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의 별을 찾아서 - 어린 왕자와 생텍쥐페리에 관한 인문학 여행
윤혜진 지음,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그림 / 큐리어스(Qrious)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힌 책은 무엇일까? 이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 같은데, 바로 성경책이다. 그렇다면 그 다음으로 많이 읽힌 책은 무엇일까? 놀랍게도 그 책은 <어린 왕자>라고 한다. 나는 어릴 때 지금처럼 책을 즐겨 읽는 아이가 아니었다. 책을 읽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장르만 읽는 편독을 하거나, 독후감 숙제를 하기 위해 억지로 읽거나 둘 중 하나였다. <어린 왕자>도 읽긴 읽었겠으나 제대로 읽은 기억은 없다. 그 이후로 <어린 왕자> 책은 다시 읽어보지 않았고, 6년 전에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전시한 <어린왕자 한국특별전>과 몇달 전 영화 채널에서 보여준 애니메이션 <어린왕자>로 성인이 되어서 어린 왕자를 다시 만났다.



최근에 들어서야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말을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 '원조' 어른을 위한 동화는 바로 <어린 왕자>가 아닐까 싶다. 어릴 때는 어린 왕자와 같은 시선에서 어린 왕자가 만나는 다양한 별들의 사람을 보며 '참 이상한 사람들이다'라는 생각을 했는데, 어른이 되어(진정한 어른인지는 모르겠으나 나이 상으로) 다시 보니, 어릴 때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그 사람들이 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이었고, 때로는 그 사람이 내가 되기도 했다. <어린 왕자> 책을 어릴 때 한 번, 성인이 되고난 후 다시 한 번 읽어본 사람이라면 대부분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어린 왕자가 만난 다른 행성의 어른들을 기억하는가? 명령의 세계 속에서만 존재하는 왕부터 찬사의 말만 듣는 허영심 많은 사람, 부끄러움을 잊으려는 술꾼, 중대한 일을 하는 사업가, 어리석지만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가로등 켜는 사람, 영원한 것만을 기록하는 지리학자까지. 나는 <저마다의 별을 찾아서>를 읽으면서 이 어른들을 다시 떠올려봤는데, 그 중 쉬고 싶지만 그럴 수 없이 자신의 임무를 묵묵히 하는 '가로등 켜는 사람'이 우리들의 모습과 가장 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어찌보면 미련한 행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게 우리 모습과 가장 닮아있다고 생각하니 조금 씁쓸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때론 남들에겐 있고 나에겐 없는 것이, 나를 다른 이들과는 다른 모습으로 만들어주는 거름이 되기도 하지요. -p41



다른 책들을 읽을 때도 그랬듯이 <어린 왕자> 책을 읽으면서도 동화 속 어린 왕자에게만 집중을 했지 <어린 왕자>의 저자인 생텍쥐페리에 대해서는 한 번도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윤혜진 작가가 쓴 <저마다의 별을 찾아서>는 책 <어린 왕자>의 이야기를 깊이 들여다 볼 뿐만 아니라 생텍쥐페리의 일상에 대해서도 쓰여져 있다. 어린 왕자의 이야기만 읽다가 작가인 생텍쥐페리에 대한 글을 읽으니 새로웠고 <어린 왕자> 책 만큼이나 흥미로웠다.



해군사관학교 입시 면접에서 불합격 후 미술학교 건축과에 진학하고 공군에 입대해 조종사로 자리잡은 생텍쥐페리. 이것만 봐도 예사롭지 않은데, 그의 결혼 생활마저도 평탄하지 않다. 생텍쥐페리는 전남편의 상중이었던 콘수엘로와 결혼하고, 생텍쥐페리는 종종 그녀를 홀로 집에 둔 채 바람을 핀다. 나는 이런 생텍쥐페리를 보면서 요즘에 방영하고 있는 KBS2 드라마 <최고의 이혼> 속 바람피는 남자인 '이장현'이 떠오르기도 했다. 또 지고지순하기만 한 콘수엘로였다면 조금 억울(?)했을텐데, 콘수엘로 역시 자신만의 모임을 만들어 다른 사람들과 어울렸다. 둘은 따로 살면서 연인처럼 호텔에서 가끔 만나는 이상한 부부였지만, 서로 완전히 떨어지지는 않았다.



이런 부부 생활이 생텍쥐페리가 <어린 왕자> 책을 쓰는데도 영향이 미쳤을까? <어린 왕자> 속 어린 왕자와 장미의 관계를 떠올려보자. 어린 왕자와 장미는 서로의 진심을 알면서도 모른 척하며, 서로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안타까운 관계이다. 이런 둘의 관계를 보면 생텍쥐페리와 그의 아내인 콘수엘로의 관계와 참 닮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 사랑하면서 가끔은 상처를 주기도 하고, 그럼에도 서로를 떠날 수 없는.


어린 왕자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각기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또 사람들에 대해 사랑에 대해 친구에 대해 관계에 대해 그리고 바로 우리 자신에 대해 지금까지도 다양한 이야기를 수다스럽게 전하고 있습니다. -p137



<저마다의 별을 찾아서>에서 생텍쥐페리의 일생을 들여다보고, <어린 왕자>도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게 되면서 이런 생각을 해봤다. '<어린 왕자>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생텍쥐페리가 만난 사람들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걸까?'. <어린 왕자> 속 조종사의 모습은 실제로 생텍쥐페리의 일생 속 한 부분과 매우 닮아있고, 앞서 말했듯이 장미는 그의 아내 콘수엘로와 닮아있다. 또 생텍쥐페리의 일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두 명이 있는데, 그 중 한 명은 그의 친구 기요메로서, <어린 왕자> 속 사막 여우와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기요메는 생텍쥐페리가 첫 우편비행을 하기 전에 하나의 지도를 준다. 이 지도는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지도이다. 일반 지도가 그냥 지리적 특성만 표현해놨다면, 기요메가 준 지도는 그 지역의 특징들(서른 마리의 양떼들이 어디에 있는지, 양 치는 여인은 어디에 위치하는지 등)을 적어놓은 특별한 지도이다. 기요메는 생텍쥐페리에게 그냥 선물이 아니라 그만의 보물지도를 선물한 것이다. 나를 진심으로 생각하는 친구라니. 생텍쥐페리와 그의 친구 기요메의 관계는 진정한 친구가 있는 삶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었다.



생텍쥐페리는 '진정한 사치는 하나밖에 없으니 그것은 인간관계의 사치다'라고 말하며 많은 친구를 만드는 것의 중요함을 말했다. 하지만 나는 친구의 수는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린 왕자> 속 사막 여우가 '길들인다'는 건 '관계를 만든다'라고 말했는데, 길들일 수 없는 인간관계라면 그 수가 많아봤자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길들일 수 있는 적당한 인간관계만 있어도 행복한 삶으로 연결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와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삶을 살고 있는 타인이 있음을 아는 건 중요하지만, 그것이 나를 아프게 하거나 나의 삶을 비하하는 이유로 쓰인다면 눈과 귀를 닫는 편이 낫습니다. -p182



앞서 말한 생텍쥐페리의 일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인물은 레옹 베르트이다. 레옹 베르트는 생텍쥐페리와 스무살이 넘게 나이 차이가 나지만 오랜 시간 친구로 지냈다. 생텍쥐페리가 어린이들이 아닌 레옹 베르트에게 책을 헌사한 이유는 세 가지가 있다. 레옹 베르트는 생텍쥐페리가 '이 세상에서 사귄 가장 훌륭한 친구'이고, '어린이를 위한 책들까지도 모두 이해'하고, '위로 받아야 할 처지'에 있기 때문.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타이틀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이유도 '<어린 왕자>는 레옹 베르트에게 헌사한 책'이라는 점도 한몫을 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어린 왕자>를 아는 분들이라면 가을과 어울리는 책 <저마다의 별을 찾아서>도 꼭 한 번 읽어보셨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생텍쥐페리의 일생도 처음으로 알게 되고, 그로 인해 <어린 왕자>에 대한 이해도 좀 더 깊게 할 수 있었다. 인문학은 지루하고 재미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었는데, 친숙한 어린 왕자와 그의 작가 생텍쥐페리에 관한 인문학 에세이라 그런지 정말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가을 감성이 사라지기 전, <어린 왕자>를 제대로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