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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 옮김 / 작가정신 / 2023년 3월
평점 :
smell
막둥이와 동갑내기 아이가 있는 지인과 함께 신나게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허기진 배를 채우러 돈가스집을 찾았다. 어디에 주차할지 물어보러 가게에 들어서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눈에 보일 정도로 꽉 찬 기름 연기에 혀를 내두르며 차를 돌렸던 적이 있다.
touch
신혼여행 패키지에 포함되어 있던 비싼 마사지, 간지럼을 유독 많이 타는 내겐 타인이 등부터 종아리까지 온몸을 주무르는 자극은 힐링이 아니라 일종의 고문이었다.
taste
어릴 적 편식이 심했다. 달고 고소하고 담백하고 적당히 매콤한 맛 외에 시고 쓰고 짠맛은 모두 피했던 것 같다. 지금도 차라리 쓴 한약은 먹을 수 있지만 느글느글한 양배추즙, 양파즙은 삼키기가 너무 힘들고 신맛에 취약하다.
hearing
대학생 시절, 친구들과 몇 번 나이트클럽에 갔었다. 나름 흥부자인 나와 친구들은 신나게 놀아보리라 야심차게 나이트에 갔지만 늘 두 시간도 못 채우고 나왔다. 끊이지 않고 심장을 때리듯 쿵쿵 울리는 나이트 음악 소리가 나의 체력을 4배속으로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vision
살아 움직이는 털뭉치들이나 꼬물거리는 어린아이들을 보면 몸이 베베 꼬인다. 만지고 싶고 껴안고 싶어 안달이 난다. 봄에 움트는 여린 이파리들에 마음이 들뜨고 탁 트인 청량한 바다를 보면 마음속에 쌓여있던 고민이 씻겨나가듯 시원한 기분이 든다. 여름, 나무 향기를 강렬하게 내뿜는 숲에서 하늘을 바라보면 마음이 평안해진다. 연지곤지 찍고 단장한 단풍산을 보면 가을의 쓸쓸함이 덜어진다. 하얗게 쌓인 눈이 몰고 오는 추억의 쓰나미는 또 어떻고.
synesthesia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시작되고, 배우들이 하나씩 등장하며 매력적인 음색으로 노래를 시작되고 여러 명의 군무가 이어지면서 각각의 배우들은 자기만의 색깔로 표정 연기를 한다. 모든 인물의 표정을 한꺼번에 보고 싶지만 그럴 수 없기에 내 눈은 우왕좌왕한다. 아무도 나를 터치하지 않았지만, 음악의 진동은 내 잔털을 곤두서게 하고 많은 자극을 받아들이고자 쏠린 피로 머리가 묵직해진다. 강렬한 붉은 색은 내 코에 피비린내가 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뮤지컬 스위니 토드를 보며 나의 모든 감각이 생생해지는 경험을 했다.
감각의 박물학은 말 그대로 ‘후각, 촉각, 미각, 청각, 시각, 공감각’에 대한 다양한 연구, 예술, 작가의 경험, 역사 속 독특한 사례, 과학적 설명을 아름다운 글로 전시해 놓은 듯한 책이다. 나는 감각이 예민한 편이다. 특히 후각과 청각에 예민해서 삶이 피곤하다 여겨질 때가 가끔 있는데 이 책을 통해 예민한 감각의 긍정적인 면을 더 많이 발견하게 되어 좋았다. 우리의 감각은 단순히 생존하기 위한 기본 수단이 아니라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과거 의사들은 후각에 의존해 질병을 진단하기도 했고 인큐베이터 속 조산아들에게 접촉은 피와 살이 되기도 한다. 쓴맛의 미뢰는 혀의 가장 뒤쪽에 있어서 위험한 것이 넘어오면 구역질을 일으켜 목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는다고 한다. 시끄러운 소리는 영구적인 청력 파괴를 가져올 수도 있지만 청각을 통해 우리는 대화와 소통을 할 수 있고 아름다운 음악을 즐길 수 있으며 그로 인해 추억에 빠질 수도 있다. 인체의 감각수용기의 70%가 눈에 모여 있어 우리는 주로 세계를 봄으로써 그것을 평가하고 이해한다고 한다. 시각은 우리 삶에 가장 중요하고 밀접한 것이라 ‘모든 아름다움’이 더 유리한 사회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다른 감각에 더 많은 감각수용기가 있었다면 달랐을까?
우리의 감각은 변화와 새로움이 없으면 졸기 시작하고 아무것도 기록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는 구조적으로 늘 새로운 것에 열광하게 만들어져 있어서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해 생각하고 발전하게 되는 것일까?
감각을 통해 들어온 자극은 모두 전기 자극으로 뇌에 전달된다. ‘뇌는 눈멀고, 귀 멀고, 말 못 하고,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육체는 정말 전기로 노래하고, 마음은 그것을 교묘하게 분석하고 고찰한다. 그래서 어느 정도까지는, 실재는 만장일치의 허구다.’ _후기 중
저자의 말이 맞다면 교묘하게 분석하고 고찰하는 마음은 도대체 어디 있는 것일까? 그 마음은 ‘영혼’일까? 파고들수록 생각할수록 어려워지지만 생각하게 하는 책은 언제나 옳다.
「언어는 촉각의 은유에 젖어 있다. 우리는 감정을 느낌이라고 부르고, 무엇인가 접촉할 때 신경이 곤두선다. 인생에는 가시돋친 문제, 간지러운 문제, 끈적거리는 문제가 있으며, 때로는 가죽 장갑을 끼고 부드럽게 다루어야 할 문제도 있다.」 _127
「“오늘 당신의 자녀를 안아주었습니까?”」 _143
「세상에서 가장 위안을 주는 소리 가운데 하나가 혀끝을 잇몸 바로 뒤에 부딪쳐서 라,라,라,라,라,라 하고 노래하는 소리다.」 _3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