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나무를 찾아서 - 숲속의 우드 와이드 웹
수잔 시마드 지음, 김다히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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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에 생명체가 태어났을 때 그것은 모두 바닷속에 있었다고 한다. 그 속에서 탄생한 시아노 박테리아는 산소를 만들어 냈고 산소 대멸종을 가져왔다. 지구는 산화되면서 거대한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육지 있던 진균은 식물을 육지로 안내했다. 이 오랜 관계는 인간보다 오랜 시간 이어져 왔다. 인간만이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다.

  식물의 거대한 네트워크는 이제는 상식이 되었다. 아바타에 영감을 준 '우드 와이드 웹'을 찾아가는 과정은 사이언스북스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판타지 게임을 하다 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나무가 있다. 바로 <세계수>다. 세계수는 세상과 연결되어 있고 세상의 균형을 맞춘다. 그런 상상은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은 것일까? 인류는 오랜 시간 큰 나무를 숭배하는 행위를 해오고 있다. 우리나라 또한 당산 나무라며 영이 깃든 나무라며 귀히 여기곤 했다. 그런 나무들은 정말 카니발리즘의 산물일 뿐일까. 아니면 아낌없이 주는 자연에 대한 예의일 뿐일까.

  식물과 숲은 지구에서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중요하다. 호흡에 필요한 산소를 만들어 줄 뿐 아니라 탄소를 가두는 역할 또한 하고 있다. 거대한 숲은 그 자체로 세계의 균형추가 된다. 하지만 인간은 돈만이 생존에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는 듯하다. 후진국으로 분류되는 많은 나라들은 고대 인류가 그랬듯 숲을 태우고 밭을 만든다. 조금 더 발전한 나라는 숲을 태워 공장 부지를 만든다. 하지만 그들만 탓할 수만은 없다. 자본주의는 경쟁을 요구했고 선진국들은 제3세계를 지원하여 자연을 보호하겠다던 <파리협정>을 제대로 지키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자연은 모두 경제성이라는 편협한 카테고리에서 분류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임업이 그렇게 활성화되어 있는 편이 아니지만 캐나다나 북유럽의 경우에는 나무를 기르는 것이 하나의 산업이 되어 있다. 다 자란 나무를 그저 베어 파는 후진국과 달리 이들은 돈 되는 나무를 얼마나 빨리 성장시킬 것인가에 대해 고민한다. 대체로 농업과 비슷한 형태로 이뤄진다. 단일 품종을 파종하는 것이다.

  단일종으로 이뤄진 곳은 취약함이 너무 심하다. 하나의 병충해로 그해 농사를 망칠 수 있다. 길어도 한 해 농사라면 그럴 수 있지만 수십 년 농사인 나무의 경우에는 그 하나하나의 손실이 막대하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계속 보살펴야 하는 숲은 경제성이 없다. 자연 스스로가 치유하며 성장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과학은 패러다임의 변화로 성장한다고 '토머스 쿤'은 얘기했다. 숲에 대한 인식은 이렇게 패러다임의 변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자연선택설을 편협하게 해석한 나머지 인간은 '경쟁'에 초점을 맞추었고 무엇이든 싸워 이겨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사회로 흘러들어 '우생학' 같은 것을 만들었다. 하지만 자세 살펴보면 인간들은 경쟁하기 위해 협력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유한 사람들은 기꺼이 어려운 사람을 위해 기부하기도 한다. 유전자를 위해 행동해야 하는 본능에는 유전자가 잘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는 것도 포함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도 마찬가지였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에서 처럼 최근 과학은 공진화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생태계의 많은 생물들은 서로 공생하며 살아가고 있다. 가장 거대한 군집인 식물은 가장 많은 개체수를 가진 곤충과 협력하고 있다. 그런 이면에 압도적인 수의 미생물과 협력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면 이상한 것이다. 많은 미생물은 우리를 살아가게 해주고 있다. 식물 또한 많은 균사들과 협력하며 질소를 공급받고 광합성의 결과물을 나누고 있다.

  식물이 거대한 네트워크를 생성할 수 있을 거라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인간우월주의는 '인간이 아니면 그럴 리가 없다'라고 생각하게 만들었고 인간을 편협하게 만들었다. 숲 속에서 나고 자란 저자와 같은 사람이 존재했기에 자연에 감사하고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것이다. 

  수많은 식물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 역할을 하는 것은 땅속에 있는 진균들이다. 무수하게 얽힌 균사들로 그들은 소통하고 있다. 거대한 나무는 어린 나무들이 자랄 수 있도록 영양분을 내어 준다. 병충해에 당한 나무는 다른 나무들에게 그 사실을 알린다. 물이 많은 날에 머금은 나무는 가뭄이 들면 다시 내어 준다. 숲 속의 나무들은 홀로 살아갈 수 없음을 잘 안다. 배부른 박쥐고 배고픈 박쥐에게 먹이를 게워주듯 나무들도 그렇게 영양분을 나눠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거대한 나무가 있고 그들을 어머니 나무라고 한다.

  우리는 여전히 거대한 나무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다. 탄소 포집을 위한 활동으로 나무를 키우는 다큐를 본 적이 있다. 나무가 일정 나이가 되면 베어 새로운 나무를 심었다. 그 나이를 넘어서면 효율이 떨어진다는 이유였다. 내가 보기엔 마치 나이 든 부모를 내다 버리는 것과 다르지 않아 보였다. 거대한 나무가 숲에 기여하는 방법을 저자는 알아내고 있었다. 숲이라는 것에만 집중하면 그 속의 다양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같은 종만 모여서는 변화에 적응할 수 없는 것이다.

  기후 위기 앞에서 우리는 결국 또 자연에 의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중에서도 식물에 의존해야 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렇다면 적어도 숲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그들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그들의 치유 능력을 믿어줘야 하지 않을까? 원인을 제대로 찾으려 하지 않고 눈앞의 상처만 도려내는 것이 방법이 아님을 다들 알고 있지 않을까? 

  자연은 이렇게 다양성과 연대의 소중함을 얘기하고 있다. 우리도 이제 경쟁을 접어두고 공유와 연대의 방법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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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언어 - 나를 잃지 않고 관계를 회복하는 마음 헤아리기 심리학
문요한 지음 / 더퀘스트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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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사람이 싫어요라는 질문에 '마음을 넘겨짚는 사람'이라고 답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뭐든 깊게 생각해 본 적 없어서 딱히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넌 그렇거야'라는 말은 지금도 납득하기 힘들다. 나도 나를 잘 모르는 데 어떻게 확신에 찬 말을 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사이좋음은 '이심전심'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까를 생각해 보면 정답은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을 것 같다. 상대의 마음을 알려고 하는 자세에 대한 얘기를 담은 이 책은 더퀘스트 출판사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마음 읽기'라는 게 가능할까?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 게 이치다. 마음 읽기에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상대의 마음이 내 마음과 다를 수 있다는 게 아닐까? 마음 읽기, 마음 헤아리기는 법칙이라기보다는 행위에 가깝다. 상대를 관심 있게 지켜보는 것 그리고 생각을 물어보는 것이 '마음 읽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충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때때로 자기 확신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상대를 배려하는 목적보다 상대를 배려했다는 자기만족이 더 큰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아주 오래 알아온 사람들 사이에도 서로의 마음을 모르는 경우는 많다. 왜냐면 상대 또한 자신의 마음을 조금 접어두고 나에게 맞춰주고 있기 때문이다. 배려와 배려 속에서 드러나지 않은 모습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이해와 공감이라는 것은 결국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에서 시작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상대가 왜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 모르겠지만 물어봐야 한다. 물론 말로 하지 않아도 행동이나 분위기에서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결국 대화로 풀어야 한다. (물론 같은 얘길 반복하는 일에는 누구나 짜증 날 만하다) 

  우리 뇌는 바로 반응하는 시스템과 고뇌하는 시스템으로 이뤄져 있다고 '대니얼 카너먼'은 얘기했다. 상대의 문제 또한 즉자적인 반응으로 해결하려 드는 것도 이런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자기 방어적 기재 또한 발동한다. 나의 호의를 호의로 받아들이지 않은 상대에게 화를 내는 것이다. 호의가 싸움으로 번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상대가 원치 않은 호의를 우리는 '오지랖 넓다'라고 한다. 물론 여러 사람에게 관심 있는 건 나쁜 건 아니지만 자신의 생각의 잣대로 재단해서 행동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자신은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해도 관계는 그렇게 좋아지지 않는다.

  최근에는 이런 관계 개선이 부담으로 다가와 이른바 '선긋기', '손절'이라는 말들이 곧잘 쓰인다. 상대를 신경 쓸 여유가 사라지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사회를 각박하게 만들고 때론 범죄로 이어지기도 한다. 상대의 말에 공격적으로 반응하는 건 우리 사회에 유대가 사라지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는 듯하다. SNS에서 쏟아지는 수많은 콘텐츠를 소통이라고 얘기하기엔 개인 중심으로 발산되고 있을 뿐이다. 서로가 깊게 소통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가까울수록 잘 안다는 착각을 하기 쉽다. 그래서 '가족이라는 병'이라는 책도 있다.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지키기 위해 누군가의 희생이 담보되어야 하는 시대는 지났다. 서로가 서로의 안부를 물어보며 다정함을 내보일 때 좋은 관계가 유지될 수 있다. 

  이불 밖은 위험하다지만 서로의 장벽을 조금 내리고 나의 담 넘어도 보여주고 상대의 담 넘어도 구경할 수 있는 그런 다정함이야 말로 관계를 위한 좋은 언어를 만들어 내기 위한 자세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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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ITY VOL.4 2023 - 스마트시티매거진
XITY 편집부 지음 / 휴먼밸류(잡지)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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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독서를 하고 있지만 가끔은 문예지가 아닌 잡지를 찾게 된다. 마이크로 컨트롤이라든지 Vision이라 든 지가 그렇다. 때로는 FPD관련 잡지나 태양광 관련 잡지도 보게 된다. 대부분 웹에서 만날 수 있다. 그래도 종이로 만나는 기분은 사뭇 다르긴 하다. 많은 잡지 중에 스마트시티에 관련된 잡지를 발견했다. XITY가 바로 그 잡지다. 발간한 지 딱 일 주년이 되었다.

  IIOT, 모빌리티, 스마트 팜, 시티, 공장으로 지속적인 트렌드를 만들어가는 세상의 한 축이 되는 스마트 시티에 대한 이야기는 XITY의 협찬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이번 호에서 가장 크게 다루는 것은 세계 최대 규모의 스마트 시티 엑스포인 바르셀로나 SCEWC 2023이다. 바르셀로나는 FC바르셀로나의 도시며 올림픽의 도시며 <카탈로니아 찬가>의  도시다. 그런 거대한 도시가 계획도시였다니 생소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을 비롯한 여러 건축물을 보면 정사각형 모양이 무수히 펼쳐진 이 도시를 상상해 내기란 쉽지 않다.

  산업혁명 이후로 유럽의 도시들은 하나같이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도시는 복잡하고 비위생적이었다. 프랑스, 빈, 바르셀로나의 도시 계획이 비슷한 시기에 시작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프랑스는 개선문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펼쳐진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바르셀로나는 네모 반듯하다. 여기에는 평등이라는 키워드도 함께 들어 있다.

  스마트 시티라는 키워드에 우리는 '신기술'이라는 개념을 계속해서 상기시키게 되지만 도시 공학이라는 것은 세대가 아무리 흘러도 인간 중심일 수밖에 없다. 그곳에 어떤 기술을 넣고 어떤 구조로 설계하든지 사람이 산다는 개념을 빼놓고 설계하면 바르셀로나처럼 200년이 흘러도 괜찮은 도시를 만들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전까지 스마트 도시에는 '친환경'이라는 키워드가 강조되어 왔지만 이제 그것은 기본값이 되었다. 이제 어떻게 실생활에 적용할 것인지가 더 중요해졌다. 막연한 '해야 한다'식의 말은 이제 때늦은 발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친환경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열심히 분류하는 재활용 쓰레기가 30%가량만 재활용된다. 그런 안일함에 연간 플라스틱 소비량은 점차 늘어나고 있다.

  결국 친환경이라는 것은 없애는 거다. 대중의 생각과 다르게 전문가들이 관심 있게 보는 것이 바로 '대중교통'이다. 바르셀로나는 그런 면에서 훌륭한다. 정부는 집을 구매해서 정리하고 시민들이 누릴 수 있는 공공장소로 돌려준다. 바르셀로나는 걷기 좋은 도시가 되길 원하기 때문이다. 

  느림의 미학은 대단한 통찰력을 주었다. 픽사의 영화 <Car>에서 보면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고속으로 달리는 도로에서는 소비가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걷기 좋은 도시가 되었을 때 상점과 시장이 활성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연스레 탄소 배출량도 줄어든다. 진정한 도시 계획은 더하는 것이 아니라 빼는 것이라는 바르셀로나의 경험을 우리도 배워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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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드리는 개 안온북스 사강 컬렉션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유진 옮김 / 안온북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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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다 에세이부터 만난 '프랑수아즈 사강'이라는 작가와는 첫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에세이 말미에 보여준 그녀의 필력을 보며 살짝 기대를 한 것도 사실이고 작가는 책의 초반부터 기대를 충족시켜 주었다. 개와 남자. 묘하게 서로가 서로에게 투영되는 이미지가 있다. 사랑, 그게 뭐길래?

  프랑수아즈 사강과의 첫 만남은 안온북스의 지원으로 이뤄질 수 있었다.

  책을 읽고 있으니 계속 '아니 에르노'가 생각난다. 나이 많은 여자가 꼭 <젊은 남자>에서 보여준 아니 에르노의 주인공과 묘하게 느낌이 비슷하다. 하지만 '사강'은 그녀만큼 묵직하지 않다. 무게를 잡는 순간순간 발칙함이 있다. 묘하게 통통 튀는 감각이 다름을 알아채게 한다.

  '프랑수아즈 사강'이라는 작가를 여성들이 좋아할 만한 이유는 책 속에 얼마든지 있는 듯하다. <지독한 사랑>이라는 키워드는 젊은 게레에게나 나이 든 마리아에게나 통한다. 그 방법과 표현이 다를 뿐 '사랑'으로 관통되는 작품은 왜 '사강'에 열광하는 여성들이 많은지 알 것 같다. 뭔가 현실적이지 않으면서도 강한 끌림이 생긴달까. 로맨틱에 인간의 처절함이 섞이면 왠지 모를 찡함이 있다. 감동과는 묘하게 다른 끌림이다.

  세상에 끌려 살던 게레에게 어느 날 찾아온 <행운>. 어느 살인자가 숨겨둔 보석은 그에게 인생의 전환점이다. 그것은 금전적인 것보다 '사랑'이라는 보석이다. 마리아에게도 보석은 자신에게 찾아든 '환상'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보석이 된다. 갱단 보스의 여인으로 살았던 마리아에게 거친 남자에 대한 로망은 게레에 투영된다. 게레가 가진 보석 때문에 게레에게 강력한 갱단의 모습을 투영하게 된다. 그런 마리아가 뿜는 욕망의 오라에 게레는 빠져든다.

  서로가 서로에게 바라는 모습은 마치 살얼음을 걷는 듯하다. 게레가 순수한 형태로 사랑을 했다면 마리아는 '자신만의 사랑의 형태'를 씌워 바라본다. 마치 진흙이 묻은 보석의 모양이랄까. 게레의 원래 모습이 그날 때마다 외면하는 듯하다. 그리고 보석을 깨끗이 닦아내었을 때처럼 그녀는 그 보석이 원래 자신의 것이 아니었음을 느낀다. 방바닥에 떨어트린 보석처럼 말이다.

  하지만 보석은 깔끔하게 손질되어 있을 때 가장 아름다웠고 그런 형태의 사랑을 게레는 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리아는 그런 보석이 갖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니라 가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잃기 직전에야 깨닫는 건 로맨스의 클리셰인가? 구급차에 실려가는 게레의 모습과 기다리겠다고 대답하고 마는 마리아의 모습으로 작품은 마침표를 찍는다. 열린 결말이지만 마리아는 혼자 집에 남게 되고 게레가 찔린 것은 비장이다. 바닥에 뒹구는 보석같이 손에 들어온 사랑을 놓쳐버린 마리아의 고독함을 얘기하고 싶었을지도 게레의 기적 같은 회복으로 다시 사랑을 얘기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슬픔으로 마무리하기엔 작가가 너무 정열적인 것 같고 기쁨으로 마무리하기엔 작품이 너무 가벼워져 버린달까. 그래서 작가는 결국 이렇게 맺음을 했던 게 아닐까 싶다. 

  사강이라는 작가는 문장은 이미지화가 잘되는 것 같다. 스토리에 늘어지는 듯할 때에도 리듬만은 경쾌하다. 많은 사람들이 왜 좋아하는지 알 것 같다. 영원한 젊음으로 기억되는 작가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조금 알 것 같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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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0분, 철학이 필요한 시간 - 삶에 대해 미치도록 성찰했던 철학자 47인과의 대화
위저쥔 지음, 박주은 옮김, 안광복 감수 / 알레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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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을 하나씩 살펴보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철학자들이 나타난다. 동양과 서양을 모두 섞어 놓으면 정말 셀 수 없을 정도다. 동양으로 치면 공자, 맹자가 퍼뜩 생각난다. 서양은 니체나 마르크스가 생각나고 요즘 한참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쇼펜하우어도 생각난다. 그래도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삼인방은 빼먹을 수 없다. 이런 철학자들을 한 책에 담아 두었다. 47명의 철학자의 사상을 담백하게 담아 두었다. 코믹한 초상화와 함께.

  하루 10분의 철학 사유로 즐기는 철학은 알레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이 책은 단순히 "명언집" 같은 책이 아니다. 철학자의 주요 사상을 설명하고 여러 방면으로 설명해 준다. 그렇게 많은 지면을 할애하지 않으면서도 맛은 느낄 수 있을 정도로는 설명해 준다. 읽다 보면 어렵다기보다는 그냥 끄덕끄덕 하는 경우가 더 많기도 하다. 어떻게 생각하면 한 장 한 장이 한 권 한 권과 맞먹어야 할 텐데 잘 요약해 둔 듯하다. 


  수많은 철학자와 함께 수많은 책들이 등장한다. 하나하나 장바구니에 넣다 보면 장바구니가 터져나갈 것 같다. 사실 몇 권 읽다 보면 일 년이 훌쩍 지나버릴 테지만 사람 욕심이 그렇지 않다. 뭔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자연스럽게 원서로 향하게 된다. 이 책은 그런 역할을 하고자 한다고 저자도 설명하고 있다. 아파트로 치면 모델하우스고 우물 펌프에 붓는 마중물 같은 책이다. 살짝살짝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넣어서 흥미롭게 만든다. (나는 세네카가 그렇게 말 따로 행동 따로인 줄 몰랐네.. 오죽했으면 학자들이 세네카라는 인물이 여럿이었을 거라고 생각을 할까)


  이렇게 많은 철학을 한꺼번에 만나기는 쉽지 않다. 철학자마다 사상이 달라 나와 맞는 사상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어렵기까지 하니까. 몇 마디의 명언과 유명세로 그 사람의 사상을 좇는 건 좀 위험한 게 아닐까 싶다. 사실 나는 마르크스를 제대로 공부해 보고 싶지만 아직 <공산당 선언> 그 얇은 책도 펴보지 않았다. 이 책을 읽고 보니 나는 <샤르르트>와 말이 잘 통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인간 자신의 모든 결정에는 책임과 고통이 따른다.'

'인간은 스스로가 만들어나가는 그 모습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같은 말에 녹아 있는 '무한 자유, 무한 책임, 자기기만'의 말이 뭔가 납득이 된달까. 인간은 타인의 관계 속에서 이뤄지니까 말이다. 그 외에도 즐거운 시간들이 많이 있었다. 예를 들면 스피노자 같은 자연이 곧 신이라든지. 읽다 보면 철학자들은 참 많이 꼬여 있네 싶은 부분도 있지만 그런 사유를 하던 사람들이니까 이해가 가기도 한다.


  어쩌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질문을 던져 보는 것이 바로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철학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건 그런 질문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철학자들의 말과 글을 좇는다고 철학을 한다고 생각이 들지 않았다. 개똥철학이라도 내가 던진 질문에 내가 답하는 그런 일련의 과정이 곧 철학인 듯했다. 칸트가 말했듯 철학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철학적으로 사고하는 것을 배우는 학문이라고 했으니까.


  각 챕터 뒤에는 더 읽으면 좋은 책들이 함께 있다. 그리고 대부분 번역서가 존재한다 (야호). 장바구니가와 카드값이 감당이 되질 않겠지만 읽다 보면 철학이 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가볍게 나에게 맞는 철학자를 찾는다면 이 책이 많은 도움을 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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