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우리의 "세계 내 존재"에서, 사르트르가 표현했듯, "무시당하는 것" "침묵 아래 간과되는 것"일 뿐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두고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다.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몸은 나의 자아를 이루는 일부이면서도 저 밖 어딘가에 있다. 세계라는 공간의 그 어딘가에 있으면서 자아의 투사를 이루기 위해 "부정되는 것"이 우리의 몸이다. 우리는 우리의 몸으로 있으면서, 몸을 가지고 있지 않다. 몸은 내가 앞서 설명했듯, 다른 것, 외부세계에 속하는 게 확실하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낯설기만 한 몸을다른 사람의 눈으로 볼 때에야 비로소 의식한다(이를테면 과학 공부를 통해 몸의 기능을 알게 되면서 말이다). 혹은 몸이 우리에게 부담이 될 때 비로소 그 존재를 깨닫는다. 왜 흔히 고통 때문에 "껍데기서 빠져나오고 싶다"는 말을 쓰지 않던가. 건강할 때는 의식하지 않던 몸이 조금만 아프면 거추장스럽고 빠져나가고 싶기만 한 것이다. 그만큼 몸은 적대적인 것인 동시에 내 것이다. 벗어던지고만 싶은 껍데기는 여전히 우리의 일부, 즉 나라는 ‘자아‘를 이루는 한 부분이다. 몸으로 세상을 겪는 동안만큼은 몸은 "무시당하는 것"이다. 하늘을 향해 높이 뛰어오를 때, 몸은 공기이자 날아오름이다. 스키를 타고 신나게 활강할 때면, 몸은 휘날리는 눈보라이며 얼음처럼 차가운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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