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에셰크‘의 위협을 가장 분명하게 느끼는 쪽은 내가 ‘수험생 상황‘이라고 부르는 경우에 해당하는 사람이리라. 구두 시험을 눈앞에 두고 있는 사람, 수험생 쪽에서는 피할 길이 없으며, 시험관은 자비라고는 모른다. 어디 한 번 번역을 해보시오! 횔덜린의 이 시 구절을 해석해보시오. 방정식을 풀어보시오. 할 수 있다면, 하면 그만이다. 할 수 없는 사람은 떨어진다. 끝 모를 바닥으로 곤두박질친다. 시험을 끝내고 홀가분하게 웃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일그러진 미소를 짓는 사람도 있다. 수험생은 입을 쩍 벌린 심연 위에서 간신히 밧줄에 매달린 채 떨고있을 따름이다. 밧줄이 언제 끊어질지 몰라 조마조마하기만 하다.
떨어진 수험생은 자신 앞에 다가오는 게 무엇인지 팔짱 끼고 구경해야만 한다. 부모도 친구도 다 소용없다. 물론 이들은 이해한다고 말한다. 다 알고 있노라고 다독이려 한다. 안다고? 무엇을? 지독한 쓰라림 속에서 ‘에셰크‘를 삭혀야 하는 사람은 당사자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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