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임볼로 음붸 지음, 구원 옮김 / 코호북스(cohobooks)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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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표범의 아들딸이여, 우리를 해하려는 자, 각오하라. 우리의 포효를 잠재울 수 없을지어니.」



「펙스턴이 파헤치기 시작한 날부터 순수성을 잃은 우리 땅에서 오염된 농작물과 공기에 자욱한 오염물과 물에 섞여 들어간 오염물에 죽은 아이들을 기억했다.」 _13~14


코사와 마을 아래로 유전이 흐른다. 펙스턴은 정부에게서 땅을 샀고 모든 책임은 정부가 지기로 했지만 정부는 코사와 마을의 안위 따위에 관심이 없다. 산수를 제일 잘하던 왐비의 경련 같은 기침과 죽음, 그 뒤로 이어진 친구들의 죽음을 보고서 아이들은 죽음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겁에 질린 채로 잠자리에 들었다가 겁에 질린 채로 일어나고, 온종일 두려움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에 진저리가 났다.」 _19

펙스턴의 대표단이 내뱉는 속 빈 강정같은 말들에 마을 사람들은 다시 한번 실망하고 무력감에 빠지는 모습에 화가 났다. 그 큰 유전회사가 아이들이 마실 생수만 지원해주는 일도 할 수 없다니, 어떤 안정 장비도 없이 종일 고사리손으로 코발트를 채굴하는 콩고의 아이들이 떠올라 가슴이 아팠다.


마을의 광인으로 알려진 콩가가 회의는 끝나지 않았다고 대장(텍스턴 대표)에게 소리치고 노란 가래침을 대장의 발 앞에 뱉었다. 한때는 뭐든 잘하는 미남으로 마을에서 촉망받던 남자였던 콩가는 어느 날 들리기 시작한 목소리 때문에 광인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대장의 운전기사를 숨기고 차키를 빼앗아 들고 와선 대표단을 보낼 수 없다고 말한다. 고상한 척하던 대장이 새된 소리를 내며 소리를 지르고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이 고소했지만, 족장이 군인들이 들이닥쳐 모두를 죽일 것이라는 말을 하자 다들 위축되어 콩가를 말리기 시작했다. 광인에게 손을 대면 저주를 받는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도 함부로 콩가에게 손을 대지 못했다. 사람들은 콩가의 몸에 신령이 깃들어 저들과 싸우라고 지시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왐비의 아버지 루사카는 저들을 포로로 잡고 펙스턴과 협상을 하자고 제안했다.




「아빠는 나중에 어른이 되거든 어린 시절을, 내가 너무나도 작고 약해서 보호가 필요했던 기분을 잊지 말라고 했다. 자기 역시 한때는 어린아이였다는 사실을 잊은 사람들이 세상의 많은 고통을 야기한다고 말해주었다. 이런 아빠를,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아빠를 잃은 상실감을 과연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을까?」 _48



툴라의 동생 주바가 무당 자카니의 도움으로 죽음의 기로에서 돌아서는 장면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가족들의 마음이 되어 함께 기도했다. 주바는 살아났지만, 툴라의 아빠는 더이상 손 놓고 있을 수 없다며 누가 봐도 덫인 듯한 그곳, 베잠으로 떠났다. 아빠를 기다리는 열흘이 얼마나 긴지 묘사하는 문장들이 인상적이다. 이번엔 툴라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 그 시간을 힘들게 버텨야 했다. 스무날이 지나도 아빠는 돌아오지 않았고 정부에서 일하는 우자베키의 아들 고노는 그들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엄마는 조산하고 아기는 죽었다. 툴라는 복수를 다짐했다.




툴라의 삼촌, 실종된 말라보의 동생 봉고는 일이 이렇게 되고 루사카의 추천으로 지도자가 되었다. 코사와를 도와줄 몇 명의 베잠 사람 이름만을 요구했지만, 대표단은 입을 열지 않았고 한 명은 죽어가는 상황에서 봉고는 새로운 계획을 세워야만 했다. 그 무거운 책임감을 봉고는 어떻게 헤쳐나갈지 기대와 걱정이 동시에 일었다.


「모든 사람이 꼭 해야만 하는 일만 한다면, 아무도 자기 의무라고 생각하지 않는 일은 누가 하니? 형은 의무와 즐거움은 무관하다고 말했다.」_146

항상 타인의 위해 희생하던 말라보 형이 봉고에게 했던 말이다. 말라보와 같은 마음들만 모인 세상은 정말 얼마나 아름다울지 잠시 상상해 봤다. 애석하게도 세상은 그렇지 못했고, 펙스턴의 대표단 중 ‘아픈 사람’이라 불리던 사람이 기자인 자신의 조카를 소개했고 덕분에 코사와의 비극을 미국에 알릴 수 있었지만 ‘아픈 사람’은 결국 죽어버렸고, 코사와에 학살이 일어났다.


코사와의 이야기가 미국에 전해지고 복원 운동 단체가 힘을 쓴 탓에 펙스턴으로부터 얼마간의 보상을 받아낼 수 있었다. 그들이 코사와를 방문하고 떠나는 길에 여인들과 소녀들이 입을 모아 노래했고 가슴에서 뜨거운 덩어리가 올라와 나의 눈시울도 붉혔다.

「우리의 이야기는 반드시 전해져야 해. 모두에게 듣기 좋은 이야기는 아닐지언정, 말하는 사람의 입을 기쁘게 하는 이야기는 아닐지언정, 우리의 이야기는 반드시 전해져야 해.」 _189




툴라는 남달랐다. 그녀는 복원 운동 단체 사람을 통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코사와를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고향에 남겨진 동기들과 편지로 서로의 용기를 북돋우며 펙스턴에 대항하고, 정부에 저항하기 위해 사랑도 뒤로 하고 남은 삶을 바친다. 혁명을 꿈꾸고 희망을 잃지 않는다. 이 소설은 소설답지 않다. 지극히 현실적이다. 지구 곳곳에서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고 일어날 수 있는, 그렇기에 주먹을 불끈불끈 쥐게 된다. 표범의 피가 흐르는 코사와의 사람들, 그들은 아름다웠다. 우리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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