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검은 점 ㅣ 모노스토리 6
이은지 지음 / 이스트엔드 / 2026년 3월
평점 :

❝검은 점❞
검은색 표지에 제목도 <검은 점>. 밝은 이야기는 아닐 거라 예상은 했지만, 역시 어둡다.
“기태는 담배를 몇 모금 깊게 빨아당긴 다음 뭉쳐진 연기를 과시하듯 내뱉는 습관이 있었다.”
이 책의 첫 문장이다. 첫 문장에서 이미 나는 ‘기태’란 놈이 싫었다. ‘담배를 피울 때만 비로소 진정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허접쓰레기 같은 이유로 비흡연자 여자친구를 꼭 곁에 세워두고 담배를 피우는 놈. 그런 그를 어떻게든 포장해서 이해하려는 여자친구 무영.
무영은 회사를 “모든 면에서 남녀 구분이 명확한 회사”라고 표현했지만, 사실은 “모든 면에서 남녀 차별이 확실한 회사”가 맞을 것이다. 기업 문화가 후지기로 악명 높은, ‘여자는 커피나 타는 존재’라는 인식이 팽배한 회사에서 지시가 아닌 도움을 청한 첫 남자 직원 기태에게 무영은 마음을 연다. 그리고 아리송한 이유를 단 기태의 요구로 둘은 ‘비밀 연애’를 시작한다. 🤐
연극·영화학 전공의 무경력 대졸자 화영은 이런 회사에서 보기 드문 인사였고, 수려한 외모 때문에 회장의 세컨드라는 소문도 돌았다. 그런 화영에게 끊임없이 치근덕거리는 강 팀장의 추태는 비현실적일 정도로 과감하다. 강 팀장은 이미 치근덕거림으로 여직원을 퇴사시킨 전력도 있는 인간이다. 화영은 그런 그에게 강경하게 대응하는 당찬 인물이다.
“어둠 속 그림자처럼 희미한 나 같은 사람과 한낮의 햇살처럼 화사하고 생기 넘치는 화영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었다. 나는 결코 넘지 못할 높고 반짝이는 우월함의 벽. 벽 너머의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자신의 위치를 알고 영리하게 이용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_p29
화영은 먼저 무영에게 다정하게 다가왔다. 무영은 화영이 단순히 회사생활에 적응하는 데 필요한 소모품으로 자신을 이용하기 위해 다정하게 군다 여겼다. 뜻밖에 화영의 다정함은 계속되었고, 무영도 단짝이 생긴 것 같아 내심 기뻐한다.
어느 날 회사 리뷰 앱 ‘비하인드’에 올라온 바닥에 누운 나체의 여성 사진. 누구 닮지 않았느냐는 제목. 그 사진은 지난여름 기태와 보았던 연극의 정사 장면을 도촬한 것으로 보였다. 그때 그 배우는 무대 인사에서 고개도 들지 못하고 꽉 맞잡은 양손을 쥐어뜯고 있었고, 무영은 그 노출 장면이 꼭 필요했을지에 대해 의문을 품었던 적이 있었다. 📱
사진 속 여성의 손등에 얼룩 같은 점이 보였고, 화영의 손등에도 커피색 반점이 있는 걸 무영은 보게 된다. 화영이라는 증거는 없지만, 얼마든지 엮을 수 있을 연결고리...
(스토리는 스포가 될 수 있어 여기까지만)
무영에게도 점이 있다. 허벅지에 검은 점. 사실은 흉터라고 해야 옳다. 이 검은 점, 흉터가 생기게 된 과거의 이야기에서 나는 소름이 끼치도록 화가 났다. 무영이 초등학교 6학년 때 당한 일은 명백한 폭력이었음에도 단 한 사람도 무영을 돕거나 무영의 상처를 치료해 주지 않았다. 엄마조차도.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단 한 사람의 딱 한 마디만 있었더라면 무영은 화영처럼 당차고 밝은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기태도, 강 팀장도, 그 무지하고 악랄한 남학생들도, 비하인드 게시물에 근거 없는 댓글을 다는 무책임한 직원들도, 뜬소문만으로 낙인찍는 사람들까지. 어쩌면 무영의 주변에는 하나같이 무지하고 무책임하고 무심하고 비정상적인 인물들만 들끓는 건지. 그 속에서 건강한 자존감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유일하게 단단하고 좋은 사람이었던 화영을 지키지 못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누구에게나 있는, 그냥 흔한 점이야.”
그저 누구에게나 있는 흔한 점을 누군가 ‘수치스러운 것’이라 수식하고 낙인찍는 순간, 그 점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거대한 검은 점이 되어버린다.
우리는 너무 쉽게 보고 듣고 믿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사실이 무엇인지, 진실이 무엇인지, 그 거짓 뒤에서 조금씩 소멸해가는 피해자가 있는지 없는지 생각하지 않고, 무책임하게...
그리고 그 무책임함은, 상처받은 사람도 예외가 아니라는 걸 이 소설은 아프게 보여준다.
모노스토리 006 번째 이야기
#검은점 #이은지 #이스트엔드
#주간심송 에서 함께 읽어요.
책리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