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꽃이 떨어지기 전에 - 삶, 사랑, 죽음, 그 물음 앞에 서다
경요 지음, 문희정 옮김 / 지식의숲(넥서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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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미국 드라마), 일드(일본 드라마)는 몇 작품 본 기억이 있지만, 중드(중국 드라마)는 줄임말도 어색하게 느껴질 만큼 거의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딱 하나의 중국 드라마는 바로 <황제의 딸>이다. <황제의 딸>의 방영 날짜를 찾아보니 내가 초등학생일 때인데, 정확한 내용은 기억하지 못해도 재밌었다는 점과 여배우들이 예뻤다는 점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우리나라 국민들도 이 드라마를 기억하고 있을텐데, 이런 <황제의 딸>을 쓴 작가 경요의 새 책이 출간됐다.




많은 소설을 써냈던 작가 경요. 이번에 내놓은 책은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다. 《눈꽃이 떨어지기 전에》는 그녀가 경험한 삶을 담았고, 그 중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비중있게 담겨 있기 때문에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라기 보다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진지한 에세이다. 책은 총 2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1부는 그녀의 남편인 신타오가 질병을 앓으면서 삽관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2부는 이들 부부가 겪은 희로애락을 담고 있다.




작가 경요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담은 글들을 올리곤 했다. 책 속에는 그녀의 글에 공감을 많이 한 셰진더라는 사람과 나눈 이야기도 담겨 있다. 셰진더는 와병하신 모친을 간병하며 비적극적 치료 동의서에 서명을 했는데, 다른 사람들 눈에는 그저 효도를 다하지 않는 사람으로 본다는 얘기가 담겨 있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표면적으로는 그렇게 보일지 몰라도, 사실 그러한 상황을 직접 겪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런 말조차도 할 자격이 없다고. 계속 힘들어하다가 생의 마지막에 들어서도 고통 속에 죽음을 맞이하게 한다면, 그게 과연 환자를 위한 일일까? 작가의 말처럼 '죽는 것은 필연'인데, 그렇다면 더더욱 존엄을 지니며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게 아닐까?




작가의 남편 신타오는 어느날 대상포진 진단을 받는다. 나는 대상포진이라는 병을 들어보기는 했지만 어떤 병인지 자세히는 몰랐는데, 작가의 글을 읽고 이 병은 '환자가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병'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대부분의 병은 병원에서 의사와 간호사가 치료를 해주지만, 이 병은 보호자의 손도 많이 빌린다. 이에 따라 작가 경요는 몇 년간 남편의 '특별 간호사'로 활약해야 했다. 글만 읽어도 그 활약들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게 느껴지는데, 이런 일들에도 불구하고 '특별 간호사로 사는 것도 행복'이라고 말하는 작가가 더욱 더 위대해 보였다. 후에 신타오에게 치매까지 찾아오게 되는데, 그런 그를 간병하고 삽관하기까지의 과정도 고스란히 이 책에 적혀 있다.




《눈꽃이 떨어지기 전에》는 에세이지만, 어느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그녀와 그녀의 남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신타오에게 치매가 찾아오기 전, 사랑꾼이었던 그의 모습과 현재 병원에 입원해 기억을 잃어가고 있는 그의 모습이 대비되어, 책을 읽으면서 안타까웠고 슬펐다. 신타오를 보며 '죽음이란 정말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전에는 삶을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생각만 했는데, 요즘은 그만큼 웰다잉의 권리도 중요시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존엄사 법이 시행되고 있는 것을 보면 더욱 더 그렇게 느껴진다.




'존엄사'라는 단어를 알기 전까지는 '그래도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 아닐까' 하는 생각만 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보니 그건 환자를 위한 게 아니라 오직 곁에 있는, 환자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이기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 편하자고 아주 작은 희망 하나만을 붙들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더 고통 속으로 밀어 붙이고 괴롭게 하는 건 아닐까? 지금 이 순간에도 작가 경요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분들이 많을거라 생각한다. 어느 한 갈림길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갈팡질팡하고 있는 분들에게 이 에세이를 추천하고 싶다. 이 에세이가 정확한 답을 해줄 순 없겠지만, 분명 힘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삶과 죽음‘에 관한 책이자 ‘사랑‘에 관한 책이다. 책의 주제는 아기자기한 사랑이 아니라 내가 피와 눈물로 써 내려간 규탄의 말이다. 생명에 대한 규탄, 지고한 인류를 향한 규탄, 인간에게 ‘존엄한 죽음에 대한 권리‘가 있는지를 규탄한 것이다.

경요, 《눈꽃이 떨어지기 전에》 p327

죽음과 직접 대면하자! 사실 그건 긍정적인 일이야! 사람은 누구나 죽으니까! 웃으면서 죽음을 바라보고 우아하게 돌아서는 것이야말로 인생에 있어 최고의 엔딩이지!

경요, 《눈꽃이 떨어지기 전에》 p19

‘죽음‘은 두려운 것이 아니다. 두려운 것은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것이나 ‘살아도 죽은 것과 같은‘ 것 또는 ‘목숨만 겨우 부지하는‘ 것, 그리고 ‘인위적으로 살아는 있으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경요, 《눈꽃이 떨어지기 전에》 p88

최고의 경지에 이른 사랑은 그의 몸뚱이를 억지로 붙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놓아주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경요, 《눈꽃이 떨어지기 전에》 p164

살아 있다는 말은 무척이나 많은 아름다운 것들을 내포하고 있다. 이 세상을 즐길 수 있고, 희노애락의 감정을 느끼며,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보고, 바람과 비의 소리를 들으며, 맛있고 입에 맞는 음식을 먹고, 영화와 각종 예술을 감상할 수 있는··· 이런 것들을 할 수 있어야 사람이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경요, 《눈꽃이 떨어지기 전에》 p198

낭만은 꼭 작정하고 계획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소소한 일상 속에 언제라도 낭만이 깃들 수 있다!

경요, 《눈꽃이 떨어지기 전에》 p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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