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의 디자인 (특별판)
하라 켄야 지음, 민병걸 옮김 / 안그라픽스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뺄셈의 미학>은 우리가 흔히 사용한다. "Simple is the best"라는 말이 아인슈타인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은 시각적인 디자인뿐 아니라 수치적 디자인에서도 <단순함>은 중요한 화두인 것임이 분명하다. 일본 디자인계의 거장이자 <무인양품>의 아트디렉터인 하야 켄야의 디자인 철학 또한 다르지 않다. 디자인이라는 것은 과잉된 메시지를 담으면 안 된다. 제품의 근원적인 가치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디자인은 시대의 문화에 대해 끊임없이 소통하는 작업인 것이다.


  하라 켄야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무인양품>을 알게 되면서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산업화 이후 경제에 끌려다녔던 디자인 철학은 본연의 가치를 잃고 대량 생산과 소비를 촉구하는 디자인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기술팀과 디자인팀의 콜라보는 높은 효율과 합리적인 행위였다. 대표적인 일본 기업으로는 <소니>가 있다.


  나는 여전히 하이테크 이미지를 가진 소니의 디자인을 좋아한다. 또한 <무인양품> 만의 특유의 따뜻하고 심플함에 눈길이 가는 것 또한 당연하다. <무인양품>이 1980년도에 내걸었던 캐치프레이즈는 '이유가 있어서 싸다'였다. 우리가 생각하는 싸구려가 아니라 생산 과정의 합리화와 간소화를 통해 가격을 낮추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독창적인 디자인을 내세웠다. 하라 켄야가 아트디렉터로 참여하게 되었을 때는 낮은 가격만으로 승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새로운 상징이 필요했다. 


  무인양품의 목표는 '이것이 좋다'가 아니라 '이것으로 충분하다'였다. 이것은 디자인의 타협이 아니다. 시장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욕망의 수준'을 끌어올리겠다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수준에 맞는 제품이 출시되면 '이것으로 충분해'라고 말한다. 하지만 더 높은 수준의 제품을 보고 나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무인양품의 '이것으로 충분하다'라는 목표는 세계 누구의 욕망이라도 만족시킬 수 있는 제품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만들려고 하는 것의 근원적인 의미를 찾아야 했고 보편타당한 메시지를 알아내야 했다. 그들은 메시지를 내는 제품을 만들려고 하지 않고 욕망을 담을 그릇을 내보이려 했던 것이다. 


  <하라 켄야>를 얘기하려면 exformation을 빼놓을 수 없다. exformation은 information의 반대 개념으로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지만 알지 못하는 것에 집중한다. 정보의 홍수라고 불리는 시대에 사는 우리는 너무 많은 것들을 접하며 살아간다. 그러다 보면 스치듯 만난 것들에 대해서 '안다'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알아?', '알아!'라고 이어지는 대화에는 엄청난 다양성이 있지만 자신의 지식에 대한 만족감일 뿐일 때가 많다. 


  무엇인가를 안다는 것은 사고의 '입구'에 불가한 것이다. 그것은 상상력의 시작이지 끝이 아니다. 지식을 상상하고 승화하는 과정을 가져야 하는데 심화시키는 귀찮은 과정은 피하고 정보를 던지고 받는 일에만 치중하고 있다. 이렇게 '이미 아는' 정보 교환의 순환 속에서 더욱 신선한 미지의 영역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exformation이 아닐까 한다.


책 속에 예를 들었던 '리조트'를 보자.

긍정적 이미지 : 편안함이 있다/기분 좋고 마음이 편하다/긴장을 푼다/일상에서 벗어난다/이국적 정서를 느낀다/자연을 경험한다.

부정적 이미지 : 사치스럽다 / 게으르고 나태하다 / 퇴폐적이다

상황의 이미지 : 풍부한 자연 / 쾌적한 기후 / 정숙함 / 독립적 공간 / 숙련된 서비스

감각 정 인상 : 느슨한 느낌 / 떠도는 향기 / 정숙 / 자연의 소리 


이런 다양한 의견들이 있었다. 사람의 생각의 현대화된 이미지에 영향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을 하나로 얘기할 수 있는 씨앗 같은 단어는 '휴식'이었다. '휴식'이라는 단어 집중하니 튜브 모양의 도로 표지판, 밖에서 자기, 아이스크림, 느긋한 타이포그래피 그리고 리조트 버튼 같은 프로젝트들을 만들 수 있었고 페이지를 보는 나는 기발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산업화 이후 기술의 진보는 필연적인 것이 되었다. 산업 혁명이나 기술 문명에 반기를 든 사람들은 자본주의에 의해서 철저하게 내쳐지고 찬밥 신세를 면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지구 상의 모든 나라와 사람들은 기술에 대한 강박이 있다. 변화에 쫓아가지 못하면 도태된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룬 것들을 누리지 못하고 또 다음을 위해서 끌려가고 있다. 저자는 이 변화가 조금 더 천천히 이뤄졌다면 어땠을까라고 얘기한다. 우리는 완성된 지 못한 채 다음을 향해 간다. 불안정한 토대에서 불확실성을 향해 나아간다. 어쩌면 기후 위기라는 것도 그런 불완전함이 만들어낸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최근에는 디자인이 많은 일을 해내고 있다. 기술의 진보가 제품이나 의사소통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할 때마다 디자인은 꾸준히 최상의 답안을 찾아내는 역할을 해내고 있다. 디자인은 단순히 만드는 기술이 아니다. 오히려 귀를 기울여 눈을 의심하고 생활 속에 새로운 질문을 발견하는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이 책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작품집이 아니다. 그런 책을 내려했다면 <하라 켄야>는 책을 내지 않았을 것이다. 디자인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얘기하는 것을 하고 싶었다. 이 책은 <디자인의 디자인>이라는 책의 특별판으로 기존 책에는 없던 '햅틱', '센스웨어', '白', '익스포메이션'이 추가되었고 기존보다 많은 글을 덧붙였다. 


  <단숨함>은 미니멀니즘과 달랐다. 끊임없이 관찰하고 질문해서 본질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exformation은 말로 표현되기 전의 이미지를 디자인해 내는 것이다. 그 디자인을 다시 말과 글로 표현하는 것 또한 디자인이다. 이 책의 제목이 <디자인의 디자인>인 이유다. <하라 켄야>가 얘기하는 디자인의 본질과 그의 철학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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