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언덕 (양장) 앤의서재 여성작가 클래식 5
에밀리 브론테 지음, 이신 옮김 / 앤의서재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재독인데도 여전히 충격적이고 섬뜩했다. 책을 읽으면서 중간중간 정리한 내용이 2000자가 넘었는데 책을 덮고 보니 처음부터 다시 써야만 했다.

 

 

 

잔인하고 야만적인 주인공 히스클리프의 폭력적이고 비인간적인 언행과 그의 하인이 조지프의 광적이고 비정상적인 신앙, 캐서린의 이기적인 모습 등에 화가 나서 그들의 사랑의 진정성조차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히스클리프의 불행한 출신과 어린 시절 워더링 하이츠에서 힌들리와 하인 조지프로부터 겪은 학대도 훗날 그가 저지르는 악행들을 합리화할 수 없다고 그를 비난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자기의 보호막이 되어줄 어른의 부재에서 히스클리프를 영혼의 단짝으로 여겼던 캐서린 언쇼, 강제로 히스클리프와 분리되고 그가 돌연 사라지면서 느끼게 된 상실감도 역시 그녀의 이기적인 행동을 합리화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내 눈에는 캐서린 언쇼를 사랑한 댓가로 모든 것을 잃게 되는 에드거의 억울하고 안타까운 삶만 더 크게 보였다. 무고한 사람이 불행을 뒤집어쓰게 되는 게 못마땅했다.

 

 

하지만 책의 후반부부터 냉정함을 찾아가고 주인공을 미워하는 감정에서 조금 빠져나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갑작스런 에드거 린턴의 청혼을 받고 캐서린이 넬(캐서린의 보모이자 하녀)에게 히스클리프랑 혼인하면 내 격이 떨어지고. 그러니까 내가 걜 얼마나 사랑하는지 걔는 절대 알면 안돼.’라고 말하는 걸 들은 히스클리프는 잠적해버린다. 신분제란 배경이 없었다면 <폭풍의 언덕>은 애초에 쓰이지 못했을 것이다.

 

 

도대체 이 비극적인 이야기의 발단은 뭘까? 화근이 된 건 누굴까?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던 선물 대신 검고 꾀죄죄한 아이(히스클리프)를 안고 나타난 캐서린 언쇼의 아버지? 그를 괴물 취급하며 배척하고 학대한 집안사람들? 아내를 잃은 슬픔으로 스스로 삶을 망가뜨리고 동생과 히스클리프를 학대한 힌들리 언쇼? 둘의 사랑을 가로막은 계급사회?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 결정적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미리 막지 못한 하녀 엘렌? 복수심에 불타 인간이길 포기한 듯 비정한 악인이 돼 버린 히스클리프? 캐서린의 친구로 히스클리프를 받아들여 주지 못해 캐서린을 병들게 한 에드거? 어리석은 사랑에 빠져버린 이사벨라?

 

 

 

 

모든 불행은 그 씨앗이 있겠지만 그 불행이 싹틔우기 전, 잎을 피우기 전, 더 자라기 전, 가지를 뻗기 전, 꽃을 피우기 전, 열매를 맺기 전 완전히 그 땅을 점령하기 전에 멈출 수 있는 순간은 많다. 반갑지 않더라도 그 아이를 조금만 더 다정하게 대했더라면, 아내를 잃은 슬픔을 아들을 위해 극복해냈다면, 신분 따위보다 행복을 위해 사랑을 선택했더라면, 그토록 사랑했던 캐서린의 딸에게 조금만 인정을 베풀었더라면.. 그랬다면 불행을 멈출 수 있지 않았을까?

 

 

 

 

비극이라 했지만 엔딩은 결코 비극적이지 않다.

비극적인 결말이 오래 남는다지만 나는 이 소설의 어떤 장면보다도 캐시와 헤어턴의 마지막 모습이 좋았다.

 

 

 

 

이 책의 저자이자 <제인 에어>의 저자 샬롯 브론테의 동생인 에밀리 브론테는 겨우 30년이란 짧은 삶을 마감하기 1년 전에 이 작품을 남겼다고 한다. 실제 브론테 남매가 살았던 히스가 무성하고 황량한 산악지대는 소설에도 등장하는데 그들의 문학적 토양이 되었다고 한다. 자매는 비슷한 환경에서 함께 자라고 소통했음에도 글의 색깔은 다른 느낌을 주는데 10대 이후 생활한 환경의 차이가 큰 역할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앤 브론테까지 세 자매 모두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 그들의 작품을 더 볼 수 없음이 너무나 안타깝다.

 

 

 

 

 

주인의 나쁜 버릇과 불량한 벗들은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에게 적잖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특히 히스클리프가 당한 학대는 가히 성자라도 악마로 변하게 할 만한 것이었지요._116

 

 

내 세상의 중대한 비극들은 히스클리프가 겪는 비극들이었어. 나도 처음부터 낱낱이 보고 느꼈지. 내 삶의 중대한 생각은 그 애 자체야. 만일 다른 모슨 게 소멸하고 그 애만 남는다면 난 그래도 계속 존재할 수 있다._145

 

 

 

 

배가 좌초하자 선장은 직분을 내팽개치고, 선원들은 배를 살리려 노력하기는커녕 난동과 혼란으로 뛰어들고, 하니 불운한 배는 희망을 아주 잃을 수밖에요. 반면에 린턴은 신실한 영혼의 진정한 용기를 보여주었어요. 그분은 하느님을 믿었고 그분을 위로하셨지요. 한 사람은 희망했고 한 사람은 절망했어요. 각자 스스로 선택한 운명, 마땅히 감내해야 하는 거예요._32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