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ITY VOL.4 2023 - 스마트시티매거진
XITY 편집부 지음 / 휴먼밸류(잡지)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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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독서를 하고 있지만 가끔은 문예지가 아닌 잡지를 찾게 된다. 마이크로 컨트롤이라든지 Vision이라 든 지가 그렇다. 때로는 FPD관련 잡지나 태양광 관련 잡지도 보게 된다. 대부분 웹에서 만날 수 있다. 그래도 종이로 만나는 기분은 사뭇 다르긴 하다. 많은 잡지 중에 스마트시티에 관련된 잡지를 발견했다. XITY가 바로 그 잡지다. 발간한 지 딱 일 주년이 되었다.

  IIOT, 모빌리티, 스마트 팜, 시티, 공장으로 지속적인 트렌드를 만들어가는 세상의 한 축이 되는 스마트 시티에 대한 이야기는 XITY의 협찬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이번 호에서 가장 크게 다루는 것은 세계 최대 규모의 스마트 시티 엑스포인 바르셀로나 SCEWC 2023이다. 바르셀로나는 FC바르셀로나의 도시며 올림픽의 도시며 <카탈로니아 찬가>의  도시다. 그런 거대한 도시가 계획도시였다니 생소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을 비롯한 여러 건축물을 보면 정사각형 모양이 무수히 펼쳐진 이 도시를 상상해 내기란 쉽지 않다.

  산업혁명 이후로 유럽의 도시들은 하나같이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도시는 복잡하고 비위생적이었다. 프랑스, 빈, 바르셀로나의 도시 계획이 비슷한 시기에 시작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프랑스는 개선문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펼쳐진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바르셀로나는 네모 반듯하다. 여기에는 평등이라는 키워드도 함께 들어 있다.

  스마트 시티라는 키워드에 우리는 '신기술'이라는 개념을 계속해서 상기시키게 되지만 도시 공학이라는 것은 세대가 아무리 흘러도 인간 중심일 수밖에 없다. 그곳에 어떤 기술을 넣고 어떤 구조로 설계하든지 사람이 산다는 개념을 빼놓고 설계하면 바르셀로나처럼 200년이 흘러도 괜찮은 도시를 만들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전까지 스마트 도시에는 '친환경'이라는 키워드가 강조되어 왔지만 이제 그것은 기본값이 되었다. 이제 어떻게 실생활에 적용할 것인지가 더 중요해졌다. 막연한 '해야 한다'식의 말은 이제 때늦은 발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친환경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열심히 분류하는 재활용 쓰레기가 30%가량만 재활용된다. 그런 안일함에 연간 플라스틱 소비량은 점차 늘어나고 있다.

  결국 친환경이라는 것은 없애는 거다. 대중의 생각과 다르게 전문가들이 관심 있게 보는 것이 바로 '대중교통'이다. 바르셀로나는 그런 면에서 훌륭한다. 정부는 집을 구매해서 정리하고 시민들이 누릴 수 있는 공공장소로 돌려준다. 바르셀로나는 걷기 좋은 도시가 되길 원하기 때문이다. 

  느림의 미학은 대단한 통찰력을 주었다. 픽사의 영화 <Car>에서 보면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고속으로 달리는 도로에서는 소비가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걷기 좋은 도시가 되었을 때 상점과 시장이 활성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연스레 탄소 배출량도 줄어든다. 진정한 도시 계획은 더하는 것이 아니라 빼는 것이라는 바르셀로나의 경험을 우리도 배워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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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드리는 개 안온북스 사강 컬렉션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유진 옮김 / 안온북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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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다 에세이부터 만난 '프랑수아즈 사강'이라는 작가와는 첫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에세이 말미에 보여준 그녀의 필력을 보며 살짝 기대를 한 것도 사실이고 작가는 책의 초반부터 기대를 충족시켜 주었다. 개와 남자. 묘하게 서로가 서로에게 투영되는 이미지가 있다. 사랑, 그게 뭐길래?

  프랑수아즈 사강과의 첫 만남은 안온북스의 지원으로 이뤄질 수 있었다.

  책을 읽고 있으니 계속 '아니 에르노'가 생각난다. 나이 많은 여자가 꼭 <젊은 남자>에서 보여준 아니 에르노의 주인공과 묘하게 느낌이 비슷하다. 하지만 '사강'은 그녀만큼 묵직하지 않다. 무게를 잡는 순간순간 발칙함이 있다. 묘하게 통통 튀는 감각이 다름을 알아채게 한다.

  '프랑수아즈 사강'이라는 작가를 여성들이 좋아할 만한 이유는 책 속에 얼마든지 있는 듯하다. <지독한 사랑>이라는 키워드는 젊은 게레에게나 나이 든 마리아에게나 통한다. 그 방법과 표현이 다를 뿐 '사랑'으로 관통되는 작품은 왜 '사강'에 열광하는 여성들이 많은지 알 것 같다. 뭔가 현실적이지 않으면서도 강한 끌림이 생긴달까. 로맨틱에 인간의 처절함이 섞이면 왠지 모를 찡함이 있다. 감동과는 묘하게 다른 끌림이다.

  세상에 끌려 살던 게레에게 어느 날 찾아온 <행운>. 어느 살인자가 숨겨둔 보석은 그에게 인생의 전환점이다. 그것은 금전적인 것보다 '사랑'이라는 보석이다. 마리아에게도 보석은 자신에게 찾아든 '환상'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보석이 된다. 갱단 보스의 여인으로 살았던 마리아에게 거친 남자에 대한 로망은 게레에 투영된다. 게레가 가진 보석 때문에 게레에게 강력한 갱단의 모습을 투영하게 된다. 그런 마리아가 뿜는 욕망의 오라에 게레는 빠져든다.

  서로가 서로에게 바라는 모습은 마치 살얼음을 걷는 듯하다. 게레가 순수한 형태로 사랑을 했다면 마리아는 '자신만의 사랑의 형태'를 씌워 바라본다. 마치 진흙이 묻은 보석의 모양이랄까. 게레의 원래 모습이 그날 때마다 외면하는 듯하다. 그리고 보석을 깨끗이 닦아내었을 때처럼 그녀는 그 보석이 원래 자신의 것이 아니었음을 느낀다. 방바닥에 떨어트린 보석처럼 말이다.

  하지만 보석은 깔끔하게 손질되어 있을 때 가장 아름다웠고 그런 형태의 사랑을 게레는 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리아는 그런 보석이 갖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니라 가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잃기 직전에야 깨닫는 건 로맨스의 클리셰인가? 구급차에 실려가는 게레의 모습과 기다리겠다고 대답하고 마는 마리아의 모습으로 작품은 마침표를 찍는다. 열린 결말이지만 마리아는 혼자 집에 남게 되고 게레가 찔린 것은 비장이다. 바닥에 뒹구는 보석같이 손에 들어온 사랑을 놓쳐버린 마리아의 고독함을 얘기하고 싶었을지도 게레의 기적 같은 회복으로 다시 사랑을 얘기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슬픔으로 마무리하기엔 작가가 너무 정열적인 것 같고 기쁨으로 마무리하기엔 작품이 너무 가벼워져 버린달까. 그래서 작가는 결국 이렇게 맺음을 했던 게 아닐까 싶다. 

  사강이라는 작가는 문장은 이미지화가 잘되는 것 같다. 스토리에 늘어지는 듯할 때에도 리듬만은 경쾌하다. 많은 사람들이 왜 좋아하는지 알 것 같다. 영원한 젊음으로 기억되는 작가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조금 알 것 같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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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0분, 철학이 필요한 시간 - 삶에 대해 미치도록 성찰했던 철학자 47인과의 대화
위저쥔 지음, 박주은 옮김, 안광복 감수 / 알레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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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을 하나씩 살펴보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철학자들이 나타난다. 동양과 서양을 모두 섞어 놓으면 정말 셀 수 없을 정도다. 동양으로 치면 공자, 맹자가 퍼뜩 생각난다. 서양은 니체나 마르크스가 생각나고 요즘 한참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쇼펜하우어도 생각난다. 그래도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삼인방은 빼먹을 수 없다. 이런 철학자들을 한 책에 담아 두었다. 47명의 철학자의 사상을 담백하게 담아 두었다. 코믹한 초상화와 함께.

  하루 10분의 철학 사유로 즐기는 철학은 알레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이 책은 단순히 "명언집" 같은 책이 아니다. 철학자의 주요 사상을 설명하고 여러 방면으로 설명해 준다. 그렇게 많은 지면을 할애하지 않으면서도 맛은 느낄 수 있을 정도로는 설명해 준다. 읽다 보면 어렵다기보다는 그냥 끄덕끄덕 하는 경우가 더 많기도 하다. 어떻게 생각하면 한 장 한 장이 한 권 한 권과 맞먹어야 할 텐데 잘 요약해 둔 듯하다. 


  수많은 철학자와 함께 수많은 책들이 등장한다. 하나하나 장바구니에 넣다 보면 장바구니가 터져나갈 것 같다. 사실 몇 권 읽다 보면 일 년이 훌쩍 지나버릴 테지만 사람 욕심이 그렇지 않다. 뭔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자연스럽게 원서로 향하게 된다. 이 책은 그런 역할을 하고자 한다고 저자도 설명하고 있다. 아파트로 치면 모델하우스고 우물 펌프에 붓는 마중물 같은 책이다. 살짝살짝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넣어서 흥미롭게 만든다. (나는 세네카가 그렇게 말 따로 행동 따로인 줄 몰랐네.. 오죽했으면 학자들이 세네카라는 인물이 여럿이었을 거라고 생각을 할까)


  이렇게 많은 철학을 한꺼번에 만나기는 쉽지 않다. 철학자마다 사상이 달라 나와 맞는 사상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어렵기까지 하니까. 몇 마디의 명언과 유명세로 그 사람의 사상을 좇는 건 좀 위험한 게 아닐까 싶다. 사실 나는 마르크스를 제대로 공부해 보고 싶지만 아직 <공산당 선언> 그 얇은 책도 펴보지 않았다. 이 책을 읽고 보니 나는 <샤르르트>와 말이 잘 통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인간 자신의 모든 결정에는 책임과 고통이 따른다.'

'인간은 스스로가 만들어나가는 그 모습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같은 말에 녹아 있는 '무한 자유, 무한 책임, 자기기만'의 말이 뭔가 납득이 된달까. 인간은 타인의 관계 속에서 이뤄지니까 말이다. 그 외에도 즐거운 시간들이 많이 있었다. 예를 들면 스피노자 같은 자연이 곧 신이라든지. 읽다 보면 철학자들은 참 많이 꼬여 있네 싶은 부분도 있지만 그런 사유를 하던 사람들이니까 이해가 가기도 한다.


  어쩌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질문을 던져 보는 것이 바로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철학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건 그런 질문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철학자들의 말과 글을 좇는다고 철학을 한다고 생각이 들지 않았다. 개똥철학이라도 내가 던진 질문에 내가 답하는 그런 일련의 과정이 곧 철학인 듯했다. 칸트가 말했듯 철학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철학적으로 사고하는 것을 배우는 학문이라고 했으니까.


  각 챕터 뒤에는 더 읽으면 좋은 책들이 함께 있다. 그리고 대부분 번역서가 존재한다 (야호). 장바구니가와 카드값이 감당이 되질 않겠지만 읽다 보면 철학이 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가볍게 나에게 맞는 철학자를 찾는다면 이 책이 많은 도움을 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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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디자인, 미술의 발견 - 작품은 어떻게 스토리가 되는가
김용주 지음 / 소동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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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는 기존의 이야기를 새롭게 해석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예술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파악해 독자에게 전달해야 한다. 그 안에는 디자이너의 스토리텔링이 들어 있지만 예술가 본연의 모습을 헤치면 안 된다. 쉬운 일이 아니다. 콘셉트뿐 아니라 분위기와 동선에서 신경 써야 한다. 디자이너의 얘기는 큐레이터의 얘기와는 또 다른 것을 알아 갈 수 있다.

  공간과 관객의 사이를 채우는 일을 하는 전시 디자이너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이 책은 소동 출판사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노다메 칸타빌레의 한 장면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예술은 관객의 눈과 귀에 닿아야 진정한 예술이 된다"라는 것이다. 예술가는 자신의 것을 모두 표현하려 노력하지만 관객의 눈과 귀에 닿는 건 또 다른 영역이다. '판'을 까는 직업. 그것을 전시 디자이너라고 한다.

 전시는 여러모로 신경 쓸 게 많은 듯하다. 우선 예술가가 대중에게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유명하다면 철저하게 예술가에 집중될 수밖에 없지만 훌륭하지만 대중에게 낯선 예술가의 경우 그들을 드러내기 위한 디자이너의 고뇌는 조금 더 깊어지는 듯하다. 디자이너는 예술가에게 깊은 공감을 하고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작품을 이해한 뒤 전시를 디자인하게 된다. 예술가의 철학을 전시에 반영하려 노력한다.

  그들의 노력은 누구의 평가가 더 의미 있을까? 예술가가 이미 돌아가신 분이라면 관객의 호응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겠지만 예술가가 살아 있다면 예술가에게 받는 호평도 큰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가장 신경 쓰이기도 할 듯하다. 타인의 작품이 돋보이게 하는 작업의 어려움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여러 전시회를 예를 들어가며 전시 디자이너로서 고민한 부분과 해결한 내용을 적어나가다 보면 전시 디자이너라는 직업 자체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전시회라는 것에 대해서도 더 깊게 생각해 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속에도 약간의 공식 같은 것이 존재하고 그것을 깨기 위한 노력이 필요함을 알게 되어 세상 사는 곳 다 비슷하고나 싶었다.

  전시 디자인의 얘기지만 공간을 이용한 스토리텔링을 하는 사람들이 본다면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 많지 않을까 싶었다. 전시회라고 가면 후다닥 지나기 바쁘다. 물론 디자이너의 노력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만 이렇게까지 고민했구나 생각이 들어 조금 미안하기도 했다. 그래도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공간과 작품은 언제나 있었고 그것이 전시 디자이너의 힘이었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참 좋은 전시회를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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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남은 시간 - 인간이 지구를 파괴하는 시대, 인류세를 사는 사람들
최평순 지음 / 해나무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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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 온난화'라는 평온한 단어는 어느새 '기후 위기'라는 조금은 과격한 단어로 바뀌어 있다. 왜 아직도 '기후 비상'이 되어 있지 않은지 모르겠지만 모두의 이해관계 속에서 꽤나 더딘 걸음을 옮기고 있다. 더 많은 이상 기후가 우리를 덮칠 것이고 더 많은 질병이 등장할 것이다. 그런데도 그다지 감흥이 없다. 머리로 계속 상기시켜도 눈앞의 밥벌이만큼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또한 현실이다.

  인간에게 중요도는 그 값어치와 함께 시간적으로 얼마나 멀리 있냐가 중요하다. 당장의 오백 원이 일주일 뒤의 오천 원 보다 소중할 수 있다. 그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기후 위기라는 것은 피부에 그렇게 심각하게 와닿지 않는다. 여름이 조금 더 길어지고 덮고 비가 많이 오고 그런 거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은 기후에서는 그 변화가 더디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당장 물에 잠기기 시작한 투발루나 몰디브 같은 나라에 비하면 위기감이 덜한 것도 사실이다.

  나는 여전히 왜 '지구가 아파'라고 얘기하는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지구는 전혀 아프지 않다. 산소가 없던 시절도 있었고 지구의 온도는 늘 주기적으로 변했다. 빙하는 얼었다가 녹았다가 했다. 그렇게 지구 위의 생물들을 선택했다. 지금의 위기도 지구에게는 그저 긴 세월의 찰나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제 슬로건을 좀 바꿔야 하지 않을까?

  '강도야~'하면 다들 창문과 문을 걸어 잠그지만 '불이야~' 하면 모두 창을 열고 밖을 내다본다. 슬프게도 그렇다. 지구가 아프다고 하면 누군가 돌봐주겠지라고 생각한다. 집에 불이 났어라고 얘기해야 조금 더 피부에 와닿지 않을까? 그리고 그 시기가 늦춰질수록 더 힘들 수밖에 없다. 우리는 더 많은 소비와 편함에 길들여져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살만한 지구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조금 불편해야 한다. 예전처럼 추우면 내복을 꺼내 입고 더우면 등목 하던 시절을 지났다. 더운데 에어컨 켜지 말고 추운데 보일러 돌리지 말라고 하면 점점 더 힘들게 될 것이다. 결국 지구의 온도나 인간의 삶을 보더라도 늦어질수록 멈추기는 더더욱 어렵게 될 것이다.

  인간이 멈추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경제 때문이다. 자본주의에서 돈은 멈추면 안 되는 거다.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소비해야 한다. 그 속도를 줄이기 시작하면 가격은 점차 오르게 된다. 그런 생활에 견디려면 덜 써야 한다. 덜 먹어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인구수가 줄어드는 것이다. 적당히 생산하고 적당히 소비하려면 결국 개체 수가 줄어야 한다. 이런 논리가 코로나 음모설을 만들어냈지만 나 역시 출산율을 높이는 것에는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 편이다.

  우리가 만들어낸 탄소는 바다에 녹아들고 그런 바다는 산성화 된다. 많은 해양 생물이 멸종하게 될 것이고 바다의 온도는 점점 올라갈 것이다. 대기의 온도보다 해수의 온도가 더 중요한 이유다. 데워진 바다를 식히는 건 더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은 솔직히 늦었다. 그럼에도 노력은 해야 한다. 인류가 지구를 떠나든 생존 구역을 건설하든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린 워싱이라도 좋다. 지금은 이슈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한 듯하다. 정치화한다는 소리를 들어도 이슈화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지방 소멸'에 대해 외치던 한 의원의 말이 생각난다. 소비자가 환경에 신경을 쓴다는 행동을 보이면 기업과 국가는 움직일 수밖에 없다. 

  결국 자본주의와의 싸움이 될 듯하다. 100년 전에 전기 자동차가 석유 회사의 로비에 의해 사라지고 수 십 년 전 우리나라에 세제가 필요 없는 세탁기가 세제 회사의 공격에 한국을 떠나듯 그런 싸움이 될 것이다. 그 속에는 서로의 연대와 돌봄이 필요할 것 같다. 강제적이지 않고 자발적이라면 더욱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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