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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 이 세계가 사라지기 전에 - 독립운동 초단편 앤솔러지 ㅣ 마름모 청소년 문학
김동식 외 지음 / 마름모 / 2026년 3월
평점 :
Q. 다음 중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①재산 ②가족 ③목숨 ④조국
『1945 : 이 세계가 사라지기 전에』 (17인의 작가 독립운동 초단편 앤솔러지, 마름모)
우리 청소년들은 저 질문에 몇 번을 가장 많이 고를까. 문득 설문 조사를 해보고 싶어진다. 질문을 조금 바꿔보자. 내 자녀가 몇 번을 고르는 사람이길 바라는가? 부모로서는 어떻게든 자녀가 건강하게 살아있길 바라니 3번이 가장 많을 것 같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 역시 아이에게 조국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던지라고 말할 자신은 없다.
그런데 만약, 위기의 상황에 누군가의 희생이 불가피할 때, 모두가 제 가족과 제 목숨만 챙긴다면 나라는 어떻게 될까? 일제강점기, 모두가 일제에 순응하며 우리말도 글도 버리고 땅과 재산을 순순히 내어주며 굴복했다면, 결국 아무도 '우리'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는 어떤 세상에 살고 있을지 아찔하다.
이 책은 그 아찔한 경계에서 4번(조국)을 선택했던 실존 인물들의 삶을 17인의 작가가 소설로 되살려낸 기록이다. 서문의 문장은 우리와 우리 아이들이 왜 이 책을 읽어야 하는지 선명하게 깨우쳐준다.
“역사는 사실(fact)이어서 우리 가슴속에 잘 와닿지 않습니다. … 느껴지지 않는 역사는 그냥 사실일 뿐이지만, 감정이입을 통해 자신과 하나가 된 역사는 비로소 ‘살아 있는’ 역사가 됩니다.” _들어가며 중에서
<흰옷> 독립운동의 정신적 지도자, 김구 (김동식)
‘김구 선생’ 하면 흰옷을 입고 찍은 사진이 떠오른다. 실제로 백의민족을 상징하듯 한복을 즐겨 입으셨던 그의 모습에서, 김동식 작가는 우리 민족의 얼과 정체성을 담은 ‘흰옷’과 조국에 대한 충성심을 기발한 설정으로 엮어냈다. 역시나 감탄하게 된다. 마치 정말 그런 일이 있었던 것처럼 생생하다. 마지막 순간까지 역사적 소명을 다하고 담담히 죽음을 맞이한 김구 선생에 대한 존경심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먹墨> 893명의 수감자를 남긴 3·1운동 (소향)
김동식 작가의 단편 뒤에 실린 소향 작가의 ‘먹’은 완전히 상반된 분위기라 읽다가 묘한 기분에 젖는다. 한 가족이 오랜만에 나선 북악산 소풍 풍경은 서정미가 가득하다. 나도 덩달아 신이 날 만큼. 꼬들한 흰밥으로 뭉친 주먹밥, 묵은지와 계란찜, 고소한 강정과 잘 익은 막걸리 한 병. 이 평화로운 장면에 어떤 비극이 닥칠 거라 예상할 수 있을까? 훅 들이닥치는 먹색 화면이 주는 대조가 더욱 가슴 쓰리게 만든다.
“천천히 입을 벌렸다. … 바짝 마른 혀 위에서 살진 구더기가 꿈틀거렸다. 토도독···.” (p.37)
<귀곡> 비밀조직 대한광복회 총사령, 박상진 (차무진)
“무어? 내일 집행한다고?” 벽을 어루만지며 그는 묻는다. 감옥에 오기 전 법률가이자 의병이었고, 그 이전엔 충과 효를 숭상하는 유림이었던 대한광복회 창립자 박상진. 소설은 그의 업적을 길게 늘어놓지 않지만, 벽의 울음과 나누는 몇 마디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큰 사람인지 짐작게 한다. 차무진 작가 특유의 상상과 현실의 경계를 오가는 듯한 이야기, 어딘지 모르게 끈적이고 뜨끈한 묘사가 짧은 글에서 빛을 발한다. 덕분에 서른여덟의 나이로 순국한 아까운 이름 ‘박상진’ 세 글자를 깊이 새긴다.
남은 13편의 이야기도 저마다의 빛깔로 가슴을 울린다. 한 편 한 편이 짧은 초단편임에도 불구하고, 책장을 덮고 나면 그분들의 뜨거운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처음 던졌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본다.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은 것. 우리는 지금 무엇을 지키며 살고 있는가.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나'와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우리'라는 더 큰 가치를 품을 수 있는 곳이길 소망한다. 이 책이 준 가장 큰 선물은 바로 그 ‘살아있는 역사의식’이다. 올봄, 아이와 함께 이 17가지 진심을 꼭 한번 마주해 보길 권한다.
덧, 삽화와 인물 요약 너무 유용하고 좋습니다!
#1945이세계가사라지기전에
#독립운동#독립운동초단편앤솔러지#마름모#청소년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