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실수집가
오야마 세이이치로 지음, 윤시안 옮김 / 리드비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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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
Simple is the best. 영리한 작가의 깔끔한 단편집이다.

13년전 책이라 그런지 작가가 의도한바인지 모르겠지만, 쓸데없이 복잡하고 화려한 장식과 스킬을 걷어내고 '밀실추리' 그 자체의 즐거움에 집중했다. 얼음위에 비싼 과일을 산처럼 얹어놓고 10만원에 파는 요즘 호텔빙수가 아니라 팥과 떡, 미숫가루만 툭 던져놓고 통조림 과일 몇개로 장식한 옛날식 팥빙수를 먹는 느낌이 들기도.

작품의 전개방식은 지극히 단순하다. 초창기 히가시노 게이고처럼 간단하고 이해하기 쉬운 상황설정을 통해 등장인물의 서사를 요약하고 밀실을 만든다. 경찰이든 누구든 등장해서 그 밀실의 완성도를 설명해주고 다같이 좌절에 빠진다. 점점 속이 더부룩해질거같은 독자가 고구마를 한입 먹기도 전에 '밀실수집가'가 불현듯 등장하여 단번에 사건을 해결하고 불현듯 사라진다.

이처럼 단순한 전개방식 사이사이에 숨어있는 작가의 영리함이 이 작품집의 '킥'이다. 잘못하면 기시 유스케의 '유리망치' 처럼 작가의 천재성과시나 개연성 떨어지는 물리트릭으로 독자를 머리아프게 하지 않고, 시대적 장소적 배경을 적절히 활용하여 독자의 심리적 허를 찌른다.

5개의 단편이 각각 1937년, 53년, 65년, 85년, 2001년을 배경으로 하는데, 현재 시대라면 코웃음칠법한 트릭과 사건의 진상이 스마트폰도, cctv도 심지어 tv도 없었던 당시 시대상과 맞물리니 그럴듯하게 맞아떨어진다. 즉, 밀릴추리소설 답지 않게 개연성과 핍진성이 상당히 확보되는 느낌이다.

물론 모든 작품이 다 완벽하진 않고 다소 억지스러운 부분이 없진 않다. 하지만 작가는 이 틈새를 인위적으로 채우려하기 보단 일종의 초월적 존재, 초인적 존재로서의 밀실수집가라는 슈퍼히어로를 통해 꽤나 부드럽고 상쾌하게 위화감을 메꾼다.

나중에 가면 트릭을 될대로되라 싶고 얼렁 밀실수집가가 등장하는 장면을 보고 싶기도 한데, 마치 만화영화에서 주인공의 기나긴 변신장면을 악당들이 방해하지 않고 기다려주듯 독자와 등장인물들이 다소 억지스러울수도 있는 밀실수집가의 단정적 추리를 박수치며 반겨주는 마법적 상황을 경험하게 된다.

김전일 보다는 코난 느낌으로, 치밀하고 칼같은 논리보다는 요소요소에 숨어있는 작가의 창의성과 재치, 작품간 연계성에 보다 방점을 두면 더 즐거운 독서가 될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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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팝니다
미시마 유키오 지음, 최혜수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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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서평단

실존주의로 난해하게 시작해서 엔터테인먼트 소설로 숨가쁘게 진행하다 교묘한 사회적 정치적 메세지로 끝나는 이야기. 반세기전에 쓰여졌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세련된 문체와 속도감 있는 이야기 전개를 보여준다.

에도가와 란포나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들을 읽을때면 좋게는 예스러운 시대감, 나쁘게는 고루함과 지루함이 느껴졌는데 이 작품은 그렇지 않았다.

마치 뽀로로가 한국적인 정서에 국한되지 않고 보편성을 바탕으로 전세계 아이들에게 다가가듯이, 이 작품 역시 전후 일본 사회 비판이라는 뚜렷한 목적을 가짐에도 시대적 공간적 배경에 제약받지 않고 인간 그 자체에 집중해서 이야기를 전개해나가기에 보편성을 획득한다. 덕분에 일본에서 2016년 역주행 베스트셀러가 될수 있었나 싶기도.

신문 글자들이 갑자기 바퀴벌레로 보여 자살을 결심한다는 초반부는 마치 변신, 죄와벌처럼 난해한 느낌도 살짝 든다.

하지만, 주인공이 목숨을 판매하게 되고 여성들의 도움과 본인의 기지를 통해 수많은 죽음의 위기를 벗어나게 되는 중후반부의 엔터테인먼트적 이야기전개는 작품해설의 비유처럼 007 제임스본드 같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007보단 로런스 블록의 '살인해드립니다'와 이사카 고타로의 '사신치바'가 생각났는데, 불가능해보이는 미션에서 거의 하드보일드적 쿨함을 바탕으로 살아남는 모습과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없는걸 넘어 거의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하는 태도가 치바처럼 코믹해보이기도 했다.

탐미주의, 유미주의 등의 말을 많이 들어서 작가의 작풍이 히라노 게이치로처럼 유장하고 현학적일까 걱정했는데, 유려함은 문장이 아닌 세련된 이야기 전개에서 느껴졌으며 문장 자체는 깔끔하고 차분하며 정제된 느낌이었다.

탐미주의라면 매 에피소드마다 반드시, 굳이 따라붙는 애정행각과 여성의 신체에 대한 동경이 가득한묘사 정도?였는데, 이 역시 필립 말로처럼 아몰라 난 그냥 인기있는 남자야가 아니라 결말부에서 그 이유를 나름 설명해준다.

온고지신이란 이런거구나 싶을 정도로 새로운 독서 경험이었다, 작가의 정치적 입장이 다소 아쉽긴하지만, 문학 그 자체로만 본다면 다른작품도 찾아봐야겠다 싶을 정도로 여러모로 천재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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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디바이디드 : 온전한 존재 언와인드 디스톨로지 4
닐 셔스터먼 지음, 강동혁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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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도서협찬
훌륭한 시리즈물에 걸맞는 완벽한 결말.개성 넘치는 주인공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그야말로 완벽한 결과물을 만들어내었다.

이런 시리즈물들은 끝으로 갈 수록 힘이 빠져 흐지부지되거나 그냥 다같이 좋기만 한 해피엔딩이나 개연성 없는 결말 등으로 마무리될 우려가 큰데 이 작품은 달랐다.

이는 작가의 절제의 미학 덕분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작가는 현명하게도 스케일과 세계관을 감당 못하게 키우지 않았으며, 조력자나 빌런의 수와 강력함을 적절히 조절하여 파워인플레 문제도 잡았다.

무엇보다 '어른들의 사회에 저항하는 미성년자들'이 가지는 한계를 명확히 인식함으로써, 시리즈 초중반부에 정립한 주인공들의 캐릭터와 정체성을 잃지 않은채 이들을 슈퍼히어로로 만들지 않고서도 영웅신화를 창조해냈다.

이런 잘짜인 결말덕에 개인적으로는 1~4권중 4권이 제일 좋았는데, 마치 네권이 한권인 양 앞에 나온 주변인물과 복선들을 하나하나 주워담아서 마치 일본 미스터리같은 의외성 넘치지만 개연성도 충만한 스토리라인을 완성했다.

과거 헝거게임과 메이즈러너의 향수를 불러일으킨 작품이자, 영어덜트물의 편견을 깨준 작품이었다. 열린책들 답게 책이 좀 작고 여백 등 편집이 다소 빡빡한 느낌은 있지만 표지 디자인, 특히 색감이 원체 예뻐 네권을 꽂아놓으니 볼때마다 뿌듯한 느낌도 든다.

민감한 사회적 이슈와 인간과 생명에 대한 철학적 고민, 엔터테인먼트 소설적 재미와 결말의 감동까지 두루두루 잡아낸 흔치 않은 명작 시리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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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솔드 : 흩어진 조각들 언와인드 디스톨로지 3
닐 셔스터먼 지음, 강동혁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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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서평단
세계관을 정립하는 1권에 이어 중심인물들의 캐릭터 보다 구체화된 2권을 넘어 시리즈의 중추라 할 수 있는 3권 언솔드는 완벽하진 않아도 충실히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 작품은 전통적인 영웅 서사시나 히어로물의 공식처럼 영웅의 등장과 몰락-외부의 도움과 영웅의 귀환-복수의 완성 또는 새로운 질서(평화)의 수립으로 나아가는듯 하다.

1권과 2권에서 마치 용랑전의 두 주인공 시로와 수미처럼 평범한 소년소녀가 뜬금없이 영웅시되었다가 몰락했다면, 3권은 외부의 조력에 의해 두 영웅이 다시 만나 체제의 전복을 꾀하는 희망의 빛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때문에 3권에서는 이 두 젊은 영웅들이 레브 등 가까운 친구는 물론 새로 등장한 의외의 사이다 캐릭터 그레이스의 도움을 받아 그야말로 끝없이 이어지는 고난을 헤쳐나간다.

또한, 이 책에서는 언와인드 vs 반항군 코너와 친구들이라는 다소 평면적인 갈등구조에 브릿지를 넣는 역할로 스타키라는 안티 히어로와 리와인드(언와인드 부위를 합친!!)된 카뮈 콩프리를 등장시키는데, 이 시도는 매우 성공적인듯 하다.

마치 데스노트 2부의 니아와 멜로처럼, 언와인드 아이들을 해방하려는 목적은 같지만 성향이 극과 극인 코너와 스타키의 서사가 선명하게 대립되어 극의 재미를 배가하며, 리사를 둘러싼 코너와 카뮈 콩프리의 소소한 긴장감 역시 영어덜트물 특유의 재미를 준다.

어른들의 위선과 탐욕으로 물든 잔인하고 비정한 언와인드의 세계관을 깨부수는 소년들의 모험이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 디스톨로지의 마지막권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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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홀리 : 무단이탈자의 묘지 언와인드 디스톨로지 2
닐 셔스터먼 지음, 강동혁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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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와인드 디스톨로지 2권인 언홀리는 메이즈 러너나 헝거게임과 같은 할리우드 영어덜트 시리즈물의 (장점위주의) 정석을 따르는 느낌이다.

책 말미에 실린 작가의 말을 보면 '언와인드'가 디스톨로지 시리즈가 될 걸 꿈에도 몰랐다며 이야기의 방향을 새롭게 정립했다고 한다. 어쩐지 1권이 시리즈 빌드업보단 자체 완결성을 가졌단 생각이 들었는데 작가의 말을 보니 그래서 그런가 싶기도 한데, 2권은 디스톨로지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느낌이다.

즉, 1권이 액션 모험 서스펜스보단 '언와인드'라는 개념의 철학적, 윤리적 문제를 다루면서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찰했다면 2권은 1권의 탄탄한 세계관적 기반을 바탕으로 본격적으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먼저 세계관이 확대되고 배후의 거대세력들이 드러나면서 이야기의 스케일이 커진다. 또한, 주인공들이 내적으로 단단해지면서 개성이 확립되며, 1편에서 영웅화된 등장인물들을 끌어내리려는 빌런이 등장하면서 갈등 구조가 명확해진다.

특히, 클라이막스 부분의 대규모 공습사건은 그야말로 영화를 보는듯 생생히 묘사되어 있다. 인물별로 한페이지 두페이지씩 끊어나가며 숨가쁘게 서술하는데 영화의 빠른 장면전환을 글로는 이렇게 그려낼 수 있구나 싶어 신기했다.

본편보다 나은 속편이 없다지만 개인적으로는 '재미'에 보다 초점을 맞춘 아우가 형보다 나았다. 1권의 발암캐들을 진화시킴으로써 2권의 마무리를 생각보다 chill하게 했기에 위기에 빠진 주인공들의 반격이 시작되는 3권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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