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을 만든 사람들 - 과학사에 빛나는 과학 발견과 그 주인공들의 이야기
존 그리빈 지음, 권루시안 옮김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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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하는 과정은 개인적인 것이지만 과학 자체는 본질적으로 비개인적인 것이다. 과학은 절대적, 객관적 진실을 다루는 것이지만 과학사는 역사처럼 다루는 사람들만큼의 다양한 시각이 있을 수 있다.


수많은 과학사 중 하나의 시각으로 봐달라는 이 책은 #진선BOOKS 의 지원으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은 말하고자 하는 큰 줄기는 과학은 과학사를 이룩한 사람들의 업적이 차곡히 쌓여서 올린 업적이며, 누구 하나의 업적으로 이룩된 것이 아니다는 것이다. 과학사 안에는 위대한 과학자로 추앙받는 사람들도 있고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과학자들도 많다. 개인의 천재성으로 추앙받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야말로 운이 작용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하나의 위대한 법칙이 발견되기 전에 이미 선대 과학자들이 대부분 이룩해 놓아 비교적 쉽게 명성을 떨친 이들도 있고 완벽한 가설을 세웠지만 기술의 발전이 따라주지 못하거나 죽음으로 더 이상 연구하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때로는 자신의 공로를 세상이 인정해 주지 않아 자살을 시도한 이들도 있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중세시대의 과학의 발전은 종교와의 싸움이었다. 코페르니쿠스나 갈릴레이 같이 천동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종교의 교리에 위배된다 하여 논문 발표가 쉽지 않았고 강경하게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던 몇몇 학자들은 단두대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이 종교와의 싸움은 천문학뿐 아니라 과학 전반적인 부분에서 이뤄졌다. 진화론과 생물학 등은 신이 생명을 만들었다는 교리에 위배되면 안 되었기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으며 대륙 이동설이나 원자물리학 등도 지구의 나이가 신이 창조했다고 기록한 날보다 더 오래되면 안 되었기에 과학의 발전을 종교가 집요하게 잡아둔 것이다. 혹자의 얘기에 따르면 종교 때문에 유럽의 과학은 100년 이상 뒤쳐졌다 한다.


근래의 과학은 늘어난 인구만큼 늘어난 과학자들로 인해서 서로 상충되는 이론의 싸움으로 과학의 발전이 다소 더뎌졌다. 서로가 서로의 학문을 증명하고 일반적인 이론이 될 때까지 그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때로는 반대를 위한 실험을 하다가 상대편의 이론을 확실하게 해주기도 했다.


과학은 종교나 기자재의 문제로 천문학과 물리학이 가장 먼저 발전했고, 실험 기자재의 발전을 이룬 이후에나 화학과 생명 공학, 양자물리학 같은 것이 발전할 수 있었다. 과학은 세분화되었지만 서로가 서로의 발전에 영향을 주었으며, 여러 이론들이 학문의 카테고리를 넘어서 적용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과학은 이렇게 서로의 지식 위에 자신의 지식을 쌓아 올리는 일이 된 것이다.


책은 9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내용으로 꽤 긴 역사를 담고 있다. 등장하는 과학자만 해서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배경 지식 없이 술술 읽을 수는 없지만, 과학에 흥미가 있고 천문학, 물리학, 화학, 생명공학 등에 대해서 얇게라도 관심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과학의 역사 속에의 대소사를 느끼며 즐거운 독서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전에 김상욱 교수가 과학자의 윤리에 대해서 얘기한 적이 있는데, 과학자가 의도적으로 거짓을 공유하는 것은 그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 이론을 이어갈 수많은 과학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라고 했다. 이 책을 읽으면 그 말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이 이룩한 과학사는 굉장히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지금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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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엄치는 인류 - 한 권으로 읽는 수영 만 년의 역사
하워드 민즈 지음, 이윤정 옮김 / 미래의창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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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에서 자란 나는 물 하고 꽤 자주 만나는 편이었지만, 동시에 빠져 죽을 수 있다는 공포의 대상이기도 했다. 부모님 세대에는 익사 사고가 그렇게 낯선 것이 아니었는가 보다. 나도 굴삭기가 파놓은 곳 부분적으로 깊은 곳에 빠져 들어가 본 적이 있어서 그 공포는 조금 알 것 같다. 그래서 나에게 물은 공포가 전혀 없을 수는 없다.


  아니 플라톤은 왜 "수영할 줄 모르는면" 지식인이 아니라고 했을까. 이 의문을 풀 수 있도록 미래의 창 출판사에서 지원을 해 해 주었고 읽어볼 수 있었다.


  수영이라는 단어는 지구의 70%를 차지하는 물과 함께 살아가는 인류에게는 떼어 놓을 수 없는 존재다. 문명의 태초에는 생존의 문제와 생업의 문제였을 것이고 제국의 시대에는 전쟁의 수단 중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취미나 운동이 되었다.


  인류는 물과 아주 친하다. 태어날 때까지 어머니의 양수 속에서 자라며, 6개월이 지나지 않은 아이는 물에 들어가면 저절로 수영을 하게 된다. 고대에는 물을 신성 시 하기도 했으며 수영하는 것들을 벽화로 남겼다. 이런 물에 대한 좋은 감정은 고대 그리스 사람들이 옷을 벗고 알몸으로 수영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며 로마인들은 아예 수영장을 만들었다. 그런 그리스 철학자인 플라톤이 '수영을 하지 못하는 자'는 '지식인'이 아니다고 말했을 법한 것 같다.


  로마가 멸망하고 로마의 수로 기술이 닿지 않은 많은 공중목욕탕들은 오염되어 갔으며, 질병의 근원지가 되었다. 그리고 흑사병으로 인해 유럽은 1억 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다. 심지어 청교도가 득세하면서 예의와 갖춰 입는 것에 엄청나게 엄격해졌다. '고상함'의 추구는 인간을 수영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수영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로 인해서 익사 사고는 인간의 죽음 중에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생존을 위해서라도 수영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수영을 하기 위해서는 의복부터 바뀌어야 했다. '고상함'을 추구하는 인간이 갑자기 알몸으로 수영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격식으로부터의 해방은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한번 풀어지기 시작한 '해방감'은 걷잡을 수 없었다. 


  오늘날의 수영은 스포츠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더 빨리 를 목표로 과학적인 훈련과 수영복 식단 관리 등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교육으로서의 수영은 얼마나 발전했을까라고 저자는 질문을 한다. 수영은 스포츠이면서도 생존을 위해서 반드시 배워야 하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여전히 백인보다 흑인의 익사사고가 많다. 여성의 수영장 사용이 제한되던 시절에는 여성의 익사사고도 많았다. 생존에 필요한 기술마저 생계 수준에 의해서 차별을 받고 있는 것이다.


  나도 아이들만큼은 수영을 배우게 했었다. 코로나로 수영을 못하게 되었지만.. 나 역시 때가 되면 수영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다. 물에 대한 공포를 이기려면 역시 수영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초등 교육에 수영이 필수가 되면 좋을 것 같다. 인근 수영장과 연계를 하더라도.. 독일처럼 말이다.


  이 책은 수영의 긴 역사와 수영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더불어 인류에 수영이 어떤 혜택을 주는지 얘기하고 있다. 더불어 수영에서 마저도 소외된 사람들이 있음을 인식하게 해 주었다. 수영은 이제 하나의 스포츠로 자리매김했지만, 수영의 본래의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 교육에 대해서도 더 노력을 필요함을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헤엄치는 인류의 역사가 궁금하다면 가볍게 읽어볼 만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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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몰고 온 하얀 시간 동물 공화국 2
자비에 도리슨 지음, 펠릭스 들렙 그림, 김미선 옮김 / 산하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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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권에서는 동물들의 저항이 조금 더 거세진다. 마르게리트 꽃이라는 것으로 작은 승리를 맛보기도 했고, <실비오> 무리들의 횡포가 더욱 심해졌기도 했기 때문이다. 겨울은 모두에게 추웠지만, 땔감을 제대로 사지 못하는 동물들은 유독 더 추웠다. 그것들이 자신들이 주워 온 땔감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방갈로르>는 땔감은 무료로 제공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동물들과 땔감을 사지 않는 무폭력 저항을 제안하며, 동물들과 헛간에 모여 서로의 온기를 난로 삼아 추위에 견딘다. <실비오>와 개들은 이들의 저항을 막기 위해서 헛간을 태워 버린다. 그런 와중에 암염소 <베르나데트>도 죽음 맞이한다. 동물들은 <실비오>가 땔감 가격을 반으로 낮춰 준다고 했음에도 무료 나눔이라는 원칙을 고수하게 된다.


  이로써 성의 모든 동물들이 추위로 고통받게 되고 <실비오>는 결국 땔감을 무료로 나눠주기로 한다. 그리고 그 책임을 1호 개에게 뒤집어 씌운다. 비난의 대상이 생겨나자마자 동물들의 분노는 1호 개에게 향하고 말고 비폭력 저항은 허무하게 무너져 버렸다.


  대중의 강한 응집력은 권력을 이기는 큰 힘이 된다. 하지만 이런 큰 동력도 권력자가 던지는 미끼를 덥석 무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생쥐처럼 빠져나간다. 그들은 음모에 능하다. 하지만 1호 개의 누명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주위 개들이 어떤 반응을 할지는 사뭇 궁금하다. 권력이 강건할 때에 다들 머리를 숙이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권력이 조금이라도 약해지면 주인의 목을 노리고 있지 않을까.


3권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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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날리는 마르게리트 꽃잎 동물 공화국 1
자비에 도리슨 지음, 펠릭스 들렙 그림, 김미선 옮김 / 산하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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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오마주 했다는 이 책은 동물들을 착취하며 살던 돼지들을 몰아낸 이후의 상황을 그려낸다. 독재를 펼치던 돼지들에게서 동물들을 구해낸 것은 황소 <실비오>와 그를 호위하는 개들이었다. 하지만 권력에 맞서 권력을 쟁취한 자는 항상 같은 절차를 밟는 것은 역사의 사실이다.


  권력을 잡은 황소 <실비오>와 그의 무리들은 수많은 동물들을 착취한다. 그리고 그 물건으로 인간과 물물교환을 하곤 한다. 권력을 쥔 자들은 외부 세계의 강한 적인 <늑대>를 이유로 자신들의 권리를 합리화한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권력에 힘을 합해야 한다는 전체주의적인 사상을 심어 놓는다. 개인의 힘으로는 넘어설 수 없는 두려움을 심어 놓으며 그렇게 <동물 공화국>을 지배한다.


  1권에서의 중요한 사건은 거위 <마르게리트>가 배급을 문제 삼다가 본보기로 공개 처형을 당한다. 권력을 향해 돌멩이를 던진 자는 본보기로 제물이 되는 것은 인간 사회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 비관적인 사회에 파장을 남긴 것은 떠돌이 생쥐 <아젤라르>였다. <아젤라르>는 자신이 유리한 게임으로 상대와 대결해야지 상대가 유리한 게임에 말려 들어서는 안된다는 아이디어를 준다. 고양이 <방갈로르>와 도끼 <세자르>는 죽은 마르게리트를 떠올리게 하는 마르게리트 꽃 그림으로 저항 의지를 표출한다.


  책은 간디의 비폭력 시위에 대해서 얘기를 이어나갈 것 같았다. 권력을 무너트리는 것은 또 다른 권력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동물들은 이제 알고 있다. 상대에게 명분을 주지 않는 비폭력적이면서 유머러스한 시위. 힘으로 싸우는 것이 아닌 새로운 방법으로 권력에 대항하기로 결심한 동물 공화국의 <동물>들을 응원한다.


  어린이문학으로 분류된 이 책을 과연 어느 정도의 아이들에게 보여주면 좋을까. 그림은 잔인하고 내용은 심오하다. 오히려 어른들을 위한 라이트 그래픽 노블 정도가 더 어울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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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끝의 온실
김초엽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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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이후 참 오랜만에 만난 김초엽 작가의 신간이다. 밀리의 서재에서 디지털로 선 공개된 듯한데 밀리의 서재를 보지 않는 나에게는 이번 종이 책은 기다리고 기다린 책 중에 하나이다.


  <지구 끝의 온실>은 김초엽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지구 끝의 온실>이라는 알 것 같은 제목에 약간 김이 새는 느낌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김초엽만의 문장으로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을 거란 기대도 있었다.


  지구는 어느 그린 테크 기업의 잘못으로 온 세상이 <더스트>로 덮여버리고 세계는 <돔 시티>라는 것을 만들어서 이기적인 삶을 연장해 간다. 살기 위해서 <돔 시티>로 달려드는 인간을 죽이고 <더스트>에 내성이 있는 인간들에 대해서 생체실험을 서슴지 않는다. 죽음 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쉽게 명분을 만들고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게다가 <더스트>가 해결되어 원래가 지구가 되었을 때에도 자신들의 노력으로 지구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고 믿고 그들의 공헌을 기리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던 어느 식물에 덕택이라는 것은 인지하지 못했다. 


  그러는 와중 갑자기 증식한 한 식물을 조사하다 결국 사실을 알게 된다. 그야말로 인간이 얼마나 인간 중심적인 사고를 하고 있는지, 지구에서 가장 거대한 군집을 이루는 식물은 자신이 하는 일에 신경 쓰지 않고 그저 환경에 맞춰 살아가고 있는지를 얘기한다.


  이 작품은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았던 <돔 시티> 외곽에 <프림 빌리지>라는 온실을 만들고 살았던 사람들의 에피소드와 <더스트>가 종식된 이후 세계에서의 이야기가 절묘하게 어울려져 있었다. 읽는 내내 <바람계곡의 나우시카>가 생각나는 스토리였지만, 환경 재앙 속에 로봇과 인간의 연대까지 품어낸 김초엽 작가의 의도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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