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D현경 시리즈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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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2년 베테랑 기자가 10년을 공들여 만든 경찰 소설이다. 굉장히 공포스럽지 않을까라는 우려를 앉고 책을 읽었지만 잔인한 부분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700페이지나 되지만 읽는 것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고 일상적인 모습에 지루하지 않을 만큼의 적당한 긴장감이 있었다. 하나의 미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천재적인 형사의 모습이 아닌 그 앞에서 나약하기도 하고 집요하기도 한 경찰이라는 조직의 갈등과 고뇌를 서술하고 있다. 미스터리 소설이기 이전에 조직을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 작품으로 분류하는 것이 더 옳을 듯하다. 


  쇼와 64년(1989년) 한 소녀가 유괴되어 끝내 시체로 발견되는 미제 사건이 발생한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사건은 해결되지 못하고 공소시효는 1년을 남긴 상태로 작품은 시작한다. 64 사건에 참여했던 미카미는 형사부에서 경시부로 발령이 나서 홍보담당관의 보직을 맡고 있었다. 그는 형사에 대한 뜨거운 피가 흐르는 사람이었고 능력과 긍지가 높은 사람이었지만 형사부와 경시부를 넘나든 불청객으로 양쪽 모두에게 좋은 시선을 받지 못하는 처지가 된다. 설상가상으로 자신의 딸은 가출을 한 상태다. 그는 딸아이의 행방을 찾기 위해 조직에 도움을 요청하고 조직에 빚을 진 그는 성격과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


  64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을 빌미로 경찰청은 형사부의 부장 자리에 중앙의 캐리어들을 내릴 계획이었다. 중앙과 빠른 소통이 지금의 시대에 빠른 대응을 위한 것이라고 했지만 이는 경시청의 세력을 넓히려는 계획이기도 했다. 이에 형사부는 집단적 항명을 하며 경시부 인원의 죄를 언론에 흘렸다. 경찰청장의 방문과 함께 구조 조정을 노리는 경시부와 형사부의 상징인 형사부장을 캐리어에게 뺏기지 않겠다는 형사부의 충돌은 살인 사건을 떠나 이 작품의 가장 큰 갈등이다.


  두 번째 갈등은 언론과 경찰 간의 정보의 갈등이다. 약점을 내어주지 않으려는 경찰과 경찰 권력을 공격하는 언론들. 사실 정의로워 보이지만 결국 이익의 절충점을 찾아가는 갈등이다. 언론과 경찰의 갈등은 가벼워 보이지만 꽤 격렬하면서도 긴장감 넘친다.


  미카미의 심적 변화를 쫓는 것 또한 즐거운 일이다. 형사는 범죄를 증오하지 않는다. 단지 사냥감을 쫓는 본능만 있을 뿐이다. 그런 미카미의 형사 체질은 어느새 모든 조직은 중요하고 그들이 모여서 조직을 굴러감을 깨닫게 된다. 형사부에도 경시부에도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홍보담당관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이 중요함을 느낀다.


직무는 개인의 고유한 영역이다. 그것이 바로 현실이다. 캐리어가 몇 명이 쳐들어오든 그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경찰로서 해야 할 실무는 항상 우리의 손안에 있다. 본청에 경찰은 없다. 육체조차 필요로 하지 않는 관념에만 얽매여 자신의 직무가 무엇인지 잊었을 때, '진짜' 경찰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작품의 내용으로는 어느 사건도 해결하지 못한다. 하지만 미카미의 생각은 말끔하게 정리가 된다. 형사로서의 미카미. 형사부가 단체로 보이콧을 하려고 하자. 현의 주민을 인질로 농성을 하는 것이냐고 격렬히 저장하던 미카미의 모습이 낯설지 만은 않다. 경찰의 국민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자신을 돌보려고 한다면 그것은 폭력조직일 뿐이라는 문장에서 지금의 주위에서 일어나는 사태를 생각해볼 수 있다.


  가출한 딸에 대해서 누구보다 걱정하는 아내를 위해 자신이 했던 일이 '죽음의 조건'을 감추는 일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미카미는 아내가 어디서라도 살아 있길 바라며 '생존의 조건'을 찾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며 작품은 마무리된다. 잃어버린 소중한 사람이 어떻게 하면 죽지 않는 조건을 찾는 '절망' 보다 어떻게 하면 살아가고 있을지를 찾는 '희망'을 기대는 것이 답을 찾기에 더 수월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책이 주제로 삼은 '유괴 사건'의 부모가 되는 사람을 연장선에 놓으려는 작가의 의도였는지는 모르겠다.


  12년의 기자생활, 10년을 다듬은 문장. 쉼 없이 넘어가는 책장에 희열이나 지루함을 느낄 새도 없이 이야기는 그렇게 끝나버렸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잔잔한 마음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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