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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류지에 머무는 밤 - 당신이 찾던 다정한 상실
박소담 지음 / 이상공작소 / 2025년 12월
평점 :

미간이 찌푸려졌다. 눈꼬리가 내려갔고, 나도 모르게 잇몸이 아프게 입을 앙다물었다. 성난 황소처럼 코로 큰 숨을 내뿜어야 했다. 늘 뭉쳐 있던 어깨가 더 밀도 높게 뭉쳤다. 늦은 밤 책을 펼치며 졸리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책을 읽으면서 잠을 잘 수 없을까 걱정해야 했다. 어린 소담(어린 시절의 작가를 칭할 때 ‘소담’이라 말하려 한다)이 안쓰러워 그의 앞길이 염려되어 어쩐지 책을 덮지 않고 계속 함께해주어야만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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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여러해살이가 나를 한 살 두 살 먹여 구원했다. 당신이 닿지 않은 형제, 자식, 손주도 없었다.」 _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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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에 아이가 하나 더 있다고 불평하는 사람은 없었다. 외할머니는 발로 미싱을 돌려 작은 잠옷을 만들었다. 이모들은 구정물을 비운 큰 양동이 속에 아이를 앉혀 목욕을 시켰고 머리를 말려 양 갈래로 땋아 줬다. 아이가 사고를 치면 돌아가면서 혼을 내기도 했다... 전부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들이 나에게 보여준 빛은 쉽게 흉내 낼 수 없었다.」 _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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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그가 괜찮으리라 기대하고 안도할 수 있었던 건, 이런 문장들 덕분이다. 어린 시절 외가에서 소담이 받은 어른의 사랑이 그를 아플지언정 다정한 어른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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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세상은 참 지독했다. 가정불화로부터 시작된 그의 상처들을 명명하여 적지 않는 이유는 이 책을 단지 뻔한 신파로 볼까 두려워서다. 나도 모르게 메모지에 문장을 옮겨 적을 정도로 문장이 진하다. 책에 실린 몇 편의 시를 보면 그의 글이 이토록 깊고 은유적인 이유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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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화가이자 시인이자 작가다. 결핍과 상실이 그의 삶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했음에도 그는 어쩜 그토록 많은 사랑을 품고 있을까? 발달장애 센터와 학교 밖 청소년들을 위한 수업과 봉사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그를 살게 하고 나아가게 하는 또 하나의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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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솥에 물을 받아 가스레인지로 옮겼다. 뒤따라 일어난 동생은 더운물로 머리를 감게 했다.」 _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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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는 다음 생에 꼭 부잣집 딸내미로 태어나. 그래서 하고 싶은 공부도 그림도 실컷 하면 좋겠어. 동생은 지나가듯이 하는 말로 우리를 위로한다.」 _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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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가에서 자라지 않은 동생은 소담이 받은 온전한 사랑조차도 경험하지 못했다. 그런 동생의 상처가 얼마나 아렸을지, 찬물로 머리를 감을 때 얼마나 부르르 떨었을지 자꾸만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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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내가 촌스럽게 굴 때마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탓했다. 너무 잘못 가르쳤다고 매를 들었다. 몸을 못 가눌 정도로 때렸지만 그렇게 잘못한 적은 없었다. 콕 집을 순 없지만, 그녀의 폭력은 오래된 서운함과 공허함일지도 모른다.」 _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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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였던 엄마, 아빠가 집을 나가자 우울증에 걸린 엄마, 혼자 딸 둘을 키우는 일이 너무 버거워 욕과 손찌검을 했던 엄마, 그러고선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작가의 엄마. 소설이나 영화에서 가끔, 아니 자주 만나는 이런 부모들은 내게 숙제 같은 존재다. 엄마도 한 사람이고 한 여자인데 그 인생이 얼마나 버거웠겠느냐며 면죄부를 주어야 할까? 하지만 나는 묻고 싶다. 자식을 때리면 엄마의 인생이 덜 버거워지느냐고. 이런 이해와 용서가 내게는 도무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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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용서는 다른 이야기일까. 마음의 금은 같은 자리에 생기고 또 생겼다. 그녀가 낸 칼자국은 너무 깊다. 들여다볼 용기가 날 때까지 넌지시 살아갈 뿐이다.」 _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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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그 길은 누군가와 연결된다. 누군가를 돕고자 했던 순간은 길이 되어 지난날과 훗날의 나를 모두 돕는다. 사람들의 환대와 친절과 응원은 그래서 소중하다. 배고프던 나의 시절에는 밥을 먹여주고 책을 사주고 봉투를 쥐여 준 사람들이 있었다. 어깨를 꼭 감싸며 기도해 준 사람들이 있었다.」 _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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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고맙고 고맙다. 환대와 친절과 응원은 그다지 돈이 들지 않는다. 다정한 것이 세상을 구한다. 환대와 친절과 응원이 코로나처럼 퍼지면 좋겠다. 그리고 작가가 부디 올해 여름에는 새벽마다 현관을 열지 말고 푹 잘 수 있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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