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기억 못하겠지만 아르테 미스터리 1
후지마루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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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소설책 한 권을 집었다. 감성적인 느낌의 표지를 갖고 있는 일본 소설 《너는 기억 못하겠지만》이다. 제목만 봤을 때는 단순히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이 책은 표지의 느낌과 어울리지 않게 약간 무겁게 느껴지는 '사신 아르바이트'라는 판타지적 소재를 갖고 이야기를 풀어낸다.


사쿠라 신지는 어느 날 갑자기 같은 반 친구인 하나모리 유키에게서 사신 아르바이트 제안을 받는다. 웬만한 악덕 기업보다 더 한 아르바이트이지만, 근무 기간만 채우면 어떤 소원이든 딱 하나를 이루어준다고 한다. 이런저런 고민 끝에 사쿠라는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업무를 시작한다. 첫 번째 업무에서 사쿠라는 첫사랑이었던 아사쓰키를 만난다. 첫 번째 업무를 마치고나서야 사쿠라는 이 일이 어떤 일인지 확실하게 알게 된다.


사쿠라는 첫 번째 업무를 마친 후 패닉에 빠져 그만둘까 고민하다가 결국 계속하기로 한다. 그렇게 두 번째 업무에서는 꼰대 기질이 보이는 구로사키를, 세 번째 업무에서는 아이를 키우는 히로오카를, 네 번째 업무에서는 엄마에게 학대를 당해 죽은 소녀 시노미야 유를 만난다. 사쿠라가 이 일을 처음할 때는 별 생각없었지만, 일을 할수록 '사자'를 위해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긴다.


사쿠라와 하나모리가 함께 하고 있는 사신 아르바이트는 미련이 남아 이생을 떠나지 못한 '사자'의 소원을 들어주고 이생을 떠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사자'가 이생을 떠나지 못하고 머무르는 시간을 작가 후지마루는 '추가시간'으로 명하고 있다. 사쿠라는 세 번째 '사자'인 히로오카를 만난 후 추가시간이 단순히 미련을 해소하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6개월의 아르바이트 시간을 마칠 때 쯤에서야 비로소 추가시간이 의미하는 바를 알게 된다.


'사자'에게는 '사자의 힘'이라고 불리는 신비한 능력 하나를 갖게 된다. 이 능력은 자신이 무엇에 미련을 품었는지 알 수 있는 단서가 되고, 그 미련을 해소할 수 있는 힘이 된다. 처음 보는 사람의 이름을 알 수 있는 작은 능력부터 시간을 멈추는 강력한 능력까지 그 능력은 다양하다. 또 사신별로 담당하는 '사자'의 성향은 정해져 있는데, 사쿠라와 하나모리가 같이 일하게 된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너는 기억 못하겠지만》은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에세이처럼 행복이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만들고 알게 해준다. 평범한 일상인 것 같지만 이런 것도 행복이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행복 때문에 그동안 나도 모르게 지나간 행복함이 얼마나 많았을까? 이 책 속 '사자'들처럼 자기 자신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해 행복함을 스쳐 지나가는 실수는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사전적 의미의 행복이 아닌,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 잊고 살고 있는 분들에게 이 슬프고도 따뜻한 소설을 추천하고 싶다.

사람은 들뜨면 대번에 방심한다. 내일도 분명 좋은 하루를 보낼 거라고 착각한다. 좋은 일이 생긴 것을 계기로 앞으로의 인생도 펴지리라고 자만한다.
아무 근거도 없이.

후지마루 ∥ 너는 기억 못하겠지만 ∥ p42

사람은 언제나 잃고 나서야 후회한다.
언제나 잃고 나서야 소중했음을 깨닫는다.

후지마루 ∥ 너는 기억 못하겠지만 ∥ p60

조건 없는 사랑은 절대적이지 않다. 어떤 사람이든 자신만의 인생과 욕심을 가지고 있다.

후지마루 ∥ 너는 기억 못하겠지만 ∥ p168

변함없이 우리는 하나모리를 중심으로 웃음꽃을 피웠다.
어디에서든 찾아볼 수 있는 작은 평안함. 행복이란 의외로 이런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후지마루 ∥ 너는 기억 못하겠지만 ∥ p221

이 세상은 잔혹하다. 그래도 여기저기에 행복의 씨앗이 떨어져 있다.
그 씨앗을 싹틔워 한없이 퍼뜨려나간다. 그게 바로 사람들에게 필요한 일이다.

후지마루 ∥ 너는 기억 못하겠지만 ∥ p318

행복은 뭘까. 먼 기억 속 누군가가 물었다.
이제는 안다. 지금이 행복함을 아는 게 행복임을.
잃기 전에 깨닫는 것.
잃었더라도 행복했음을 기억하는 것.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언젠가 기억해낼 수 있기를 바라는 것.
분명 그것이 바로 이 세상에서 추구해야 할 진실이다.

후지마루 ∥ 너는 기억 못하겠지만 ∥ p334~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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