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프랑스 - 100개의 테마로 이야기하는 프랑스 문화
이상빈 지음 / 아트제ARTSEE(주)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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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0페이지의 두툼한 책에 '나의 프랑스'라는 제목이 붙었다. 에세이라고 하기엔 너무 두껍고 프랑스 관련 서적이라기 하기에는 개인적인 의견이 많이 녹아 있다. 저자가 어떤 분류로 거부했지만 책은 '인문'으로 분류되어 있다. 사실 나는 에세이로 되어 있을 줄 알았다. 저자가 꽤 오랜 시간 프랑스라는 나라를 보고 느끼며 작성한 기록이라는 설명이 딱 어울린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편집위원, 번역위원장을 역임했다는 것에서 느낄 수 있다. 프랑스에 대한 단순한 나열이 있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프랑스라는 나라의 사회, 문화 전반적인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아트제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100가지 주에 대한 100개의 칼럼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다. 프랑스라는 나라를 여행하면 단순히 열거하는 것도 아니면서 유구한 역사에 대해 얘기하는 것도 아니다. 저자가 프랑스에서 직접 보고 느낌을 것을 기록하는 것들이어서 시점은 현재에 있지만 그 고찰은 세대를 넘나 든다. <르몽드>에서 일해서인지 프랑스에 한국을 투영해 그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것들도 공유한다.

  나는 후반부에 등장하는 음악, 식도락, 영화, 여행 같은 곳보다 초반에 등장하는 문화, 사회, 세계와 같은 파트가 좋았다. 책을 읽는다는 느낌을 넘어 신문을 보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프랑스의 모습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얘기하는 것이 좋았다. 

  문화 강국 프랑스는 나라 자체로 이미 엄청난 콘텐츠를 가진 나라이다. 문화는 모든 국민이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문화 민주주의'를 만들 가고 있다. 무료이거나 저가인 공연도 많으며 특히 우리나라 같은 경우 비싸서 관람하기 부담스러운 공연에도 저렴한 좌석이 있다. 물론 자리가 좋지는 않지만 적어도 공연장에 들어가는 것이 부담스럽게 만들지는 않겠다는 생각이다. 문화에 대한 해석은 개인의 몫이지만 문화를 경험하는 것이 어려워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다언어주의 유럽을 얘기하는 부분도 좋았다. 유럽은 EU로 하나의 연합체를 이루고 있지만 여전히 각자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타 언어를 모른다는 것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될 수 있지만, 언어를 안다고 해서 서로를 이해하는 것 또한 아니기 때문에 유럽의 다양성은 중요하다. 오히려 하나의 언어를 쓰게 된다는 것은 같은 목소리를 내는 전체주의 사회와 별 다르지 않을 수 있다. 유럽은 언어 다양성을 가지는 것으로 이미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독서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크세주 문고'에 대한 얘기는 눈에 띈다. '모든 대답에 하나의 질문'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있는 이 문고 시리즈는 '내가 아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의미한다. 1941년부터 현재까지 4,000종 이상이 출간되었다. 모든 분야를 망라한 하나의 방대한 백과사전이라고 해도 될 정도다. 형태도 분량도 가격도 동일하다. 

  일단 편을 나누면 상대의 얘기를 들어보려고 하지 않는 우리나라와 다르게 프랑스는 대담을 중요시한다. 그리고 지식인에 대한 생각도 남다르다. 적어도 사회적 신분이 높다면 세상사에 대해 일정한 수준의 격조와 논리를 가지기를 요구한다.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도 예외가 아니다. 그것이 그들의 교육의 효과일 지도 모를 일이다. 

  프랑스는 파업 또한 잦다. 프랑스 광장의 도로가 엄청 넓은 것은 플래카드를 걸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라는 얘기를 어디서 들은 적이 있다. 엄청 불편할 텐데도 프랑스 사람들은 그들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되면 기꺼이 그들의 편을 들어준다. 그래야 우리가 옳은 주장을 할 때 그들도 우리를 지지해 줄 거라 믿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읽은 '분노하라'의 저자 에셀 또한 프랑스인을 생각해 보면 <저항>이 프랑스인에게는 내재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또 재밌는 부분은 중산층에 대한 기준이었다. 프랑스 중산층의 기준은 1. 외국어 하나 정도는 잘할 수 있고 2. 직접 즐기는 스포츠가 있고 3.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으며 4. 남들과는 다른 맛을 내는 요리를 할 수 있고 5. 공부에 의연히 참여하며 6. 약자를 도우며 봉사활동을 꾸준히 하는 것 등이다. 모든 것을 '돈'으로 기준을 정하는 우리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프랑스 중산층 기준에는 '사회 약자에 대한 연대' 정신이 필수인 것이 눈에 띈다. 동시에 프랑스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들도 대부분 사회적 약자에 대해 헌신한 사람들이 순위에 들어 있다. 우리처럼 '왕'들이 있지는 않다.

  책은 프랑스의 자랑과 같은 역사와 혁명 그리고 수많은 문인들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문화를 어떻게 아끼고 즐기는지도 알고 있는 듯하다. 세계가 최첨단을 달리고 있는 동안에도 프랑스는 무심한 듯하다. 프랑스 국적의 전자제품 기업이 하나 정도랄까. 그들은 급변하는 세계에서도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고 있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느리다는 건 더 자세히 보기 위함이고 더 진지하게 대하고 있음인지도 모를 일이다. 속도 경쟁에 헤어날 수 없는 우리에게는 조금 부러운 대목이기도 하다. 세계 속의 한국 문화가 어떻게 정체성을 만들어갈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할 것 같다. 일만 잘하는 아시아인이 아닌 멋진 문화 민족으로 알려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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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을 실현하는 로블록스 게임 만들기 - 스튜디오 사용법부터 수익화까지, 로블록스 게임 제작의 모든 것
강태훈.장준하.D.LAB 지음 / 한빛미디어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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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코로나19로 갑자기 성장한 메타버스. 그 폭풍의 한가운데쯤에 로블록스가 있었다.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세대들이 가상 세계에서 만나 얘기를 나누고 게임을 하고 그런다는 얘기였다. (우리 어릴 때 온라인 게임 하는 것과 달라 보이지 않았지만) 그렇게 로블록스를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에는 제페토가 있지만 로블록스는 마인크래프트를 더 닮아 있었다.

  로블록스 속에서 게임을 만들고 수익 실현까지의 과정을 안내하는 이 책은 한빛미디어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로블록스도 다른 앱 생태계와 다르지 않다. 내부 콘텐츠를 개인이 직접 작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마케팅 포인트는 확실히 '참여형'이 대세를 이룬 거 같다. 게다가 놀다 보면 수익이 생기기도 한다. 그 점에서 로블록스 또한 관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로블록스에서는 게임을 직접 제작할 수 있다. 물론 유니티나 언리얼로도 만들 수 있는 것 같지만 쉽지 않다. 그래서 로블록스는 '로블록스 스튜디오'를 지원한다. 간단한 인터페이스로 여러 가지를 만들 수 있다. 배경은 그냥 3D 디자인 툴과 흡사하고 동작이나 이펙트는 코딩(Lua라고 한다)을 조금 해봤다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로블록스 내부에는 워낙 무료 게임이 많기 때문에 수익으로 연결되는 것이 쉽지는 않을 듯하다. 그래서 게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캐시 아이템에 집중해 보는 것도 방법이다. 책은 게임 만들기부터 아이템 제작 그리고 아이템 판매과 광고까지 전반적인 내용을 모두 다루고 있다.

  로블록스 스튜디오는 굉장히 쉬워 금방 따라 할 수 있었다. 물론 어설프게 만들어서 다 무너졌지만 말이다. 아이들도 따라 할 수 있을 정도니 난도가 확실히 낮은 편이다. 그럼에도 꼼꼼하게 작업해야 해서 집중력과 인내가 필요할 것 같기는 했다. (돈 벌기가 어디 쉽나)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가볍게 읽어 볼 만하다. 글을 읽다 보면 글을 쓰고 싶듯 이런 게임은 직접 만들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많이 해본 사람이 재미난 생각을 많이 하게 될 테니까 말이다. 아니면 아이들과 그냥 재미나게 만들어 보는 것도 재미난 시간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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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미스터리 2023.가을호 - 79호
고나무 외 지음 / 나비클럽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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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에 끝자락에서 만나는 '미스터리' 가을호는 섬뜩한 재미보다는 진중함이 묻어 있는 느낌이다. 신인상을 받은 <치지미포>로 시작해서  <해녀의 아들>에서는 미스터리에서 눈가가 뜨거워짐을 느끼니 문학인지 미스터리인지 구분이 되질 않지만 미스터리라고 재미만 추구하지 않아도 될 일이니까. 그런 면에서 가을호는 다채롭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미스터리 장르에 진심인 이 계간지는 나비클럽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이번 호 특집은 유독 좋았다. 정유정 작가의 <완전한 행복>이 어느 사건을 모티브로 삼음으로써 여러 말들이 오간 적이 있다. 그리고 반대로 잘 쓰인 미스터리 한편으로 박수를 아끼지 않기도 했다. 우리는 왜 범죄 실화를 보고 읽게 될까?

  '익숙하고 비예외적인 상황'에서 벌어지는 '예외적 사건'에 대한 스토리는 그 자체로 스토리텔링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캐릭터, 장면, 행동이라는 고전적 이야기의 세 가지 요소를 살리기 위해서 노력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범죄 실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이미 완전체이며 스토리텔링도 갖춰져 있기 때문에 여러모로 유리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쌓아 올린 이야기는 다른 이의 피와 눈물로 쌓아 올린 스토리임은 분명하다. 그것을 이용하는 창작자는 단순히 재미를 추구해서는 안될 것이다. 범죄 스토리를 읽는 것은 범죄라는 스토리텔링보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예외적인 상황에서도 사회가 그들을 구해냄을 보면서 안심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거다. 범죄 소설을 읽는 건 이런 역설적인 이유 또한 존재한다.

  이번 신인상은 한국 전쟁을 배경으로 한다. 빨치산을 잡으러 정찰을 나간 세 명의 군인의 심리를 묘사하고 있다. 이 중 한 명을 악마에 투명하여 인간의 추악한 면을 드러낸다. 좀 어려운 점도 있었지만 화자가 누구인지 모호하게 설정해 놓은 점이 독특했다. 

  이번 호에서 가장 좋았던 작품은 <해녀의 아들>이었다. 제주 4.3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현대 사건을 기반으로 재조명해 본다. 너무 무거워지지 않기 위해 가벼운 로맨스도 깔아 두었다. 어두운 이야기에 너무 빠지지 않은 채 읽을 수 있게 해 줬다. 마지막 아버지의 낭독문이 슬펐다. 그래서 좋았다.

  저번 호부터 연재를 시작한 <탐정 박문수>는 여전히 재미있었다. 사극풍이면서도 뭔가 적절히 잘 배합된 느낌이다. 재미로만 본다면 역시 가장 재밌었다. 

  이번 호는 가을에 맞춰져 있어서 그런지 스릴러나 호러 보다는 인간 군상에 관한 모습이 두드러진다. 물론 모두 미스터리를 베이스로 깔아 두었지만 말이다. 작가님들께서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느낌이랄까. 스릴 넘치고 섬뜩한 이야기는 없었지만 가을에 맞게 잘 구성된 가을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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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러브 모텔
백은정 지음 / 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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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에서야 모텔은 하나의 숙박시설로 인정받고 있지만 예전엔 그렇게 고운 시선으로 보질 않았다. 모텔은 여관이나 여인숙과는 또 다른 느낌이 있었다. 모텔 하면 불륜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도 그 때문일 거다. 지방도로가 닿은 어느 한적한 고갯길에 있는 모텔이 장사가 잘된다는 우스갯소리도 그 덕분일 거다.

  그동안 사회는 참 많이 변했고 개개인의 사생활에 대해 개방적이게 되면서 그저 무덤덤하게 마주하게 되는 것 같다. 실제로 회사 생활을 하게 되면서 모텔을 이용하게 된 것도 사실이다. 사실 나는 혼자 가면 모텔에 잘 가질 않는다. 되려 찜질방을 선호하는 편이다. 이런 나를 보면 여전히 곱지 않은 시선도 있지 않을까 라는 합리적 의심을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7년 차 모텔 운영을 하고 있는 백은정 작가의 에피소드는 어떻게 보면 모텔이라는 것을 조금 더 밝은 곳으로 가져오는 역할을 할 뿐 아니라 모두가 뒤로만 얘기할 법한 얘기를 당당히 함으로써 재미와 함께 사람의 배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그곳에는 생각한 대로 사랑도 있고 욕망도 있다. 모텔을 이용하는 이들의 사연도 있고 모텔을 경영하는 이의 사연도 있다. 그리고 진상 손님도 있다. 별점은 손님도 받아야 하는 게 맞지. 돈을 낸다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니라 빌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유형 별 진상 손님을 만날 수도 있다.

  이 작품은 에세이이면서도 초단편선 같은 느낌을 받게 한다. 아마 사이사이 있는 사연들 덕분 일 것이다. 사람의 이야기가 가장 완벽한 서사라고 하지 않나. 그들의 이야기는 재미도 있고 공감도 하게 만들지만 무엇보다 윤리나 도덕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겉으로 보이는 사랑과 불륜이 과연 그 사람만의 잘못인가 아니면 그 사람만의 것이라고 외면할 것인가. 관계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경영자의 시선이 괴로워 보이긴 했지만 그저 담담하게 그려내는 게 좋았다.

  모텔을 이용하는 군상을 표현한 것과 함께 모텔을 운영하는 그 자체에 대한 얘기도 좋았다. 자주 접하지 못하는 직군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좋은데 쉴 틈 없이 바쁜 자영업자의 모습. 일방적인 미성년자 보호법의 실태 등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손님들과의 아슬아슬한 대립에서 주인장을 걱정하게 되기도 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귀천이 있고 35개의 객실을 소유하고 있는 건물주여도 자신의 직업을 이렇게까지 드러낼 수 있는 데는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알 수 없는 것들을 책을 통해 알아가게 되고 그렇게 사회 구성원으로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면 좋을 것 같다.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 없다. 어떻게 보면 가장 기본적인 사연을 품고 들러는 모텔이라는 곳의 에피소드는 그 사연을 뒷면도 생각해 볼 수 있게 한다. 좀처럼 만나기 어려웠던 직업의 이야기를 풀어내 주어 더욱 반가웠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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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 디플로마티크 Le Monde Diplomatique 2023.9 2023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브누아 브레빌 외 지음 / 르몽드디플로마티크(잡지)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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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9월호는 일본의 일본해 주장과 윤석열 정부의 사대주의 대한 비판이 있어 관심이 갔다. 이념이 사라진 지금의 시대에 연일 이념을 강조하는 정부를 보면서 우리나라의 실익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계속해보게 된다. 하지만 9월호는 조금 더 넓은 범위를 취하고 있다. 여러 국가의 실용주의 노선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가져온 부작용과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나라들의 스텐스도 알 수 있었다. 

  역동하는 국제 사회의 무게 중심의 이동과 이에 적응하지 못하는 듯한 국내 정치권의 상황을 판단해 볼 수 있는 이 책은 르몽드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분쟁이 시작되면서 두 나라는 자신의 진영을 갖추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미소 때처럼 이념이 명확하게 분류되지 않고 이념보다는 실리가 중요시되면서 많은 나라들의 스텐스는 어정쩡하다. 두 나라에게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모두 얻겠다는 것이 보통의 선택이다. 그런 와중에 BRICS는 6개의 신규 회원국 가입을 승인했다. 이들은 치열하게 추격하고 있는 개발도상국들이다. 이제는 미국의 중재안은 그렇게 파워가 있지 않고 국제기구 또한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다. 많은 국가는 다자주의를 내세우며 경쟁 관계에 있는 상대와도 협정을 맺기에 이르렀다.

  어제의 적과 동맹을 맺을 수 있는 것은 현실이다. 상대를 '기회'로 인식하는 순간만큼은 그 동맹이 유효하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전쟁 중임에도 불구하고 곡물 수출조약을 체결했다. 이스라엘은 러시아 미공식적인 협정을 체결했고 덕분에 러시아군을 신경 쓰지 않고 시리아군과 헤즈볼라를 덮쳤다. 이런 특권은 이스라엘이 러시아 제재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다. 미국에 꽤나 압력을 행사했음에도 말이다. 개발도상국은 선진국의 이념에 동조하지 않는다. 그들은 곡물 가격 상승으로 가난한 국민들이 고통받는 이유를 서구 정책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러시아의 석유를 저렴하게 쓸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하지 않는다. 미국이 낙인찍고 제재했던 방법은 이젠 잘 통하지 않는 것 같다.

  그에 비해 우리 정권은 비굴할 정도로 미국과 일본에 굽신거리는 스텐스를 취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정학적으로 미국에게도 중국에게 중요한 위치에 있기에 발란스만 잘 맞추면 꽤 괜찮은 실리를 취할 수 있다. 죽어도 중립을 외치는 오스트리아의 정책에서 힌트를 얻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잡은 물고기에는 먹이를 주지 않고 국제 관계는 정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다. 많은 부분에서 우리가 패싱 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런 면을 메뚜기떼에 비교한 것은 적절하다. 메뚜기는 동종포식을 한다. 뒤에서 덮치는 메뚜기는 앞에 있는 메뚜기를 잡아먹는다. 그래서 메뚜기는 끊임없이 앞으로 뛴다. 이는 포식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계속 한 방향으로 이동하게 만든다. 지금 이 상황이 꼭 대통령실과 여당의 모습 같다. 검사가 계속 덮치니 여당이 계속 몰려 가는 형상이다. 고작 몇 년 전에 자신이 했던 말을 뒤집는 것에 부끄러움이 없다. 마치 단체로 기억 사실에 걸린 것 같은 기분이다. 돌아가고 싶지만 끊임없는 메뚜기가 너무 적절한 비유 같았다.

  보수와 극구의 득세는 전 세계적으로 기류가 포착되고 있다. 제국의 흥망사를 보면 제국이 생긴 지 오래되면 양극화가 심해지고 부패하게 된다. 제국의 해체와 새로운 탄생은 이 부조화를 원점으로 돌려주곤 했다. 그동안 카르텔을 형성했던 부르주아들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부유층들은 언론을 사들여서 자신을 보호하는 용도로 쓴 건 우리나라의 만의 일은 아니다. 

  스페인의 국민당은 다시 프랑코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고 프랑스는 시위자에 대해 과거 영국을 보는 듯한 무관용 재판을 내리고 있다. 폭동이 일어나면 그 사안에 대해 궁금해하기보다는 선을 긋고 불순분자로 분류하기 바쁘다. 폭동 현장에 떨어진 생수 한 병 주웠을 뿐인데도 징역 6개월을 받았고 '짭새 치킨'이라는 말 한마디에 12개월형을 받았다. 경범죄에 대해 관용을 보여하는 것은 교도소가 범죄자를 양성한다는 보고서를 보면 알 수 있다. 중범죄나 더 가혹하게 재판하면 좋겠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경제사범은 재기를 못하도록 해야 하는데 법이 가진 자에게 너무 느슨하다.

  그러고 보면 보석제도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보석 제도는 불평등을 야기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수익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은 보석금을 내지 못한다. 운이 없으면 죄의 경중을 떠나 구치소에 남아 있어야 한다.

  현재 정권의 사대정책 덕분에 미군은 지도에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했다. 분쟁 지역의 경우 병기하는 것이 보통인데 갑자기 일본해 단독 표기를 했다. 이에 우리 정부는 아무런 입장도 내어놓지 않았다. 서경덕 교수가 국가의 일을 대신해 줬다. 동해는 광개토태왕비문에도 표기되어 있듯 2000년 넘게 사용한 우리 지명이다. 뿐만 아니라 동해는 늘 'Sea of 조선'이었고 일본 남쪽이 '대일본해'였다. 그걸 떠나 여러 나라가 접한 바다에 특정 국가의 이름을 넣는다는 것 자체가 배려가 없다. (그런 면에서 중국도 배려 없는 듯, 남중국해) 미 국방부에서 일본해 단독 표기하는 것은 명백한 월권이므로 분노할 수 있다. 하지만 더 화나는 건 그에 대해서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 우리 정부의 태도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들어선 최초이면서 유일한 나라다. 우리나라는 많은 개발도상국에게 해줄 얘기가 많으며 그들을 주도할 수 있는 리더의 자격이 충분했다. 하지만 이번 정부는 그들이 가장 싫어하는 선진국에 대한 사대주의를 취함으로써 그 지위를 내던졌다. 조선은 일본이 필리핀은 미국이 지배권을 갖다고 했던 태프트-가츠라 밀약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는 요즘이다. 우리 문제는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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