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이루는 방법은 하나가 아니야 - 나는 중졸 작사·작곡가
오카지마 카나타 지음, 정은희 옮김 / 리틀에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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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 계발서가 넘쳐나는 세상. 예전에는 억만장자들의 책만 읽었다면 최근에는 조금이라도 성공했다 싶으면 자기 계발서를 낸다. 차이가 그렇게까지 나지 않아서일까? 갑부들의 책들보다 더 많이 팔리는 듯하다. 하지만 늘 그렇듯 같은 환경에 놓여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그들의 방식은 언제나 참고용이다. 도무지 정답이 찾아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중졸. 남들과 다르게 자신의 길에 먼저 내디뎠던 한 발짝. 세상에 필요 없는 사람이던 자존감 낮은 아이는 어느새 사람을 위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글로벌 뮤지션 오카지마 카나타의 이야기는 앵글북스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청소년 책 같은 예쁜 표지에 약간 갸우뚱하며 책을 펼쳤다. 읽어가며 느낀 점은 청소년들에게 하는 이야기 같았다. 그리고 마주 앉아 있는 아내에게 "엄마들은 이 책 못 읽게 하겠다"라며 농담을 던졌다. 남들이 모두 가는 길이 정답이 아닐 수 있다. 자신의 꿈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만들어갈 수 있는 희망의 메시지는 자칫 '공부가 다는 아니야'로 오해될 것 같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꿈이 없는 아이들에게는 지금 하는 것을 열심히 해보라고 권한다. 꿈은 언제나 자연스럽게 생겨나게 될 거니까. 그것보다는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 그리고 세상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느끼는 게 더 중요하다.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았다는 말에 돌아온 아버지의 무심한 말은 '나도 저럴 수 있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2NE1의 CL의 아버지 에피소드가 생각나기도 했다.

  저자는 단호하게 얘기한다. 어중간하게 해서 이룰 수 있는 건 없다고. 그리고 분명 남들이 겪는 일상적인 성장 경험이 부족한 것도 인정한다. 그래서 자신은 늘 배워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기쁨도 슬픔도 외로움도 모두 이유가 있고 그런 처지에 놓은 사람을 위로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부딪히다 보면 좋은 인연을 만나고 기회를 만나기도 한다. 잘 되지 않을 때에도 끊임없이 도전해 본다. 자신을 알아줄 때까지. 그리고 어느 날 깨닫게 된다. 음악이라는 장르가 그렇게 좁지 않음을.. "노래는 못하지만 가사는 잘 쓰는구나"라는 아버지의 팩트폭행이 고마웠다. 저자는 아무로 나미에의 곡에 자신의 가사가 채택되면서 급성장하게 되었다. 노래를 불러야만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이 책의 좋은 점은 막연히 도전해라라고 얘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장학개론>을 쓴 김승호 회장의 강연을 듣다가 이런 말을 들었다.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할까? 잘하는 일을 해야 할까? 고민하시지만 사실은 돈 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인생은 기획이고 디자인이며 자기 PR은 마케팅이다. 꿈이라는 것이 현실성 있으려면 경제적인 면을 무시할 수 없다. 저자는 꿈은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그리고 수요가 있는 일의 교집합에서 찾아라고 했다. 가장 상식적이고 실용적인 얘기가 아닌가 싶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딸에게 권해줘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에는 생각보다 많은 고민이 필요하고 과감한 행동도 필요하다는 걸 저자는 잘 얘기해주고 있다. 그리고 적당히 해서도 안 되는 것도 잊지 않고 있다. 부모가 얘기해 주는 것보다 더 공감되지 않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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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는 기꺼이 서서 마신다 - 요리사 박찬일이 발품으로 찾아낸 오사카 술집과 미식 이야기
박찬일 지음 / 모비딕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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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이라는 나라는 땅덩어리가 꽤 큰 편이다. 네 개의 큰 섬에 오키나와까지 볼거리 먹을거리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중에서 오사카는 조금 특별해 보인다. 일본 방송을 보더라도 칸사이 사투리의 자부심은 대단해 보인다. 서울 말이 대부분에 어쩌다 재미로 사투리를 쓰는 우리나라와 다르게 칸사이 지방 연예인들은 거침없다. 역사가 깊은 교토와도 그다지 멀지 않은데 바다 옆이라 그런지 와일드하다.

  오사카 찐 여행을 다녀온 듯한 기분이 들게 되는 이 책은 모디빅북스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해외여행에 그다지 진심이지 않아서 가본 나라는 대부분 출장지였고 그 대부분은 중국이었다. 일본은 전시회, 출장과 더불어 신혼여행으로 인연이 있다. 그러고 보면 홋카이도, 요코하마, 오사카, 나고야 매번 다른 지역을 다녀온 것 같다. 겉으로 보는 일본의 모습에는 큰 차이는 없었다. 대부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중 오사카는 샤프와의 미팅이었기에 마케팅 팀장과 함께 갔다. 그래서 여러모로 좋았다. 닭과 양배추가 유명하다는 오사카는 밑반찬으로 항상 생 양배추가 나온다고 했고 닭 요리는 꼭 먹어야 한다고 했다. 관광지답게 많은 한국 사람들이 늘어서 있었지만 관광객이 서 있는 식당은 비추한다고 했다. 일본인들이 많은 곳 그리고 주방장이 나이가 지긋하면 더 좋다고 했다. 그렇게 관광객이 북적이지 않는 곳에서 즐거운 시간을 즐겼다. 샤프와의 미팅이 끝난 뒤에도 팀장은 일본 맛집 랭킹 어플을 이용하여 숨겨진 타코야키 집과 라멘집을 찾아줬다. 짧은 출장 동안 잘 먹고 복귀할 수 있었다.

  책은 그런 추억을 소환해 준다. 시끌벅적한 칸사이 사투리가 귓가를 때리는 듯한 짧고 생동감 있는 문장으로 채워 넣었다. 그리고 사진이 예술이다. 나는 삶을 그대로 닮은 캔디드(candid) 장르를 좋아하는데, 사진을 너무 잘 찍었다. 글을 빼고 사진만 담아도 충분히 책이 될 법하다.

  오사카에서 맛보는 술. 구글 지도에도 나타나지 않는 집들을 소개한다. 도쿄 긴자에나 있을 법한 그런 절제된 미가 있는 식당들이 아니다. 오사카 답다고 해야 할 법한 와일드하고 소박한 집들이다. 맛이 전부가 아니다.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곳, 주인장의 매력이 넘치는 곳,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좋은 곳, 숲 속의 절처럼 정갈하나 곳 등 삶의 단편을 담은 집들을 소개한다. 맛이 없다면 맛이 없다고 솔직하게 얘기한다. 술이라는 게 꼭 맛으로만 마시는 게 아니니까 그럴 수 있다. 게다가 아침 술, 낮 술이 가능한 집도 있다. 그야말로 로컬 맛집이다.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렇듯 좋은 사람들이 있는 곳은 늘 즐겁다. 그들의 문화 또한 즐길 수 있다. 노재팬 이후로 쭉 업무 이외로 일본을 방문한 적도 없고 (일본 정계의 태도가 바뀔 때까지) 그럴 생각은 없지만 책을 통해서 여행에 대한 욕구의 그릇이 채워진 느낌이다.

  오사카에서 제대로 된 음주 분위기를 느끼려면 한 번쯤 읽어보고 가면 좋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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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환자, 로젠한 실험 미스터리 -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무너뜨린 정신의학사의 위대한 진실
수재나 캐헐런 지음, 장호연 옮김 / 북하우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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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의학에 대한 신랄한 비난일까. 아니면 미스터리를 좇는 추리 소설일까. 책은 실제 이야기이면서 마치 추리를 하는 듯하다.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달에 사람을 보내고 상대성 이론이 발표되는 시간에도 정신의학은 과학의 범주 안에 있으면서 과학적이지 못했다. 로켓을 쏘아 올리는 시간에도 그들은 마치 유사 과학과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과학적이라는 것 뒤에 숨겨진 비과학적인 행태를 고발하는 이 책은 해나무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과학의 발전은 순차적이다. 물리가 가장 먼저 발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그렇다. 실 생활에 가장 가깝기도 했고 특별한 도구가 없이도 발전할 수 있었다. 물리는 어떻게 보면 모든 과학의 바탕이 되어주는 과학이다. 물리가 만들어 준 각종 도구는 다른 과학을 발전시킨다. 망원경은 천문학을 현미경은 생물학을 여러 실험 기자재는 화학을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물리는 점점 더 발전해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을 만들어 주고 있다. 우주로 나가기도 하고 지구의 나이를 측정하는 일까지 할 수 있게 해 준다. 수명은 길어지고 여러 도움을 주는 물건들이 많이 생겨났다.

  무언가의 기원에 대해 알아내는 것은 무척 어렵다. 빅뱅이라든지 최초의 인류, 최초의 다세포 생명체와 같은 것이 그렇다. 그런 것을 제외하면 가장 핫한 분야가 바로 뇌과학 분야인 듯하다. 인간의 마음은 늘 '자아'라는 철학적 명제와 엮여 있고 인간은 모두 '자신을 알려하고 있다' 물론 그것이 뇌 스캐닝을 통한 기억 복사로 이어지고 인간이 영혼이라고 부르는 것을 컨트롤할 수 있게 해 줄지도 모른다. 

  약육강식의 논리 때문일까. 건장한 신체만큼이나 강인한 정신력은 모두에게 박수받을만한 일이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나약한 정신력에 대한 공격성을 드러내었다. 다수가 되지 못했던 마음은 '정신병'으로 뭉뚱그려졌다. 신에게 버림받은 자가 되기도 했고 악령에 씐 자가 되기도 했다. 그게 아니라면 모자란 자가 되었다. 하지만 사회는 그들을 보살펴야 할 것으로 보질 않았다. 범죄자로 대하는 듯했다.

  정신병이라고 뭉뚱그려진 질환은 이제 엄청 세분화되었다. 과학이 발달하고 정신의학이 비과학을 벗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럼에도 사회에 대한 시선은 따갑고 잠재 범죄자가 되어 있다. 애초에 정신병이 왜 생기는지를 고민해 보는 일보다는 그들을 격리하려는 행동은 여전하다. 뇌가 아픈 것이 암에 걸린 것과 같은 관심과 대우를 받기 위해서는 여전히 많은 장벽이 있을 것 같지만 다른 병들과 같이 예방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 책의 저자는 오진으로 인해 정신병원에 입원할 뻔했다. 얼마나 많은 오진이 생길까를 고민하는 중에 '가짜환자, 데이비드 로젠한의 실험'에 대해 알게 된다. 정신병원의 실태를 조사하는 이 실험은 정신의학이 얼마나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지 못하는지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애초에 질병과 정상의 경계를 긋기도 쉽지 않다. 마음이라는 것은 엄청 복잡하게 엮여 있기 때문이다. 

  단지, 방법은 있다. 더 따뜻하고 더 관심을 보여주는 병동의 필요성이다. 많은 정신병들은 사회적 고립과 차별에서 오는 반응들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왜 마음의 병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과학의 발전으로 더 많은 병을 찾아낼 수 있게 된 건지, 잘못된 기준으로 인해 환자가 아니었던 사람이 환자가 된 건지 그것도 아니면 앞에서 얘기했듯 사회가 인간을 병들게 하고 있는지를 말이다.

  데이비드 로젠한 또한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기 위해 데이터를 조작했다. 수많은 과학 논문들 중에는 의도적인 데이터 조작이 있을 수 있다. 물론 의도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과학이라는 것은 거인의 어깨 위에 오르는 것이기 때문에 집단 지성의 신뢰를 깨트리는 일은 수많은 과학자들을 곤경어 처하게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때때로 자신에게 유리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상대의 거짓을 그저 허용하기도 한다. 그것이 정말 사회를 위한 일인지는 눈여겨볼 일이다.

   정신의학은 점점 일상과 가까워지고 있다. 그만큼 심리적으로 불안한 사람들이 늘었다는 것일 수도 있고 정신의학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정신의학의 잣대는 인간의 윤리와 도덕성으로 연결되는 대단히 민감한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우리의 관심이 더욱 필요하다. 어쩌다 찾아온 깊은 힘겨움 때문에 순간 환자가 되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은 정신의학에서 필요한 것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우리는 마음의 병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필요를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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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나무를 찾아서 - 숲속의 우드 와이드 웹
수잔 시마드 지음, 김다히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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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에 생명체가 태어났을 때 그것은 모두 바닷속에 있었다고 한다. 그 속에서 탄생한 시아노 박테리아는 산소를 만들어 냈고 산소 대멸종을 가져왔다. 지구는 산화되면서 거대한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육지 있던 진균은 식물을 육지로 안내했다. 이 오랜 관계는 인간보다 오랜 시간 이어져 왔다. 인간만이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다.

  식물의 거대한 네트워크는 이제는 상식이 되었다. 아바타에 영감을 준 '우드 와이드 웹'을 찾아가는 과정은 사이언스북스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판타지 게임을 하다 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나무가 있다. 바로 <세계수>다. 세계수는 세상과 연결되어 있고 세상의 균형을 맞춘다. 그런 상상은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은 것일까? 인류는 오랜 시간 큰 나무를 숭배하는 행위를 해오고 있다. 우리나라 또한 당산 나무라며 영이 깃든 나무라며 귀히 여기곤 했다. 그런 나무들은 정말 카니발리즘의 산물일 뿐일까. 아니면 아낌없이 주는 자연에 대한 예의일 뿐일까.

  식물과 숲은 지구에서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중요하다. 호흡에 필요한 산소를 만들어 줄 뿐 아니라 탄소를 가두는 역할 또한 하고 있다. 거대한 숲은 그 자체로 세계의 균형추가 된다. 하지만 인간은 돈만이 생존에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는 듯하다. 후진국으로 분류되는 많은 나라들은 고대 인류가 그랬듯 숲을 태우고 밭을 만든다. 조금 더 발전한 나라는 숲을 태워 공장 부지를 만든다. 하지만 그들만 탓할 수만은 없다. 자본주의는 경쟁을 요구했고 선진국들은 제3세계를 지원하여 자연을 보호하겠다던 <파리협정>을 제대로 지키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자연은 모두 경제성이라는 편협한 카테고리에서 분류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임업이 그렇게 활성화되어 있는 편이 아니지만 캐나다나 북유럽의 경우에는 나무를 기르는 것이 하나의 산업이 되어 있다. 다 자란 나무를 그저 베어 파는 후진국과 달리 이들은 돈 되는 나무를 얼마나 빨리 성장시킬 것인가에 대해 고민한다. 대체로 농업과 비슷한 형태로 이뤄진다. 단일 품종을 파종하는 것이다.

  단일종으로 이뤄진 곳은 취약함이 너무 심하다. 하나의 병충해로 그해 농사를 망칠 수 있다. 길어도 한 해 농사라면 그럴 수 있지만 수십 년 농사인 나무의 경우에는 그 하나하나의 손실이 막대하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계속 보살펴야 하는 숲은 경제성이 없다. 자연 스스로가 치유하며 성장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과학은 패러다임의 변화로 성장한다고 '토머스 쿤'은 얘기했다. 숲에 대한 인식은 이렇게 패러다임의 변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자연선택설을 편협하게 해석한 나머지 인간은 '경쟁'에 초점을 맞추었고 무엇이든 싸워 이겨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사회로 흘러들어 '우생학' 같은 것을 만들었다. 하지만 자세 살펴보면 인간들은 경쟁하기 위해 협력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유한 사람들은 기꺼이 어려운 사람을 위해 기부하기도 한다. 유전자를 위해 행동해야 하는 본능에는 유전자가 잘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는 것도 포함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도 마찬가지였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에서 처럼 최근 과학은 공진화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생태계의 많은 생물들은 서로 공생하며 살아가고 있다. 가장 거대한 군집인 식물은 가장 많은 개체수를 가진 곤충과 협력하고 있다. 그런 이면에 압도적인 수의 미생물과 협력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면 이상한 것이다. 많은 미생물은 우리를 살아가게 해주고 있다. 식물 또한 많은 균사들과 협력하며 질소를 공급받고 광합성의 결과물을 나누고 있다.

  식물이 거대한 네트워크를 생성할 수 있을 거라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인간우월주의는 '인간이 아니면 그럴 리가 없다'라고 생각하게 만들었고 인간을 편협하게 만들었다. 숲 속에서 나고 자란 저자와 같은 사람이 존재했기에 자연에 감사하고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것이다. 

  수많은 식물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 역할을 하는 것은 땅속에 있는 진균들이다. 무수하게 얽힌 균사들로 그들은 소통하고 있다. 거대한 나무는 어린 나무들이 자랄 수 있도록 영양분을 내어 준다. 병충해에 당한 나무는 다른 나무들에게 그 사실을 알린다. 물이 많은 날에 머금은 나무는 가뭄이 들면 다시 내어 준다. 숲 속의 나무들은 홀로 살아갈 수 없음을 잘 안다. 배부른 박쥐고 배고픈 박쥐에게 먹이를 게워주듯 나무들도 그렇게 영양분을 나눠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거대한 나무가 있고 그들을 어머니 나무라고 한다.

  우리는 여전히 거대한 나무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다. 탄소 포집을 위한 활동으로 나무를 키우는 다큐를 본 적이 있다. 나무가 일정 나이가 되면 베어 새로운 나무를 심었다. 그 나이를 넘어서면 효율이 떨어진다는 이유였다. 내가 보기엔 마치 나이 든 부모를 내다 버리는 것과 다르지 않아 보였다. 거대한 나무가 숲에 기여하는 방법을 저자는 알아내고 있었다. 숲이라는 것에만 집중하면 그 속의 다양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같은 종만 모여서는 변화에 적응할 수 없는 것이다.

  기후 위기 앞에서 우리는 결국 또 자연에 의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중에서도 식물에 의존해야 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렇다면 적어도 숲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그들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그들의 치유 능력을 믿어줘야 하지 않을까? 원인을 제대로 찾으려 하지 않고 눈앞의 상처만 도려내는 것이 방법이 아님을 다들 알고 있지 않을까? 

  자연은 이렇게 다양성과 연대의 소중함을 얘기하고 있다. 우리도 이제 경쟁을 접어두고 공유와 연대의 방법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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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언어 - 나를 잃지 않고 관계를 회복하는 마음 헤아리기 심리학
문요한 지음 / 더퀘스트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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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사람이 싫어요라는 질문에 '마음을 넘겨짚는 사람'이라고 답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뭐든 깊게 생각해 본 적 없어서 딱히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넌 그렇거야'라는 말은 지금도 납득하기 힘들다. 나도 나를 잘 모르는 데 어떻게 확신에 찬 말을 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사이좋음은 '이심전심'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까를 생각해 보면 정답은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을 것 같다. 상대의 마음을 알려고 하는 자세에 대한 얘기를 담은 이 책은 더퀘스트 출판사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마음 읽기'라는 게 가능할까?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 게 이치다. 마음 읽기에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상대의 마음이 내 마음과 다를 수 있다는 게 아닐까? 마음 읽기, 마음 헤아리기는 법칙이라기보다는 행위에 가깝다. 상대를 관심 있게 지켜보는 것 그리고 생각을 물어보는 것이 '마음 읽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충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때때로 자기 확신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상대를 배려하는 목적보다 상대를 배려했다는 자기만족이 더 큰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아주 오래 알아온 사람들 사이에도 서로의 마음을 모르는 경우는 많다. 왜냐면 상대 또한 자신의 마음을 조금 접어두고 나에게 맞춰주고 있기 때문이다. 배려와 배려 속에서 드러나지 않은 모습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이해와 공감이라는 것은 결국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에서 시작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상대가 왜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 모르겠지만 물어봐야 한다. 물론 말로 하지 않아도 행동이나 분위기에서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결국 대화로 풀어야 한다. (물론 같은 얘길 반복하는 일에는 누구나 짜증 날 만하다) 

  우리 뇌는 바로 반응하는 시스템과 고뇌하는 시스템으로 이뤄져 있다고 '대니얼 카너먼'은 얘기했다. 상대의 문제 또한 즉자적인 반응으로 해결하려 드는 것도 이런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자기 방어적 기재 또한 발동한다. 나의 호의를 호의로 받아들이지 않은 상대에게 화를 내는 것이다. 호의가 싸움으로 번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상대가 원치 않은 호의를 우리는 '오지랖 넓다'라고 한다. 물론 여러 사람에게 관심 있는 건 나쁜 건 아니지만 자신의 생각의 잣대로 재단해서 행동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자신은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해도 관계는 그렇게 좋아지지 않는다.

  최근에는 이런 관계 개선이 부담으로 다가와 이른바 '선긋기', '손절'이라는 말들이 곧잘 쓰인다. 상대를 신경 쓸 여유가 사라지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사회를 각박하게 만들고 때론 범죄로 이어지기도 한다. 상대의 말에 공격적으로 반응하는 건 우리 사회에 유대가 사라지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는 듯하다. SNS에서 쏟아지는 수많은 콘텐츠를 소통이라고 얘기하기엔 개인 중심으로 발산되고 있을 뿐이다. 서로가 깊게 소통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가까울수록 잘 안다는 착각을 하기 쉽다. 그래서 '가족이라는 병'이라는 책도 있다.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지키기 위해 누군가의 희생이 담보되어야 하는 시대는 지났다. 서로가 서로의 안부를 물어보며 다정함을 내보일 때 좋은 관계가 유지될 수 있다. 

  이불 밖은 위험하다지만 서로의 장벽을 조금 내리고 나의 담 넘어도 보여주고 상대의 담 넘어도 구경할 수 있는 그런 다정함이야 말로 관계를 위한 좋은 언어를 만들어 내기 위한 자세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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