성공하기 전까지는 법가의 사상을 따르고 또 좋아한다. 하지만 일단 성공하면 법가의 풍모를 숨겨야 한다. 세상을 조금 더 평화롭게 다스린다는 분위기를 백성들에게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권력자는 지식인들을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중용하곤 했다. 


  무릇 학문에 뜻이 있는 사람들은 강태공 같은 풍모를 풍긴다. 제갈량이 그랬던 것처럼 속세에 발을 들이는 것을 무엇보다 경계했고 무엇보다 큰 뜻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이 시대의 지식인들은 그저 권력을 잡을 수 없었기에 강태공 흉내를 내고 있지 않았던가 싶다. 누구든지 권력으로 진출할 기회만 있다면 주저 없이 진출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권력자에게 지식인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기에 세치 혀를 함부로 놀렸다. 하지만 결국 칼을 들고 있던 손에 목이 배어졌다.


  세상은 상대의 생각을 알지 못한 자를 실패한 자라 하며, 알려고도 하지 않는 자를 어리석은 자라 했다. 명분이 지식인의 혀에 있더라도 칼은 위정자의 손에 있기 때문이다. 주위를 돌보지 않던 어리석은 4명의 지식인들은 그렇게 사라졌다. 재주가 뛰어나나 뾰족하여 상대방도 찌르지만, 자신도 찔리는 사람. 그런 사람일수록 세상과 사람과의 관계를 더욱 조심하고 신중해야 한다는 저자의 말이 나 스스로도 돌아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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