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회의 608호 : 2024.05.20 - #로컬이라는 테마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지음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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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자주 언급되는 주제 '로컬'이다. 지방이라는 건 치열하게 언급해야 겨우 관심을 받는다. 어느 국회의원이 논란이 되더라도 관심의 중심에 있고 싶다고 하는 걸로 봐서 지방 활성화는 여전히 어렵다. 정책은 지방의 메가시티보다 거대한 서울을 얘기하고 있다. 진정한 로컬의 의미는 무엇인가?

  수도권 집중화의 문제 속에서 로컬이라는 존재를 지켜내는 것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 보게 되는 이 책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로컬'. 그것이 도대체 뭘까? 지방을 살리는 생동감 넘치는 무언가라고 얘기하기엔 그 방법이 너무 좁다. 지금 '로컬'이 소비되는 형태가 무엇인가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런 면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독립출판 발코니의 글은 아프다. 모두가 희망을 얘기할 때 그림자를 얘기한다. 상처는 덮는 게 아니니까.

  '로컬'은 새로운 서울의 확장이다. '로컬'이 소비되는 형태는 '서울답지 않는 것'이다. 복잡함 도심을 벗어나 힐링을 즐기는 형태. 즉 관광의 형태가 대부분이다. 서울에 찾아보기 힘든 분위기는 덤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로컬이라는 힘이 유지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로컬'의 확장과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서울답지 않음은 다시 서울 안으로 돌아가고 있다. 서울 내 이색 공간은 서울을 벗어나는 것보다 훨씬 더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 '로컬'이라는 것은 서울이라는 상품의 테스트 베드 역할만 하고 소멸하게 될 것인가.

  지속 가능성을 얘기한다면 스쳐가는 인구보다 살아가는 인구의 입장을 생각해봐야 한다. '로컬'의 방향이 로컬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것이 아닌 팔리는 것에만 집중한다면 그것이 진정 로컬이라고 할 수 있을까? 로컬다움을 얘기하려면 살아가야 하는 쪽의 입장을 얘기해야 하고 확장을 지원해야 한다. 유행처럼 사라지는 '로컬'에 어떤 희망도 걸 수 없기 때문이다.

  로컬의 정체성. 장르를 고민해 봐야 한다. 

  서핑의 양양, 커피의 강릉 그리고 창작자들의 섬 제주. 그 모든 곳에는 사람이 존재해야 하고 밥벌이가 있어야 한다. 외부의 공급 없이도 일정 이상 순환할 수 있는 경제를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지도 고민해야 한다. 외부에서 와주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공격적으로 로컬 문화를 판매하는 전략도 지원되어야 할 것이다.

  서울 집중화. 일자리의 고립. 주거지의 위협 같은 것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도 '로컬'은 중요한 테마가 될 수 있다. 중앙 정부의 무심함과 지방 정부의 한심함을 뛰어넘어 수 있는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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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수학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 삶의 해를 구하는 공부
카를 지크문트 지음, 노승영 옮김 / 윌북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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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전 학문이라는 것은 대부분 부유한 사람들의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천재는 과학, 수학, 철학, 의학을 동시에 하곤 했다. 그래서 그런지 수학이라는 것도 철학적 문답 위에 쌓이곤 했다. 하지만 수학은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쳐 왔다. 초기 수학은 철학에게 맹렬한 비판을 받곤 했지만 이제 수학은 더 이상 철학에 비판받는 학문이 아니다(학문하면 국영수 지). 수학의 서사를 읽노라면 그 드라마틱 함이 좋을 수도 있다.

  인류가 쌓아온 지성의 결정체. 많은 학문의 바탕을 지지하고 있는 수학에 대한 이야기는 윌북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수학은 이론적인 학문이면서 동시에 실질적인 학문이기도 하다. 기하와 확률은 당장 공간에 대해 얘기를 해준다. 게임이론은 공정과 심리에 대해 설명이 가능하다. 집합이나 형식학은 철학과 닿아 있는 부분도 있다. 사회학에서 수학은 반드시 필요한 학문이 되었고 경제학은 수학이 없으면 안 된다.

  수라는 것은 그 개념이 없을 때조차도 인지하고 있는 것이었다. 인류는 아주 이른 시기부터 조약돌과 조개껍데기를 세었다. 가장 먼저 생겨난 문자 역시 회계를 위한 수 개념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보편적인 언어는 아라비아 숫자이며 수학은 세계 보편적인 언어라고 할 수 있다(문맹이 많지만).

  존재라는 것은 여전히 철학적인 문답이지만 수학에서 존재함은 '모순 없음'과 같다. 수학은 그 모순 없음을 증명하며 발전해 왔다. 삼단논법은 논리학으로 발전했고 컴퓨터 언어에 영향을 미쳤다. 수학에서 증명이 되지 않는 모든 것을 믿지 않는다.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내는 데는 철학적 상상이 필요했을지 모르겠다. 유리수, 무리수, 무한대, 무한소 더 나아가 허수, 초현실수 같은 것을 만들어냈다. 수학은 세상을 점점 확장시켰다. 

  수학철학에는 철학적 질문이 넘쳐난다. 수학이 철학적 해석이 가능하다니 얼마나 재밌을까? 게다가 기발한 수학 증명에 대한 설명도 가득하다. 어떤 해석이 있었는지 알 것 같은 것들은 더 자세히 들여다보다 보니 독서가 중간중간 멈추게 된다. 서평에는 '수포자'에게 권한다고 하지만 사실 이 책은 수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읽어야 한다. 쉽지 않다. 그럼에도 수포자가 읽는다면 수학적 설명을 모두 건너뛰며 철학적 부분과 서사만을 읽으면 수학에 호기심 정도는 생길 수 있을 것 같다.

  더없이 이성적일 것 같은 수학에서 철학적 사유가 가능하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즐겁다. 당신이 수학에 호기심이 있다면 한 번 펴보시길 권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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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쁜 딸입니다 라임 청소년 문학 65
파스칼린 놀로 지음, 김자연 옮김 / 라임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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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스텔 톤의 예쁜 소녀가 그려진 커버. 제목에서 풍기는 부정문은 되려 좋은 스토리를 만들어줄 것 같았다. 하지만 제목은 그 자체로 비명이었고 자책의 목소리가 되어 있었다. 우리 사회의 가정 폭력은 가정 안에서만 썩어가고 밖으로 풍경은 책의 커버처럼 밝은 색일까? 

  가정과 사회. 어디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한 아이들 아니 그 가정의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라임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한국 사회에서 도덕적 실험을 하는 많은 외국인들이 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냐고 하지만 우리는 조금 더 예전으로 돌아가면 대문조차 잠그지 않고 살던 때도 있었다. 우리 사회도 점점 더 삭막해져 가고 있다.

  거리에서 강도를 만났을 때, 절도범을 만났을 때,

"강도야", "도둑이야"

라고 해서는 도움을 받을 수 없다고 한다. 다들 문을 잠그기 바쁘다. 그중에는 경찰에 신고해 줄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럼 뭐라고 해야 할까?

"불이야"

  라고 해야 한단다. 그러면 너도나도 문을 열고 나와 본다고 한다. 혹시 우리 건물이 아닐까 싶어서. 나도 막상 닥치면 다르지 않을 것 같다(신고 정도는 하겠지만). 이럴 정도인데 남의 가정사에 대해 그렇게까지 신경 쓸 사람이 있을까. 한 가정의 불행에 대해 그렇게까지 신경 쓸 수 있을까. 괜한 죄책감보다는 모르고 있는 게 낫다고 여기게 된 게 아닐까. 

  아빠의 폭력. 벗어나지 못한느 엄마. 방관하는 외할머니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을 지켜야 하는 아이들. 그런 이야기를 이 책은 담고 있다. 여전히 사회 어딘가에서는 일어나고 있는 일. 무감각해지지 않기 위한 하나의 외침인지도 모르겠다. 

  개인과 개인의 무관심 속에 사회적 접근이 필요할 것 같다. 개인적인 것이 반복되면 더는 개인적인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폭력은 학습되니까. 폭력이 자라기 전에 잘 다스려 주는 것과 사회의 의무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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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는 물에서 숨 쉬지 않는다 - 불완전한 진화 아래 숨겨진 놀라운 자연의 질서
앤디 돕슨 지음, 정미진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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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래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생물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덩치가 힘겨웠는지 지금의 고래는 물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고래는 아가미로 숨을 쉬지 않는다. 물속에서 살아가려면 아가미가 있는 편이 좋을 텐데, 고래는 긴 시간이 지나도록 아가미를 갖지 못했다. 

  생명의 다양함과 오해 없는 자연선택을 설명하기 위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한 이 책은 포레스트북스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진화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다윈의 <종의 기원>이다. 생물이라는 것은 무언가에 의해 창조된 것이 아닌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한 개체만이 번성한다는 것이다. 모든 개체는 자연에게 생존에 대한 압력을 받고 이것을 견뎌낸 개체만이 자연의 선택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를 '적자생존'이라고 한다. 가장 잘 적응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적자생존'은 한때 '사회 진화론' 혹은 '우생학' 같은 것으로 학문에 이용되기도 했다. 인간의 잘못된 해석 때문이다. 사람들은 '진화'라고 하면 더 우월한 개체라고 착각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우리 인간은 날지 못하기도 하고 물속에서 숨을 쉴 수도 없다. 그렇다고 추위를 맨몸으로 견뎌낼 수도 없다. 그저 지금 환경이 인간이 살기에 나쁘지 않은 것이고 지능이라는 꽤나 괜찮은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해서다. 

  동물은 늘 시대착오적이다. 환경이 변해야 선택압을 받기 때문이다. 변한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동물이 시대에 뒤처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환경은 때론 생각보다 급작스럽게 변한다. 지구를 호령하던 공룡들은 운석 충돌이라는 하나의 사건으로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인간이라고 해서 그런 상황에서 살아남는다고 보장할 수 없다. 결국 모든 생명체는 환경에 큰 위협을 받게 되는 것이다.

  책은 여러 종류의 진화 패턴을 설명한다. 그러면서 진화라는 것이 꼭 좋은 방향으로만 흘러간다는 게 아니라는 것을 얘기한다. 그리고 진화라는 것이 이기적인 것도 이타적인 것도 다정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얘기한다. 진화는 그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흔적 같은 것이라는 듯하다. 인간의 기준으로 인간을 최고의 동물로 추켜 세우는 오만함에 대한 경고 같기도 했다.

  진화에서 성공을 무엇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인간은 늘 비슷한 크기의 생명체와 비교하는 경향이 있다. 인간이 육체적으로 우수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개체로 봐도 인류는 닭장의 닭보다도 적은 개체 수를 가지고 있다. 미생물까지 끌어드리면 인간은 아름드리나무의 열매 하나도 될까 말까 하다. 마음대로 살아간다거나 행복하게 살아간다거나 같은 판단은 애초부터 할 수 없다. 아무것도 비교할 수 없다. 인간도 그저 흐름 위에 서 있는 것이다.

  유전자의 확률 게임은 계속되고 있다. 그렇다고 특별하게 우월한 유전자도 특별하게 다정한 유전자도 없다. 그저 환경에 적합한 유전자가 매 순간 자연에게서 받은 선택압을 견뎌내는 것에 불과하다. 유전자가 단순히 자신을 보존하는 일에만 급급한 것이었다면 인류의 남성들은 모두 정자은행에 기부하기 위해 줄을 서야 하는데 또 그렇지가 않다.

  유전은 하나의 흐름이며 자연의 선택압 속에 결정된 경로는 되돌릴 수 없다. 물속에서 육지로 올라와 폐를 얻은 동물은 다시 물로 돌아갔을 때 아가미로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 그만큼의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살아갈 만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약점이 생존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약점을 개선하는 돌연변이는 우월성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개체의 행동은 여러 가지 선택압에 대한 결과다. 우리는 가끔 자연스러운 것을 가장 좋은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자연에서 일어나는 일은 전혀 도덕적이지 않다. 그리고 전혀 우월한 방향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애당초 우월이라는 정의를 내리는 것부터가 쉽지 않다. 그저 다양한 결과만이 존재한다.

  저자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생명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듯하다. 인간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차별과 혐오의 밑바탕에 존재하는 여러 이유들에 정당함을 생물학으로는 지지받을 수 없다는 듯했다.

  <이기적 유전자>보다 더 세심하게 설명하지만 더 재미난 예시들이 가득해 읽는 즐거움이 있다. 진화를 있는 그대로 만나고 싶다면 이 책은 만족을 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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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전환 -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데이비드 C. 코튼 지음, 김승진 옮김 / 가나출판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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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는 변혁을 꿈꾼다. 단순한 기후 위기를 위한 전환이 아니다. 단순히 그런 이유라면 이렇게 두꺼운 책을 쓰지 않았을 거다. 인류가 지구에서 존재감을 드러낸 지 겨우 5000여 년이 지났지만 암이 전이되는 수준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숙주를 헤치지 않는 기생의 원칙을 인간은 깨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바닥에는 제국주의적인 사상이 깔려 있다. 인간은 제국 이전의 세계에서 더욱 많은 것을 이뤄냈다. 지금은 지구적 관점이 필요하며 전쟁과 약탈이 아닌 풍요와 돌봄을 향해 나아가야 할 때라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스토리를 거부할 수 없다. 잘못된 것을 알아채더라도 행동할 수 없는 것은 자신의 스토리를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스토리가 없이 살아갈 수 없다. 그래서 스토리를 고쳐 적어야 한다. 그런 위대한 전환에 대한 얘기는 가나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과학계는 기후 위기에 대해 강한 경고를 보내고 있지만 정치권은 그렇게까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인기가 필요한 정치인들에게 강한 브레이크가 필요하고 고통을 분담해야 하는 정책은 꺼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 대중들에게 이런 위기의식이 강해지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너나 할 것 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듯하다.

  많이 다행스러운 것은 대중들이 점점 더 깨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대로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생각이 된다면 세상은 변하고 인류는 새로운 스토리를 가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미 거대한 위기 앞에 있지만 어쩌면 또 힘겨움을 극복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구공동체>라는 선택지를 고르는 사람이 많아져야 할 것이다.

  이런 선택이 어떤 미래를 가져올지는 모른다. 미래는 예측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류는 선택해야 한다. 지금처럼 계속할 건지 새로운 선택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새로운 선택은 전혀 새롭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 왜냐면 태초의 인류는 공동체적인 사상이 강했고 모두가 살아남기 위해 풍요를 기원하고 돌봄을 나눴기 때문이다. 제국이라는 약탈의 스토리가 주류 스토리가 되기 전까지는 그랬던 것이다.

  제국의 스토리는 화려하면 그 이면에 피팝 받고 죽어나간 인류에 대한 얘기는 쓰인 않는다. 위대하다거나 하는 영웅들 대부분은 비인간적이었다. 왕 중에 덕치를 하는 자가 적고 장수 중에 덕장이 많지 않았던 것은 정치라는 것 자체가 기만의 언어를 쓰기 때문이다. 올곧아서는 우두머리가 될 수 없는 곳이 바로 제국이다.

  나라가 바뀌어도 일반 인류의 삶은 그대로였다. 단지 약탈하러 오는 인간만이 달라졌을 뿐이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어느 나라의 백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도육을 당하기도 했다. 야만의 기질을 가진 제국이 남긴 슬픔들이다. 이런 권력은 자본주의와 함께 돈이라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제 보이지 않는 칼질이 시작된 것이다.

  혁명은 권력을 다시 풀뿌리에게 돌려주었으나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 못한(당연하다고 여긴) 사람들은 그 권리를 독재에 대사 넘겨주는 일을 벌이기도 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많은 것들은 제국의 역사를 헤쳐 나온 사람들의 덕분이다. 그런 소중함을 잊으면 안 된다. 

  그렇다고 제국의 성질은 사라지지 않았다. 소수의 권력자는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안보는 그 첫 번째 방법이다. 외부에 적이 있다는 설정은 내부의 소란을 모두 잠재운다. 냉전체제는 두 강국 모두에게 좋은 시나리오였다. 소련이 붕괴되고는 적을 테러 집단으로 설정한다. 적이 있다는 끊임없는 설정은 강력한 구심점의 필요로 이어지고 권력자는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 엔론 사태로 대통령에서 물러날 뻔한 부시는 이라크를 적으로 설정해 전쟁을 일으켰다. 오사마 빈 라덴은 미국 권력자들에게는 큰 행운이었을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이 세계 경찰이라는 이미지는 미국에 압도적인 군사력을 선물했다. 하지만 그 정의라는 미군이 주둔하는 곳에는 독재 국가나 쿠데타를 일으킨 국가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몇몇 자료에는 미국이 그것을 지원했다는 것도 알 수 있게 해 준다. 안보는 권력 유지에 가장 큰 필수인 것이다. 우리나라도 선거철만 되면 북풍이나 빨갱이니 같은 선전을 한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아직까지 효과가 있는 듯하다.

  강대국들은 자금을 가지고 약소국의 자원을 탈취하는 것도 서슴없이 행했다. 실질 자원과 금융 자원은 별개의 것인데 그것을 이어 붙여 통화의 격차를 만들고 상대 국가의 경제를 엉망으로 만들고 구제해 준다며 민영화와 공공자원의 매각을 요구해 왔다. 하지만 그것은 경제 구제가 아니라 경제를 탈취당하는 것이었다. 

  이 책은 이미 각성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호소한다. 새로운 세상에서 제대로 살아가려면 새로운 선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주류를 이룬 제국적 사상으로는 공동체를 보호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제국의 기득권층과 신자유주의의 이득을 취하는 자들은 공동체를 계속 부수려고 하고 있다는 것이다. 선택권이 점점 줄어들어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일이 가난한 사람에게 당연해지는 양극화는 더 심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풀뿌리 권력들이 모여 여론을 형성해야 하며 권력자들의 나팔수인 언론을 대신한 독립 미디어의 확산이 필요하다. 지금과 같은 양당 체제는 서로 적당히 해 먹기 때문에 다양한 정치인의 배출도 분명 필요해 보인다. 경쟁과 우위 선점과 같은 제국적 잔재에 물들어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생각들이 계속 가로막을 테지만 지속해야 한다. 우리의 이야기가 바뀔 때까지 노력해야 한다. 

  모두가 잘 살기 위한 노력. 그것이 어쩌면 당연하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모든 잘못은 개인에게 있다는 자기 파괴적인 인식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돌봄과 연대로 모두 함께 잘 살아가는 쪽을 고민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세상과는 다른 세상을 선택해야 적어도 희망이라는 것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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