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는 어떻게 재난을 먹고 괴물이 되는가
나오미 클라인 지음, 김소희 옮김 / 모비딕북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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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합주의 경제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다. 기업은 노동자를 위해 존재하지 않으며 그들은 주주의 이익을 위해 일할 뿐이라는 것이다. 회사의 정책은 주주의 손에 있고 노동자는 그들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주주의 충성스러운 CEO는 멋들어지게 그 자리에 앉아 있지만 그들은 대통령도 아니고 혁명가도 아니다. 오직 주주에게 만족을 주며 자신의 가치를 올려야 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1980년 레이건이 신자유주의를 받아 드릴 때 CEO와 노동자의 수입은 43배 차이가 났다. 2005년에는 411배 차이가 났다. 늘어난 부는 모두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신자유주의 혹은 신보수주의(뉴라이트) 그리고 조합주의라고 불리는 이들의 재난 자본주의가 세상을 얼마나 병들게 했는지 조목조목 설명하는 이 책은 모비딕북스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책의 초장부터 불쑥 나타난 프리드먼. 저자가 끈질기게 언급하는 이름은 100페이지를 넘어설 때쯤에 생각이 났다. <선택할 자유>를 쓴 사람이다. 우리나라 뉴라이트는 그리고 대통령은 도대체 무슨 책을 읽었길래 이 지경인가라는 궁금증에서 구매한 책이었다. 자유기업원이라는 홈페이지의 후기들에서는 마치 종교집단 같은 기분마저 들게 했다. 자유.. 민주주의에서 보편적인 가치인 자유에 대해 그렇게까지 집요한가? 부시가 말한 자유와 기업 할 자유를 따로 설명할 정도로 그들의 자유는 소중한 것인가? 그들의 열렬한 지지가 사뭇 의심스럽다.

  책을 읽다 보면 공산주의 vs 민주주의, 사회주의  vs 자본주의라는 사실을 자주 잃어버린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회주의는 공산주의와 엮여서 나쁜 것으로 간주되어 저잣거리에 걸린다.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서 복지는 포퓰리즘 더 나아가 공산주의라고 까지 공격을 당한다. 보수나 진보다 그 수준이 오십보백보인데도 그 비난은 상대만을 향해 있다. 이쯤 되면 이념이라는 게 그냥 고집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사회주의는 노동자의 유토피아를 보여줬다면 신자유주의는 기업인의 유토피아를 보여줬다. 

  어느 경제학자의 말에 의하면 경제학은 여전히 미개한 수준이란다. 사실 경제라는 건 양자 컴퓨터로 풀어내야 할 정도로 변수가 많다. 숫자 놀음이었던 경제는 행동 경제학이라는 심리학으로 넘어가는 모양새다. 물건을 사고파는 게 다 사람 심리가 아니겠는가. 그래도 걸출한 두 명의 인물이 있으니 케인스와 프리드먼이라고 할 수 있다. 둘은 꽤나 대척점에 있다. 

  프랭클린의 뉴딜 옆에는 케인스주의가 있다. 대공항을 막아낸 그들은 주류였다. 성숙하지 못한 시장은 조정이 필요하다. 시장 경제에도 최소한의 인권을 지켜야 하는 것이 그들의 논리다. 왜냐면 극단에 치달은 대중은 변혁을 도모하기 때문이다. 혁명은 늘 먹고살기 힘들 때 일어나는 것이다. 그 혁명은 반드시 반대로 흐른다. 소련이 건재했던 당시에는 굶주리는 나라는 독재를 받아들이기에 충분했기에 프랭클린의 뉴딜은 그나마 순수했는지 모르겠다.

  신자유주의는 민주주의보다 독재와 친한다. 민주주의의 질이 높은 사회일수록 그들이 설 땅은 없었다. 그들이 말하는 민영화, 시장개방, 복지 축소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라지 않는 것이다. 민주적인 사회에서는 그나마 투표권만은 평등했기에 그들의 정책은 시행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급진적 경제성장으로 상대를 현혹했다. 수많은 독재 국가들에서 신자유주의를 시행하기 위에 수많은 핍박과 처형이 이뤄졌다. 공포 정치는 대중을 침묵하게 할 수 있다. 당장의 목숨이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공동체의 가치는 기득권에게 약탈당한다.

  브라질에서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러시아에서 여러 동남아시아 그랬다. 독재의 공포 속에서 대중들이 쌓아 올린 것들은 모두 헐값에 매각되었다. 공공재를 탐하는 민간 기업은 식민지를 탐하던 제국들과 다르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더 이상 독재는 필요하지 않았다. 테러, 자연재해는 또 다른 쇼크를 가져다주었다. 대중들이 정신을 못 차리는 시간 동안 부리나케 해치웠다. 재난은 더 이상 악재가 아니었다.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기업들의 주가는 치솟았다. 주식을 하는 나 또한 재난은 기회로 인식되고 있으니 그 습관이 얼마나 몸에 베였는지 알 수 있다.

  IMF나 세계은행의 횡포 또한 다르지 않았다. 나에게 IMF의 기억은 무능한 정부와 세계 기금의 원조였다. 하지만 실상은 많이 다르다. IMF는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이 파산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민영화 대량 해고 그리고 복지 축소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지원하지 않겠다고 했다. 많은 나라들이 그런 압박에 손을 들었다. 많은 돈 되는 것들이 헐 값에 팔려 나갔다. 재난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은 더 가난해졌다.

  이런 일은 미국 내에서도 일어났다. 많은 조직들이 민영화되었다. 군대와 같은 안보까지 민영화의 손은 뻗어왔다. 정부가 없어지길 바라는 건 아니지만 구겨서 어디에 처박아두고 싶다고 얘기했던 어느 경제학자의 말이 대부분을 말해준다. 세계 최강이라는 미국에 못 사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많은지를... 그렇게 집중된 부는 그들만의 도시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모두의 재산을 해체해서 특정인에게 주었다. 이라크에서도 팔레인스타인에서도 그랬다.

  팬데믹은 어떻게 보면 각성의 시간이었다. 해체된 정부의 열악함을 알 수 있었다. 동시에 재난을 이익으로 만들려는 기업들의 탐욕 또한 여실히 드러났다. 이런 모습은 음모론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하지만 음모론을 다 제쳐두더라도 그동안 행해져 온 신자유주의라는 경제 정책의 슬픔은 세계 곳곳에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조금씩 회복하고 있다.

  저자는 '고문'이라는 키워드로 책을 시작한다. 사람이 쇼크를 받으면 백지화된다. 사람을 세뇌시키는 방법은 그렇게 시작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람은 퇴행하거나 죽거나 하기도 한다. 모두의 재산을 팔아서 특정 사람들의 배를 불렸다. GDP만 보는 사람들은 알아채지 못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의 눈물 위에 그 숫자가 써여졌는지를.. 나 또한 몰랐다. 

  아프다고 모든 걸 갈아엎고 새로 시작하는 건 이상적이게 보일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재난은 어떻게 보면 연대를 시작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미워하던 사람들도 힘을 합쳐 하나가 될 수 있다. 내전으로 힘들었던 스리랑카도 그랬다. 새로운 정책이 펼쳐지기 전까지는... 회복에서 우리는 우리임을 알아채기도 한다. 상처는 아물면서 더 단단해질 수 있다. 그런 기회를 돈으로 보는 사람들 때문에 세계는 멍들었다.

  저자는 더 이상 사람들이 이런 책을 읽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고 했다. 애덤 스미스가 두 어번 얘기한 '보이지 않는 손'이 세상에 이용되는 건 다윈의 '적자생존'이 사회 진화론에 이용된 것 같은 기분이다. 애덤 스미스는 경제학자이면서도 윤리철학자다. '도덕감정론'을 쓴 그의 생각처럼 인간은 탐욕을 다스릴 만큼 도덕적이지 않은 것이다. 돈의 독재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더 많이 고민하고 생각해야 한다.

  프리드먼 스스로 얘기했듯 남의 돈으로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건 불가능하다. 세금은 남의 돈이 아니고 투자는 남의 돈인 것이다. 이 책은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와 많이 닿아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다시 꺼내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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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회의 599호 : 2024.01.05 - #우리가 사랑한 책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지음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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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회의는 25주년 600호를 눈앞에 두고 있다. 시장 규모가 우리나라의 두 배 이상인 일본에서도 출판 전문지는 2010년대가 되기 전에 모두 사라졌으니 꽤나 자부심이 있을 법한 일이다. 

  평생 삼 만권은 읽었을 법하다고 얘기하는 한기호 소장의 말은 의미 심장하다. '서울의 봄'을 겪으면서 감옥살이를 하면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그는 하루에 한 권씩 읽고 서평을 올리는 마쓰오카 세이고를 좋아하는 듯하다. 매일 같이 쏟아져 드는 책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그는 출판이 적성에 잘 맞는 듯하다.

  세상에는 많은 추천도서가 있지만 기획회의 599호는 조금 특별하다. '내가 사랑한 책'이라는 주제로 5권을 선정하는 전권 특집이다. 편집장, 편집자, MD 그리고 본지의 소장이 사랑한 책을 소개하는 이 매거진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인플루언스나 비평가들이 소개하는 책들과 달리 편집장, 편집자들이 선정한 책은 사뭇 색다르다. 그 속에는 아주 유명한 책들도 있지만 그들의 시선은 그곳에만 닿아 있지 않았다. 때로는 사랑하는 책을 때로는 아직 읽지 않을 책을 때로는 반복해서 읽어야만 하는 책을 선정하기도 했다. 편집자라는 직업답게 자신이 열정을 쏟았던 혹은 그런 희열을 목격한 책들이 선정되기도 했다. 자신만의 철학과 사상에 닿아 있다.

  25인이 선정한 125권의 책 이야기. 어디서 추천받기도 힘든 책들이 가득하다. 덕분에 안 그래도 무거운 장바구니가 더 무거워졌다. 그리고 추천하지 않으면서 은근히 드러내는 수많은 책들 덕분에 사실 125권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친절하게도(?) 마지막에 리스트를 만들어 두었다.

  애착이 가는 책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 같다. 회사를 다니면 당연히 자신의 손이 닿은 것에 애착이 생기기 마련이다. 다른 사람을 통해 만들어진 것들보다 더 사랑할 수밖에 없다. 글은 작가가 쓴다지만 책은 함께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편집자들의 글 솜씨는 작가 못지않다. 서평을 이렇게 아름답게 쓸 수 있다니, 역시 전문으로 책을 다루는 사람들 다뤘다.

  책들 중에는 절판된 책도 많았고 다행스럽게(?) 복간된 책들도 제법 있었다. 퇴사를 불사하고 제안해서 만든 책도 있었다. 책에 밥벌이를 걸다니 얼마나 좋으면 그랬을까라는 생각도 자연스럽게 한다. 고전이라고 불리는 것들보다 진흙 속의 진주가 많았고 호기심을 가지고 서점 앱을 열어 검색을 하면 수많은 하트가 책을 장식하고 있다. '세상에, 나만 모르는 책이었다니.'라며 약간 억울하기까지 하다.

  소외에 관한 책, 약자를 위한 책, 페미니즘 책 더 나가면 옥살이를 한 사상가의 책, 시인의 책 들도 있다. 수많은 장르가 쏟아진다. 편집자의 스타일에 따라 출판사의 신념에 따라 책은 선정된다. 흔한 베스트셀러 추천 말고 정말 깊이 있는 책 추천이 필요하다면 바로 기획회의 599호는 꽤나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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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 코난처럼 생각하라 - 코난의 사건 해결 사례로 익히는 맥킨지식 로지컬 씽킹
우에노 쓰요시 지음, 안선주 옮김 / 현익출판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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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작가겠지?라는 예상은 당연하다. 만화에서 배우는 이야기는 대부분 일본스럽다고 할까? 그들에게 만화는 재미 이상의 집착이 있기 때문에 이해가 간다. 마스터 셰프 코리아 시즌2 우승자 최강록 셰프는 '미스터 초밥왕'이라는 만화로 음식을 배웠다고 한다. 나도 읽어봤지만 정말 걸작이다. 바둑왕도 그렇고 일본 만화의 깊이는 남다르다. 

  코난의 사건 해결은 이 만화를 보는 한 가지 이유가 될 수 있다. 귀엽고 멋진 캐릭터에 잘 짜인 스토리는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열광하게 만든다. 여전히 콘텐츠가 만들어지는 이 장수 작품에서 어떤 이야기를 배울 수 있을까? 현익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매킨지식 로지컬 싱킹 또한 얼마나 오래된 기법인가? 매킨지 하면 바로 손사래를 칠듯하다. 딱딱하고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로지컬 싱킹을 해보려고 책도 샀었는데 완독 하지 못했었다. 그러니 생활에 일에 적용하는 건 무리가 아니었을까? 

  이 책을 잡은 것도 순전히 '코난' 때문이다. 딸아이가 무척 좋아해서 호기심을 보일까 싶어서다. 그리고 쭉 읽어보니 생각보다 싶다. 코난 이야기는 전체 줄거리를 꿰고 있다면 바로 장면이 드러날 테지만 기억나지 않은 장면은 살짝 무슨 얘길 하는지 잘 이해되지 않았다.

  이 책은 로지컬 싱킹이라는 것을 간단하고 쉽게 풀었다. 어떻게 보면 입문서라고 해도 될 듯하다. 최근 캐릭터가 등장해서 말을 거는 학습지를 보는 듯한 기분이랄까. 캐릭터는 하나도 나오지 않지만 그런 기분의 책이었고 독서였다. 술술 읽힌다고 해야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물론 하나씩 따져가며 읽으면 또 오래 걸릴 것 같기도 하다)

  책을 읽다 보면 코난의 추리에 논리적인 접근법이 있었구나를 더 명확히 알 수 있다. 로지컬 싱킹에 대한 흥미보다 코난의 대단함을 느낀다고 할까나? 그러고 보면 로지컬 싱킹이라는 것도 그렇게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가 살아가며 알게 모르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슈를 설정하고 3개 정도의 구조를 만들어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는 방법은 이미 하고 있지 않은가? 그것을 보다 체계적으로 하고 있지 않을 뿐이며 때때로 샛길로 빠지는 일이 많아서 그랬을 뿐이다. 어떻게 보면 로지컬 싱킹이라는 게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게 아닐까 싶다. 단지 글로 적고 표로 만들고 하는 게 귀찮을 뿐이지만..

  필요한 모든 것은 만화에서 배울 수 있다는 저자의 마인드가 마음에 든다. 특히 매니악한 소재가 많은 일본 만화라면 더욱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코난에서는 이렇게 문제를 설정하는 방법과 접근법에 대해 배울 수 있다. 그리고 보이는 것을 전부 믿지 않고 뭐든 정답이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하며 각각의 가설을 검증해 나가는 것이 필요함을 알 수 있었다.

  코난의 스토리로 로지컬 싱킹에 가볍게 다가가기에 괜찮은 책이었다. 단지, 가볍게 접근하다 보니 깊게 배우려면 더 진지하게 다루는 책이 필요할 것 같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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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보니, 시간 - 바로 지금에 관한 이야기 33한 프로젝트
이권우 외 지음, 강양구 기획 / 생각의힘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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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과 인문학이 이렇게 조화롭게 섞일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시간'이라는 단어에 '살아보니'를 엮은 제목이 내용을 잘 아우르고 있다. 있지만 없는 없지만 느끼는 시간이라는 것과 그것의 의미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인간에 시간의 의미란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이 책은 생각의 힘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인간의 삶에서 시간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그리고 과학에서도 시간은 중요하다. 하지만 각자의 영역에서 시간을 대하는 자세는 사뭇 다르다. 인간이 사고하면서 느끼기 시작한 시간이기 때문에 그것이 동물에게도 있을지 우주에도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물리학에서 시간은 그저 정의되는 것일 뿐이다. 본질을 얘기하는 것은 과학의 몫은 아니다. 그래서 인문학이 필요하다.

  학부모에게 전화를 받은 한 과학 교사의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선생님, 아이에게 시간이 뭔지 모른다고 하셨다면서요. 시간도 모르면서 아이를 가르칩니까"

  과학 카페는 웃음바다가 되었지만 보통의 학부모라면 심각할 내용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뉴튼도 모른다고 한 '시간'을 어떻게 설명하라는 건지 다들 난감해했다. 

  물리적으로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도 미래도 없다. 그저 세상은 변하고 있을 뿐이고 인간은 그것을 기억할 뿐이다. 물리에서 시간은 변화가 발생한 틈을 정의한 도구니 미라니 과거니와 같은 방향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북극점에서 북쪽이 어디냐고 묻는 것과 같다. 하지만 인간은 시간의 흐름을 또렷이 느낀다. 우주의 변화의 방향과 인간 기억의 방향이 같은 쪽을 향해서 그렇단다. 결국 무질서하게 된다. 우주가 팽창을 멈추고 수축한다면 우리의 과거와 미래는 뒤집어질까 궁금하기도 하다.

  생물학적 시간은 '노화'로 설명을 할 수 있지만 '노화'라는 것도 방향일 뿐 방향을 설명할 순 없다. 생명은 탄생과 소멸로 볼 수도 있고 성장과 순환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진화의 시간은 '대멸종'을 전재로 한다. 꽉 찬 공간에 여유가 생겨야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는 것과 같다. 

  어려운 테마지만 과학을 삶에 들이댈 필요까진 없다. 과학이라는 게 가정으로 한정해 놓은 채 여러 사실들을 알아내는 학문. 즉 측정 가능한 것이 곧 존재한다고 설명하는 학문이기에 비어 있는 공간은 너무 많다. 그래서 여전히 인문학적 채움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과학적이라고 떠들어 대는 것 중에 과학적인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는 얘기일지도 모른다. (정치인들처럼..)

  끈 이론이 시들해졌다는 사실을 책을 통해 알았다. 차원은 끝이 없고 무한히 증명해야 하고 셈은 어렵고 측정 불가능해서일까? 그리고 '양자고리중력'이라는 학문이 재조명받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상대성 이론은 건재하다. 최근 이론물리학은 측정 불가능한 것이 대부분이니까. (근데 2센티 높이 차로 시간 차이가 있다는 걸 측정한 사람들이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는 건 또 처음 알았다. 2 아토초만큼 시간이 다르게 흐른단다. 와우~)

  과학이 발달하고 통신이 수월해지면서 비과학과 유사과학이 더 활발해졌고 이를 비판하는 쪽은 결국 '과학지상주의'로 흐르게 된다. 과학이라는 것이 삶에 녹아들며 인간을 얼마나 풍요롭게 했냐라고 주장하는 신계몽주의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스티브 핑거 교수가 있다. 삶 속에 녹아든 과학을 비판하는 것은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인문학이 필요하다.

  지금은 어떻게 보면 과학의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과학은 하나의 종교가 되었고 나는 그 신자 중에 한 명이다. 종교가 종말론을 말하지 않음으로써 오만해지고 탐욕만 추구하게 되었다는 이권우 님의 말에도 공감했다. 과학이든 뭐든 한계를 인정하고 성찰하는 일이 사라지면 안 된다. 양극화가 심해지고 사회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고 있는대도 합리성이나 자유경쟁을 들먹이며 과학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사회과학은 과학적이지 않은 면이 많은데도 과학이라는 말이 붙어서일까. 숫자로 표시되지 않는 소중한 것들이 계속 소외되는 듯하다.

  결국 우리의 시간에 필요한 것은 자기 성찰인 것 같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바로 앞의 미래 정도를 생각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서로 우기지 않고 토론하며 나아가는 일이 중요하다. 두루 잘 사는 세상이 이렇게 어려울까? 노동의 신성함이 사라지지 않아서일까. 없어도 되는 일이 계속 생겨난다. 몇십 년 전 보다 훨씬 발전했지만 그것만큼 편해지지도 않았다.

  수렵채집의 시대는 하루 세 시간 노동했다. 농경의 시대에 '분'이라는 시간은 필요하지 않았고 중세에도 시간은 15분 단위였다. 현대는 초를 세어가며 산다. 인간의 시간이 아니라 기계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지금 우리는 '시간'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할 필요가 있다.

  과학과 인문학의 절묘한 콜라보가 돋보이는 책이며 또한 우리 세상 또한 그래야 함을 얘기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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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 문장의 기억 (양장본) -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하여 Memory of Sentences Series 1
박예진 엮음, 버지니아 울프 원작 / 센텐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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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지니아 울프라는 작가는 워낙 유명한 탓에 (자기만의 방으로 유명한) 이름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글로 만나는 것은 처음이다. 사실 이 책을 먼저 만나지 말았어야 하는 생각이 든다. 왜냐면 이 책은 이미 작가에 대해 깊은 감동을 받은 이후의 독자를 위한 책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문장 하나하나가 섬세하고 서정적인 것은 느낄 수 있었으나 저자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을 책 속의 짧은 문장으로는 알 수가 없었다. 역사의 설명이 있지만 과연 그것만을 얘기하는 것일까?라는 물음표가 떠나지 않는 것도 아쉬움이었다. 이 책은 버지니아 울프의 찐 팬을 위한 책이 아닐까 싶다.

  버지니아 울프의 문장들을 한 권에 담아 그녀의 작품 세계를 음미하기 위해 만든 듯한 이 작품은 리텍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버지니아 울프는 여러 면으로 소개가 된다. 하나는 페미니즘으로 또 하나는 우울증이다. 그녀의 '자기만의 방'은 페미니즘의 교과서 같은 작품으로 독립적인 여성을 위한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그녀의 우울증 역시 널리 알려져 있다. 남편의 적극적인 지지와 사랑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결국 자살하고 만다. 그래서 그녀의 문장과 행동은 심리학 서적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짧은 문장으로 만나본 버지니아 울프의 글은 꽤나 섬세해서 기대하게 만들었지만 꽤나 난해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우울증이 그녀를 평가절하하는 요인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나 개인적으로는 그녀의 작품을 페미니즘에 너무 가두고 있지 않냐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러 책을 얇은 한 권의 책으로 묶었고 게다가 원문까지 넣는 바람에 그 내용은 절반으로 줄어든다. 그리고 그녀의 글에는 뭔가 긴 호흡이 필요한 듯했고 한 문단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 뒤로 몇 장을 읽어야 할 듯했다. 결국 엮은이가 전달하고 싶은 내용은 버지니아 울프의 글과 의미를 이미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되어 버리게 된다. 그녀의 문장을 처음 접하는 나에게는 좋을까 하는 순간에 흥을 잃는 순간이 너무 많았다.

  결국 그녀의 대표작 몇 개를 읽어봐야겠다. 비슷한 분위기의 다자이 오사무의 경우에는 문장 자체에서 말하고 싶은 것을 알아챌 수 있었는데, 그래서 이 책은 개인적으로 조금 아쉽다. 물론 나를 버지니아 울프로 좀 더 빨리 가게 만들긴 했다. 그런 점에서는 역할을 한 듯하기도 하다. 아마 몇 권의 책을 읽고 다시 읽으면 분명 좋아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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