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도어 프라이즈
M. O. 월시 지음, 송섬별 옮김 / 작가정신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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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삶에 만족하시나요? 솔직히 저는 지난 제 삶에 아쉬움이 참 많아요. 어릴 때 책을 더 많이 읽지 못한 것, 내가 좋아하는 것에 매달려 보는 욕심을 내지 못한 것, 변화와 모험을 피하고 안전한 길만 선택해왔던 것들 같은 것들이죠. 사실 이 책을 읽기 시작할 때만 해도 나는 DNA MIX 기계 앞에 서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책을 덮으며 생각이 바뀌었어요. 가슴 속에 묻어 두었던 ‘열정’을 불러일으키고 그 열정을 잘 다스리기만 한다면 더 활력 넘치는 삶을 살 수 있겠다고 느꼈거든요. 더글러스 허버드가 DNA MIX 기계와 상관없이 어느 날 문득 잠자고 있던 트롬본에 대한 열정을 인정하고 용기를 내면서 경험하는 행복감과 충만감을 누군가는 DNA MIX 기계의 결과지를 통해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물론, 테스트 결과가 지금이 자기 모습 그대로 나오거나 한 학생처럼 ‘접착제’ 같은 게 나온다면 다소 의기소침해질 순 있겠지만요.

미국 남부에 위치한 디어필드라는 작은 마을, 식료품 가게에 DNA MIX 기계가 들어오면서 단조롭던 사람들이 일상이 바뀌기 시작해요. 볼 안쪽을 면봉으로 문지른 뒤 글자가 적힌 구멍 안으로 넣으면 곧 결과지가 나와요.

「더글러스 앨런 허버드. 눈 색은 갈색. 머리색도 갈색. 가능한 신장은 188센티미터. 가능한 체중 88킬로그램. 가능한 자녀 수 없음. 가능한 신분 ‘휘파람 부는 교사’」

이런 식으로 말이죠. 마술사, 인형 조종사, 제빵사, 왕족, 수영 국가 대표, 연인, 카우보이, 투수 등의 결과를 받아든 사람들은 당장 자기 신분에 맞는 옷을 주문하러 옷가게를 찾고 수영장을 만들고, 엄청난 습도와 더위 속에서 거구의 몸으로 자전거를 타기도 하고요, 타인의 반응과 상관없이 여자들이 자기에게 빠질 거라는 자신감에 휩싸이기도 해요. 개인적으로 인기도 없고 특별할 것 하나 없는 학생들이 이 결과에 집착하는 모습은 안쓰럽게 느껴졌어요. 현재 자기 모습에 전혀 만족하지 못하니 더욱 결과를 맹신하게 되는 것 같았어요.

이런 사람들의 반응을 걱정스러워하는 고등학교 교사 더글러스는 갑자기 달라진 아내 셰릴린의 차에서 발견한 아내의 이름이 적힌 푸른 종이에서 ‘가능한 신분 왕족’을 발견해요. 둘은 제가 부러울 정도로 소문난 잉꼬부부예요. 그런 그들 사이가 ‘왕족’이라는 결과 하나로 인해 조금씩 틈이 생기기 시작해요.

더글러스의 학교 학생 제이컵은 쌍둥이 형 토비를 잃은지 얼마 되지 않아 굉장히 불안정한 상태예요. 운동선수에 잘 웃고 밝은 성격의 그야말로 인기남이었던 토비와 달리 제이컵은 포켓몬 마니아인 소극적인 아이였지만 둘은 더없이 좋은 친구이자 형제였어요. 토비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그가 사고가 나던 날 옆에 있어 주지 못한 자신을 원망하는 제이컵을 보며 가슴이 먹먹해졌어요. 음주운전 사고로 죽은 줄 알았는데 토비의 전 여친이었던 음침한 분위기의 트리나가 제이컵에게 형의 사고의 책임이 그 친구들에게 있다고 말하면서 접근해요. ‘복수’를 꾸미면서 혼란스러워하는 제이컵을 끌어들이려고 하죠.

트리나의 외삼촌이자 카톨릭 제단 고등학교의 신부인 피트는 마을 사람 모두의 고민을 알고 있는 사람이에요. 신앙심도 배려심도 유머러스함까지 나무랄데 없는 피트는 트리나의 불안전한 환경을 걱정하고 살피는데요. 아내를 잃고 아들을 잃은 제이컵의 아버지 행크 리슈 시장과 교사 더글러스와 즐거운 술자리를 끝내고 돌아가던 길에 남의 집 창문에서 기어나오는 트리나를 보지만 못 본체 해요.

책 속 인물들은 저마다의 비극을 가지고 있어요. 셰릴린만을 짝사랑한 듀스의 입장에선 단 한번도 그녀에게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것이 엄청난 비극이죠. 아내와 아들을 연달아 잃은 행크, 쌍둥이 형제를 잃고도 슬픔 속에 홀로 방치된 제이컵, 충분히 사랑하고 사랑받고 살고 있지만 단조로운 자신의 삶이 왠지 무가치하게 느껴지는 셰릴린, 트리나의 삶은 어디부터 비극이 시작된 것인지 찾아야 할 만큼 아프기도 해요. 그럼에도 이 책은 희망과 사랑과 소통과 꿈을 이야기하고 있어 매력적인 소설이에요. 월시의 전작 『마이 선샤인 어웨이』를 꼭 찾아보고 싶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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