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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속도
엘리자베스 문 지음, 정소연 옮김 / 푸른숲 / 2021년 10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폐인 아들을 20여 년 키워오며 그들의 네트워크와 끊임없이 소통하던 작가가 정상과 비정상의 정의에 관해서 적어나가는 근미래 SF소설이면서 철학서다. 나는 무엇인가? 정상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10년 만에 다시 발매된 이 책은 푸른 숲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사실 띠지에 박혀 있는 <김초엽> 작가의 서평 문이 책을 조금 오해하게 만들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책을 덮고 눈에 띈 띄지의 글을 보고 느껴졌다. 이 책은 장애를 비정상으로 보지도 않으며 치료할 대상이라고 말하는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초엽> 작가의 소설도 무척 좋아하지만 이 작품은 <김초엽> 작가의 작품에서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된 작품 느낌이었다. <잔류 인류>에 이어 소수자의 가치에 대해 논하는 이 책은 읽는 내내 감동과 흥미를 나에게 주었다.
어둠은 속도가 있을까?라는 질문은 실제 작가의 아들이 작가에게 했던 질문이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서 더 넓은 범위의 어둠과 빛으로 확장해 나간다. 정상과 비정상, 삶과 죽음, 배려와 폭력 등 사회의 가진 다양한 양면성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특히 작품 내내 끊이지 않은 '정상과 비정상'에 대한 질문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정상과 비정상을 우리는 어떻게 구분하고 있는가? 안타깝게도 여기에도 다수결의 원칙을 따른다. 많은 수의 사람이 정상이 되며 이 무리를 벗어나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하고 무리에 해를 될 듯 같으면 경계를 한다. 이것은 생물학적으로는 지극히 당연한 본능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간이기에 이것에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적자생존>의 잣대로 모든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에도 소수의 의견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배우기도 했다.
중략
<루>를 통해서 전달되는 정상성은 어떤 것일까? 사람들은 자폐인들을 비정상적이라고 하며 치료가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루>가 봤을 때에는 정상인들은 정상적이지 못할 때가 많았다.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그는 <감정적인> 그들의 말과 행동을 학습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었다. 말과 행동이 다른 우리는 과연 정상적인 걸까?라고 그가 되묻는 것 같았다.
작품을 읽으며 <어둠>이란 것으로 무엇을 얘기하고 싶은지를 계속 생각하게 되었다. 패턴이 어긋났을 때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공포를 말하는 것 같기도 했고, 쉽게 그려지지 않는 미래를 얘기하는 것 같기도 했다. 어둠은 늘 현재보다 앞서 있었다. 알 수 없는 예측할 수 없는 불안은 어둠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둠은 늘 빛 보다 앞서 있었다. 빛은 늘 어둠을 가르며 나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루>는 어둠의 속도에 대해서 종종 얘기한다. 빛이 오기 전에 어둠이 와 있으므로 어둠은 빛보다 빠르다고.
패턴을 잘 읽을 수 있는 <루>의 에피소드 중에 아이와 보모의 에피소드가 가슴을 쿵하고 쳤다. 루가 보기엔 아이는 너무 즐거운 기분을 표출하는 패턴을 내어 보이고 있는데 부모는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이 대목을 읽고 말썽쟁이 아들이 떼를 너무 써서 방에서 아이를 잡고 혼내주던 날의 기억이 스쳐가며 가슴 아픔이 느껴졌다. 책을 놓아두고 화상통화를 하며 활짝 웃어주는 녀석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또 저지레 하면 나는 불 같이 화를 내겠지만..)
중략
자폐와 장애라는 조금은 어두운 소재로 시작하지만 책은 그것을 느낄 수 없을 만큼 많은 질문을 쏟아낸다. 사람들이 비정상이라고 얘기하는 것들은 언젠가 정상으로 바뀔지 모른다. 지구가 태양이 돈다고 얘기하는 것이 비정상인 시대도 있었고 지구의 나이가 45억 년이라고 얘기하는 것이 비정상인 시대도 있었다. 여성이 사회에 진출하는 것이 비정상이라고 얘기하는 시대도 있었고 미니스커트를 입는 것이 비정상인 시대도 있었다. 정상과 비정상은 영원한 것이 아닌 것 같다.
중략
SF인지 순문학인지 경계가 명확하지 않은 이 작품은 존재에 대한 고민과 미래 기술의 윤리에 대한 부분을 생각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좋았다. 읽는 내내 두근대는 느낌이 좋았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답을 내렸을 때 내가 원하는 방향은 아니었지만 내면에 두 존재가 양립하고 있는 <루>가 둘을 모두 존중하는 모습으로 열린 결말을 내린 것 또한 사회가 나아가길 바라는 작가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