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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집밥을 먹을 수 있는 횟수는 328번 남았습니다
우와노 소라 지음, 박춘상 옮김 / 모모 / 2026년 1월
평점 :

#도서협찬
“00할 수 있는 횟수는 000번 남았습니다” 내게 가장 두려운 00은 뭘까?
어느 날 갑자기 눈앞에 이런 문구가 뜬다면 어떨까요?
아마 내가 가장 피하고 싶은 ‘00’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존재일 것입니다. 저에게는 아마도 아이들이겠지요. 방학 내내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소음 속에서 간절히 ‘고요’를 갈망하다가도, 결국 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이 상황의 상실’이라는 사실이 참 아이러니합니다. 우리는 상실을 진지하게 상상하거나, 직접 겪어보기 전까지는 일상의 소중함을 너무나 쉽게 놓치고 삽니다.
<어머니의 집밥을 먹을 수 있는 횟수는 328번 남았습니다>는 우리에게 바로 그 ‘잊고 있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가즈키는 열 살 생일날, 어머니의 집밥을 먹을 수 있는 횟수가 정해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 숫자가 어머니의 죽음을 의미한다는 걸 깨달은 가즈키는 숫자를 줄이지 않기 위해 집밥을 회피하고 어머니와 단절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데요.
솔직히 읽으면서 슬픔보다는 답답함과 짜증이 먼저 치밀었어요. 어머니가 정성껏 싸주신 도시락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장면에서는 아까운 마음에 화가 났고요. 야위어 가는 가즈키를 보며 생각하게 됩니다. 과연 죽음을 늦추기 위해 현재의 사랑을 포기하는 것이 정답일까요?
작가는 이 외에도 다양한 ‘횟수’를 소재로 메시지를 던집니다.
전화를 걸 수 있는 횟수
수업에 나갈 수 있는 횟수
거짓말을 들을 횟수
살 수 있는 날수
가장 가슴 아픈 이야기는 <당신이 살 수 있는 날수는 앞으로 7000일 남았습니다>입니다. 할머니와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할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열 살 나오야는 어느 날 자신에게 남은 수명이 숫자로 보이기 시작해요. 막연한 불안을 느끼는 나오야를 지혜롭게 위로하며 가수의 꿈을 응원해주던 할아버지.
그런데 나오야의 숫자가 7000일쯤 남았을 무렵, 다정했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딴사람처럼 변해버립니다. 나오야에게 집에서 나가라며 모진 말을 내뱉고 차갑게 대하기 시작한 것이죠. 주변에서는 치매를 의심하지만, 엔딩에서 밝혀지는 진실은... 먹먹해집니다. 설 연휴를 앞두고 가족에 대한 애틋함이 더 진해지게 만드는 이야기입니다.
역자의 말처럼 가만히 보면 ‘숫자가 보이는 것’ 자체는 인생에 어떤 변화도 가져오지 않습니다. 그 숫자를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인생이 바뀌는 거죠. 같은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은 엄청난 각도로 휩니다. 그렇다고 비현실적인 희망을 품고 살자는 건 아닙니다. 너무 비관적인 시선에서 각도를 조금만 바꿔볼 수 있다면 조금 더 나은 삶이 되지 않을까요?
일상의 소중함을 잊은 당신에게
과거를 돌이키고 싶은 당신에게
공부하기 싫은 학생에게
짝사랑을 하고 있는 당신에게
사람을 믿지 못하는 당신에게
노는 즐거움을 잊은 당신에게
자유로운 삶을 꿈꾸는 당신에게
이 동화같은 이야기가 힘이 되길 바랍니다.
그나저나, 리뷰를 쓰다 보니 엄마가 끓여주시던 홍게 찌개가 사무치게 그리워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