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몽드 11월호는 파시즘이 고개를 드는 세계 정치와 하마스-이스라엘 전쟁 및 세계정세를 살펴볼 수 있었다. 많은 국가들이 국가 권력을 강화하고 있지만 언론은 이에 반응하지 않는다. 지식인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동조의 목소리만 큰 것은 그들이 기득권이기 때문일까, 대상을 바라보는 다양성이 사라졌음일까, 권력에 굴복했음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무관심일까. 극우는 권력을 이용해 어느새 자신들이 정상이라고 말하며 정상인들을 극좌로 몰아가고 있다. 이런 일련의 현상들이 다른 나라의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아 씁쓸하다.
훼손된 다양성과 미국 권력의 약화와 신흥국의 약진 그리고 한국의 위태로움에 대해 설명하는 르몽드 11월호는 르몽드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르몽드는 세계를 주시하긴 하지만 많은 프랑스에 관련한 지면이 많다. 프랑스 잡지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 글 속에서 뽑아낼 수 있는 키워드와 문장은 우리나라 기사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세계는 지금 급격하게 보수화 되어가고 있고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기득권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의 힘은 어느새 국가 단위로 번져버린 것 같다. 언론과 정치인이 언급하는 이방인은 '난민' 정도다. 이민에 대해서는 이보다 차별적일 수 없다.
집단 지성이라는 상징을 가진 단어 'Wiki'는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순수한 의도와 목적으로 운영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위키피디아'나 '나무위키' 그리고 권력 저항의 '위키리크스'가 그렇다. 하지만 얼마 전 등장한 김행 장관 후보자의 위키트리는 한국에서의 Wiki를 기이하고, 저속하고, 선정적이고, 인신공격하는 것으로 비틀어 버렸다. 전혀 Wiki적이지 않은 것으로 지극히 상업적으로 운영하여 큰돈을 벌었다. Wiki라는 이름이 혐오 장사에 쓰인 안타까운 사건이었다.
파시즘 하면 히틀러가 바로 생각난다. 그만큼 우리에게는 꽤나 멀리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파시즘은 언제나 우리 곁에 도사리고 있고 영웅주의와 같은 형태로 미화되고 있다. 파시즘은 민주주의의 반대가 아니라 시대에 따라 나타나는 하나의 정치적 형태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다. 어떻게 보면 질서를 미끼로 강력하게 압박하는 경찰 권력도 상대를 지정해 놓고 마구잡이로 상대를 털어대는 검찰도 모두 파시즘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사회는 어느새 '폭력에 대한 변명'을 자연스레 이해하고 그 사실을 망각하게 되면 파시즘은 어느새 자리 잡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망각이라는 것 자체도 권력이다. 모순되지만 겪지 않은 사람만이 휘두르는 권력이다. 잊겠다고 마음먹은 사람만이 잊을 수 있는 것이다. 잊지 말아 달라는 호소를 어떻게 받아들일지의 문제다. 노란 리본은 벌써 몇 년째 사람들 기억에 남아 있고 얼마 전 일주기를 맞은 이태원의 영혼들도 잊히지 않길 기원해 본다. 망각이 권력이라면 기억은 권리다.
이번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은 하마스가 미사일 테러로 민간인을 사상자가 나왔다는 점에 분명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국제 정세는 늘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는 사법 개혁을 강행하려다가 국내에서 강력한 저항에 부딪쳤다. 매주 극렬한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지난 6월에는 정부에 맞서는 군인을 러시아 민간군사조직 바그너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테러가 일어났다. 그 많은 재래식 무기를 첩보의 고수인 이스라엘과 미국이 감지하지 못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이스라엘과 수교를 맺으려고 함에 위기를 느낀 하마스가 테러를 감행했고 네타냐후는 국내 정세를 진정시켰고 하마스는 이슬람 국가의 단결을 이뤄냈다. 고통받은 건 민간인뿐이다. 슬픈 일이다.
세계 정세의 가장 큰 변화는 중국의 부상도 신흥국의 약진도 아니다. 바로 미국의 쇠퇴다. 이제는 냉전시대처럼 이념으로 나뉘어 끈끈하게 모이는 시대가 아니다. 미국이 가하는 제재는 중국과 러시아라는 나라와 더불어 유럽의 느슨한 반응으로 더 이상 큰 힘을 쓰지 못한다. 이제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시대다. 기니에 쿠데타가 일어났지만 미국이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다.
기니에는 많은 자원이 있고 미국이 제재해도 러시아와 중국이 이득을 챙겨갈 것이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경제 제재도 러시아의 엄청난 천연자연으로 득을 볼 수 없다. 그리고 세계가 엮인 지금의 시대에 무역제재는 양날의 검이다. 미중 갈등이 있지만 두 나라는 역대 최고의 무역량을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 정권만이 이념에 사로잡혀 행동대장 노릇을 하고 있다.
지속되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또한 이제 더 이상 러시아 침략이라고 얘기하지 않는다. 러시아로부터 자원을 싸게 구입해야 하는 나라들에게는 그들의 전쟁은 양쪽 다 이유가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의 어설픈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은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을 노리는 것이겠지만 그것에 대한 확실함은 없다. 되려 러시아의 무기가 북한으로 전달되는 명분만 줬다.
국제 사회는 굉장히 복잡한 이해관계에 엮여 있다. 외교는 어쩌면 외줄 타기처럼 섬세해야 한다. 전략도 기술도 없어 보이는 지금의 정권이 나라를 갈등의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 넣지 않을까 매일이 조마조마할 뿐이다. 이럴 때일수록 세상을 더 부지런히 공부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