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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비한 여자들 - 최고의 쌍년을 찾아라
멜라니 블레이크 지음, 이규범 외 옮김 / 프로방스 / 2023년 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960년에 채널 아일랜드 TV를 창립한 티나와 해리 부부는 자신들이 좋아하는 성 어거스틴 섬에서 목가적인 해면 마을을 배경으로 섬 사람들의 일상 드라마 ‘팔콘만’을 만들고 대 히트를 친다. 애석하게도 부부의 아들은 ‘팔콘만’에 애정이 없었고 티나와 해리가 죽고 나자 방송사의 주인이 여러 번 바뀐다. 목가적이고 아름다운 풍경이 무색할 정도로 치열하고 바쁘게 돌아가는 사무실 내부의 분위기는 활기 있을지언정 즐거워 보이진 않는다. 게다가 오랫동안 높은 시청률을 자랑해오던 장수 프로그램이자 가볍고, 즐겁고,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유명한 ‘팔콘만’은 지금 위기다.
팔콘만의 총책임프로듀서인 제이크는 성별과 연령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고 남의 아이디어를 가로채는 개자식이다. 자기 아이가 세상에 나오는 순간에도 아내 아만다와 함께 해주지 않았다. 아만다는 출산휴가 후 돌아온 회사에서 자신이 강등되었음을, 자신의 남편인 제이크는 어떤 도움도 주지 않았음을 알고 배신감을 느낀다.
‘팔콘만’의 캐스팅과 언론은 책임지고 있는 헬렌 골드의 느닷없는 제안으로 팔콘만의 최고의 쌍년 찾기가 시작된다. 제이크는 헬렌의 아이디어가 몹시 마음에 들었고 그래서 어느새 그 아이디어는 제이크의 것이 된다. 늘 그렇듯이.
「전형적인 제이크였다. 제이크가 이 함정에 대처하는 도널드 트럼프식의 가장 좋은 방법은 ‘뉴스를 속이는 것’이었다.」 _65
최고의 쌍년 후보는 한때 잘나갔지만 신경안정제로 버티고 있는 스테이시 스톤브룩, 드라마 악역의 아이콘이었지나 지금은 변변찮은 TV쇼에나 출연하고 있는 리디아 체임버스, 이 둘의 공통점은 무엇보다 간절하게 연기를 다시 하고 싶은 것이다. 마지막 후보는 오스카상 수상 경력이 있지만 수십 년 동안 잊혔던 허니헌터다. 그녀는 소녀스타에서 나이 많은 감독과 연애, 결혼, 불륜, 이혼, 술 등으로 배우 생활을 유지하지 못했다.
새로운 소유주 매들린 케인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남성 중심의 인사를 강행하고 오랫동안 팔콘만의 안주인으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캐서린 벨(루시 딘 배역)을 팔콘만의 재기를 목표로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는 크리스마스 생방송에서 죽이자고 제안한다. 알고보니 그녀가 루시 딘을 드라마에서 죽이려는 이유는 따로 있었고 이 반전이 책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라 생각한다.
「진정한 내부자로서 멜라니는 연예계의 모든 속사정을 보아왔다. 그리고 이제 멜라니는 소설을 통해 그 비밀들을 파헤치고 있다.」 _5
강렬한 제목과 연예계 비밀 폭로라는 말에 구미가 당겼지만, 사실은 다소 실망스럽다. 매끄럽지 못한 번역도 한몫했는데 마지막 반전 하나에서 이 스토리가 시작된 건 아닐까 할 정도로 마지막에 가서야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었다. 분명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고 이성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인데 동물적인 본능에 지나치게 휘둘리는 모습이 과하게 느껴졌다. 연예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하나같이 매력적이고 섹시한 인물들이기에 서로 육체적 끌림을 시도때도 없이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인지...
경쟁과 자기 성공을 위해 가차 없이 친구를 버리는 제이크, 그는 원래부터 개자식이었기에 기대가 없었지만, 늘 ‘남성 중심적인 팔콘만’에서 여성으로서 불합리함을 겪어 왔고 자신의 능력에 자부심이 있었던 작가겸 감독 파라의 행동은 실망 그 잡채! 결국은 자신이 중요한 일을 차지하기 위해 그토록 혐오하던 제이크에게 미인계를 쓰다니! 절친한 친구 남편인 제이크와 사무실에서 일을 저지르다니!(물론 목표가 성취 되었음을 아는 순간 저지르긴 했다)
캐스팅 담당 헬렌 골드는 오디션을 보러 온 젊은 배우들과 너무도 쉽게 관계를 맺는다. 방음처리가 된 사무실에서! 그 관계가 오디션의 합격 여부와 전혀 상관이 없으며 상대의 동의를 구했다는 식으로 정당화하지만, 오디션을 보러 간 사람 입장은 다르지 않을까? 권력을 쥔 남성들이 저지르던 파렴치한 만행이 성별만 바꿔 행해지고 있다는 느낌에 씁쓸했다.
아만다를 진심으로 아껴준 댄과 이 책에서 유일한 not쌍년이라 할만한 아만다의 러브라인은 로맨틱드라마를 보는 듯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