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루시의 우리 무당 이야기
황루시 / 풀빛 / 2000년 9월
평점 :
품절


박기복의 <영매>를 보았다.

먼젓번에 티브이 채널을 마구 돌리다가 EBS에서 나온 무슨 영상관련 프로에서 박기복 감독이 <영매>와 관련해서 간략하게 인터뷰한 내용을 보았다.
사실 영매와 관련되었다기보다는 그의 '일'과 관련된 것이었다.
돈 문제 때문에 이 영매를 찍기가 사실 엄청 곤란을 겪었고 어쨌튼 작품을 마무리했고 자기는 일하는 동안 하고 싶은 일을 했기 때문에 내내 고통스러우면서도 즐거웠노라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인터뷰였다. 그의 와이프가 제작자를 겸하고 있는 듯했는데 와이프도 무슨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사람인 모양이었다. 그래도 좋다고 했다.
하고 싶은 일하면서 살 수 있다는 게 좋다고 했다. 그렇게 해주고 싶다고도 했다.

참 속편한 부부다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사는 게 정답일 수도 있지 않는가 싶었다.

영화관에서 보지 못하고 비디오를 빌려다 본 것이라 차이는 났겠지만 비디오 제작사의 횡포에는 이를 갈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 하면 아무래도 무당을 다루는 것이다 보니 남도지방 사람들의 인터뷰를 자주 딸 수밖에 없었을 것인데 그래서 나 같이 토종 사투리를 제대로 알아먹지 못하는 시청자를 위해서라면 응당 자막을 크게 해주었어야 했을 것인데 이것이 극장에서 그대로 비디오를 찍은 것처럼 중국 vcd의 그 화질을 연상케 하는 그 모냥으로.

우와. 정말 시간도 140분짜리인데 죽는 줄 알았다. 비디오 제작사는 응당 반성해야 할 줄로 안다. 물론 상업성이 떨어지는 작품에 자막까지 새로 입히는 투자도 아까웠을지 모른다.
그냥 그런 작품을 집에서 안 좋은 화질이나마 볼 수 있도록 해준 것에 감사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하고 나면 무엇이 남겠는가.
정말 배려가 없다.

영화 내용은 제대로 기억나지도 안 하고 다만 한곁에 묵혀두던 황루시의 <우리 무당 이야기>가 드디어 내 관심권으로 들어왔다. 이제 읽기 시작했는데 느낌은 좋다. 25년간 묵은 경험을 책으로 옮겨낸 것이니 수준도 보통 이상일 것이다.

자, 이제 <우리 무당 이야기>를 다 읽었으니 간략하게 느낌을 적어보겠다.
이 책은 일차적으로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무당에 관한 딱딱한 보고의 형식을 띠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무슨 무당 교과서 같지도 않다. 예전에 나왔던 인문서 쉽게 풀어쓰기 시리즈 이를테면 녹두에서 나온 한국사, 동양철학, 여성, 과학 이야기 주머니 시리즈처럼 무당 이야기 주머니 개념 정도로 보면 딱 적당하겠다.

그 옛날 신과 인간 사이를 매개하던 영매였던 무당이 요즘에 와선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아직도 근근히 이어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죄다 할머니, 할아버지이고 대가 끊기는 경우가 많단다. 예전에는 매체에서라도 조금씩 나왔었는데 요즘엔 그나마도 보기 어렵다. 그러니 아무리 무형문화재로 보존하고 있다고 해도 멀지 않아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전체적으로 사람 이야기로 글을 풀어내고 있어서 전혀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다. 중간중간 무속용어들이 많이 나오는데 좀더 친절한 설명을 곁들였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은 남는다.

우리나라는 크게 강신무와 세습무가 있는데 한강 이남에는 세습무가 많고 한강 이북에는 강신무가 많다고 했다. 음 그러고 보니 진도에서 굿을 한다던 그 사람들은 세습무였던 것 같다. 제주도는 육지하고는 또 무당 풍속이 다르다고도 했다. 무당이 빠르게 늘었던 것이 한국전쟁을 겪고 나서이고 다시 급격하게 사라진 것이 박정희가 새마을 운동 같은 뻘짓을 하면서라고 했다. 무당이란 존재가 사람의 곤고함을 바탕으로 해서 승할 수밖에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얻어던 가장 훌륭한 성과는 무당에 대한 시각교정이다. 그들도 나와 다르지 않은 사람이고 무당은 직업의 한 종류라는 것.

앞에서 내가 머지않아 사라질 것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긴 했지만 사람들의 곤고함이 사라지지 않는 한 무당도 굿도 어디선가 판을 벌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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