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유희
이가라시 리쓰토 지음, 김은모 옮김 / 리드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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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뢰인!"

  내가 좋아하던 '역전재판'은 늘 변호사의 단호한 말로 시작한다. 피고인은 늘 불리한 입장에서 기소를 당해 법정에 선다. 변호사는 단서를 찾아 검사의 논리를 부셔야 한다. 현실은 법을 어긴 사람을 법망에서 탈출시키는 법꾸라지가 넘쳐나지만 우리는 여전히 정의로운 법률가들을 상상한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또 하나의 즐거운 법정 미스터리다.

  현직 변호사인 작가의 해박한 법정 지식과 긴장감의 강약 조절로 마지막까지 즐거웠던 이 소설은 리드비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무죄인지 유죄인지는 판사가 결정하지만, 원죄인지 아닌지는 신밖에 모릅니다'

  이 스토리의 기저에 깔려 있는 '무고'는 법 집행의 가장 아픈 부분이다.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지 못해 결국 죄인이 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시간이 흘러 무죄가 인정되기도 하지만 옥살이를 한 세월을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을까? 작품은 '미스터리'이면서도 법률 시스템의 허점을 파고든다. 

  그리고 또 하나의 정의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얘기하는 <함무라비 법전>의 동태복수원칙이다. 이야기의 판을 짠 유키 가오루는 이를 복수가 아는 관용이라 얘기한다. '이 정도의 벌로 용서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복수가 아니다는 것이다.

  문제를 낸 것은 유키 가오루지만 풀어가는 것은 세이기라는 별명을 지닌 구가 기요요시다. 세이기는 일본어로 '정의'라는 뜻이다. 사법시험이 이미 합격하고도 로스쿨에 입학한 가오루 다음의 수재라고 보면 좋을 듯하다. 그리고 그가 지켜야 할 히로인으로 오리모토 미레이가 있다.

  기요요시와 미레이는 같은 시설에서 자랐으며 기요요시는 미레이를 어둠에서 구해준 영웅과 같은 입장이다. 소설의 마지막까지 읽기 전까지 풍기는 분위기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백야행>이었다. 여주인공을 구하고 그림자가 되어 버린 남자의 이야기. 하지만 작가는 둘 사이를 파국으로 몰고 가지는 않았다. 이야기의 제공자이면서 풀어야 할 사람이며 동행보복의 대상자인 두 주인공은 해결사가 아니라 갱생의 대상이다.

  법률을 제대로 안다는 것이 세상에 대처하기 더 수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기요요시와 그를 따른 미레이. 자신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행했던 합법과 위법 사이의 줄타기. 그 속에서 피해자가 생겼다. 사법 시험을 합격했음에도 삼류 로스쿨에 입학한 유키 가오루. 뛰어난 법률 상식과 책임을 회피하지 않은 그는 '무고게임'을 만든다. 모든 것은 그가 만들어 놓은 멋진 한판이었다.

  이야기는 대학생의 유희 정도로 볼 수 있는 '무고게임'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정말 '무고'를 주장하는 진짜 법정까지 이어진다. 세상의 법으로 어찌할 수 없는 낙인찍히면 그대로 관심에서 사라지는 그런 고통을 가해자와 심지어 나라의 법률가에까지 묻고자 하는 이 작품의 짜임새는 치밀하다. 차분히 시작해서 반전의 반전을 가한다. 예상했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또 다른 반전을 만들어진다. 그리고 정의로운 결말을 이른다.

  '최소한의 법'. 법률이라는 건 원래 그렇게 만들어졌을 거다. 힘 있고 돈 있는 사람들이 회피의 목적으로 사용하기 전까지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법률가들이 신이 되려 하기 전까지는 그랬을지도. 인간은 늘 속죄하며 살아야 한다는 말속에 법 이전에 양심이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법으로 따지기 이전에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속죄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재판장에서 재단되는 죄의 유무 판별도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다.

  죄를 누가 용서하냐라는 질문은 지금도 자주 듣는 말이다. 가해자가 행한 범죄는 피해자가 원하는 수준인가? 우리는 종종 이해할 수 없는 벌을 내린 판결을 보게 된다. 미성년자 성폭행이 그렇고 경제사범이나 권력자들의 죄가 그렇다. 게다가 사면이라는 제도는 약한 자를 위해 쓰인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피해자가 용서하지 않았는데 법정은 무슨 근거로 그걸로 되었다고 얘기할 수 있는가? 작품은 그런 원론적인 질문을 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는 굉장히 잔인하면서도 명확하다. 내 눈을 잃었으니 너도 눈을 잃는다면 용서하겠다는 관용의 법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럼에도 그것만큼 억울하지 않을 일은 또한 없을 듯하다. 죄가 없는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 씌웠으니 검사도 판사도 더 나아가 나라의 법률 시스템도 동일한 죄를 뒤집어쓰라라고 하는 복수는 오히려 이성적이게 느껴질 정도다. 

  슬픔만이 가득한 내용에 지나치게 이성적인 짜임새 그리고 갱생이라는 가장 이상적인 답을 내어놓은 작품. 뭔가 어울리지 않은 듯 하지만 더할 나이 없이 재밌게 쓰인 책이다. '죄가 밝혀지기 전까지 죄가 없다'는 무죄 추정의 원칙은 피해자를 보호하는 법인지 가해자가 숨을 수 있는 법인지 생각해 보게 하는 또 다른 생각을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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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의 질문
이화열 편역 / 앤의서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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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일단 읽는 책은 아니다. 그래서 리뷰를 남기기 쉽지 않다. 프루스트의 100가지 질문이지만 어떻게 보면 답이 있는 질문이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묻는 질문이다. 평범한 질문도 있지만 꽤나 철학적 질문도 있다. 문답집이 정말 새로운 형태는 아니라서 어색하거나 하진 않는다.

  이 책은 앤의서재에서 제공을 받았다. 그렇다고 마냥 좋게 리뷰하는 건 아닌 듯하다. 책의 대한 생각은 명확해야 한다는 게 기본적인 생각이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작다. 어떻게 보면 예쁜 다이어리 정도로 사용할 수 있을만하다. 좋은 질문에 기발한 코멘트가 담겨 있는 곳에 제법 된다. 프루스트 질문에 다른 저자의 답을 찾아 달아 둔다는 건 꽤나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기에 이해가 된다.

예를 들면 이런 거,

당신이 생각하는 최고의 덕목은?
없다. 모든 덕목은 권태롭다(카미유 클로델)

당신 인생에서 가장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건은?
생존한다는 것 (해리슨 포드)

가장 좋아하는 단어는?
오늘 (베르나르 피보)

당신이 생각하는 지상의 행복은?
스스로에게 행복한지 묻지 않은 한 나는 완벽하게 행복하다 (칼 라거펠트)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가?
이미 되었다 (알랭 들롱)

당신이 소유하는 가장 소중한 것은?
기억 (말랄라 유사프자이)

그리고 많은 부분은 내가 채워야 한다. 비워 있는 칸에 나의 이야기를 적어야 한다. 문제는 가격인 듯하다. 이런 종류의 책을 즐기지 않는 사람이라면 집어들 수 없을 만큼 부담스러울 수 있다. 프루스트의 이름 때문인지 꽤 괜찮은 코멘트를 찾았을 역자의 노력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약간 갸우뚱할 수밖에 없는 듯하다.

  책의 가치는 질문을 진지하게 마주할 독자로 인해 결정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에 닿을지는 사실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자신과의 문답을 좋아한다면 권해볼 만 하지만 읽음으로써 뭔가를 얻기는 어려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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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무크 : CES 2024 (표지 3종 중 1종 랜덤) 한경무크
손재권 외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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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스베이거스의 경이로운 랜드마크 스피어 옆에서 매 년 열리는 CES는 올해도 어김없이 1월에 개최되었다. 가장 혁신적인 제품들을 만날 수 있는 전시회이기 때문에 세상의 이목이 집중된다. 세상이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알 수 있기에 천문학적인 인파가 몰린다. 한 번쯤은 가보고 싶은 전시회지만 늘 영상으로만 만난다. 올해는 책으로도 만나볼까 싶다.

  CES 2024의 핵심 키워드를 정리해 놓은 이 책은 한국경제신문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얼마 전까지 CES의 핵심 키워드는 AI였다. 하지만 chaGPT 이후 AI는 더 이상 핵심 키워드가 아니다. 그냥 깔고 가는 기술이 되어 버렸다. 대부분의 기술에서 AI는 기본이 되어 있다. 그래서 CES 2024의 주된 키워드는 AI이면서도 AI가 아니다.

  이제는 AI 넘어서 세계를 준비해야 한다. AI가 가져올 미래에서 인간을 지켜야 한다. 새롭게 보이는 키워드는 '인간 안보'다. 정확하게 무슨 의미인지 읽어보면서도 모르겠지만 속도가 붙은 AI를 날뛰게만 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은 확산되는 것 같다. 

  가장 중요한 화두는 ESG인 듯하다. 이 키워드로 인해 식량안보와 환경, 에너지 전환, 규제 변화 등이 함께 요동치는 모양새다. 기후변화 완화 실패는 지금 당연히 보이며 기후 위기는 빠르게 악화될 거라는 시각은 이제 주도적인 시각이 되는 듯하다. 위험 준비가 부족한 이때 이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리고 패권 전쟁이 이뤄진 가운데 이런 협업은 전 세계적일 수 없는 듯해 보이기도 하다. RE100을 몰라도 된다고 말하는 우리 정부지만 세계는 이미 RE100을 디폴트로 생각하고 있다. AI의 급속한 성장은 데이터 센터와 같은 대규모 전력 소모 시스템이 늘어나게 만들었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AI와 ESG를 빼면 단연 SDV(Software Defined Vehicle)가 대세라고 할 수 있다. 기존의 하드웨어 중심의 차량은 소프트웨어가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제 차는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라 하나의 컴퓨터가 되어가고 있다. 이제는 차량이 아닌 이동수단으로 명칭도 불리고 있다. 바로 모빌리티다. 이제 땅 위를 구르는 것만이 차량이 아니다. 하늘을 날고 바다를 건넌다. 구르는 차량도 앞으로만 가지 않는다. 옆으로도 가고 제자리에서 뱅글뱅글 돌기도 한다.

  AI와 로봇, IOT들과의 콜라보는 더 빠른 기술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스마트 홈이나 스마트 팜에도 AI는 기본적용 되어 있으면 가전제품들에도 AI는 기본 장착 되었다. AI 기술을 빠르게 하기 위한 컴퓨팅 회사들의 발전도 빼놓을 수 없다. 그 선두에는 엔비디아가 있다. 삼성과 퀄컴은 AI를 칩에 장착하는 device on ai를 진행하고 있고 제품으로 만들었다.

  기술의 발전을 꼭 알 필요는 없다. 결국 쓰는 건 사람이기 때문이다. 모든 건 사람이 편한 세상을 위해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 산업의 중심에 있다면 트렌드 변화는 늘 주목해야 한다. 이건 먹고사는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AI가 주도하는 세상이 되고 있지만 우리 삶은 크게 변화한 게 없는 듯하다. 물속의 오리 다리처럼 보이지 않는 곳이 더 치열하기 때문이다.

  이런 책을 한 번쯤 읽어보면 세상이 얼마나 치열하게 변하고 있는지 알 수 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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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회의 604호 : 2024.03.20 - #지금 편집자의 학교는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지음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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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회의 604호는 교육에 관한 얘기다. 교육은 편집자에 한해서만 얘기할 문제는 아니다. 산업 전반적으로 신입보다는 경력을 원하고 있다. 평생직장이 없다는 생각은 회사를 다니려는 사람의 태도뿐만 아니라 회사의 태도도 바뀌었다. 떠날 사람 교육시켜 뭐 하냐라는 생각이 팽배하다. 그래서 교육비용을 아껴 경력을  채용하는 것을 더 원한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 바람직한 자세일까? 시간이 지날수록 능력 없는 경력자가 늘어간다. 몇 해 전까지 3년 경력을 찾았다면 이제 5년 경력을 찾는다. 최근에는 아예 십수 년을 일한 프리랜서와 일하기를 더 원한다. 산업과 그 산업의 역량은 노후화되고 쪼그라든다.

  출판산업과 같이 쪼그라들고 있는 시장에서 이런 일은 더욱 심하다. 대부분의 이직은 산업 내에서 움직이지만 산업 파이가 줄어들면 산업 밖으로 튀어나가는 경우가 생긴다. 생태계 안에서 투자했는데 다른 생태계를 키우는 꼴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언젠가 경력자가 되어 돌아올 거란 기대마저 사라져 버린다.

  게다가 최근의 태도에는 단숨에 뭔가를 해내고 싶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투자하면 부자가 될 것이고 몇 가지만 익히면 일잘러 소릴 들을 수 있다고 유혹한다. 월에 천만 원은 우습게 벌 수 있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세상에 그런 일이 얼마나 될까? 복권 당첨 정도의 확률로 몇몇이 그런 큰 행운을 만날 순 있다. 그것을 마치 법칙이 있는 것처럼 퍼 나르는 인간들이 문제겠지만 성공에 왕도는 없다.

  결국 무언가를 잘하기 위해서는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좋은 편집자가 되려면 책을 많이 읽고 실무에서 많이 깨져봐야 한다. 이건 대부분의 일에서 마찬가지다. 머리로 배운 것이 몸으로 체화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럼에도 금방 멋져 보이는 일을 못한다고 허드렛일 한다고 생각한다. 능력이 없는데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인지부조화가 발생하면 회사에 불만이 쌓인다. 

  가르쳐야 할 사람의 마음과 배워야 하는 사람의 마음의 차이가 너무 커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 지금의 위치에서 커리어 관리가 되지 않는 후배들이 안타깝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다. 그들의 태도 또한 바뀔 거라 생각되지 않는다. 배우려고 하는 사람에게만 가르치는 선택적 교육이 일어나기도 한다. 정말 답이 없는 걸까? 꾸준히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다산북스와 편집자 매뉴얼을 발간하고 있는 열린 책들의 이야기를 읽어도 뾰족한 방법은 보이질 않는다.

  돌파구로는 아마추어리즘에 기대해 보는 방법이 조금 신선했다. 전문 편집자는 아니지만 책을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 중에는 그 능력이 준전문가 수준에 닿은 사람들이 있다. 이들과의 연결점을 만들어 업무에 이용할 수 있진 않을까? 샤오미가 추구하는 '참여감'이라는 코드를 여기서 또 발견한다. 뛰어놀 공간을 제공한다. 그리고 즐기며 나오는 많은 아이디어는 자신들에게 도움이 된다.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려면 좋은 일의 정의를 새로이 해보는 것도 방법일 것 같다. 지금은 단순히 돈 많이 주고 편한 일이라는 단순한 정의가 있기 때문이다. 시간, 문화, 복지, 편의 등의 문제를 모두 따져 보며 어떻게 N잡이라는 것이 더 편한 일이 된다면 자신의 고정된 시간을 할애하는 파트타임 편집자가 많이 나타날지도 모르겠다. 편집자만이 아닌 많은 업무에서 분산형 접근이 가능하다면 좀 더 유연하게 그리고 수월하게 일할 사람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한쪽에서는 일자리가 없다고 아우성이고 한쪽에서는 일할 사람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돈을 많이 줄 수 있는 회사는 많지 않다. 좋은 일의 정의가 돈에 고정되어 있다면 일류와 삼류의 경계의 선명함은 유지될 것이다. 

  잘하고 싶다는 생각은 투쟁심에서도 나오고 호감에서도 나온다. 빅 트렌드에서 벗어난 직종에서는 투쟁심보다 호감에 호소하는 편이 더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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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 속 우주 - 우주론의 새로운 시대를 열다
앤드루 폰첸 지음, 박병철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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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자와 우주. 언뜻 떠오르는 게 바로 양자 우주라고 할까. 다중 우주라고 할까. 그런 종류의 책이라고 생각했다. 책은 펼치면 바로 일기 예보 이야기가 나온다. 우주와 날씨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인간에게 날씨는 굉장히 어려운 문제였고 그건 지금 우주를 대하는 인간의 모습과 흡사하지 않았을까? 나비의 날갯짓이 태풍을 만들 수도 있다는 '카오스 이론'은 하나의 파라미터가 얼마나 큰 변화를 주는지 얘기하고 있다. 그럼 이 책은 어떤 얘기를 하고 싶은 걸까?

  날씨와 우주. 그것을 쫓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알에이치코리아의 지원으로 읽어보았다.

  인간의 지식은 대부분 관측 후 이론을 꾸리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그것은 많은 부분 무지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만 지금의 인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여전히 모르는 것 투성이며 우리가 모르는 어떤 존재하지만 알지 못하는 물질에 대한 영향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의 학문은 늘 '근삿값'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알지만 측정할 수 없는 것들도 많기 때문이다.

  일기 예보는 근사를 이용하는 대표적인 것이 아닌가 싶다. 지구 전체 대기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국소적인 데이터를 이용한다. 이를 서브 그리드라고 한다. 우주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대기의 상태도 파악하지 못하는 인간이 우주 전체를 파악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우주 또한 잘게 쪼개서 그 현상을 예측하고 관측한다. 

  아인슈타인에 이르러서야 이론은 현상을 예측했다. 아인슈타인에 말한 대부분의 현상들은 실제로 관측되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영역은 늘 관측되어야 인정된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우리의 과학은 관측할 수 없는 것들을 다루기 시작했다. 설명은 가능한데 볼 수가 없는 것들이 많아졌다. 양자가 그 대표적인 것이다.

  컴퓨터의 발달로 연산의 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손으로 계산하던 시절에 비해 더 많은 요소를 적용하여 계산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세상은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여전히 우리는 근삿값을 이용한다. 하지만 컴퓨팅 기술이 발달하면 그 오차도 점점 줄어들게 될 것이다.

  저자는 시뮬레이션 전문가다. 이런 여러 이야기를 한 이유가 바로 시뮬레이션의 중요성을 알리고자 하는 것이다. 시뮬레이션은 우리가 아는 세상을 예측하는데 중요하다. 이론과 실험을 잇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실험이 어려운 경우에는 더더욱 시뮬레이션의 역할은 중요해진다.

  앞으로 우리가 밝히려고 하는 건 어쩌면 실험의 영역에서는 어려울지 모른다. 너무 미시적인 세계이거나 너무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일뿐이다. 측정하고 증명하는 것이 과학의 역할이지만 그 자체가 어려운 일인 것이다. 매초 수 조개의 미자가 우리를 통과하고 있지만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고 해서 아무 역할을 하지 않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이제부터 이론의 파트너는 시뮬레이션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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