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용골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최고은 옮김 / 엘릭시르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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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금기'라는 요네자와 호노부의 양대 장기가 오롯이 발휘된, 캐드펠 수사시리즈처럼 시리즈로 나와주길 바랬으나 안타깝게도 한권으로 마무리 된 걸작 중세판타지 미스터리.

'흑뢰성'에서 보듯 작가의 역사를 기반으로 한 이야기 솜씨는 이미 정평이 나 있다. 치밀한 자료조사는 물론 특유의 건조하고 차가운듯 하면서도 왠지 궁금증이 들게만드는, 몰입감넘치는 문체를 통해 단순 역사소설이 아닌 '역사 미스터리'에 최적화된 글을 써낸다.

이 작품에서도 작가는12세기 중세의 분위기, 아니 생활상을 눈에 보이듯 그려낸다. 개인적으로는 작품을 읽으며 '왕좌의 게임'이나 '하우스 오브 드래곤'느낌의 판타지 세계가 머릿속에서 시각화되는 느낌이 들었다.

판타지 소설에서 중시되는 견고한 세계관 구축을 기반으로 작가는 이후 본격 미스터리에서 중시하는 견고한 논리구축에 들어간다.

마치 '장미의 이름'에서 현학적인 수사와 인용을 걷어내고 판타지적 상상력을 더한듯, 마법과 저주라는 특수설정하에 본격 미스터리적 복선을 차근차근 던지고 성기사 팔크라는 탐정을 통해 차분히 사건을 해결한 후 아는사람은 아는! 이 작품만의 가슴아프고 충격적인 결말까지 독자를 인도한다.

개인적으로는 작가의 특장점은 '야경', '추상오단장', '덧없는 양들의 축연' 등에서 보이는 금기사항을 다루는 솜씨, 금기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최신작 'I의 비극'도 일정부분은 비슷한 결일 수도 있는데, 일본사회든 인간사회든 당연시 되거나 금기시되는 것들을 비틀고 부숴서 독자들을 (기분나쁘지 않게!) 놀래키는데 탁월한 재주가 있다.

스포이기 때문에 언급할 수는 없지만, 이 작품 역시 2010년 작품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시대를 앞서 나간 특수설정은 물론, 특정 요소에 대한 미스터리 독자의 맹목적인 신뢰를 깨부숨으로써 위대한 결말을 창조해냈다.

구판에 비해 이번 개정판은 디자인과 그립감 모두 진일보한 느낌이다. 부디 엘릭시르에서 디자인과 판형이 제각각이던 작가의 과거작들을 이런 판형으로 계속 내줬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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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 돌아오다
사쿠라다 도모야 지음, 구수영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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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미스터리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해주는듯한 창의적인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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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버 라이
프리다 맥파든 지음, 이민희 옮김 / 밝은세상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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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메스틱 스릴러+클로즈드 서클+심리스릴러로 시작하는듯 하다 오리하라이치+정유정으로 마무리되는, 현 시점 최고의 아니 자칫하면 GOAT를 노릴만한 역대급 스릴러.

작가의 전작 하우스메이드와 핸디맨도 충격적으로 재밌었는데 이 작품에 비하면 그 책들은 습작수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존 에디터가 뽑은 2022년 최고의 스릴러라는데 2000년대 최고의 스릴러일지도 모른다.

많은 인친님들 뿐만 아니라 출판사에서도 이 책을 책태기를 자신있게 깨부수는 책으로 추천했는데, 개인적으로 이 책에 찬사를 보내는 이유는 비단 스릴러의 정점을 보여주는 미친 가독성과 긴장감, 결말의 카타르시스때문만은 아니다.

개인적 느낌으로 스릴러와 미스터리의 가장 큰 차이는 개연성 또는 핍진성 여부에 있다. 상황설정부터 문제해결에 이르는 단계단계마다 개연성과 논리성을 따지는 미스터리에 비해, 스릴러는 때로는 개연성을 무시하면서까지 글의 호흡과 독자의 아드레날린 분비를 우선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핸디맨과 하우스메이드에서도 심박수는 미친듯이 뛰었지만 머리 한편에선 차가운 아쉬움도 느껴졌기에, 이 작품 초반의 설정- 서로를 잘 모르고 급히 결혼한 신혼부부가 실종된 여자의 저택을 보러왔다가 눈보라에 갖히고 의문의 사건들을 계속 맞닥뜨리게 된- 은 다소 인위적, 작위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진행과정이 나름 재밌기에 괜찮은 스릴러다 싶었는데, 중반이후 전개가 범상치 않다 싶더니 기어코 일을 내고 만다.

작품의 결말은 우리가 익히 예상하는 작가의 전작 스타일인 헐리우드 영화식의 속시원하지만 다소 황급한 마무리가 아닌 도치서술, 반전, 복선과 떡밥회수, 믿을수 없는 화자등의 스킬이 난무하는 일본 미스터리식의 세련된 마무리를 보여준다. 아니 그 정도로는 만족을 못하는지 정유정의 '악의 3부작' 느낌의 서늘하고 찜찜한 느낌까지 더하여 독자의 손발이 아닌 심장을 오그라들게 만든다.

물론 이러한 다소 복잡한 구성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독자도 있겠지만, 복잡한 구성을 가짐에도 별다른 머리아픔 없이 책장이 날아갈듯 넘어간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겠다.

장르소설 독자의 책태기 극복을 넘어 독서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까지 독자로 끌어들일수 있을 만한 놀라운 책이다. 단언컨대 현 시점 넷플릭스에도 이 책보다 재밌는 컨텐츠는 없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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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 돌아오다
사쿠라다 도모야 지음, 구수영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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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밥장인이 섬세하게 만든 스시 오마카세를 먹은 느낌.

단순히 식초에 양념된 밥에 대충썬 생선회를 달랑 올린 초밥한피스가 아니라 '미스터 초밥왕'에서 보듯이 쌀과 물의 산지, 철에 맞는 생선과 조업시기, 가장 맛있는 부위 선정과 칼질의 각도까지 모든걸 세심하게 고민한 예술작품 한점이다.

너무도 섬세하기에 이것저것 신경 썼구나, 이런저런 영향을 받았구나 정도 짐작만 했는데 작품 말미에 나온 작가의 말과 무려 노리즈키 린타로가 쓴 친절한 해설을 보니 개인적인 감상에 대한 확인과 확장이 이루어지며 전율이 느껴졌다. 역시 알고먹어야 더 맛있다.

작가의 말과 해설에 너무도 자세히 작품의 가치가 설명되어 있긴한데, 개인적으로 느낀 이 작품의 대표적 특징은 5개 단편의 완벽한 내적 완결성, 작품간 느슨한 연결성, 단편 배치 순서의 예술성이다

먼저 엄청 흡인력있거나 박진감 넘친다고는 못하겠지만 깔끔하고 아름다운 문체와 안정된 필력을 기반으로 곤충이라는 특이한 소재의 신선함을 더하고 꽉짜인 구조로 단편의 기승전결을 완성했다. 각 단편이 그 자체로 기승전결을 가지면서 크게 흠잡을 데 없이 전개된다.

미스터리적으로도 깔끔하고 적당한 충격적 반전이 있긴한데, 첫 두편을 읽고 살짝 실망하기도하고 심심하기도 했다. 특히 두번째 단편 '염낭거미'는 좀 으잉? 스러웠는데 뒤의 해설을 보니 작가의 전작과 대응하기 위한, 뒤의 마법같은 세편을 위한 일종의 가교 역할을 한다고 되어있어 사후 이해했다.

첫 두편에서 탐정으로서의 정체성 부족을 넘어 캐릭터적 불명확성까지 보여 불만이었던 주인공 '에리사와 센'의 서사는 세번째 단편부터 과거와 현재를 드나들며 소개되는데, 이때부터 주인공의 인물상이 구체화되면서 그간의 모호함을 내던져버리고 가슴을 저리게 하는 마법같은 마지막 단편까지 힘있게 독자를 이끈다.

작가는 이를 의도적으로 '과도한 캐릭터화를 피하기 위해 그라데이션이 느껴지게끔 주인공의 내면을 변화시키는' 기법이라고 소개했는데,

일본 추리작가 협회 심사평에서도 '연작단편집의 배열이 뛰어나다. 특히, 후반부 세 편에서 탐정 역할인 에리사와 센의 삶이 점차부각되며, 마지막 이야기의 결말이 첫번째 단편과 호응하는 구성이 인상적'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으로는 작품의 몽환적이면서도 다소 쓸쓸한 분위기가 요네자와 호노부의 '안녕 요정' '왕과서커스' 및 '추상오단장' 등과 유사하다고 생각했는데, 작가의 말에서 요네자와 작가에게 영향받았다고 쓴 걸보니 완전 틀린 추측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초반부에는 '붉은 박물관' 정도 느낌으로 적당히 재밌지만 다소 심심했으나, 자신의 몸을 새끼들에게 먹이로 내주고 죽는다고 소개된 '염낭거미' 처럼 첫 두편을 마지막 세편의 자양분으로 삼아 이야기타래를 새로운 차원으로 인도한 작가의 배려와 역량이 느껴진 걸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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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롱뇽의 49재 - 2024 제171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아사히나 아키 지음, 최고은 옮김 / 시공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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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결합 쌍생아에 파격적 상상력이란 광고문구, 아쿠타가와상이란 후광까지 더해져 왠지 sf적 설정의 천재적인 미스터리나 히가시노 게이고의 '비밀' 느낌을 잔뜩 기대했는데.. 대신 간만에 순문학의 향취를 제대로 느꼈다.

이 작품은 무인도의 심산유곡에서 길어올린 청정수를 백만번 정제한듯한 순수 그 자체인 작품이다. 장르적 불순물?을 걷어내고 단 한방울의 문학적 정수만을 남겨놓은듯 하다.

이 책에서는 사실상 '사건'자체가 없다시피 한다. 할아버지의 죽음이란 '계기'가 있긴한데, 이는 회사에 출근하고 친구를 만나는 사소한 이벤트들과 크게 위상이 다르지 않다. 작품은 한몸을 공유하는 '안'과 '슌'이 이런 이벤트들을 통해 받게되는 자극으로 인한 존재론적 고민으로 가득 채워져있다.

먹고 마시고 배설하고 걷고 자고하는 그 모든 일상생활에서 그들은 남과 다름을 느끼고, 그 다름 속에서 자신 혹은 자신들을 어떻게 인간사회속에 자리매김할지 고민한다.

그렇기에 180여페이지의 짧은 분량에서 장르문학적 전진은 거의 없고 순문학적 침잠이 끝없이 이루어진다.이런 작품을 기획하고 써낸 작가의 천재성과 문장력엔 감탄을 금치못하지만 보다 화끈한 이벤트를 원하는 독자로서는 다소 아쉬운 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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