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소설 속에 도롱뇽이 없다면 -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 만들기
이디스 워튼 지음, 최현지 옮김, 하성란 추천 / 엑스북스(xbooks)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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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대의 ‘여성 작가’가 소설이라는 장르 자체를 탐구하고 논의하였다는 점에서 현대문학사의 귀중한 가치를 지닌]다는 이 책은 이디스 워튼이 『순수의 시대』(1920)로 여성 최초 퓰리처상을 수상한 이후 쓰였다고 한다. 책 속에서 이디스 워튼은 발자크와 스탕달,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새커리, 조지 엘리엇, 플로베르, 스티븐슨, 조지 메러디스, 제인 오스틴 등 자신이 훌륭하다 생각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언급하면서 좋은 소설이 가지는 특징들을 설명한다. 나같이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좋은 작품을 고를 수 있는 안목을 기르는데 도움이 될 수 있겠고, 작가의 길을 걷고자 하는 이들에게 소설 쓰기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요소들을 짚어주는 가이드가 될 수 있으리라!

나의 인생책 대부분이 소설일 정도로 나는 소설을 좋아한다. 무릎을 탁치게 만드는 짜임새 있는 스토리의 소설도 좋고, 사회적 문제를 다루어 시사하는 바가 있는 소설도 좋다. 생각지 못한 반전이 있는 소설도 좋고, 풍자와 해학으로 웃음을 자아내는 소설도 좋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소설 속 인물에게 빠져들었을 때 비로소 그 소설은 내게 인생책이 되었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디스 워튼과 난 좀 통하는 건가?

「성공적인 이야기와 성공적인 소설사이의 묘한 구별은 즉시 드러난다. 감히 말하자면 (예술에 있어 성취를 가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생존이기에) 소설을 가늠하는 잣대는 사람들이 살아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얼마나 유익하든 상관없이 어떠한 주제도 그 자체로는 소설에 생동감을 주지 않는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건 오직 소설 속 인물들뿐이다.」 _56

단편소설의 경우는 예외로 오직 상황의 극적인 표현 덕에 생동감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소설의 경우 주된 관심사가 ‘인물’인 반면 단편소설의 경우는 그 관심사가 ‘상황’이고 형식과 표현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내가 단편소설을 선호하지 않았던 이유도 밝혀진 셈이다. 단편소설은 인물보다는 사건의 생생한 인상, 이야기의 폭발적인 힘에 더 중심을 두기 때문에 캐릭터에 몰입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정말 인상 깊었던 니콜라이 고골의 단편 『코』, 『외투』 등을 반추해보니 느닷없이 코가 없어졌다던가, 큰맘 먹고 장만한 새 외투를 잃게 되는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의 짠내 나는 사연들이 매우 극적이었기에 순식간에 몰입할 수 있었지만 그 인물에 대한 매력이 나를 이끌고 간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사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제목 때문이기도 했다. ‘소설 속에 도롱뇽’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할까? 찐빵에 앙꼬같이 소설에서 절대적 필수 요소를 말하는 것인가 조심스레 추측해보기도 했다. 책의 1/3 지점에서 난 드디어 도롱뇽을 발견하고 신이났다.

「이는 또 다른 요점으로 이어진다. 보여 줄 도롱뇽이 없다면, 독자의 귀를 막아 봤자 소용없다는 것이다. 당신이 지핀 작은 불꽃의 중심부가 살아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래서 다른 무언가를 움직이지 않는다면, 소리를 지르거나 흔들더라도 독자의 기억 속에 일화를 각인시킬 방법은 없다. 이야기를 말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드는, 근본적인 의미를 상징하는 존재가 바로 도롱뇽이다.」 _61

독자의 기억 속에 각인시킬 ‘무언가’가 왜 ‘도롱뇽’인지 궁금할 것이다. 벤베누토 첼리니가 난롯가에 앉아 있다가 아버지와 동시에 불 속에서 도롱뇽을 보는 이례적인 경험을 했는데 아버지가 곧장 아들의 귀를 감쌌고 그로써 그는 자신이 본 것을 결코 잊지않게 되었다고 한다. 이 일화는 ‘도입부가 생생하고 효과적이라면 독자의 관심을 즉시 끌어올 수 있다’는 일종의 격언이 된 것이다. 이 도롱뇽은 이야기에 영혼을 불어넣는 존재다.

문장의 호흡은 긴데 단어들은 어렵고 예시는 대부분 읽어보지 않은 고전이 차지하고 있어 비록 내게 쉽지 않은 책이었지만 많은 부분 저자의 의견에 공감할 수 있었고 소설가들이 겪는 혹독한 창작의 과정에 대해 가늠해볼 수 있어 좋았다. 소설을 좀더 깊이 있게 이해하며 읽고 싶은 분들과 소설을 쓰는 분들은 꼭 읽어보시길 추천한다.

「쌓아 올린 모든 돌에 고유한 무게와 힘이 있고, 가장 높은 탑을 세우기 위해 그 비율을 고려해 기초를 놓으면서 서서히 세워지는 기념비가 바로 소설이다.」 _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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