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푸른빛이 내리는 시간
브루나 단타스 로바토 지음, 김보람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7월
평점 :

뭐 이런 소설이 다 있나요? [광고]
#푸르빛이내리는시간
#브루나단타스로바토 소설 / 김보람 옮김
#다산북스
유난히 독립적이었던 언니와 달리 나는 엄마에게 꽤 오래 질척댔다. 아빠, 엄마가 저녁에 모임이 있어 나가면 울면서 차 꽁무니를 쫓아갔던 기억이 날 정도로. 그래서인지 엄마와 소소한 추억이 많다. 늘 농사일로 바쁘셔서 거창한 여행 추억 따위는 없지만, 아직도 잊히지 않고 문득문득 떠오르는 뭉게구름 같은 장면들.
비가 와서 엄마가 밭일을 나가지 않으시는 날이면 한껏 들떴던 나. 엄마가 이불 홑청을 시침질로 고정하는 동안 나는 폭신하고 뽀송한 이불 가운데 누워 재잘거리곤 했다. 엄마 따라 시장에 가는 날에는 빵집 앞에서 망부석이 되기도 했다. 연한 분홍색 버터크림으로 꾸며진 예쁜 조각 케이크가 그렇게 먹고 싶을 수가 없었다. 겨울엔 검정 봉다리에 귤 한 바구니 담아 달랑달랑 들고 엄마 뒤를 쫄랑쫄랑 따랐다. 더 크기 전에 많이 업어 주고 싶다며 고단한 퇴근길에 꼭 나를 업어주던 엄마.
그랬던 엄마가 이제는 자꾸 작아지고 있다. 마음도 얇아지는지 더 여려졌고, 다리도 팔도 얇아지고, 음식도 7살 꼬마처럼 적게 드신다. 350km 멀리 떨어져 살다 보니 일 년에 엄마를 보는 일이 손에 꼽는다. 세상에서 서로 볼 수 있는 날이 몇 번이나 남았을까 생각하면 슬픔이 소름이 되어 돋아난다. 매일 전화하고 매달 만나러 가야겠다 싶지만, 이제 온전히 독립된 가정을 이룬 딸에게 그건 미션 임파서블이다.
뭐 이런 소설이 다 있냐고 말한 이유에 대해 말하려던 게 너무 길어졌다. 이 소설은 브라질에서 우울과 불면에 시달리는 엄마와 단둘이 살던 딸이, 자신의 꿈을 위해 미국으로 대학에 진학하면서 이별의 아픔과 그리움을 나누는 애틋한 소통을 담고 있다. 단순한 스토리로 밋밋할 것 같은 이 소설은 소리없이 강하게 독자를 빨아들인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듯, 나도 모르게 빠져들게 되는 묘한 매력의 소설이다.
혼자 남은 엄마가 아프지 않을까, 외로워서 마음이 아프지 않을까 딸은 노심초사한다. 엄마는 딸이 외롭지 않은지, 나쁜 사고를 당하지 않을지 걱정스러운 마음에 늘 노트북 앞에서 딸의 영상 통화를 기다린다. 언젠가 방학이 되면 엄마를 보러 가려고 아르바이트로 비행기 티켓값을 모으지만, 모녀가 상봉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경제적으로 풍족한 집안이라 보고 싶으면 언제든 6,500km를 날아가 볼 수 있는 형편이었다면 둘은 이토록 애틋했을까?
딸은 자신의 미래를 위해 엄마를 혼자 두고, 혼자 좋은 환경에서 편안하게 생활하는 것이 미안하다. 엄마는 딸을 응원하지만 이미 남편에게 버림받은 상처를 안고 딸마저 떠나보내는 일이 버거워 보인다. 처음에는 둘의 관계가 건강하지 않게 보일 정도로 딸이 느끼는 죄책감과 책무감이 커 보였고, 엄마가 딸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지 못해 불안정하게 느껴졌다.
조금씩 자신들의 자리를 찾아가고 천천히 독립된 한 사람의 인간으로 건강하게 분리되는 모습이 보이고서야 나는 불편감을 떨칠 수 있었다. 소설의 처음에 두 모녀는 그 과정의 시작에 있었던 거다. 그 과정에서 딸과 엄마의 감정 묘사, 그리고 그리움과 슬픔을 유쾌한 유머로 승화시키는 문장들이 좋다. 아마 작가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했기에 더 구체적이고 진한 감동을 자아내는 것이리라.
책을 밤 12시에 덮는 바람에 나는 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할 수 없었지만, 젊은 날의 내게 가장 든든한 존재였던 엄마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고마운 책이다.
가족에게 늘 마음뿐, 표현하지 못하는 분,
“어머니는 차에 싣고 다니던 빨간 구급상자에 진통제와 반창고를 넣어 챙겨주셨고, 나는 그걸 백팩에 쑤셔 넣으며 세상이 아무리 날 아프게 해도 용감하게 맞서겠다고 다짐했다.” _p17
“엄마 상태가 성치 않다는 걸 알면서도 엄마가 나더러 다 해결해 달라고 말해주기를 바랐다. 나 대신 결정을 내려주면 좋겠다는 마음이, 나더러 학교를 그만두고, 새 친구들과 미국을 떠나 집으로 돌아와 자기를 돌봐달라고 말해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 엄마를 혼자 두고 떠나온 일에 더는 죄책감을 안 느껴도 될 테니까.” _p81
“엄마의 외로움이 내 외로움을 상쇄했다. 누가 누구의 빈 공간을 채워주는 것인지, 누가 누구의 곁에 있어 주는 것인지 말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대화거리가 다 떨어진 뒤에도 누구 하나 전화 끊을 용기를 내지 못했다.” _p114
“오랜 시간 눈길을 걸었더니 피곤했다. 그러나 내가 엄마를 얼마나 생각하는지 엄마에게 표현해야 한다.” _p119
#이키다서평단 @ekida_library #다산북스 @dasanbooks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